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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곧 나의 집, 베트남 등럼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7.02.0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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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잠시 하노이에 산책을 다녀왔다. 
가랑비가 내려 축축했고, 오래된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갈 때마다 
2단, 3단으로 빼곡히 앉은 불상들이 내려다봤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가 곧 그칠 것은 알았지만 해가 비출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오래 기도했으니 해가 비출 것이다. 하노이가 약속한 일이다. 
 

미아 파고다에서는 부처의 눈길을 피할 곳이 없다

●Duong Lam
등럼
 
역사는 삶이 채워져 만들어지는 것

담을 맞댄 집들이 골목을 이룬다. 얼핏 봐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쌓인 집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등럼 고대 마을(Duong Dam Ancient Village)은 1,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이란다. 람로드(Lam Road)를 따라 많으면 300~400년의 역사를 가진 고택 956채가 모여 있다. 움푹 파인 디딤돌이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가구들이 시간을 증명한다. 사람이 만든 것들은 계속 시간을 덧입은 덕에 편안한 색을 띠고 있었다. 한때는 쨍하게 강렬했을 붉은 벽돌집은 원숙한 빛을 내고, 단단하게 고집 피워 봤을 나무 창과 문도 아귀를 맞춘 지 오래인 듯 빈틈이 없다. 한 단위의 마을 전체가 이렇게 보존돼 있는 것은 기록적인 일이다. 
 
 
 
등럼의 시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오래된 유적들 사이에서 시장을 펼치고, 머리를 다듬으며 생기를 채운다
 

등럼 마을의 중심부로 향하는 길을 따라간다. 자전거를 탄 학생이 뒤를 한 번 돌아다보고 문을 연 가게에서는 묶음으로 붙은 긴 과자 봉지가 반짝였다. 보통의 민속촌처럼 재현을 위한 빈 동네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밥을 짓고 잠을 자는 진짜 주민들 말이다. 5,000여 명의 주민들이 이곳에 살며 집에 윤을 내고 길에 궤적을 남긴다. 통행량이 많은 로터리에는 시장도 있다. 갖가지 채소나 육류, 소모품를 내어 놓은 행상이 거리 양편으로 이어진다. 벽돌 화덕에서 통으로 구워 낸 돼지고기는 테이블 위에 통으로 쌓여 있다. 잘린 단면으로 흘러내리는 육즙,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 얼마 없는 인구에도 생기가 넘치는 풍경이다. 

애초에 작은 농촌 마을인 등럼은 으리으리한 유적지나 화려한 문명의 발전상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누가 알려 주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베트남을 호령했던 펑 훙(Phung Hung, 761~802) 왕과 응 기옌(Ngo Quyen, 896~944) 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이들을 모시는 펑 훙 사원과 응 기옌 사원이 있다는 것도. 사원과 파고다 등 마을 안에 무려 21개의 유적지가 흩어져 있다. 그럼에도 으리으리하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은 이것들이 생활과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접근금지 팻말이 쳐진, 박제된 유적이 아니다. 주민들은 사원에서 기도를 올리고 파고다에서 축제를 열고 고택에서 숙박업을 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소박하게 전통적인 농촌의 방식을 유지하며 삶을 이어왔다. 방문객은 세대가 이어지며 마을이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끼 낀 계단을 올라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선다. 방금 지나온 시장의 소란함이 갑자기 먼 곳의 이야기였던 듯 고요해진다. 600년을 살았다는 나무가 미아 파고다(Mia Pagoda) 안에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드문드문 내린 가랑비 때문에 공기도 축축했다. 중심 건물과 복도, 복도에 이어진 주변 건물 등 미아 파고다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그러나 숨을 곳은 없을 것이다. 287개의 불상이 파고다에 빽빽하다.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보통의 불상, 나무로 만들어진 불상, 돌로 만들어진 불상, 좌불, 와불 등등. 온갖 불상이 파고다에 모여 있으니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287명의 신 중에서 적어도 누구 하나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려나.  
 
입구를 넘어 들어가면 전통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주민들은 차를 대접하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나마 근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건물이 로터리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글 차민경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노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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