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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섬, 보물섬에서 맛보는 여유"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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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서쪽 끝의 신안군은 연륙교(連陸橋)가 생기기 전까지 바다 위에 떠 있던 마을이다. 1개 읍(邑), 13개 면(面), 827개의 섬(島). 그 섬 중 사람이 살 만한 76개의 섬에 뿔뿔이 흩어져 생활을 꾸려가던 섬 사람들은 뭍을 그리며, 동경하며 바다와 함께 살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뭍 사람들은 말한다. 고사리와 깨, 양파와 마늘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땅을 가져 좋겠다고. 그물만 드리우면 물고기가 지천으로 올라오는 바다를 가져 좋겠다고. 그리고 더불어 말한다. 그래도 이 섬에서 일주일은 못 살겠노라고. 너무 조용해서 심심하다고.

 여름을 기다리는 섬

무안과 연륙한 섬, 지도에서 배를 타고 10분이면 닿는 임자도도 그렇다. 피서(避暑)라는 명목으로 여행자가 쏟아지는 여름을 제외하고 임자도에서 외지인의 흔적을 찾아보긴 힘들다. 그저 4000명이 채 되지 않는 이곳 주민들만이 물때에 맞춰 섬을 떠나 바다로 나가고, 다시 섬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한다.


1.섬사람들도 물 때에 맞춰 바다로 나갔다 섬으로 돌아온다 | 2.개펄은 섬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여름이 오지 않은 해수욕장은 그래서 조용하다. 아니 쓸쓸하다. 12km나 이어져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대광해수욕장의 해변은 정적만이 감돈다. 이곳 해변을 이루고 있는 모래, 규사는 단단하게 뭉쳐질 정도로 곱디 고와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라지만 요즘 같은 시절에는 증명할 방법도 없다. 다만 앞바다를 수놓은 작은 섬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과 조용히 밀려오고 나가는 파도만이 해변의 친구가 될 뿐이다.

사색이나 고독을 위한 공간으로 섬을 바라본다면 그만이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임자도는 그야말로 가장 섬다운 섬이다. 하지만 임자도는 외지인이 북적대는 여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숱한 고깃배가 임자도에 들락대던 수십 년 전만 해도, 임자도 서편에 자리한 작은 섬 재원도에는 큰 파시(波市)가 형성됐다. 당시에는 섬과 섬 사이에 줄지어 선 배로 그 위를 걸어서 건널 정도였다니, 그 성황과 분주함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리고 아마도, 여름의 섬은 그가 누렸던 과거의 영화(榮華)를 꿈꾸려 할 것이고. 

과거의 영화를 얘기하자면 증도가 으뜸이다. 600여 년 전, 중국 경원을 떠나 일본으로 가던 무역 상선은 방축리 도덕도 앞 바다를 지나게 됐다. 배에는 2만 점이 넘는 청자와 백자, 2000점에 이르는 금속과 석제 유물, 800만 점이 넘는 동전과 향나무 등이 실려 있었다. 허나 세찬 조류에 휘말린 배는 침몰되는 불운을 겪고 만다. 그 잠자던 유물 아니 보물들은 지금에서야 발견돼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보관돼 있다니, 증도의 바다는 수백년 동안 그들을 보듬은 영화를 누린 셈이다. 
 
박물관에 고이 모셔진 보물도 보물이지만 사실 증도는 그들보다 더욱 빛이 난다. 임자도에서 배를 타고 지도로, 지도에서 다시 증도 버지선착장으로 내달린다. 임자도에서 실어온 조용하고 쓸쓸한 섬의 기운은 버지선착장에서 16k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한 우전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참이다. 허나 그 기운은 붉은 해당화가 피어나는 해변과 자전거 도로가 난 송림의 아름다움으로 단박에 날라가 버린다. 해수욕장 한 켠, 128만 평에 이르는 개펄은 또 어떤가. 목교(木橋)인 장뚱어교 아래에는, 온갖 바다생물이 숨쉬며 살아가는 개펄이 시시각각 다른 빛과 모양을 드러내며 누워 있다.


바다를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

바다생물이 바다를 먹고 살아가듯 섬 사람들도 바다를 먹으며 살아간다. 내갈도와 대단도가 바라보이는 증도의 한 구석, 독살과 개매기라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독살은 커다란 바위로 물을 막아, 밀물 때 들어왔다가 썰물 때 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방법. 바위가 아닌 그물에 갇히도록 하는 것은 개매기다. 독살이나 개매기는 겉보기엔 허술해 보이지만 조황은 꽤 괜찮은 편이다.

어른 팔뚝보다 큰 숭어와 농어가 많이 잡히는 요즘엔 집 지붕에 숭어를 너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 바쁜 와중에 서울에 사는 집 주인의 동서도 농어가 그립다며 아우성이란다. 그렇다고 동서한테 농어 값 내어놓으라고 할까. 대신 받아주겠다며 농담하니 "고라면 이미지 배러불지라"며 사양이다.


3.그물을 정리하는 어부 | 4.중도 갯바위에서 캔 고동 | 5. 장뚱어교를 지나면 시시각각 다른 빛과 문양을 드러내는 개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6,7.목포 자연사박물관의 전시물 | 8.무전해수욕장의 해당화 | 9.썰물, 바다로 나가지 못한 배는 하루라는 시간을 꼼짝없이 개펄에 갇혀 있어야 한다.

임자도, 하우리의 횟집 주인은 횟집 문을 굳게 걸고 바다로 나가버렸다. 섬이 북적대는 여름이 아닌, 요즘처럼 애매한 계절에 손님이 없었던 탓일 게다. 반대로 이는 하우리를 찾는 손님은 운이 좋지 않은 이상, 하우리의 생선을 맛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하우리는 재원도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한 작은 갯마을이다. 재원도에 파시가 형성됐던 당시에는 이 마을로 들어오는 고깃배도 엄청났을 터. 그러고 보면 그물질로 살아가는 하우리 사람들의 일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데 마을만 쓸쓸하게 변해버렸다. 
하우리 생선회를 맛보겠다는 기대가 포기로 기울어갈 즈음, 낚시 간 횟집 주인은 물때가 맞지 않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신 옆집 어부가 낮에 잡은 커다란 줄돔을 보여줬다. 1kg에 2만원. 싸다. 

하우리와 마찬가지로 은동 해수욕장은 임자도의 숨겨진 공간 중 하나다. 일부러 모래를 뭉쳐놓은 듯 불게가 싼 모래 똥이 가득하고, 바다 앞으로 작은 섬이 희미하게 드러나는 은동  해수욕장. 섬의 향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이곳을 임자도가 고향이라는 한 이는 사이판과 같은 풍경을 지녔다며 과장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실상 신안의 섬들은 15m 안팎의 수심을 지녀 물밑이 훤히 보이는 바다를 지녔다. 한마디로 물 아래 개펄이 비쳐 물빛이 거무튀튀하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마도 그가 말한 것은 물빛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빛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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