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구마모토의 아날로그 일상

트래비기자     작성일제300호(2017.02) 댓글0건
되돌아간 것은 계절만이 아니었다. 낯선 그곳에는 익숙한, 어쩌면 그리운, 한편으로는 내가 겪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알 것만 같은 애틋한 시간들이 자박자박했다. 오래된 시간의 태가 나는 그곳, 구마모토에서. 
 
 
나무 나이테처럼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극장 덴키칸
비가 내리는 궂은 날이지만 또 그대로 운치가 있는 스이젠지 정원
구마모토 거리거리에 덜컹이는 소리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노면전차
 
 
●무너진 성벽에도 견고한 시간들
 
저마다 ‘그곳’에 대한 기억과 잔상은 다르겠지만 구마모토(熊本)에 관해서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규슈 여행에서 주요한 경유지 중 하나, 여전히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 아소산(阿蘇山) 가까이, 온천 여행하기 참 좋은, 탄탄한 구마모토성(熊本城)이 멋스러운 동네.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단편적인 조각들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대부분이 불가능해진 때에 구마모토에 닿았다. 지난해 9월 분화 발생으로 4km 반경에 출입이 금지된 아소산과 올해 4월에 일어난 연쇄지진으로 천수각과 성곽 등 상당 부분이 무너져 버린 구마모토성.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할까, 비가 추적이는 가운데 잠시 멍하니 서서 방문객을 허락하지 않은 구마모토성에 물었다.

현청 소재지이지만 그리 붐빈다는 느낌이 없었던 구마모토 시내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노면전차다. 노면전차나 트램이나 말뜻은 같은데 유럽의 구시가를 촘촘히 연결하는 트램과 일본의 노면전차는 역시나 기분이 다르다. 아마도 일본과 뒤엉켰던 지난 시간의 잔상들 때문이겠지. “오라이~”를 외치진 않지만 그때 그 시절 버스안내양의 역할을 하는 안내원이 동승하는, 한 량 길어야 두 량짜리 노면전차를 타고 레일 위를 같이 덜컹거려 본다. 전차를 직접적으로 겪어 본 세대가 아님에도 여러 감정들이 되새김질되는 것이 신기하다.

구마모토의 성벽은 얼마간 무너져 내렸지만 축적된 시간만큼은 여전히 견고한 듯 보인다. 극장 덴키칸(電気館)만 해도 그렇다. 1914년 현재의 자리에 문을 연 이 극장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아니다. 상영 영화와 상영 스케줄을 칠판에 분필로 적어 내고, 영화 시작 전 매표소 옆 카페에서 주문을 하면 사이펀으로 추출한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자리까지 가져다준다. 어쩐지 조심조심 걸어야 할 것만 같은 칠 벗겨진 나무 바닥까지, 곳곳의 자연스러운 기운에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게 된다.  
 
 
덴키칸(電気館)
주소: 2F, 8-2 Shinshigai, Chuo Ward, Kumamoto, Kumamoto Prefecture 860-0803, Japan
전화: +81 96 352 2121
 
 
오카다 커피와 시그니처 케이크. 카페보다는 다방이라 부르고 싶다
직접 기른 아소의 사과로 달콤한 디저트류를 선보이는 카페 링고노키
대형 선박을 형상화해 안팎을 단장한 이탈리안 다이닝 자르디노
 

●과하지 않아 더욱 충분한 
 
가깝거나 멀거나, 마음먹는다고 어디로든 막상 떠나기가 어디 그리 쉽던가. 때문에 여행길에서는 전에는 못 보았던, 또는 다시없을 순간들을 기대하곤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들에 조금씩 부대끼게 되더라. 하루하루 이렇다 하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게 별일 없이 지내기 위해 얼마나 진을 빼고 있던가. 관찰자이자 방랑객으로 찾아든 딴 세상에서의 일상적 시간들이 재밌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마모토에서 ‘트렌디’하다고 손꼽는 곳들 하나하나는 이른바 ‘모던’하고 ‘시크’하고 ‘쿨’한 표현들과는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곳 가운데 하나인 카페 링고노키(茶菓房 林檎の樹)는 아소 일대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집안사람들이 자신들이 키운 사과를 주재료로 다양한 디저트 레시피를 선보이는 곳이다. 우리로 치면 전통찻집 같은 토속적인 분위기와 묘하게 닮았다. 이탈리안 다이닝 자르디노(GIARDINO) 역시나 조금은 투박해 보일 수 있는 경양식 레스토랑의 차림이다. 이곳에선 아소에서 무농약으로 재배되는 좋은 식재료들로 건강한 식탁을 차려 낸다. 두 손을 모아 한쪽 뺨 아래에 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만 싶은 분위기다.   

1945년에 문을 열어 60년이 넘게 커피를 볶고 갈아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고 있는 곳도 있다. 오카다 커피(岡田珈琲)에서는 팥죽 색깔의 가죽 소파와 담배 재떨이가 하나의 프레임 안에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손님이 달랑 한 명이라도 온 순서에 맞게 너른 좌석으로 안내해 주는 모습만 봐도 이곳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주문과 동시에 내리는 커피의 풍미는 두말 할 것이 없고, 일본의 동네 카페에서 으레 맛볼 수 있는 카레 메뉴도 있다. 시킬까 말까, 분명 맛있을 텐데, 짧은 시간 동안 햄릿급 고민을 하는 것도 오래된 카페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다.
 
링고노키茶菓房 林檎の樹
주소: 6-2 Shinshigai, Chūō-ku, Kumamoto-shi, Kumamoto-ken 860-0803, Japan
오픈: 11:30~24:00
전화: +81 96 352 7787
 
자르디노(GIARDINO)
주소: 13-10 Hanabatachō, Chūō-ku, Kumamoto-shi, Kumamoto-ken 860-0806, Japan
오픈: 11:30~03:00
전화: +81 96 322 3100
 
오카다 커피(岡田珈琲)
주소: 1−20, Kamitoricho, Chuo Ward, Kumamoto, Kumamoto Prefecture, 860-0845, Japan
오픈: 10:00~21:00  
전화: +81 96 356 2755  
 
야마가의 오래된 카페 라라라에서는 이따금 소박한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겨울 초입이지만 가을 느낌이 물씬했던 야마가 온천 세이류소의 노천탕
 
●별밤에 들려온 따스한 목소리

구마모토 시내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의 야마가(山鹿)의 하늘은 한결 너르다.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료칸에서 묵는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느긋해진다. 다다미 깔린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유카타로 갈아입었다. 가이세키 요리를 느긋하게 즐긴 다음 온천에 몸을 담갔다. 분명 겨울날인데 이곳에는 여전히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진다. 목을 빼고 들어앉은 노천탕에서 새삼 다른 공기를 숨 쉬고 있음을 실감했다. 

유카타 차림 그대로 종종걸음으로 밤길을 나섰다. 온천 여행에서 누려 마땅한 즐거움이다. 총총한 별과 환한 가로등, 아주 이따금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불빛들을 가로지르는 조용한 골목을 걷다가 어느 유리창 너머를 기웃거렸다. 불 켜진 집이 드문 골목에서 동네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나 싶을 만큼 가게 안은 사람들로 오밀조밀했다. 낯선 아티스트였지만 그의 기타 연주와 목소리, 그에게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오늘을 참 기다리고 또 기대하고 있었구나. 100년 된 목조 가옥에 자리한 라라라 카페(ラララ♪カフェ)의 풍경이다.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고개를 살랑살랑 흔드는 이도, 멀리서 부러 찾아왔다는 열혈 팬도,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나도 그렇게 하나로 어울린다. 

동네 청년의 갑작스런 안내를 따라 꽤 근사한 선술집 엔야(ENYA)로 향했다. 딱 문 앞까지만 안내하는 청년의 배려와 절제에 마음이 가뿐해졌다. 가게 앞에 세워 둔 자전거 몇 대를 보니, 동네 젊은 친구들이 좋아라 하는 곳인가 보다 싶다. 트인 공간이지만 테이블마다 나무 발을 내려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는 내부 인테리어 또한 마음에 든다. 여기저기서 낯선 목소리들이 이토록 따뜻할 수 있다니, 차가운 밤도 기꺼이 넘어간다.
 
라라라 카페 (ラララ♪カフェ)
주소: 1807-1 Yamaga, Yamaga-shi, Kumamoto-ken 861-0501, Japan
오픈: 11:30~17:00(디너는 예약제), 화~수요일 휴무
전화: +81 90 8403 1382
 
엔야 (ENYA)
주소: 1630-1 Yamaga, Yamaga-shi, Kumamoto-ken 861-0501, Japan
오픈: 18:00~03:00
전화: +81 968 43 0320
 
주문과 동시에 숙성된 도우를 밀어 화덕에 바로 구워 내는 츠루바라 피자가게
인도에서 공수한 리본들과 이국적인 소품들로 가득했던 야마가의 리본가게
커피콩 볶는 타오가배에서는 커피는 물론 애플파이를 꼭 맛보아야 한다

●자박자박 걷기 좋은 날에

날 밝은 야마가는 더없이 산책하기 좋았다. 어젯밤 밤마실 삼아 걸었던 길을 다시 걸었다. 양조장, 쌀 곳간, 가부키 극장 등 도시가 번성했던 17~18세기 에도시대 거리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을 여기에선 부젠카이도(豊前街道)라고 했다. 단체 관광객이 모여드는 점심 무렵이 아니면 그리 북적일 일 없는 거리, 자박자박 뒷짐 지고 걷기 좋은 고풍스런 길이다. 흔적만이 남은 지금, 과거의 번영이 오히려 더 짐작이 간다면 모순된 걸까?

야마가는 행정구역상 ‘시市’에 해당하지만 ‘마을’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렸다. 학교 운동회와 논밭을 둘러보는 어르신 등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한쪽 벽을 장식한 메트로 카페(Metro Cafe)가 그러했고, 동네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커피집 타오가배(自家焙煎 タオ珈琲)의 문턱이 그러했다. 카페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한 끼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더 익숙하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당연하게 느껴졌던 야마가의 구석구석. 커피 몇 잔에 참 흐뭇한 기억을 얻었다.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앉아 참방참방, 시간은 빠듯한데 게으름을 피우는 걸 보니 여행의 끝에 다다랐나 보다. 일상으로 되돌아가면 마치 내가 살았던 곳인 마냥 한껏 신이 나서 이곳 이야기를 쏟아 내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메트로 카페(Metro cafe)
주소: 1392 Yamaga, Kumamoto Prefecture 861-0501, Japan
오픈: 월·목·일요일 11:30~18:00, 금~토요일 11:30~22:00, 화~수요일 휴무
전화: +81 968 43 0874
 
타오가배 (自家焙煎 タオ珈琲)
주소:  1465 Yamaga, Kumamoto Prefecture 861-0501, Japan
전화: +81 968 44 8558
 

▶travel info
 
TRANSPORTATION
인천에서 구마모토 직항이 있지만 후쿠오카 공항을 이용, 후쿠오카 시내에서 구마모토까지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카타역(博多駅)에서 JR 신칸센(新幹線) 열차를 타면 구마모토까지 40분 정도 소요되는데, 열차는 북규슈 레일패스나 산큐 패스를 이용하면 저렴하다. 텐진역(天神駅)에서 버스를 타면 구마모토까지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COSTUME
오늘은 일본 여인처럼
기모노 & 유카타 체험

정원 입구 상점가에 위치한 렌탈 숍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 전통 복식인 기모노 또는 유카타를 제대로 갖춰 입고 스이젠지(水前寺成趣園)를 둘러볼 수 있다. 보유하고 있는 기모노가 100종이 넘으니 선택의 폭도 넓다. 정원 입장료는 물론 기념사진 촬영, 부가세까지 포함한 비용이 2,160엔. 당일 이용 시간 제약이 없고, 다음날 반납도 가능하다. 
주소: 3-7-24 Minamikumamoto, Kumamoto 862-0812, Japan  
전화: +81 96 362 6439
 

TRAM
추억을 타 볼까
구마모토 노면전차  

원데이패스를 이용하면 하루 동안 노면전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패스는 구마모토 역사 내 관광안내소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한국어 표지판과 안내서가 잘 구비되어 있어 이용하기가 수월하다. 요금은 500엔. 
 

EVENT
세상에 이런 깜찍한 공무원이
쿠마몽 스퀘어(くまモンスクエア)

구마모토 곳곳에 있는 검은 곰돌이 캐릭터의 정체는 바로 구마모토현의 공식 캐릭터 ‘쿠마몽(くまモン)’.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일본의 국민 캐릭터로 통한다. 그중 단연 인기 있는 건 실제 사람이 쿠마몽 인형 옷을 입고 활동하는 ‘쿠마몽 부장님’이다. 그의 집무실과 기념품 숍이 있는 쿠마몽 스퀘어에는 사람들이 늘 북적인다. 
주소: 1F, Tetoria Kumamoto Building, 8-2 Tetorihoncho, Chuo-ku, Kumamoto City 860-0808, Japan
오픈: 10:00~19:00
전화: +81 96 327 9066
홈페이지: www.kumamon-sq.jp
 

ACCOMMODATION
쌓인 피로를 풀기에 그만
수퍼 호텔 로하스 구마모토 테넨 온센(スーパーホテル Lohas 熊本天然温泉)

대부분 구마모토의 온천들이 도심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가운데, 중심가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호텔 중 하나다. 욕탕의 규모는 아담하고 작지만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는 충분하다. 
주소: 1-30-1 Uoya-machi, Kumamoto 860-0031, Japan
요금: 싱글 룸 기준 1박 5,980엔(부가세 포함)
체크인 15:00~23:00, 체크아웃 10:00, 스파 이용 15:00~09:30
전화:+81 96 351 9000
 

키쿠치 강변 100년 전통의 료칸 
야마가 온천 세이류소(山鹿温泉 清流荘)

잔잔하게 흐르는 키쿠치강을 마주보고 있는 이곳은 원래 간사이(關西)로 쌀을 실어 나르던 선착장이 있던 자리다. 1910년 료칸이 들어선 이래로 야마가 온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객실은 일반 화실과 양화실로 구분되는데, 양화실의 경우 객실에 별도의 노천탕이 구비되어 있고, 식사도 정원이 내다보이는 별도 공간에서 즐길 수 있다. 대욕장과 노천탕, 족탕은 모든 투숙객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석식은 매일 조금씩 메뉴가 달라지는데 말 육회를 포함해 지역 특색을 살린 가이세키 요리를 선보인다.
주소: 1768 Yamaga, Yamaga-shi, Kumamoto Prefecture 861-0501, Japan
요금: 2인 1실 기준 1인 1만5,000엔부터 
오픈: 노천탕 이용 06:00~10:00, 15:00~24:00 
전화: +81 968 43 2101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에디터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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