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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 아버 섹시’ 베를린①베를린 이 세상 최고의 도시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6.0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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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 아버 섹시’ 베를린
Berlin ist arm, aber sexy 
 
‘아름 아버 섹시arm, aber sexy,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베를린을 말하는 가장 유명한 수식이다. 하지만 틀렸다. 베를린은 섹시하지만 가난하지 않다. 베를린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그 어느 도시에서보다 몸과 마음이 풍요로웠다. 파리가 예쁘고, 뉴욕은 뜨거웠으며, 방콕이 편안했다면, 베를린은 멋진데다 정겹다. 이제 나는 베를린을 가장 편애한다. 이 세상 최고의 도시라고. 
 
베를린의 그래피티는 뉴욕이나 파리의 그래피티보다 다양하고 거대하다. 통독 후 어둡고 칙칙했던 베를린의 분위기는 거친 그래피티와 어우러지며 도시의 독특한 이미지를 탄생시켰다
 
●Berlin
베를린 이 세상 최고의 도시
 
“내게 베를린은 이 세상 최고의 도시야.” 
지난 3월, 뒤셀도르프에 사는 일본인 친구 유미가 말했다. 내가 베를린에 가게 됐다고. 베를린 어때?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답했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독일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독일에 살지만 남편과는 독일어도 영어도 아닌 일본어를 쓰며 산다. 자연히 그녀의 영어나 독어는 신통치 않은데 독일에 사는 게 마냥 좋다고 한다. 그러나저러나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베를린이 최고라고? 베를린에 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알아? 처음 유미 얘기를 들었을 때는 과장이 좀 심하네, 하고 건성으로 들어 넘겼었다. 
 
4월이 되었고, 베를린에서 열흘을 지낸 내게 이번에는 유미가 물었다. 
“베를린 어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 말이 맞았어. 내게도 베를린은 이 세상 최고의 도시야.”
 
베를린에서 단지 아홉 밤을 잤을 뿐이다. 겨우 아홉 밤 만에 나는 베를린을 이 세상 최고의 도시로 여기게 되었다.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들어 넘길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의아하다. 베를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나는 베를린에서 행복했다고. 사실 난 ‘행복’ 운운하는 말을 거의 쓰지 않기에 베를린에서 행복하다고 느낀 건 ‘별일’이다. 그렇다고 베를린에서 무슨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베를린 이곳저곳을 열심히 걸어 다녔을 뿐이다. 단, 관광지는 피했다. 관광객이 아닌 베를린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보고 싶었던 나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도, 샤를로텐부르크 성Schloss Charlottenburg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란 368m 높이의 베를린 TV 타워도 안 갔다. 그저 거리를 걷기만 했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독일어 한마디 하지 못하지만 잘 돌아다녔고,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외롭지 않았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빌린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지역의 4층 아파트에 짐을 풀고 계단을 걸어 내려와 그래페Graefe 거리로 들어서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잠시 애를 써야 할 정도였다. 서울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어떤 기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거친 듯 순진한 거리의 공기가 나를 마구 찔러댄 탓이다. 나는 바로 알아챘다. 바로 그곳에 베를린이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상상해 온 베를린을 단박에 보고 말았다. 그건 바로 날것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자유였다. 의식보다 몸이 먼저 자유를 알아채더라.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베를린에 왔다.
 
나는 왜 베를린에 반했을까? 처음 베를린 거리를 걷는데 늘 이곳을 걸어 다닌 것만 같았다. 독일의 낯선 대도시가 아니라 우리 동네를 거니는 것처럼 편안했다. 약국 화장품 질이 좋다는 말을 듣고 얼굴에 바를 로션 하나를 사려 해도 글자를 읽을 수 없어 독어사전을 찾아야 했으나 그조차 불편한 줄 몰랐다. 길을 전혀 모르지만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9.99유로짜리 유심 칩을 스마트폰에 끼워 주니 구글맵으로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는 일은 매우 쉬웠다. 영어를 잘하거나 독일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훨씬 더 즐겁게, 편하게 지냈을 것 같다.   
 
베를린 사람들은 부드럽고 친절했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거리에서 지도를 펼쳐 들자마자 할아버지가 다가와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이런 일은 그 후에도 또 있었다. 누군가 베를린은 서울보다 1.5배 크다고 했다. 정말?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걸어 다닌 베를린은 메트로폴리탄이 아니라 작은 빌리지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나무 위 새소리를 들었다. 베를린 한복판의 티어가르텐 공원은 공원이 아니라 숲 같았다. 그만큼 베를린의 녹음은 넓고 짙다. 
 
한 번은 베를린 시내 중심가를 걷는데 스물 다섯쯤 되어 보이는 백인 남자가 묻는다. 
“저 알렉산더 플랏츠로 가는 길인데 어느 쪽인지 아세요?”
 
최소한 그에게 나는 베를린의 외국인이 아니라 베를린 주민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베를린은 코스모폴리탄 시티다. 중국, 터키, 베트남, 캐나다, 스위스, 이스라엘, 폴란드, 스페인, 타지키스탄, 러시아, 일본 이민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페루에서 온 이민자들이 함께 산다. 자연히 각양각색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면 매혹적인 공기를 풀풀 뿜어낸다. 
 
2014년 퇴임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Klaus Wowereit 시장은 게이였다. 2001년 마흔 여덟의 나이에 시장으로 당선된 후 2014년 예순 하나가 될 때까지 13년 동안 베를린 최장기 시장을 역임했다. 그는 선거 과정 중 TV 토론에서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이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베를린 시민들은 보베라이트 시장을 열렬히 지지했다. 하지만 그는 ‘게이 또는 성적 소수자LGBT의 아이콘’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독일 총리로 재직 중인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의 대항마로 거론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2014년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를린의 인구 구성은 특별합니다. 인간적 도시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바로 시민들의 포용적 태도입니다. 베를린은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베를린에는 현재 3,500명 정도의 성소수자 난민이 있다고 한다. 복잡한 난민 문제 속에서도 성소수자를 위한 보호시설을 만들고,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민자, 난민의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곳이 바로 베를린이다. 
 
2013년 베를린시 통계에 따르면 전체 베를린 인구의 10% 이상은 문화예술계 종사자이고 이들이 베를린 경제생산의 21%를 담당한다. 베를린시는 외국 예술가들에게 무상 의료보험 혜택을 주었다. 도시에도 DNA라는 게 있다면 베를린의 DNA는 문화고 예술이다. 이 세상에 도시의 키워드가 ‘섹시’인 도시가 베를린 말고 또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섹시는 각양각색의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다. 그렇다고 예술의 도시, 이런 식의 수사는 너무 식상하다. 베를린은 좀 더 특별한 이름을 가져야 한다. 베를린은 아직 그 이름을 찾지 못했다. 베를린은 전에 없던 ‘새로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베를린을 ‘1980년대의 뉴욕’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베를린이 특별하다고 인정하지만 결국 뉴욕의 하위인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뉴욕과 베를린은 다르다. 베를린에서 고작 열흘을 지냈을 뿐인 나는 아직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뭐가 다른지 알고 싶어 나는 다시 베를린에 가고 싶다. 
 
베를린은 서울보다 크지만 거리 곳곳의 녹음이 짙다
가운데 보이는 직선은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자리를 의미한다
통독, 구동독, 베를린 장벽의 정치적인 이슈들은 이제 베를린 관광산업의 중요한 모티브다
베를린 남쪽,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한 카페
베를린 야경 속의 TV 타워는 유럽에서 가장 높다
 

●Tempelhhofer Feld
템펠호프 공항 
공원으로 변한 공항
 
활주로는 비행기가 뜨거나 내릴 때 달리는 길이다. 오늘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 두 발로 활주로 앞에 섰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활주로 바닥의 부호가 거대하다. 비행기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활주로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활주로의 끝이 저 멀리 보이긴 했지만 한참을 걸어도 그 끝에 도착하지 못했다. 사방이 탁 트인 활주로 주변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걸었다 해도 대략 2km를 걷는데 30~40분 정도 걸렸으니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이 길의 주인이 사람 아닌 비행기라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 이곳의 주인은 비행기가 아니다. 공항이 공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템펠호프 공항Tempelhhofer Feld, 베를린 남쪽에 있는 공항이다. 1923년 문을 열었다가 2008년 문을 닫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템펠호프 공항은 베를린을 방어하는 독일 공군기지였으며 전후에는 소련에 맞서는 서방세계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동서독 분단 후 소련이 서베를린을 봉쇄했을 때는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서베를린 시민들의 식량과 연료를 실어 나른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한마디로 냉전 시절, 템펠호프 공항은 서베를린 시민들의 생명줄이었다. 
 
공항이 문을 열고 8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공항의 효용성이 점점 떨어지자 공항은 결국 문을 닫았고, 베를린시 당국은 공항 부지에 4,700호 규모의 주택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점차 심각해지는 베를린의 주택난을 조금이라도 풀겠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베를린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집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사람들은, 베를린이 예전 같지 않다는 푸념 섞인 말을 쏟아내던 상황이었다. 주택단지 건설은 베를린시에 꼭 필요한 정책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 템펠호프 공항 면적은 어마어마하다. 뉴욕 센트럴파크와 비슷하고, 여의도공원의 16배에 달할 정도다. 개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베를린이란 도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시의 야심찬 계획에 즉각 제동을 건 건 다름 아닌 베를린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공항의 주택단지화 대신 ‘공원화’를 요구했고 결국 시민 찬반투표에 의해 공항의 공원화가 결정되었다. 
 
베를린에 온 관광객이 빼먹지 않고 찾는 곳 중 하나는 아마 브란덴부르크 문일 것이다. 하지만 관광객이 베를린에서 꼭 방문해야 할 곳은 브란덴부르크 문이 아니라 바로 템펠호프 공항이다. 베를린에서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공원이라곤 하지만 본래 공항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거의 ‘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주로가 놀이동산처럼 바뀌었지만 그게 전부다. 활주로를 따라 산책이나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연을 날린다. 베를린에서 제일 큰 공원이다. 템펠호프 공항이 공원으로 바뀌기 전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했던 공원인 티어가르텐Tiergarten보다 더 크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공원이지만 그 안은 텅 비어 있다. 그래서 특별하다. 한때 어느 건축가는 베를린 지형이 평지인 점을 고려해 이곳에 1,000m 높이의 산을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이 역시 무위로 돌아갔다. 

지금은 봄이지만 눈 내리는 겨울날, 활주로를 따라 산책하는 공상을 펼쳐 본다. 흩날리는 눈발에 시선이 가리면 여기가 어디인가 싶을 것 같다. 여기는 바로 템펠호프 공항, 텅 비어 있어 넉넉한 그곳에 나를 내려놓을 자리는 충분하다. 
 
템펠호프 공항 
Tempelhofer Damm 1-7, 12107 Berlin
thf-berlin.de
 
공원으로 변한 공항 활주로에서 사람들은 연을 날린다
공항 활주로에서 자전거를 타며 봄날을 즐기는 사람들
공항 활주로는 광활한 조깅 코스로 변했다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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