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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 가장 일본적인 꿈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7.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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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은 ‘하나미’라는 꽃놀이도 ‘유키 아카리’라는 눈의 축제도 불꽃놀이도 사케와 함께한다. 그들에게 사케는 인생 자체다. ‘좋은 사케’는 맛과 향기뿐만 아니라 마음과도 잘 맞는다. 사케 잔 위로 벚꽃 잎이 떨어진다. 꿈이다. 가장 일본적인 꿈. 
 
 
북알프스에 둘러싸인 도야마 

일본 열도의 가운데이자 혼슈의 북쪽, 동해와 접한 도야마는 인구 110만의 도시이지만 이름조차 낯설다. 이틀에 한 번 인천과 도야마 기토기토 공항을 잇는 아시아나 비행기가 오가지만 승객은 많지 않다. 한일 구간을 운항하는 비행기 중 승객수가 가장 적다는 얘기도 들려 온다. 도야마 베이와 북알프스, 자동차 부품 생산과 한지 공예가 유명하다지만 이를 아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도야마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한 가지 이미지는 제법 알려졌다. 20m에 달하는 거대한 설벽이 그것이다. 

험준한 산맥이 삼면을 둘러싼 도야마 남쪽에는 해발고도 3,015m의 다테야마가 있는데 설벽은 다테야마의 한 자락 풍경이다. 날씨가 좋으면 도야마 시청사 전망대에서도 쭉 이어지는 봉우리를 볼 수 있다. 일본에서 바다 저편 3,000m가 넘는 산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은 도야마현의 히미해안밖에 없다.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흐린 날씨 탓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눈 쌓인 다테야마 연봉을 실제로 본다면 과연 얼마나 웅장할까?

다테야마 연봉 사이엔 일본에서 제일 깊은 브이자형 협곡인 쿠로베 협곡도 있다. 이 같은 대자연에 둘러싸여 산세 좋고 물맛 좋은 곳이 도야마다. 바다 쪽으로 가보면 깊은 만을 껴안듯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역사적으로 이시카와에서 도야마까지 지배한 ‘가가번’의 일부였던 도야마는 메이지 시대까지 200년 동안 매년 100만 석의 쌀을 수확할 정도로 쌀 생산량이 많았다. 도쿄 다음으로 번성할 정도였다. 좋은 물과 좋은 쌀은 사케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재료다. 
 
일본에는 400년, 500년 된 양조장이 여전히 남아 있다. 양조장 건물 자체가 문화유산이다
좋은 사케는 비싼 사케가 아니다. 자기와 마음이 맞는 사케, 마음 맞는 친구와 마시는 사케가 좋은 사케다
 
사케, 청주, 리큐르, 일본주

흔히 한국에서 사케는 청주로 통용되지만 사실 사케는 술이란 말이다. 한자로 쓰면 술 주酒자를 써 ‘일본주’가 된다. 그러니 소주도 맥주도 청주도 전부 사케다. 청주는 사케의 한 종류일 뿐이고, 이름 그대로 ‘맑은 술’이다. 청주에 유자나 매실 같은 과실성분을 더해 ‘리큐르’로 만들기도 한다. 리큐르도 일본 술의 한 종류인데 단맛이 강해 여자들이 좋아한다. 

한국 사람에게 익숙한 청주는 정종인 탓에 정종이 곧 청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종은 청주의 한 가지 브랜드일 뿐이다. 그것도 하급 청주다. 일제 강점기에 나가사키의 한 양조장이 부산에 정종 공장을 세웠는데, 전쟁으로 쌀이 부족하자 쌀 소비량을 최대한 줄이고 만든 게 ‘3배 증량주’다. 평소보다 많은 물을 넣고 알코올과 여러 감미료까지 넣어 평소 양보다 ‘세 배 많게’ 만든 술이 바로 정종이다. 정종을 마시면 인공 감미료 탓에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흔히 정종은 데워 마셔야 한다고 하는데 술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양조 알코올이 발화되고 감미료 맛이 날아가 그나마 맛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보통 이자카야에 가면 3배 증량주를 볼 수 있다. 보통 3~5만원 정도에 팔리는 팩 사케가 바로 이런 종류다. 이런 술은 양조 알코올 향이 강하고 잡미가 많아 텁텁하다. 저가의 팩 사케뿐만 아니라 ‘쥰마이다이긴죠’에서 ‘혼죠조’까지 청주에는 다양한 등급이 존재한다. 쥰마이다이긴죠는 최상급 청주다. 쥰마이純米란 이름대로 쌀과 물, 누룩만으로 만든다. 알코올이나 인공적인 맛을 섞지 않았다. 그 아래 등급인 다이긴죠는 쌀, 누룩과 함께 양조 알코올을 사용한다. 한편 ‘다이긴죠’와 ‘긴죠’는 도정율이 다르다. 다이긴죠는 도정율 50% 이하, 긴죠는 도정율 60% 이하, 혼죠조는 70% 이하다. 서울의 어느 특급호텔 일식당에는 도정율 28%의 쥰마이다이긴죠도 있다. 쌀의 72%를 깎아내고 28%만 사용한다는 말이다. 참고로 도정율을 의미하는 일본식 한자표기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정미보합’이다. 라벨을 살펴보면 정미보합이란 말을 찾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도정율 숫자가 낮을수록 상급이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보다 순수한 맛에 다가간다. 현재 일본에서 사케를 만드는 회사는 2,000개가 넘고 생산되는 사케의 종류는 2만종이 넘는다. ‘기키자케시’라고 부르는 사케 소믈리에가 존재하는 이유다. 

청주는 일반적으로 차게 마시는 게 맛있다고 하지만 청주를 마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차게 마실 수도, 상온에서 마실 수도, 따뜻하게 마실 수도, 뜨겁게 마실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청주를 마시는 즐거움이다. 청주는 입으로 마시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마신다. 각자의 취향이 중요하다곤 하지만 좋은 청주는 향기가 좋고 목으로 넘기기 편하다. 청주를 어떻게 마시면 더 맛있을까? 생각해 보는 일은 즐거운 숙제다. 신선한 제철 해산물을 함께 먹을 경우 사케와 함께 ‘시로에비’라 불리는 도야마 흰새우나 홍대게 아니면 ‘도야마현의 생선’, ‘도야마만의 왕자’라 불리는 방어를 산란 전 기름이 뜬 상태로 먹는 게 최고다. 
 
도야마성 공원 주변을 흐르는 마츠강은 도야마 시민들의 쉼터이자 벚꽃 명소다
사케를 만드는 쌀의 벼는 크고 길다. 재배가 어렵기 때문에 밥으로 먹는 쌀보다 비싸다
양념이 강한 요리를 먹을 때는 드라이한 사케가 좋고, 프렌치 음식이나 피자를 먹을 때는 스위트한 사케가 어울린다
도야마현 쇼강 협곡의 유람선. 고마키댐에서 오마키 온천 사이를 운행한다. 산자락에 줄지어 선 삼나무들이 무척 아름답다
사케 맛은 현미의 도정률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오른쪽은 도정 전의 현미, 왼쪽은 도정 후의 쌀알이다
 
사케의 탄생

사케 양조는 겨울에 시작된다. 기온이 섭씨 20도 이하로 떨어질 때 사케 장인들은 사케를 만들기 시작한다. 3월에서 9월까지 벼를 키우고 10월에서 4월까지 술을 만드니 사실 일 년 내내 사케를 만드는 것이다. 사케는 기본적으로 쌀을 발효시켜 만드는데 따뜻하고 습하며 기온차가 큰 일본의 기후는 사케 양조에 적합하다. 

쌀은 멥쌀, 찹쌀, ‘조지방 함유쌀’ 등으로 나뉜다. 청주를 만드는 쌀은 ‘사카마이’ 또는 조지방 함유쌀이라고 부른다. 멥쌀에 비해 사카마이는 부드럽고 크기가 큰데 일본에는 약 200여 종의 사카마이가 있다. 밥쌀은 보통 길이가 짧고 알맹이가 작은 반면 사카마이는 길고 알맹이가 굵다. 자연히 재배하기 힘들다. 바람이나 태풍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값도 비싸다. 최근에는 비싼 사카마이 대신 밥쌀로 사케를 만들기도 한다.

도야마에서 생산되는 쌀의 80% 이상은 사카마이다. 이는 전국 평균 생산량인 20%에 비해 매우 높은 비율이다. 이처럼 품질 좋은 쌀을 사용하기에 도야마 사케는 깨끗하고 순한 풍미를 자랑한다.

약 2,000년 전부터 일본 사람들은 사케를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쌀을 자연적으로 발효시켜 청주를 만들었다. 그 다음엔 효모를 넣어 발효를 촉진시켰다. 사케는 쌀과 물에 효모를 넣고 발효시켜 만든다. 이런 양조법은 기본적으로 와인 양조법과 비슷하다. 사실 사케 만들기는 와인보다 복잡하다.
 
차이는 발효과정에서 비롯된다. 포도에는 당분이 있기 때문에 한 번 발효시키는 것으로 족하지만, 쌀은 포도당을 갖고 있지 않아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바꾸는 발효 과정이 한 번 더 필요하다. 쌀이 발효되는 동안 열이 발생하고, 이는 사케 맛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온도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세월이 흘러 사케를 만드는 도구는 바뀌어도 사케를 만드는 방식 자체는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쌀과 물, 효모를 섞고 여기에 테크닉이 더해진다. 사케를 만들 때 쓰는 재료는 매우 제한적이기에 장인의 주조 방식에 따라 양조장의 테크닉 차이는 크다.
 
●도야마의 양조장들 

북알프스에 둘러싸여 산 좋고 물 좋은 도야마현. 
이 천혜의 환경에서 대대손손 이어져 온 양조장들을 방문했다.  
 
산쇼라쿠 양조장
삼나무 볼이 누레지면 사케가 익는다
 
도야마를 달리다 아이쿠라구치 지역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곰 그림이 보인다. 곰고기를 판다. 그만큼 산이 깊다. 도쿄는 우기라고 해도 산쇼라쿠 양조장이 위치한 이곳은 햇볕이 짱짱하다. 고산지역에 위치한 산쇼쿠라 양조장 입구에는 커다란 공 모양의 ‘스기타마’가 걸려 있다. 지금은 색이 바래 갈색이지만 원래는 초록색이다. 시계도 달력도 없던 시절, 삼나무 잎을 말아 만든 스기타마는 사케를 만드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알려 주는 잣대였다. 처음 사케를 빚을 때 스기타마는 푸른색이지만 사케가 다 익을 때쯤이면 누렇게 변한다. 사케 장인들은 스기타마를 살피며 감각적으로 사케를 빚었다. 세월이 바뀌어 컴퓨터로 온도관리를 하고 현미경으로 쌀의 변화를 체크하는 양조장도 생겨났지만 여전히 스기타마 방식으로 사케를 만드는 양조장도 많다. 새로 술이 나오면 스기타마는 새것으로 바꾼다. 스기타마가 초록색으로 바뀌면 올해 새 술이 나왔다는 얘기다.

산쇼라쿠 양조장에서 쌀에 효모를 넣고 번식시키는 ‘효모 룸’을 살펴봤다. 양조장의 심장이다. 사케를 만드는 때가 아니라 실제 양조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지만 양조장 젊은 사장의 설명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씻은 쌀은 찬물에 담가 놓습니다. 백설 같은 흰쌀입니다. 정해진 수분의 양을 맞춘 후 쌀을 찌면 하얀 김이 양조장을 가득 메웁니다. 김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쌀은 단맛을 띄게 됩니다. 그 다음엔 밥을 넓은 판 위에 펼쳐 놓고 식힙니다. 효모를 밥 위로 뿌리고 흰 천에 싸두는데 이는 효모를 증식시키는 과정입니다. 3일째에 증식이 완성되는데 효모는 쌀을 달게 만듭니다. 효모로 인해 쌀이 발효되고 알코올로 변해 갑니다. 사케는 코지에 따라 맛과 향이 결정됩니다.”
 
산쇼라쿠 양조장은 고산지역에 위치한다. 규모는 작지만 사케 맛은 매우 개성적이다
삼나무 잎을 말아 만든 스기타마는 사케를 만드는 동안 양조장의 달력 같은 역할을 한다
쌀과 물, 효모만으로 만드는 사케는 어떤 쌀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술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미쿠니하레 양조장
양조장에 가면 제일 먼저 물을 마신다
 
쿠로베강 강줄기의 남단을 따라 도야마 베이에서 겨우 50m 떨어진 바닷가 양조장이다. 쿠로베시 동쪽 이쿠지에 위치한다. 1887년 설립된 미쿠니하레 양조장은 일본 북알프스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로 청주를 빚는다. 양조장 안에 ‘일본 100대 명수’ 샘이 있는데 그 아래 지하 40~50m 지점에 수맥이 있다. 또 쿠로베강의 연수와 경수도 함께 쓴다. 반면 해양심층수는 쓰지 않는다. 염화나트륨이 포함되어 맛이 강한 탓에 사케 본연의 맛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쥰마이긴죠 같은 고품질 사케가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매일 사람들이 즐기는 맛있는 사케를 만들고 싶다”는 게 미쿠니하레 양조장의 모토다. 양조장을 둘러보는데 커다란 저장탱크가 눈에 띈다. 보통 쌀 1톤을 1개월 동안 발효시켜 청주 3,000리터를 만드는데 이곳의 저장탱크의 용량은 1만 리터다. 탱크 하나에 쌀 2.4톤을 넣어 약 7,500리터의 사케를 만든다. 여기서 만드는 다이긴죠는 저온 숙성시킨다.
좋은 양조장은 어떤 곳일까? 하는 의문을 내내 품고 있는데 미쿠니하레 양조장에서 만난 한국인 사케 수입사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양조장에 오면 항상 제일 먼저 물을 마셔 봅니다.” 그는 물을 마셔 본 후 사케 저장탱크에 먼지가 쌓여 있는지 살펴본다고. 먼지 쌓인 탱크는 사케가 안 팔린다는 말이라고.

일본에는 연수 지역과 경수 지역이 고루 산재한다. 고베 같은 지역의 물은 미네랄 성분이 많아 무겁다. 경수로 만든 사케는 자연히 무겁다. 물이 무거우니 술도 무겁다. 고베 사케는 ‘남자의 사케’라고 부른다. 반면 교토는 연수 지역으로 물이 부드럽다. 물이 부드러우니 술도 부드럽다. 그래서 교토 사케는 ‘여자의 사케’라고 부른다. 경수건 연수건 ‘물자랑’은 양조장마다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다.  
 미쿠니하레 양조장이 일본 ‘아버지의 날’을 맞아 사케 라벨에 아버지 이름을 써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물은 사케 맛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미쿠니하레에는 양조장 내 환경부 지정 ‘일본 100대 명수 샘’이 있다
양조장은 얼핏 험한 일을 하는 공장 같지만 여기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장인이다

마스다 양조장
사케는 사케답게 맛있다
 
도야마의 북쪽 만에 접한 이와세는 해상무역으로 번성했다. 지금도 이와세엔 아름다운 일본전통가옥과 식당이 많이 남아 있다. 마스다 양조장은 이와세 동쪽에 위치한다. 다테야마에서 흘러내린 단물(연수)를 사용해 풍부한 향미의 청주를 빚는다. 마스다 양조장의 설립자인 ‘카메지로’는 1890년 홋카이도의 아시카와로 아내와 함께 이주해 양조장을 열었다. 그의 아내는 이와세 항구에 살던 부유한 도매상의 딸이었다. 이시카와에서 크게 성공한 그는 12년 후 이와세로 돌아왔고, 마스다 양조장을 오픈하고 ‘마스이즈미’라는 새로운 사케 브랜드를 만든다. 1970년대 마쓰이즈미는 ‘긴죠’를 만드는 새로운 기술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된다. 매년 공식적인 청주 품질 평가 위원회에서 수상을 거듭했다. 현재는 양조장뿐만 아니라 사케 상점도 함께 운영한다. 

마스다 양조장의 사장 ‘류이치로 마스다’는 지역 커뮤니티의 복원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전신주를 없애고 은행 건물을 전통양식으로 복원했다. 

“마을을 가꾸고,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살고 싶어요. 마을을 어떻게 만들겠다고 노력한 게 아니라 그저 옛 모습을 되찾는 과정을 즐겼습니다. 사케 맛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데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와인처럼 맛있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사케는 사케답게 맛있습니다.” 

그의 말에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마스다 양조장의 술 저장 창고에는 1965년 쇼와시대 때 빚은 술도 있다. 마스다 양조장도 매년 벼의 수확이 끝나는 10월부터 봄까지 청주를 빚는다. 청주를 만드는 장인인 ‘토지’는 매년 해가 바뀌는 날에도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토지 일가는 5대에 걸쳐 현재까지 마스다 일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사케를 빚고 있다.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스다 양조장
마스다 양조장의 사케 저장고. 이곳에는 1960년대 빚은 사케도 있다
 

와카쓰루 양조장
쌀을 찌는 것은 쌀에 마법을 거는 일
 
1862년 시작한 와카쓰루 양조장은 도야마현 서쪽 토나미시에 위치한다. 쇼강의 풍부한 지하수 물줄기는 토나미 평야를 비옥하게 만들고, 토나미시에 최고의 쌀 생산지라는 명성을 안겨 주었다. 와카쓰루 양조장은 3,000m가 넘는 연봉이 줄을 잇는 일본 북알프스와 도야마현 서쪽 토나미 평야 사이에 위치한다. 깨끗한 지하수와 최고의 쌀 생산지란 두 가지 조건은 사케 생산에 있어 이상적인 환경이다. 

와카쓰루는 에츄(현재의 도야마현)의 한 부농이 양조장을 만들기 위해 카가 지방(현재 이시카와현의 남부지역)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1887년 사쿠라이 소이치로와 가족들은 성공적으로 양조장을 일구어 갔고 현재 위치로 양조장을 옮겼다. 그 후 1910년 이래 ‘이나가키 코타로’와 그의 아들 히코타로가 양조장을 맡아 운영 중이다. 이나가키 코타로는 ‘호쿠리쿠 코카콜라’도 설립했다.

1980년 와카쓰루는 새로운 도정기계를 도입했고 1985년에는 새로 리서치 연구소와 증류시설을 갖추었다. 연수를 위한 시설인 게스트하우스도 갖추었다. 이 같은 시설을 갖추면서 와카쓰루는 양조장의 새로운 장을 열어 가고 있다. 

2년 전인 2012년, 와카쓰루 양조장은 창업 150주년을 맞았다. 와카쓰루는 개보수 작업을 통해 양조장을 박물관처럼 만들었다. 시간을 넘어 후대에게 양조장의 가치가 전달되기를 바란다. 현재 와카쓰루 양조장 건물은 도야마현의 문화유산이다. 양조장 기둥과 마룻바닥도 92년 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일본 양조장 중에는 건물 자체가 문화유산인 경우가 많다. 사실 100년 정도는 별게 아닐 수도 있다. 400~500년 된 양조장도 있기 때문이다. 와카쓰루 양조장은 2014년 ‘전일본청주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선 여전히 양조 과정의 대부분을 기계가 아닌 손으로 작업합니다. 쌀을 찌는 것은 쌀에 마법을 거는 일이에요. 나는 사케가 인생을 다채롭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와카쓰루 양조장에서 만든 사케들. 오른편의 라벨이 없는 사케가 금년 ‘전일본 청주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양조장이건 료칸이건 어디를 가나 오가는 손님을 맞는 일본인들의 환대는 정겹다

사케 박물관처럼 보존된 구사케 저장 탱크들. 와카쓰루 양조장 건물은 도야마현의 문화유산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박준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일본무역진흥기구 www.jetro.go.jp

▶travel TIP
 
사케를 가장 화려하게 즐기려면
도야마현의 다카오카시는 일본 제일의 청동, 주석 제품 산지다. 1916년 창업한 ‘노사쿠’는 주석이나 청동제품을 만드는 공장이다. 금과 은 다음으로 비싼 주석은 항균성, 펴고 늘일 수 있는 가단성이 뛰어나고 윤기가 흐르는 표면이 아름답다. BC1500년경 고대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이미 주석으로 만든 도구를 사용했다고 할 정도로 주석은 특별한 쇠붙이다. 일본의 보물 중에도 주석으로 만든 게 많다.

노사쿠는 불단, 차세트, 화병 등을 놋쇠와 청동으로 만들기 시작해 테이블웨어, 홈 액세서리, 조명 등으로 제품군을 넓혀 간다. 최근에는 주석 100%의 제품으로 인기를 얻었고, 도쿄의 유명 백화점에도 입점했다. 값이 비싼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주석잔은 열전도율이 높아 균일한 온도감을 유지한다. 나무로 만든 잔이 은은한 나무 향으로 사케 맛을 부드럽게 하고, 유리잔이 청량한 느낌을 전해 준다면 주석잔은 잡미를 없애고 맛을 부드럽게 한다. 노사쿠에서 주석잔과 도기잔으로 똑같은 사케를 시음했을 때 맛의 차이가 너무 확연해 깜짝 놀랐다. 사실 맛의 차이가 있다 해도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노사쿠에서 파는 주석잔은 5만원에서 8만원 정도로 비싸다. 하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주석잔으로 마시는 사케는 그 비주얼만으로 최고의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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