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향기가 나를 부르네, 베트남 퍼퓸 파고다

차민경기자     작성일제300호(2017.02) 댓글0건
●Ninh Binh
닌빈
 
꽃이 피어나면 소원을 빌자

꽃 향기가 흐뭇하게 퍼졌다. 보드랍고 포근한 향이다. 누가 이 산에 꽃나무를 이렇게 많이 심었단 말인가. 봄이면 흐엉 틱(Huong Tich) 산에 자몽꽃(Grapefruit blossom)이 지천으로 피어난단다. 흐엉 틱 산의 절과 사원을 퍼퓸 파고다(Perfume Pagoda)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분명 봄이 아닌데도,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향기는 퍼져 왔다. 그대로 홀리고 말았다. 다소 부담스러운 언덕길과 비에 젖어 미끄러운 계단도 아무렇지 않았다. 
 
자몽꽃 향이 자욱했던 닌빈의 반 롱 파고다. 이끼 낀 돌계단은 더 깊고 알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닌빈의 퍼퓸 파고다를 만나기 위해선 옌강을 따라 길고 긴 물길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흐엉 틱 산은 닌빈의 옌(Yen) 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한 시간 반 가량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석회암 지형이 구이린과 같아 ‘작은 구이린’이라 불리는 닌빈이다. 봉긋봉긋 솟은 봉우리는 옌강의 물을 밀어 올라가는 동안 차례차례 길을 터 주었다. 사람이 노를 저어 달리는 철제 보트는 지루하게도 느렸다. 아마 옛날에는 인내하는 것이 비밀의 화원에 닿기 위한 조건이었을지 모른다. 모터보트가 있지만, 거친 모터소리 때문에 옌강의 고요를 느낄 수 없다. 무엇이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생기는 법이다. 

물가에 내려 한참을 올라가면 티엔 쥬 파고다(Thien Tru Pagoda)가 있다. 17세기에 만들어졌으나 프랑스에 의해 파손돼 1988년 재건된 불교 파고다다. 회색 빛 입구는 퇴색해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는데, 문 안으로 들어서면 온통 붉은 빛이 강렬하다. 붉은 벽돌로 광장 바닥과 사원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발에도 빽빽이 향이 꽂힌 향로에서는 연기가 피어 올랐다. 
 
 
붉은 색과 황금색이 온통 강렬한 티엔 쥬 파고다 3 용의 이빨이 우람하게 자란 흐엉 틱 동굴에 닿으려면 인내는 필수 덕목이다
용의 이빨이 우람하게 자란 흐엉 틱 동굴에 닿으려면 인내는 필수 덕목이다
이곳을 찾은 여인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아이가 생기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간절한 자를 달래는 신의 숨결

퍼퓸 파고다를 대표하는 곳은 흐엉 틱 동굴(Houng Tich Cave)이다. 티엔 쥬 파고다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10분 정도 올라가거나, 산길을 따라 2시간 가량 걸어 올라가면 닿을 수 있다. 동굴에 닿으려면 아직이다. 아치형으로 파인 돌문을 지나 121개의 돌계단을 따라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계단의 높이가 동굴의 깊이인 셈이다. 아가리를 벌린 용의 입으로 자진해 걸어 들어간다. 마치 둥근 천장을 가진 무대의 형상을 하고 있는 흐엉 틱 동굴에는 맨 중앙, 위에서부터 아래로 둥근 종유석이 우람하게 자라 있다. 이것을 이곳 사람들은 용의 이빨이라고 부른다. 흐엉 틱 동굴은 용의 아가리다. 정말 입김이라도 나오는 듯 내려갈수록 후끈한 공기가 몸을 감싼다.

용의 이빨 뒤로 넘어 내려가면 상상했던 석회암 동굴의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뻥 뚫렸다 다시 막히는 구조는 조명을 받아 일렁인다. 가장 아래로 내려가면 둥글게 천 개의 팔을 펼치고 있는 천수관음상이 있다. 사람들은 돈이 생기게 해달라고,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이곳에서 기도를 한단다. 이곳의 신이 가장 너그러이 받아 주는 소원은 아기가 생기게 해달라는 것이다.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면 젖이 나온다는, 그 물로 몸을 털어내면 태초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유난히 젊은 여자들이 많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불단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젊은 여인에게서는 간절함이 배어 나왔다. 

강을 건너고, 긴 트레킹 길을 지나야만 닿을 수 있는 이곳에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흐엉 틱 동굴 일대에서는 봄이 오면 흐엉 파고다 축제가 열린다. 동굴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이 찾아온단다. 음력 2월15일부터 무려 3개월 동안 순례자를 맞는 것이다. 자몽꽃이 피어나 만개하고 지는 시간. 꽃 향기에 홀려 길고 긴 뱃길과 산길을 넘어 흐엉 틱 동굴을 찾을 것이다. 
 
 
산양이 뛰어다니는 언덕길을 한참 올라서야 반 롱 동굴에 도착했다. 이곳엔 어떤 비밀을 숨겨 놓아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반 롱 파고다를 찾아가던 길목에서 시간을 낚는 듯 홀로 앉은 사내를 만났다
 
은자가 안내하는 길

여행한 시점은 봄이 아니었지만, 자몽꽃 향을 맡았다. 분명히. 반 롱 사원(Van Long Pagoda)에서다. 옌강의 작은 지류로 넘어가 한참을 달리다 보면 물길이 시작되는 곳에 다다른다. 봉우리가 사방을 에워싼 곳, 묵직하게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촘촘히 그늘을 만들고 있는 곳이다. 물길의 정면에 자리한 롱 반 파고다는 주변에 띄엄띄엄 몇 가구를 끼고 있음에도 홀로 있는 것마냥 쓸쓸한 분위기를 풍겼다. 속세와 떨어져 외로이 늙는 신이라도 살고 있는 것일까. 변덕도 심한 것인지 벽돌 계단에는 이끼가 가득 끼어 자칫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역은 반 롱 자연보호구역으로, 습지가 형성된 곳이다. 보호구역은 3,000헥타르에 달하고, 수많은 종류의 동식물이 보호받고 있단다. 습지인데다 비까지 내렸으니 어떠랴.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내디뎌도 빙판길을 걷는 것마냥 휘청휘청거린다. 이방인을 반기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하다. 애초에 쉽게 들어올 수 없고 많이 알려지지도 않아 방문객은 인근의 현지인이 대부분이란다. 불당 안에 빼꼼히 얼굴만 들이밀고 대충 훑어보고 말았다. 이미 많은 신을 만났고 기도도 많이 했다 싶은 생각도 들었던 탓이다. 

마찬가지로 오기도 피어올랐다. 불당에서 언덕을 한참 올라야 반 롱 동굴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빗발은 그칠 줄을 모르고 내리고 있었고, 돌 길은 계속 더 미끄러워지고 있었다. 중도 포기를 수백 번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도 길을 오르는 것은 왜인가. 아무도 강제하지 않는 일이었다. 오기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산 중턱에 도착해 방금 지나온 사원의 뒷머리와 그 앞으로 고요한 옌강이 펼쳐졌을 때에도 오기뿐이었다. 몇 번 다시 보고 싶었으나 괜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돌계단을 한참이나 더 올라서야 반 롱 동굴이 있었다. 터덜터덜 다리를 끌고 올라간 그곳은 단출하다 못해 실망스러운 정도였다. 사람이 온 지 오래인 듯 향도 죽은 작은 불단뿐. 이곳을 방문한 첫 한국인일 거라는 가이드의 위로 섞인 칭찬이 동굴 안으로 조용히 맴돌았다. 

어차피 곧 바스러져 버릴 줄 알면서 향에 불을 붙였다. 누가 뒤를 잇지 않는다면 그대로 마지막일 것이다. 오후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으니 그날은 끝났다. 겨우 이 정도의 온기로 쓸쓸함을 지울 순 없을 것인데. 역으로 그것은 초대였을지 모른다. 초대에 응한 덕분에 반 롱의 비밀스러운 곳에 닿았으니. 
 
그러나 선물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서둘러 길을 내려오는 동안 알 수 없는 꽃 향기가 먹먹하게 짙어졌다. 때를 잘못 맞춰 피어난 자몽꽃이었으리라. 그대로 떠났다면 닌빈의 퍼퓸 파고다를 상상만 해야 했을 우리에게 힌트를 준 것이었다. 몰래 핀 꽃나무에도 홀리고 말았으니, 봄이 오면 분명 다시 생각날 것이다. 
 
▶travel info

ACTIVITY
향기가 나를 부르네
퍼퓸 파고다 투어(Perfume Pagoda Tour)

닌빈의 흐엉 틱 산의 주요 파고다를 둘러볼 수 있다. 통상 퍼퓸 파고다의 중심 사원으로 일컬어지는 티엔 쥬 파고다, 흐엉 틱 동굴을 중심으로 다양한 루트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자몽꽃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2월부터 3개월 동안에 찾아간다면 퍼퓸 파고다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격은 여행사마다 다르지만, 일일투어로 USD30~40(한화 약 3만5,000원~4만5,000원) 선이다. 일부 사원은 민소매 상의, 짧은 치마는 입장이 불가능하므로 복장에 유의하자. 
 
 
글 차민경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노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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