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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봉 고릴라와의 데이트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5.06.08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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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는 익숙한 동물이지만 
실제로 보기는 쉽지 않다. 
가봉의 숲에서 만난 야생 고릴라들은 
영화와 다른 반전매력을 발산했다. 
 
놀아 달라고 촬영팀에게 매달리는 새끼 고릴라
 
익숙하지만 만나기 어려운 고릴라

영화 <킹콩>에서 좋아하는 여성 앞에선 한없이 온순하고 유순하지만 성질을 건드리면 날뛰는 괴물로 변했던 고릴라 킹콩을 기억하는가? 
멸종 위기에 처한 이 희귀한 동물을 실제로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고릴라는 아프리카 중부의 산악, 밀림 저지대에서만 살기 때문이다(한국에서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암수 한 쌍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고릴라들은 지속적인 밀림 파괴로 서식지를 잃고 있다. 또한 고릴라 고기를 노리는 지역 주민들의 밀렵도 끊이지 않아 개체수가 줄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들어 중부 아프리카의 에볼라 발생으로 5,000마리 이상이 감염돼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 상태에서 고릴라를 보려면 아프리카로 가야 한다. 르완다, 우간다, 콩고 공화국 등에서 고릴라 사파리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우간다, 르완다의 고릴라는 고지대에 서식하는 산악 고릴라Mountain Gorilla다. 산악 트레킹을 하면서 고릴라와 만나게 된다. 콩고나 가봉의 저지대 밀림에 사는 고릴라는 로우 랜드 고릴라Lowland Gorilla로 따로 분류한다.
 
가봉의 신비한 풍경. 사암 절벽
가봉의 원주민 부족
코끼리 카페, 랑구에 바이
 
아프리카의 마지막 에덴, 봉고

필자는 몇년 전 운 좋게 야생의 고릴라를 가까이서 볼 기회를 가졌다. 아프리카 중부의 적도 국가 가봉Gabon의 국립공원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가봉은 1960년대부터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아주 가까운 나라다. 42년간 권좌에 앉았던 알리 봉고 온딤바Ali Bongo Ondimba 대통령은 3번이나 한국을 방문했다. 다인승 승합차의 대명사인 ‘봉고’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가봉은 ‘아프리카의 마지막 에덴’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연환경을 잘 보존한 나라로,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 정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 탄자니아 같은 나라들은 일찍이 관광산업에 눈을 떠 사파리 관광으로 외국인을 불러들인 반면, 가봉은 폐쇄적인 정책을 취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생태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가봉의 깊은 밀림 속에 살고 있는 고릴라도 그중 하나. 우간다, 르완다의 고릴라는 관광객들의 눈길에 익숙해졌지만 가봉의 고릴라는 야생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숲속의 카페, 바이 

가봉은 국토의 대부분이 빽빽한 열대우림으로 덮여 있어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고릴라가 사는 곳으로 가려면 헬기를 이용해야 한다. 아침 일찍 수도 리브레빌Libreville에서 이륙한 지 2시간, 울창한 숲의 바다를 가로질러 착륙한 곳은 랑구에 바이Langoue Bai. 열대우림 한가운데의 습지다. 염분이 많기 때문에 소금을 섭취하러 동물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피그미족은 이런 습지를 ‘바이Bai’라고 부른다.

바이의 물웅덩이 주변에는 보통 숲 코끼리 떼가 무슨 회의라도 하듯이 잔뜩 모여 있다. 어떤 놈들은 소금 냄새를 맡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오기도 한다. 방금 도착한 코끼리 가족은 시원한 코끼리 샤워로 일단 몸을 식힌다. 어미, 새끼 가릴 것 없이 곧바로 긴 코를 진흙 바닥에 박고 열심히 뭔가를 찾는다. 코끼리들은 몇 시간을 꼼짝 않고 땅만 판다. 습지 바닥을 뒤져서 몸에 꼭 필요한 광물질, 염분을 섭취하는 것이다. 열대우림의 ‘바이’는 코끼리 ‘카페’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뜨거운 한낮, 코끼리 무리가 진을 치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동물들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강변의 삼총사
수줍어하는 새끼 고릴라
실버백의 늠름한 뒷모습
이런 포즈도 가능한 고릴라. 강변에서 즐거운 한때

밤을 꼬박 새운 고릴라 데이트

촬영팀은 포터들과 함께 국립공원 관리인들이 머무는 캠프로 짐을 옮겼다. 밀림 속 길을 따라 걷는데 갑자기 공원 가이드가 멈추면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맹수가 나타난 줄 알고 일순 긴장했다. 잠시 후 오른쪽 앞 나무 사이에서 성난 짐승이 뿜어내는 포효가 들렸다. 분노에 찬 우레의 울림.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TV <동물의 왕국>에서 듣던 사자나 호랑이의 소리가 아니었다. 가이드는 낮은 음성으로 고릴라라고 알려주었다. 수컷 고릴라가 무리를 이끌고 숲길을 건너던 참에 우리가 나타났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경고한 것이다. 거리가 좀 더 가까웠으면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를 위협했을지도 모른다. 

다음날 오후, 촬영팀은 바이 근처 전망대에 텐트를 쳤다. 고릴라를 촬영하려면 보통 밤을 새고 기다려야 한다. 고릴라 무리는 이른 새벽 통이 트면 숲에서 나와 물과 음식을 먹고, 햇볕이 뜨거워지기 전 숲으로 돌아가기 때문. 어느새 열대의 태양이 숲 뒤로 모습을 감췄다. 우리는 코끼리가 바이에서 첨벙거리는 소리, 이름 모를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 낯선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전날 숲에서 공포와 경외심을 남겨 주고 떠난 동물의 우람한 모습을 고대하면서. 

다음날 동이 트고 얼마 후, 길게 자란 수풀 사이로 야생 고릴라 가족이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다. 무리의 우두머리인 수놈이 사방을 경계하며 천천히 풀을 헤치며 앞장을 섰다. 새끼를 업은 암놈, 아직 임신을 하지 않은 어린 암놈, 다 자라지 않은 새끼 몇 마리가 수놈의 뒤를 따랐다. 고릴라 사회는 일부다처제라 큰 수놈이 몇 마리의 암놈과 새끼를 보호하고 다닌다.
 
먹이를 먹다가도 네발로 기던 수놈이 일어나 주위 경계를 한다. 아침 햇살이 너럭바위처럼 넓은 녀석의 등판 위에서 하얗게 부서진다. 어깻죽지부터 등허리까지 은색 털이 물결친다. 말로 만 듣던 ‘실버백Silver back’이다. 고릴라 무리의 우두머리 수컷은 등에 은빛 털이 나 있기 때문에 ‘실버백’이라 부른다. 수놈의 크기와 몸무게는 암놈의 2배나 된다. 몸집이 큰 수놈은 180kg까지 나가는데, 클수록 암놈에게 인기가 있다. 암놈은 한 번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새끼는 3살이 넘어야 어미에게서 떨어진다. 12살쯤 되면 무리에서 벗어나 독립한다.
     
고릴라 가족은 풀밭에 둘러앉아 풀줄기를 뽑아서 밑동부분을 맛나게 먹기 시작했다. 고릴라는 주로 숲의 열매를 먹고 사는데, 이렇게 가끔 풀밭에 나와 별식을 즐긴다고 한다. 우두머리부터 새끼까지 초식 오찬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필자가 어제 숲속에서 느낀 공포는 다 사라지고 슬며시 웃음까지 머금게 됐다. 고릴라가 저렇게 순하고 평화로운 동물이라니.
 
살라시아 열매를 먹는 새끼 고릴라
고아원의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새끼 고릴라
   
강변의 고릴라 고아원

다음날 우리는 다시 헬기를 타고 고릴라 고아원으로 향했다. 콩고와 국경선을 마주한 사바나 지대에 착륙해서 배로 바꿔 타고 꼬불꼬불한 암파사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참 거무튀튀한 물살을 가르고 나서야, 강변 열대우림 사이에 아기 고릴라들의 보금자리가 나온다. 1998년, 유럽의 동물보호 재단이 가봉 정부의 협조를 받아 시작한 이 고아원에선 지금까지 21마리의 새끼 고릴라를 키워서 숲으로 돌려보냈다. 이곳의 원아들은 주로 밀렵꾼에게서 압수한 새끼들이다. 예전에는 고릴라 고기를 먹을 목적으로 주민들이 사냥했지만, 요즘은 어미를 죽인 뒤 남은 새끼를 해외의 동물원 전시용, 애완용으로 내다 팔려고 밀렵을 한다. 

우리가 방문한 날, 마침 새끼 고릴라 세 마리가 열매 따먹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뭇가지에서 ‘살라시아’라는 노란 열매를 따서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는 고릴라의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 새끼들은 매일 아침 7시 반 나무 우리에서 나와 근처 숲에서 나무 타기, 땅 파기, 열매 따기 등을 해본다. 사육사는 지켜보고 있다가 길을 찾아 주기도 하고 먹어도 되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알려 주기도 한다. 

이날은 낯선 사람들이 등장했으니 새끼들의 관심이 흐트러질 수밖에. 호기심 많은 새끼는 촬영팀에게 다가와 신발, 양말, 바지를 만지며 냄새를 맡고 카메라 삼각대에 매달리고, 장비 가방을 열어 본다. 새끼 한 마리는 제작진이 쓰고 있던 모자를 빼앗아 킁킁대더니 들고 줄행랑을 치기도. 염분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땀에 전 냄새가 좋았던 모양이다. 

오후 4시, 고릴라들이 야외 일과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자 프랑스인 사육사는 냇가의 물을 떠서 분유를 타고 새끼들이 마실 우유를 마련했다. 냄새를 맡은 새끼들은 젖병을 든 사육사를 따라 숲 속 공터의 나무 우리 쪽으로 왔다. 보호해 줄 어미가 없기에 밤에는 새끼를 우리에 넣어야 한다. 밖에서 새끼를 재우면 표범이나 침팬지가 새끼를 습격해 잡아먹는다. 다 자라면 다른 동물들이 접근을 꺼리는 숲의 왕자가 되지만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 세 마리 중 어린 두 마리는 우유를 얻어 마시기 위해 잽싸게 우리로 들어갔다. 하지만 제일 큰 ‘우디키’는 뭐가 불만인지 풀밭에 버티고 앉았다. 우유를 뗄 때가 된 걸까, 아니면 이제 갑갑한 우리가 싫어진 걸까? 30분이 지나서야 우디키는 우리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우유를 받아먹었다. 고아원의 고릴라 전문가는 ‘큰 놈이 조만간 우리를 부수고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고릴라가 어느 정도 자라면 통나무 우리를 부술 충분한 힘이 생긴다. 고아원의 우리는 그때까지 새끼를 안전하게 지켜 주는 장치일 뿐이다. 더 머물 것인지, 우리를 깨고 숲으로 돌아갈 지를 결정하는 것은 고릴라의 몫이다. 어린 새가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늘을 날 수 있듯이.

다시 배를 타고 숲을 빠져나오면서 필자는 상상했다. 며칠 전 우두머리 고릴라가 숲길에서 우리를 놀라게 했듯, 새끼 고릴라가 자라서 우렁찬 소리로 숲을 호령하는 멋진 모습을.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손현철 KBS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야생 고릴라를 만나 보려면

한국인들에게는 아프리카의 일반적인 사파리 여행에 비해서 고릴라 체험이 아직은 생소한 분야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여행 상품은 극소수인데 올해 신발끈 여행사에서 국내 유일의 고릴라 체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 8월에 출발 예정인 고릴라 트레킹은 10일 일정이며 항공료 포함 비용은 350만원 정도다. 
www.shoestring.kr

영어 소통에 별문제가 없다면 아프리카 현지나 유럽, 미국의 여행사를 통해 고릴라 체험에 도전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간다의 고릴라 투어는 최소 3일부터 9일까지의 고릴라 체험 관광을 판매 중이다. 일정이 길수록 우간다의 다른 야생동물 관광이 포함된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출발하는 3일짜리 고릴라 체험 비용은 4인 출발 기준, 1인당 405달러. 
www.gorillatours.com 

미국의 바운드리스 여행사는 7일짜리 콩고공화국 내 고릴라 사파리 상품을 판매 중이다. 비용은 1인당 최소 500만원이 넘어간다. 물론 아프리카 현지까지의 항공편은 여행자가 부담해야 한다. 
www.boundlessjourney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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