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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ch Point] 마지막 황제의 미소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6.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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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ch Point 특별한 여행을 만드는 결정적 한 수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직업이 여행 작가라고 소개하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물어본다. 상대방은 쉬운 질문이라 생각하고 던지지만 이게 의외로 대답하기 어렵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군산과 경주인데, 이대로 얘기하면 기대에 못 미칠 게 뻔하다. 그래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누구나 선망할 만한 곳을 대 왔다. 캐나다라거나, 하와이라거나. 그러고 보니 나는 사마르칸트도 가봤는데. 세상에,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요즘에는 베이징이 제일 좋다고 답한다. 이건 진심이다. 지난해 혼자 베이징에 다녀온 후로 매년 베이징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베이징에서 생애 최고의 만두를 먹고, 수제맥주 바를 순회하고, 사합원 골목인 후통을 누볐다. 밤에는 루프톱 수영장에서 튜브를 끼고 누워 별을 봤다. 자금성에서 지나치게 열심히 걷느라 발병이 난 것만 빼면 완벽한 여행이었다. 

자금성은 실제로 보면 충격과 전율이다. 자금성의 심장은 드넓은 광장 위에 우뚝 선 ‘태화전’인데, 이 거대한 금빛 궁전은 사방에 높은 건물 하나 없이 새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거느리고 있다. 철저한 건축적 안배를 보고 있으면 순식간에 경외감이 밀려온다. 여기선 황제가 하늘의 아들이라는 말을 곧이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중국의 역대 황제 즉위식이 태화전에서 열렸다.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에서 갓 걸음을 뗀 세 살배기 황제 푸이Puyi가 즉위하는 장면도 태화전에서 촬영됐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푸이가 평범한 정원사가 되어 마오쩌둥의 집권과 홍위병의 탄생을 지켜보는 모습은 내게 강렬하게 와 닿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자 푸이는 일제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10년간 옥살이를 한 후 베이징 식물원의 정원사가 된다. 한 나라의 황제로 태어나 한때는 천하의 문무백관이 머리를 조아리던 사람. 그런 그가 어떻게 일개 시민의 삶을 견딜 수 있었을까.

여행 마지막 날, 시간을 때우려 들어간 공항 서점에서 나는 <나의 남편 푸이My Husband Puyi>라는 책을 발견했다. 푸이와 말년을 함께한 다섯 번째 아내가 쓴 평전이다. 간호사였던 그녀는 장년에 접어든 푸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푸이는 이미 네 번의 이혼 및 사별 경험이 있었고, 나 역시 첫 번째 결혼에 실패했었죠. 당시 연극에서 푸이는 잔인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묘사됐어요. 그런데 고향 사람 소개로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 인사와 맞선을 보게 된 거예요. 나는 그와 만나는 게 꺼려졌지만 내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한 그의 호의를 거절할 순 없었죠. 그리고 그날, 나는 약속 장소인 카페에서 정장을 입고 단정히 머리를 넘긴 보기 드문 젠틀맨을 만났어요. 마지막 황제였지요. 그는 자연스럽게 악수를 건네며 웃었는데, 미소가 무척 따뜻해 보였어요. 우린 첫 만남에 서로 호감을 가졌고 네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눴죠.”

푸이는 정원사로 일하다가 당시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의 배려로 문화재청 공무원이 되었고, 만주족 대표도 역임했다. 모두 한 사람의 생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힘든 숱한 질곡을 겪고 나서야 그는 평범한 행복을 되찾았다. 그의 미소가 어땠는지 상상할 순 없었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내 머릿속 가련한 마지막 황제도 희미하게 웃었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을 쓴 도선미 작가는 베이징에 가는 사람들에게 10월의 파란 하늘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녀는 올해 만리장성에서 캠핑에 도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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