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코카서스의 숨겨진 왕국 조지아Georgia③시그나기, 므츠헤타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6.06.09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와인으로 유명한 카헤티 지방의 소도시 시그나기는 대표적인 관광도시다. 로맨틱한 레스토랑과 소박한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지방 도로를 달리다 우연히 만난 목동과 양떼.
 
●나의 사랑스러운 도피처, 시그나기Sighnaghi
 
조지아 정부가 ‘사랑의 도시’라고 홍보하는 곳이다. 실제로 정말 작아서 인구 3,000명에 불과한 시그나기는 18세기에 에레클 2세Erekle Ⅱ의 명령으로 축조된 4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성벽을 따라 산책에 나서면 해발 800m에 위치한 마을 아래로 알라자니 계곡Alazani Valley 너머로 펼쳐진 코카서스 산맥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성벽에는 원래 23개의 타워가 있었고, 각각 인근 마을의 이름을 따서 페르시아 등이 침략해 왔을 때 피난처로 제공되었다고 한다.
 
시그나기란 이름도 터키어로 피난처를 뜻하는 시그낙Sığnak이란 단어에서 왔다. 그런 포용력 때문에 사랑의 도시인가 했더니, 시그나기는 누구나 쉽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도시, 말하자면 조지아의 라스베이거스인 셈이다. 새벽 3시에도 주례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싸고 풍부한 와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방인의 첫 눈에도 시그나기는 한동안 머물러 살아 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동네였다. 골목마다 17~19세기에 축조된 전통가옥을 개조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전망 좋은 레스토랑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이면 골목에 나와 앉아 양털로 짠 모자와 양말 등을 판매하는 할머니도, 말을 한번 타 보라며 호객하는 동네 청년까지 그 이름을 다 알게 되고, 어쩌면 결혼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도시가 바로 시그나기다. 
 
즈바리 수도원의 성직자
즈바리 수도원에 올라가면 2개의 강의 합류하는 므츠헤타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Mtskheta 므츠헤타
역사와 종교가 합류하는 곳

조지아의 역사는 무수히 합류와 분류를 
거듭하지만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강물을 닮았다. 고갈되지 않을 수 있었던 
정신의 샘은 조지아 정교회였고, 
므츠헤타는 그 오래된 샘터다. 
 
왕들의 무덤 위에서 

‘잠깐만요!’ 사진가의 외침에 차가 섰다.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여기다!’는 감이 온 모양이다. 그 길의 끝에 즈바리 수도원Jvari Monastery이 서 있었다. 저절로 카메라에 손이 갔다. 걸음을 재촉해 주차된 차들과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을 지나 언덕을 올라갔지만 얼른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지지 않았던 것은 예상치 못했던 아랫마을의 풍경 때문이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므츠바리 마을이 거기에 있었다. 또 한 번 카메라에 손이 갔다. 

3,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도시는 므츠바리Mtkvari와 아라크비Aragvi,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그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 두 줄기의 강물은 색이 확연히 달랐다. 이베리아Iberia 왕국BC3세기~AD5세기의 수도였으며 고대 무역로가 지나갔던 흔적들도 종종 유물로 발견된다. 5세기에 조지아의 수도는 트빌리시로 이전됐지만 므츠헤타는 여전히 조지아 정교회의 수도다. 마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건물이 대주교좌 성당이자 조지아 정교회 본산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Svetitskhoveli Catherdral이다. 

조지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것은 AD 337년의 일이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313년 시기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때다. 당시 카파도키아의 왕실 공주였던 성녀 니노의 활발한 포교 활동 덕분이었다. 

즈바리 수도원이 여느 교회와 다른 점은 중앙부에 서 있는 거대한 나무 십자가다. 당시 왕이었던 미리안Mirian은 원래 이교도 사원이 서 있던 마을 밖 언덕 위에 거대한 십자가를 세웠다.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는 일이었다. 그 인근에 작은 교회가 세워진 것이 545년, 십자가 위로 큰 성당이 지어진 것이 586~604년 사이의 일이다. 즈바리Jvari는 십자가라는 뜻. 1,50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 온 덕에 200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아서 한때는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십자가는 복제품이지만 바위로 된 받침대는 당시의 것 그대로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이 조지아 최고의 성지인 이유는 예수의 튜닉Tunic*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튜닉과 함께 묻혔다는 시도니아의 무덤이 성당 내부에 있고, 제대 가까운 쪽에는 에레클레 2세를 포함해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다.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루며 처음 왕관을 썼던 왕들은 연어처럼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영원히 잠들었다. 예언자 엘리야의 망토, 12제자 중 안드레아의 유골도 이곳에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 

조지아 최대의 성지순례 장소답게 어김없이 전례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단체 관람객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현재의 십자가 돔 건물은 11세기에 재건된 것이지만 내부에는 5세기 바실리카의 기둥들이 남아 있어서 유구한 역사를 보여 준다. 또한 오스만투르크 군대가 침입했을 때 수도사들이 몰래 숨어 있었다는 벽 사이의 비밀 공간이나 탈출 통로로 사용했던 터널 등도 볼 수 있다. 덧칠을 벗겨내고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프레스코화 중에는 천국과 지옥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는 등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오랜 수수께끼다.

전해지는 모든 전설이 이해되거나 증명되지는 않지만, 왕들의 무덤 위에 서서 대대로 기도했던 모든 기원 덕에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고, 조지아도 그러했던 것이 아닐까. 

조지아 최대의 성지 옆에는 조지아 최대 규모(?)의 기념품 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카페도 베이커리도, 숍도 예쁘다. 오직 한 사람, 공작새를 데리고 나와 기념사진 촬영을 강요하더니 한 장에 무려 5라리라며 뒤통수를 쳤던 아저씨만 밉상이었다. 
 
*예수 튜닉과 기둥 | 튜닉Tunic은 소매가 없는 헐렁한 옷으로 로마시대에 속옷 겸 외투로도 널리 입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사형된 후 엘리야라는 남자가 예수의 튜닉을 구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튜닉을 전해 받은 여동생 시도니아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죽었고 손에서 튜닉이 떨어지지 않아 함께 묻어 주었다. 이후 그 무덤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났다. 시간이 지나 므츠헤타에 온 성녀 니노는 이교도의 사원이 있던 자리에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무덤의 나무를 잘라 7개의 기둥을 만들자, 기둥이 공중에 떠오르기도 하고 좋은 향기를 품으며 사람들을 치유케 하는 성유를 뿜기도 하는 등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 교회의 이름이 된 스베티츠호벨리는 ‘살아 있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즈바리 수도원 앞에서 연주 중인 악사 구자 오미야제Guja Omiadze씨
즈바리 수도원에는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가 포도나무 가지로 만들었다는 십자가의 복제품이 모셔져 있다
조지아 정교회의 본산인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승무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조지아관광청 www.georgia.travel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