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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力 INTERVIEW] 술도가 제주바당 임효진 대표-제주 주모가 떴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11.06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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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어리랏다.’ 
이보다 달콤한 말이 있을까.
여기 세 자녀와 남편을 데리고 제주로 떠난 당찬 여자가 있다.
전통술을 무기 삼아 술도가 ‘제주바당’을 차린 임효진 대표다.
 
제주도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하는 임효진, 임병준 부부 
제주바당 체험장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구좌읍 풍경
 
제주에서 만난 인연, 다시 제주로

거침없는 제주의 발전 속에서도 유독 느린 동네가 있다. 제주 동쪽의 구좌읍이다. 유명한 관광지는 없지만 이 동네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옹기종기 낮은 돌담집과 올레길 사이 느림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의 개성 넘치는 공간들이다. 술도가 ‘제주바당’도 그중 하나다. 임효진, 임병준 부부는 화산 분출의 영향으로 농사가 어렵고 척박한 동쪽 땅에서 우리술을 빚기로 마음먹었다.

제주도는 이 부부에게 낯설지 않다. 둘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 바로 여기다. 15년 전, 제주도에서 딱 1년만 살아 보자는 계획으로 제주도에 내려와 있었던 임효진 대표와 제주도에서 군 복무 중이었던 임병준씨는 그녀의 영어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임대표의 제주 생활이 끝나면서 그들의 인연도 끝인 듯했으나 제주도 복무가 끝난 병준씨의 구애로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됐다. 섬에서의 만남은 육지에서의 결혼으로 이어졌고 제주도는 그들의 삶에서 한 발 멀어졌다. 병준씨의 고향이 제주인지라 간혹 들르기는 했어도 그들이 제주에 다시 올 일은 없어 보였다. 제주도에 가자는 말은 남편이 아닌 효진씨로부터 나왔다. 그 계기는 우연히 맛본 전통술 때문이었다. 

“2010년이었나… 올케가 술빚기를 배웠었거든요. 직접 만든 거라며 막걸리를 한 병 받았는데, 정말 놀랐어요.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막걸리라 하면 물에 탄 싸구려 막걸리만 알았지, 이렇게 좋은 향과 깊은 맛을 내는 줄 몰랐던 거죠. 그때부터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좋은 술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죠. 특히 제주도에서 우리술을 팔면 정말 잘될 것 같았어요! 남편이 은퇴하면 제주도에서 술도가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술을 거른 후 꼭 남편과 함께 마시는 임효진 대표
소량만 직접 빚어 정성껏 발효시킨다
 
“자기야, 술 팔아서 요트 사 줄게!”

확신이 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술에 대해 알면 알 할수록 ‘하고 싶다’에서 ‘반드시 한다’로 굳어졌다. 임대표는 일 때문에 힘들어하던 남편에게 누누이 말했다. 힘들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돈은 자신이 제주도에서 전통술 팔아 직접 벌 테니 말이다.  

“이 사람 여태껏 너무 열심히 살았으니까. 남자로 태어난 게 무슨 죄예요? 죽을 때까지 일만 하고. 군인 아파트 살 때도 30분 대기조라서 산책을 가도 30분 거리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나는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았으니까 이제 내가 돈 벌어 줘야겠다 생각했어요. 작년 초에 한창 힘들어할 때 몇 번이나 그만두라고 말했어요. 알고 봤더니 남편이 속으로 퇴직 만기 일자를 세고 있었더라고요.”

처음에 퇴직 얘길 들었을 땐 아내는 가슴이 철렁했단다.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가 잘 안 되면 어떡하지? 그러나 걱정은 잠시뿐, 이내 남편에게 큰소리 쳤다. “자기야, 내가 술 팔아서 요트 사 줄게!” 후문으로는 제주도에 오기 전 남편은 초경량 항공기 자격증, 요트 자격증, 모터보트 자격증까지 땄다고 한다.

임대표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로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매주 서울과 부산을 오가야 했고 한번 가면 일주일에 사흘은 집을 비워야 했다. 부산에서는 술도가를 하고 있던 언니를 통해 어깨 너머로 양조장 경영에 대해 배웠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반년 가량의 교육을 마친 그녀는 마침내 지난해 12월 제주 땅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술만 나오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맑게 거른 약주 ‘맑은바당’을 시음 중이다
?재즈와 막걸리가 어우러지는 문화의 공간
 
막걸리는 추억을 마신다

그러나 양조장 허가를 받기까지는 그로부터 반년이 더 걸렸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술을 빚을 쌀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세법에 따르면 막걸리를 지역특산주로 허가받기 위해서는(세금감면혜택이 있음) 온전히 그 지역의 농산물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벼농사를 거의 짓지 않는 제주도에서 쌀을 구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비교적 흔한 보리나 좁쌀로 술을 빚어 봤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쌀 술이 가장 맛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쌀을 고집하려는 아내를 위해 밭벼라도 재배하겠다고 남편이 나서려던 찰나(제주에서 가장 척박한 동쪽 땅에서!) 운 좋게 벼농사 짓는 분을 찾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알코올도수 10도 막걸리인 ‘한바당 탁주’와 탁주를 맑게 거른 알코올도수 15도의 ‘맑은바당 약주’를 내놓았다. 제주도의 넓은 바다, 맑은 바다라는 뜻을 품은 이름이다. 

“술은 때때로 격렬히 끓는 소리를 내죠.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술도 사람처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술은 마치 내 아이들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흐뭇하죠.”

임대표의 모든 술은 그녀가 직접 빚어 항아리에 정성스럽게 발효시킨다. 막걸리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타서 알코올 도수를 낮추고 첨가물로 단맛을 낸 막걸리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렇게 만든 한바당 탁주는 한 병에 1만원이다. 

“가격을 정하기까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1,000~2,000원짜리 막걸리에 익숙한 이들은 선뜻 지불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될 것 같았어요. 저는 우리술을 젊은 사람들이 많이 마셨으면 좋겠거든요.” 
 
재즈와 만난 막걸리

임대표는 양조장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별장을 마련했다. 노란 벽에 빨간 지붕을 얹은 발랄한 공간이다. 생계유지를 위해 게스트하우스나 농가 맛집을 구상하기도 했으나 양조장을 준비하는 동안 길이 명확해졌다. 우리술을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그녀는  이곳을 전통술을 즐기는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예전에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요. 여기서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누구나 들러서 막걸리를 마셔 보고 쉬어 갈 수 있어요. 일종의 무인탁주카페인 거죠. 저는 술을 빚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여기 있을 수는 없거든요. 이 공간에서는 재즈를 들으며 막걸리를 즐길 수 있죠. 언뜻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재즈와 막걸리는 사실 굉장히 궁합이 좋아요. 재즈는 대화를 방해하지도 않으면서 선율이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거든요.” 

머지않아 제주의 페스티벌, 프리마켓, 토속음식점 등 제주 곳곳에서 제주바당의 ‘한바당 탁주’와 ‘맑은바당 약주’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임대표는 제주바당의 술은 철저히 제주도 안에서만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신선함이 생명인 탁주와 약주의 경우, 육지로 유통을 하게 되면 그 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제주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리스트가 하나 늘어난 셈이다. 
에디터 천소현  글·사진 수수보리 전은경(수수보리는 우리 술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술도가 제주바당 체험장 및 교육장
술도가 제주바당에서 진행되는 교육은 귀농교육의 일환으로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무료시음이 가능하다.
제주시 구좌읍 한동북1길 8-21
064-783-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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