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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매운 요리보다 더 얼얼한 풍경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3.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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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Sichuan을 발음하면 순간적으로 입에 침이 고이는가. 당연하다. 
쓰촨이 중국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매운 요리의 본고장임을 아는 사람은 많을 테니까. 
그런데 직접 경험한 쓰촨의 얼얼함은 음식이 아니라 풍경이었고, 그 속에 깃든 옛이야기들이었다. 
 
해발 3,099m의 어메이산. 정상 아래는 거의 일 년 내내 구름바다가 깔려 있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도읍이었고, 현 쓰촨성四川省의 성도인 청두成都에 닿았다. 마중을 나온 건 찌뿌둥한 날씨였다. 표정 없는 회색 하늘이 시간 감각을 마비시켰다. 섭씨 18도. 제주보다 위도가 낮은 청두의 11월 초 날씨는 후터분했다. 공기가 축축했고 탄산이 빠진 청량음료처럼 텁텁했다. 순간 마르지 않는 빨래가 떠올랐다. 가이드 갈춘걸씨는 한여름의 기온이 40도를 넘기도 하며 연중 100일 정도는 안개가 낀다고 했다. 오죽 맑은 날이 드물면 “촉한의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표현이 다 생겼을까. 만물을 고루 비추는 하늘의 해가 개에게도 낯설었던 것이다. 희끄무레한 하늘로부터 시선을 돌려 한 명의 시인을 만나러 갔다.
 
중국 불교의 4대 명산 중 하나임을 말해 주듯 어메이산에는 금빛의 금정사와 초대형 보현보살상이 세워져 있다
옛 건물들과 현대적 예술품이 조화를 이루는 관착항자 거리
 
강촌 
완화계 맑은 물은 마을을 휘감아 구비구비 흐르고
긴긴 여름날 마을은 한가롭고 그윽하다.
제비는 처마 밑을 제멋대로 드나들고
물 위의 비둘기들은 무리 지어 떠다닌다.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아이는 바늘을 두들겨 낚시를 만들고 있다.
그저 약이나 좀 먹었으면 할 뿐
이 미천한 몸이 달리 바라는 바가 없다. -두보杜甫
淸江一曲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
自去自來堂上燕  相親相近水中鷗
老妻畵紙爲碁局  稚子敲針作釣鉤
多病所須唯藥物  微軀此外更何求
 
무후사 부근의 풍물 거리인 금리
 <삼국지>의 히어로 유비와 제갈량을 모신 무후사

시인이 머물렀던 초막

두보杜甫와 이백李白. 제가끔 시성詩聖과 시선詩仙으로 불릴 만큼 중국 역사상 가장 빼어난 시인들로 손꼽힌다. 당나라 때의 인물이며 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사뭇 달랐다. 두보가 양명한 집안에서 태어난 데 반해 이백의 출생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글공부를 제대로 했던 두보와 달리 이백은 도술이나 검술 같은 잡기에 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시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큰 차이를 보였다. 두보는 현실과 현장을 지향하며 한시의 형식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반면 자신을 달에 사는 신선으로 생각한 이백은 시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다.

중국 대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두보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가 않았다. 자신이 품은 이상과 괴리된 현실은 그를 항상 괴롭혔고, 방랑과 궁핍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허난성河南省 출신인 두보는 759년부터 763년까지 쓰촨성 청두에서 생활했다. 처음 그는 청두 서쪽 교외에 자리한 어느 사찰에 묵었는데, 이듬해 평소 알던 지방 절도사의 도움으로 절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초당을 짓고 살게 됐다. 이곳이 지금의 두보초당杜甫草堂이다. 두보의 인생 중 청두에서 머문 3년가량이 가장 평화로웠다고 한다. 전란과 기근 등의 비참한 현실에 격정을 쏟아내던 그도 청두에서 안온한 전원생활을 즐겼던 것이다. 이 시기에 두보는 240여 수의 시를 남겼는데, <강촌>이라는 시에도 당시의 편안했던 분위기가 잘 녹아 있다.

두보초당에 들어섰다. 세상을 떠돌던 고단한 시인의 초막은 여러 차례 확장을 거쳐 그를 추억하는 사당이자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2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부지에는 연못과 대숲이 잘 조성돼 있어 거대한 정원을 방불케 했다. 너무 정치하고 반듯해서 두보의 곤궁했던 삶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두보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새로운 절도사가 부임하자 눈치가 보인 나머지 가족을 이끌고 조각배로 양쯔강을 전전하다 결국 배 안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59세였다. 위대한 시인의 허망한 죽음이었다.
 
‘고난의 시인’ 두보가 머물렀던 청두의 두보초당. 그는 청두에서 약 3년간 생활하며 200편이 넘는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촉나라 인걸들의 활약상을 알게 해주는 사당 무후사
금리의 어느 건물 지붕에 조성된 영웅호걸 조각상
 관착항자의 기념품 상점

임금과 신하를 함께 모신 사당

나의 중고교 시절을 지배했던 두 가지 ‘텍스트’가 있다. 나관중의 <삼국지>(정확히는 <삼국지연의>다. 나관중이 지은 장편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와 진나라 때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는 엄연히 다르다)와 김용의 <영웅문>이었다.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영웅호걸들과 그들이 화합하고 충돌하며 빚어내는 수많은 에피소드들,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피고 지는 온갖 전략과 전술을 읽는 재미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몰랐다. 특히 <삼국지>는 나관중은 물론이고 박종화·정비석·고우영·이문열 버전까지 모조리 독파했다. 중국 사대기서四大奇書 가운데 하나를 반복해서 탐독하는 동안 나는 용맹한 장수였고, 노회한 책사였으며, 무너지는 나라와 함께 침몰한 마지막 황제였다.

무후사武侯祠는 촉나라 황제 유비와 불세출의 전략가인 제갈량을 모신 사당이다. 6세기경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청나라 강희11년(1672)에 중건되면서 지금의 골격을 갖추게 됐다. 무후사가 흥미로운 것은 주군과 신하를 함께 모시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도 유일무이한 경우라고 한다. 제갈공명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하긴 무후사라는 이름도 공명의 시호인 무향후에서 따온 것이다. 참고로 공명을 기리는 사당은 중국 전역에 500여 개가 있는데, 청두의 무후사는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사당에서는 두 사람 이외에 관우와 장비를 비롯한 문무관 28인의 조각상, 악비의 묵직한 필체가 빛나는 제갈량의 출사표, 유비와 두 부인의 합장묘인 혜릉 등을 두루 만나 볼 수 있다. <삼국지>에도 그런 대목이 나오는데, 유비의 묘는 단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도굴된 적이 없다. 자신의 무덤이 파헤쳐질까 두려워 수십 개의 가묘를 세운 조조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무후사를 끼고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금리錦里라는 풍물 거리가 펼쳐진다. 각종 음식과 공예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기념품 중에는 도원결의 삼총사인 유비, 관우, 장비의 특징을 극대화한 캐릭터 상품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하나 구입할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 청춘을 지배했던 세 영웅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가벼워 보여 영 마땅치가 않았다.
 
travie info      
 

I ♥PANDA 판다기지
육중한 체구에 귀여운 외모를 지닌 판다. 널리 알려졌듯이 중국인들의 판다 사랑은 유별나다. 인형이나 기념품으로 가장 인기 있는 판다는 외교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언젠가는 판다의 배설물을 비료로 사용해 수확된 녹차 가격이 50g에 390만원으로 책정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청두 교외에는 판다기지가 있다. 판다의 모든 것을 살피고 연구한다. 하루에 100m도 이동하지 않을 만큼 게을러터진 나머지 종족 보존의 의무마저 저버린 판다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 전 세계 동물원에서 키우는 판다는 260여 마리에 불과하고, 중국에서 야생 상태로 생활하는 판다 또한 1,600여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판다기지 실내에서는 인공 수정을 통해 지난해 7·8월에 태어난 새끼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주소 1375 Panda Road, Northern Suburb, Chengdu, Sichuan Province, P.R. China  
문의 86-28-83510033 www.panda.org.cn
 
쓰촨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어메이산. 정상 부근에는 관광객을 위한 레스토랑과 호텔 등이 마련돼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석불인 러산대불. 전체 높이가 71m에 달한다. 배를 타고 바라보아야 대불의 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여러 강이 합류하는 러산은 예로부터 수상 교통의 중심지였다
 명나라 시절 유·불·선을 통합한 사원으로 지어졌으나 청나라 강희제 때 편액을 하사받아 불교 사원으로 거듭난 보국사
 
구름바다 위의 금빛 사찰

청두를 떠나 러산?山으로 옮겨 갔다. 이유는 분명했다. 세계 최대의 석불인 러산대불?山大佛을 보기 위해서였다. 듣던 대로 스케일이 엄청났다. 산의 한 면을 깎아 만든 좌불의 전체 높이는 71m. 머리 높이와 폭은 각각 14.7m와 10m. 어깨너비는 24m에 달한다. 발등의 넓이만 따져도 무려 8.5m다. 대역사를 완성하기까지 소요된 세월은 자그마치 90년. 부처를 조각하는 데 있어서도 대륙의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민징강에 배를 띄워 바라보니 대불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불을 가까이에서 알현하려는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소용돌이로 인해 빈번히 발생하던 난파 사고를 막고자 조성된 석불의 영험 때문인지 민징강의 물살은 시종일관 잔잔했다.

사흘 밤, 나흘 낮 동안 쓰촨에 머물렀지만 하늘은 회색빛의 엄숙한 표정을 좀처럼 풀지 않았다. 유일하게 청명한 날씨를 만난 곳은 어메이산蛾眉山이었다. 중국 불교의 4대 명산은 확실히 여러 모로 남달랐다. 어메이산 입구에 도착했다. 타고 온 전용차량에서 내려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는 좌우로 크게 꺾이며 구불구불한 길을 1시간 30분가량 나아갔다. 차창 밖 풍경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차 후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걸어갔다. 몽몽한 안개가 해발고도를 말해 주는 듯했다. 음식 노점을 잠깐 들여다봤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인력거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도중에 원숭이 몇 마리를 만났는데, 그것들은 앙상한 나무에 올라타 있거나 관광객들이 버린 음식을 주워 먹는 데 열중했다. 가이드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원숭이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물건을 ‘강탈’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약 3,000m의 어메이산 정상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분. 그런데 즉석 카레 한 봉지를 데울 시간인 3분은 ‘아랫동네’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주었다.

일단 날씨가 쾌청했다. 하늘은 파란색 물감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코끼리 조각상이 도열해 있는 계단을 오르니 어메이산의 상징인 금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빛 사찰 앞에는 초대형 보살상이 우뚝했고, 그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합장을 했다. 금정은 어메이산 일출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해맞이가 아니라 성심인 듯했다. 사실 어메이산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확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철 깔려 있는 운해 때문이다. 금정사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니 해발 3,099m, 어메이산 최정상에 위치한 만불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두께를 측량할 수 없는 구름바다가 봉우리 아래의 모든 풍경을 삼키고 있었다.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얼른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순식간에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사진도 이렇게 멋진데 실제로 보면 인생이 바뀌어 버릴 것 같아요”, “이런 광경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왠지 푹신하게 받아 줄 것 같은 상상에 사로잡혀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이백은 “어떤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도 어메이산에 비할 수 없다”고 상찬했다는데, ‘형식주의자’ 두보라면 어떤 논평을 내놓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매운 쓰촨요리보다 더 자극적인 어메이산의 풍경을 두보가 마주한 적이 있는지는 내 짧은 지식으로는 알 길이 없다.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중국동방항공 1661-2600 www.easternair.co.kr
 
▶travie info
항공편 중국동방항공을 이용해 상하이를 거쳐 쓰촨성의 주도인 청두로 들어간다. 청두에서 차로 러산까지는 약 2시간, 어메이산 입구까지는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쓰촨요리 베이징, 상하이, 광둥과 더불어 중국 4대 요리로 일컬어지는 쓰촨요리의 특징은 역시 매운맛이다. 쓰촨 지역은 매운 고추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매운 음식이 유난히 발달한 이유를 날씨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해를 좀처럼 볼 수 없는 흐린 날씨는 자칫 우울증을 불러올 수 있는데, 매운 음식이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쓰촨요리에는 고추, 산초, 후추, 두반장, 파, 생강 등의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다. 전통적인 쓰촨요리는 대신 기름을 많이 쓰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지역 음식에 비해 덜 느끼하다. 
 
마라훠궈 대표적인 쓰촨요리로 중국식 샤브샤브인 마라훠궈를 들 수 있다. 매운맛을 내는 재료를 넣고 팔팔 끓인 육수에 각종 육류와 채소를 넣어 데쳐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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