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 제천, 바람과 달이 흘러간 자리

트래비기자     작성일제299호(2017.01) 댓글0건
바람이 말을 걸어 왔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아, 
여기서 잠시 쉬어 가는 건 어때. 높은 산을 오를 용기도, 
먼 바다를 마주할 여유도 없었던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았던 곳, 충북 제천이다.   
 
능강솟대문화공간 앞에서 볼 수 있는 청풍호와 솟대 풍경
배론성지의 고즈넉한 풍경
배론성당. 배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순례자의 길. 완만한 트레킹 길이 이어진다
 
 
울고 넘는 박달재에서 순례자의 길까지 

오래된 대중가요로도 유명한 ‘울고 넘는 박달재’의 바로 그 곳이다.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 가던 박달 도령이 제천의 금봉 낭자를 만나 사랑의 언약을 나누었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만 남고 사라졌던 박달 고개 옛길이 몇해 전 다시 복원되었다. 박달재를 울며 넘을 정도로 애틋했던 연인을 생각하는 것도 잠시, 고개 넘는 것이 힘들어 울며 걸었던 것은 아닌지 헷갈렸다면 너무 정서가 메말랐던 걸까, 운동이 부족했던 걸까.

박달 고개 정상에서 배론 성지까지 걷는 1시간여의 트레킹 길은 아직 특별한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길을 소개하던 문화해설사는 스스로 ‘순례자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은둔했던 배론성지로 가는 길이자 순교자 황사영이 걸었던 길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박해를 피해 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걸었던 길은 이제 숲 향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완만한 능선을 돌고 돌아 누구라도 걸을 수 있게 잘 닦아 놓았다. 순례의 길이라기엔 경치까지 너무나 아름다웠다. 

‘순례자의 길’ 끝에서 만나는 배론성지는 제천 10경 중 열 번째로 꼽히는 곳이다.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배론’이라는 단어는, 실은 선박을 뜻하는 우리말 ‘배’와 말씀 ‘론(論)’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모양의 지형이 마치 배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지 주변 산의 이름은 주론(舟論)산인데, ‘배론’과 ‘주론’은 결국 같은 뜻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성요셉 신학교가 있었던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초창기 한국 천주교의 지도자인 황사영이 ‘백서’*를 작성한 토굴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계속 의금부에 보관되어 오던 백서는 문서 정리를 하며 우연히 발견되어 1925년 로마교황에게 전달, 현재 로마교황청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성지에는 황사영의 동상이 있는데 이 동상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황사영의 후손들이 황사영의 동상을 세우고 싶었으나 남한은 제작비가 너무 비쌌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황사영 동상은 기술이 뛰어나면서도 제작비가 저렴한 북한에서 제작되어 일본을 거쳐 배론성지로 들어와 세워졌다고 한다. 역시 기개가 넘치는 포즈와 표정은 느낌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압도적인 화려함에 저절로 숙연해지던 유럽의 수많은 성당과는 확연히 다른 소박한 아름다움에 정연한 마음이 드는 배론성지.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종교와 풍경이 어우러진 ‘배’를 올라탔던 시간은 발걸음마저 조심하며 고요히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황사영 백서 사건 | 황사영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고발하는 내용을 써서 당시 북경에 있던 프랑스 주교에게 전하려 했지만 발각되어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박달재
주소: 제천시 백운면 박달로 231 
관광안내소 043-642-9398 
 
배론성지
주소: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관광안내소 043-645-4527 
www.baeron.or.kr  
 
비봉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풍호

‘청풍호’를 보는 세 가지 방법
 
내륙에 위치한 제천이 ‘물의 고장’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호수인 ‘청풍호’가 제천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청풍호는 충주댐 건설로 생긴 호수로 흔히 충주댐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제천 시민들은 아쉬움이 있는 이름이다. 댐 건설로 충주, 단양, 제천의 많은 마을들이 수몰되면서 제천에서만 5개 면, 61개 마을, 3,301호의 가구가 수몰되었다. 전체 수몰량의 60퍼센트 이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름은 ‘제천호’가 아닌 ‘충주호’가 된 것이다. 때문에 제천에서만큼은 충주호가 아닌 ‘청풍호’라고 해야 통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카약을 타면 청풍호를 내 맘대로 누빌 수 있다

1. 청풍호를 마주 보는 법 

청풍호를 즐기는 방법은 유람선이 가장 일반적이다. 하지만 느긋하게 청풍호의 바람과 풍경을 느끼고 싶다면 카약을 타 보는 건 어떨까. 카약 타기는 크게 어렵지 않다. 탑승 전에 옥순대교 근처 선착장에서 간단히 패들 젓기를 배울 수 있다. 2인용 카약을 타게 되는데 하나, 둘, 박자에 맞춰 함께 노를 젓다 보면 어느새 호수 한가운데 진입해 있다. 그때쯤이면 팔이 아플 타이밍. 패들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청풍호의 물결에 몸을 맡기니 작은 배가 출렁이며 기분 좋은 리듬을 만든다.
 
저 멀리 보이는 옥순봉 바로 앞까지 보고 돌아오는 것이 애초 목적이었지만 여기서 보면 어떠랴 싶다. 멀리서 보아도 좋은데 굳이 가까이 갈 필요가 있을까. 기분 좋은 출렁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슬로시티 제천에서 이보다 더 ‘슬로우’를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은 또 없을 것 같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저 멀리서 유람선이 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재빨리 물가로 피해야 한다는 것. 유람선이 지나가며 일으키는 물살에 카약이 뒤집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굳이 청풍호의 수온까지 체크할 생각이 아니라면 얼른 패들을 다시 잡도록 하자.
 
카약 체험
주소: 제천시 수산면 옥순봉로 342
전화: 043 646 8311  
 
비봉산 전망대에 있는 활공장

비봉산 모노레일. 4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2. 청풍호를 한눈에 보는 법

제천 어디를 가도 청풍호를 지나치게 된다. 도대체 얼마나 크고 넓은지 궁금하다면 비봉산 정상 전망대로 가 보자. 호수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를 보기만 해도 오를 일이 걱정이긴 하지만 미리 낙담하지는 말길. 누구라도 쉽게 비봉산 정상에 갈 수 있도록 모노레일을 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까지 걸리는 시간은 20여 분. 산을 굽이굽이 돌고 오르락내리락 하며 뜻밖의 스릴을 선사한다. 특히 정상 가까이에 가면 급격히 높아지는 능선을 따라 레일의 경사도 급해지는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 아찔한 경사를 오르는 그 순간, 이 길을 걸어가면 어땠을까, 모노레일이 있어 정말 다행이야.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비봉산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청풍호를 파노라마 풍경으로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호수라더니 정상에 오르면 마치 섬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호수를 둘러싼 산들이 만들어낸 겹겹의 능선들과 기암절벽의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정상에서 제법 세게 부는 바람마저 놓치지 않고 활공장으로 활용하고 있어 패러글라이딩을 탈 수도 있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발 아래 놓고 하늘을 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패러글라이딩까지 타 보았다면 아마도 청풍호를 보는 방법 중 패러글라이딩 타고 보는 것을 첫 번째로 꼽았을지도 모르겠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푸른 바람’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이 호수에 어울리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자연 치유의 순간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지. 
 
모노레일, 활공장
주소: 제천시 청풍면 도곡리 114 
전화: 043 642 3326 
홈페이지: www.cpairpark.co.kr
 
 
청풍문화재 단지의 입구격인 ‘제천청풍팔영루’
문화재단지 내에서는 공덕비, 송덕비와 고인돌까지 남한강변의 비석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3. 청풍호를 들여다보다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제천은 선사시대부터 문화의 중심지였다. 구석기 유적은 물론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 이르기까지 문화의 중심지였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제천의 60퍼센트 이상이 수몰될 상황에 처했다. 그때 지역의 문화재들을 한곳에 모아 만든 것이 바로 ‘청풍문화재단지’다. 보물, 지방유형문화재 등 53점의 문화재와 유물 전시관, 수몰 역사관 등 전시시설이 있어 제천의 문화재들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치 민속촌이나 드라마 세트처럼 잘 정돈되어 있지만 그 면면의 역사와 이야기를 더듬다 보면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밀려온다. 이 누각과 문의 원래 자리는 여기가 아니었을 텐데, 쓰던 그릇까지 고스란히 가져와 차려 놓은 이 옛집도 문화재적 가치와는 별도로 엉뚱한 곳에 덩그러니 있으니 씁쓸해진다. 문화재단지 너머로도 여지없이 청풍호가 보인다. 우리가 모르는 청풍호의 진짜 이야기는 저 아래 깊이 잠겨 있을 것이다. 이제는 제천의 대표 풍경이 된 청풍호지만 이 물을 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을 품으며 그 물을 채웠던 것일까, 잠시 다니러 온 관광객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고인돌부터 이황 선생이 기생 두향과 함께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제천청풍응청각까지, 저마다 사연과 이야기는 넘치는데 수몰되어 잃을 수밖에 없었던 원래의 자리가 아쉽기만 하다. 때문에 청풍문화재단지는 청풍호를 혹은 제천을 더 들여다보고 싶게 하는 곳이었다.
 
청풍문화재단지
주소: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전화: 043 641 5532~5 
 
●체험으로 만나는 제천
 

 
전통 활쏘기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인 국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일단 국궁의 활을 직접 보면 그 섬세한 작업 과정과 결과물에 놀라게 된다. 활의 틀을 만들기 위해 무소의 뿔과 대나무, 참나무 등에 소의 힘줄을 사용하고 민어의 부레를 접착제로 이용해 완성한다. 그래서 활은 그 탄력과 위력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볍고 단단하다. 먼저 국궁 전문가에게 국궁의 역사와 활쏘기 방법 등을 듣고 나서 직접 활을 쏴 볼 수 있었다. 청풍호와 금수산의 산세가 어우러진 곳에 위치한 국궁 체험장. 이곳에 서서 활을 당겨 보면 어쩌면 자신에게 흐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활쏘기 DNA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주소: 제천시 수산면 수산리 25-1 슬로시티 수산 옥순봉지구
전화: 043 642 8311
 
 
고려청풍지 한지 체험

닥나무 최대 자생지였던 제천에서도 특히 청풍강 인근은 한지 생산의 중심지였다. 고려시대 외교 선물로도 각광받았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이런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고려청풍지 한지 체험관이 개관했다. 한지의 아름다움은 물론 미처 몰랐던 다양한 쓰임새, 한지문화와 역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 직접 한지를 만들어 보거나 한지로 공예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특히 해가 진 후 한지 조명과 어우러진 체험관의 모습을 놓치지 말길. 
주소: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109-32  
전화: 010 9088 0790 
 
 
산야초 마을 떡메치기

쿵덕쿵덕 떡메를 치면 말린 산야초 어린잎의 초록색으로 물든 향긋한 떡을 맛볼 수 있다. 100년이 넘도록 사용해 왔다는 돌판 위에 보기보다 무거운 나무 떡메를 내려치는 일은 어른들도 깔깔거릴 정도로 재미가 있다. 떡메치기 외에도 약초차 체험, 약선 음식 만들기 등 제천 전통 체험을 할 수 있다.
주소: 제천시 수산면 옥순봉로 6길 3  
전화: 043 651 1357 
 
한방 티 테라피

약초와 한방의 도시로 유명한 제천에서 해 볼 만한 체험이 한방 티 테라피다. 제천시의 한방 자원을 활용해 나만의 차를 제조하거나 한방 아로마 발 마사지를 받아 볼 수도 있다. 한방차와 아로마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어 직접 견학도 할 수 있다. 이곳을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들른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여행으로 지친 몸을 잠시 쉴 수 있었고 향긋한 냄새에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국내 유수의 기업에 납품하는 각종 한방 차와 에센셜 오일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주소: 제천시 바이오밸리 1로 56
전화: 070 4849 1125 
 
●inside
 
의림지
‘제천 10경’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의림지는 무려 삼한시대부터 내려오는 저수지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천의 주요 농업 용수원이었다고 한다. 의림지 주변의 수백년 된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오랜 역사를 말해 주듯 의림지 풍경에 한몫을 더하고 있다. 의림지를 따라 걷는 길은 제천 시민들이 사랑하는 산책로이자 제천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꼭 들르는 곳이다. 주변에 식당과 카페들이 많아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기 좋다.
주소: 제천시 의림지로 33  
관광안내소 043 651 7101
 
능강 솟대문화공간
전국 유일의 솟대 테마미술관이다. 흔히 보던 솟대와는 다르게 인위적으로 모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새의 형상으로 성장한 나무를 골라 솟대를 만들었기에 희소가치가 있다.  예부터 행운과 복을 기원하며 세우던 솟대에 현대적 예술 감각을 더해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하늘을 향한 솟대들과 어우러진 주변 풍경은 사진 찍기에도 그만이다. 희망 가득한 훈훈한 마음은 덤이다. 
주소: 제천시 수산면 옥순봉로 1100
전화: 043 653 6160
 
 
오백나한상+목굴암
깨달음을 얻은 불교수행자 500인을 조각한 것이 오백나한상이고 나무로 만든 1인 수행 암자가 목굴암이다. 이 두 작품은 성각 스님 혼자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각하여 제작했다. 그 과정 자체가 수행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보는 순간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특히 나무 속으로 엎드려 들어가 기도하는 것으로 성불이 시작된다는 목굴암은 불교 신자라면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주소: 충북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705  
박달재 관광안내소 043 642 9398

글·사진 Travie writer 서현경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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