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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음식단상] 날것의 향기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3.27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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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총총’ 봉오리가 터지는 순간 꽃은 비로소 꽃이다. 세상을 향해 첫 향기를 퍼뜨리는 꽃의 시간, 모든 꽃에서 날것의 향기가 난다. 
 
 
날것이 생각날 때 
쇠고기육회
3~4년 전 광장시장에서 1차, 2차 자리를 옮기며 술잔을 기울이던 날 3차 술자리에서 만난 안주가 쇠고기육회였다. 그때까지 육회를 먹어 본 일이 없었고 웬만하면 육회는 안 먹고 살 수도 있었지만 술 취한 김에 육회를 먹어 보기로 했다. 광장시장 육회골목에 들어서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육회집에 줄을 섰다. 시뻘건 생고기를 날로 먹기 위해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청춘남녀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육회는 아무 맛도 없었다. 생고기의 맛보다는 육회에 얹은 참기름 맛이 전부였다. 입 안에서 씹는데도 육즙보다는 참기름 향이 계속 강하게 남아 있었다. 무슨 맛이 느껴져야 맛이 있다 없다 말할 텐데 아무 맛 없는 그 어떤 것을 씹고 있는 느낌이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참기름을 그냥 마시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하나 느껴지는 게 있었으니 바로 시원한 기분이었다. 입 안에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고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도 시원했다. 술기운에 더워진 몸을 육회가 식혀 주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광장시장 육회골목을 가끔 찾았다. 감기 기운으로 몸에 열이 날 때, 몸이 붓고 머릿속에 수증기가 꽉 찬 기분이 들 때, 일상이 나른하고 지겨울 때 등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육회가 떠오르곤 한다. 화르락 피어나는 꽃의 생기를 육회에서 느껴 볼 일이다. 
종로 광장시장에 쇠고기육회집 골목이 있음. 
외양간 | 주소 마포구 성산동 250-25 문의 02-334-7942
 
 
달콤한 향기 
묵호항 오징어회
주문진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1년에 두세 번은 반드시 주문진항의 새벽을 본다. 미리 약속을 정하는 것도 아니다. 당일 아침에 전화를 해서 시간 맞는 사람들끼리 바로 떠나는 거다. 주문진항의 새벽은 항구로 돌아오는 배로 활기차다. 경매시장도 떠들썩하다. 주문진항에서 오징어회를 먹으려고 했는데 오징어가 없다. 그래서 찾은 곳이 묵호항이었다. 묵호항 활어판매센터에서 오징어를 사서 인근 식당으로 들어갔다. 상차림 비용을 내고 오징어를 손질해 달라고 하면 된다. 오징어회가 한 접시 나왔다. 윤기가 흐르고 반짝거린다. 오징어회는 초장에 찍어 먹는데 초장을 찍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초장에 비벼 먹는다. 빨간 초장에 비빈 오징어회를 입이 가득 찰 정도로 집어 먹는다. 그래야 오징어회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씹을수록 오징어회의 달콤한 향기가 입 안에 가득 찬다. 초장에 비빈 빨간 오징어회를 한 젓가락에 집을 수 있도록 잘 모아 놓는다. 그 모양이 달콤한 향기를 머금은 붉은 꽃송이 같다.  
묵호항 활어판매센터에서 오징어를 사서 인근 식당에서 손질해 달라고 하면 된다. 식당에서 상차림 비용을 내고 먹는다. 
 
익히면 닷 냥 날로 먹으면 오백 냥 
수안보 꿩회
충북 충주 수안보는 내 고향에서 10km 거리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유명한 포수가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고향에도 유명한 포수 아저씨가 있었는데 가끔 그분 손에 사냥한 꿩이 들려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나중에 커서 보니 고향과 수안보 일대가 꿩요리로 유명한 곳이었다. 꿩요리 애호가들의 말에 따르면 예나 지금이나 꿩요리 가운데 으뜸은 꿩회다. 그들은 ‘꿩은 익혀 먹으면 닷 냥인데 회로 먹으면 오백 냥’이라는 말로 꿩회의 맛을 설파한다. 꿩요리 가운데 못 먹어 본 게 꿩회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오백 냥짜리 음식 놔두고 닷 냥짜리만 먹었다는 얘기다. 꿩요리 잘한다고 소문난 수안보의 식당을 찾았다. 이것저것 나오는 음식 가운데 큰 접시에 담긴 붉은빛 생살이 보인다. 꿩회가 드디어 나왔다. 붉은 봄꽃이 식탁에 피어난 것 같았다. 꽃 한 송이 들어 입에 물었다. 어떤 회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날짐승 특유의 향이 살짝 지나가더니 이내 부드러운 맛이 혀를 감싼다. 씹을 것도 없이 우물우물 하다 보면 사라진다.    
대장군식당 |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송계로 105     문의 043-846-1757 
 
섹시한 그 맛
나주 홍어회
17년 전 인천항 부근 허름한 막걸리집, 세 명의 남자 앞에는 닷 되들이 막걸리 주전자와 고약한 냄새가 나는 ‘홍어회’라는 안주가 놓여 있었다. 세 남자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한번 먹어 봐라”라는 말을 남긴 채 막걸리 한 잔을 쭈욱 들이켜더니 홍어회 두 점을 집어 입에 넣는다. 하도 맛있게 먹어서 나도 따라했다가 혼쭐이 났다. ‘세상에 이런 걸 왜 돈 주고 사 먹냐’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다. 홍어회와의 첫 만남에서 나는 입천장이 까지는 썩 좋지 않은 경험을 했지만 주변에 홍어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어김없이 홍어집을 갔고 그럴 때마다 홍어에게 ‘쨉쨉 원투 스트레이트’를 얻어맞으면서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입에 섹시한 맛을 선물해 준 홍어를 만나게 된다. 
나주 영산포 홍어를 취재해야 했다. 음식의 보물창고 전라도에서 하필이면 내게 주어진 취재꺼리가 홍어라니 먹을 복 참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영산포 홍어는 지금까지 먹어 본 홍어와는 느낌이 달랐다. 홍어회 한 점 입에 넣고 씹는데 홍어 특유의 고약한 냄새는 잠깐, ‘화’한 맛과 들큼하고 구수한 맛이 맴돌 때쯤 회는 입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꿈에서 아무리 달려가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던 사랑스런 아가씨의 하늘거리는 연분홍빛 원피스 뒷자락이 떠올랐다. 그리고 분홍빛 홍어회 한 점이 현실의 내 젓가락 사이에서 꽃처럼 피어 있었다. 
홍어1번지 | 주소 전남 나주시 영산동 254-1 
문의 061-332-7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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