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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경 기자의 On Air] 평범한 악의 세계-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5.09.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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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해변가, 온갖 호화로운 서비스를 받으며 쉬었던 옛 여행을 떠올렸다. 나긋한 표정의 인도네시아인 직원들은 오로지 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마냥 상냥했다. 아름다운 풍경과 평화로운 사람들, 그것이 다인 줄만 알았던 나에게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이 날카로운 일격을 날렸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여행을 갈 때면 어디든지 그 나라의 과거를 불러오려는 버릇이 생겼다.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현혹돼 진짜 중요한 것을 못 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다. 

몇번이나 구역질이 나려는 것을 참았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1965년 9월30일, 인도네시아에서 군부 주도의 쿠데타가 일어난 뒤 벌어진 공산당 학살을 되짚는다. 100만명 대학살이라고도 불리는 사건이다. 사건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안와르 콩고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기가 피로 웅덩이를 이뤘었지.’ ‘공산당 목에 쇠끈을 감고 온몸으로 당기면 힘도 못 쓰고 죽었지.’ 그가 헌신한 수하르토 정권이 지금의 인도네시아 정권의 모태니 학살의 과거는 그에게 훈장이다. 안와르 콩고가 스스로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속감에 의해 시작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날 때는 공황상태를 피할 길이 없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이야기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린다. 모범적이고 성실한 사람이라도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해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 안와르 콩고도 마찬가지다. 그가 손주들을 보듬는 친근한 할아버지일 때, 슬금슬금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할 때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영화는 10년 이상의 준비 끝에 대학살을 주도했던 가해자들을 조명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을 들이대는 외국인에게 당사자들이 처음부터 응했을 리 없을 터. 그들의 영웅적인 역사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합의 아래 이 다큐멘터리가 시작됐다. 덕분에 영화는 영화 암표상이었던 순수한 청년시절부터, 정권의 영웅이 된 지금까지의 안와르 콩고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 속임수 때문에 영화 개봉 후 조슈아 감독은 신변의 위협이 있어 인도네시아에 들어가지 못한단다. 반면 안와르 콩고는 완성된 영화를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눈물과 함께. 

감독은 같은 사건으로 또 한 번 우리를 불러들일 작정이다. <액트 오브 킬링>의 후속작으로 9월3일 개봉하는 <침묵의 시선The Look of Silence>으로 말이다. 한국에서는 8월24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사람사는세상 영화축제’의 개막작으로 선을 보이고, 이를 기념해 조슈아 감독이 방한한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더욱 노골적이 됐다. 학살로 죽은 피해자의 동생이 살인자를 직접 찾아간단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침묵의 시선>을 보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다름 아니다. 그저 감독이 영화의 의도에 대해 많은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어떠한지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여행자일 뿐인 나의 발걸음에 작게나마 책임감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Joshua Oppenheimerl
     신혜수
다큐멘터리, 범죄 | 159분 | 15세 관람가
2014년 11월20일 개봉

글 차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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