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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저승을 다녀오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7.02.0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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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강 삼협 크루즈 여행②펑두 귀성 & 백제성
 
●저승을 다녀오다
 
새벽 5시50분. 모닝콜이 울렸다. 배 위에서 보내는 밤은 꽤나 쾌적하다. 발코니로 나가 보니 어둠 속에서도 물안개가 자욱했다. 이 지역은 1년 365일 중에 햇살을 볼 수 있는 날이 80일에 불과하다. 그만큼 볕이 귀한 동네다. 크루즈의 일정은 대체로 오전 관광과 오후 관광으로 나뉜다. 어둠을 뒤로 밀어내며 달려온 배가 기항지에 머리를 대면 육지 관광을 시작한다. 
 
귀성은 저승세계다. 중국인들이 살아생전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하는 곳인데, 이곳에 한 번 들르면 81세까지 장수할 수 있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귀성에서는 죽음 이후에 대한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첫 번째 기항지는 펑두(酆都)의 귀성(鬼城)이었다. 배가 아직 육지에 닿기도 전에 발코니 창밖 저 멀리로 산머리 위에 높이만 몇십 미터는 족히 넘을 거대한 얼굴상이 보인다. 귀신들의 성, ‘귀성’이라는 이름을 떠올리지 않아도 이미 그로테스크한 그 모습만으로 이곳이 범상치 않은 관광지임을 짐작케 한다. 거기에 귀신들의 땅이라는 이름까지 덧붙이면 심장 약한 사람은 좀처럼 발걸음을 옮기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이곳은 살아생전 꼭 한 번은 가 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이곳을 한 번 다녀가면 81세까지 산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설을 뒷받침하는 이유도 재미있다. 9×9=81이기 때문이라는 건데, 중국어로 숫자 9는 오래될 구(久)와 동음이의어(지우, Jiu)다.

귀성은 ‘중국 신곡(神曲)의 고향’이라고 불린다.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내용인 단테의 신곡에 빗댄 표현이다. 귀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실감나게 만들어 놓은 인물상이 있다. ‘백무상’이라는 이름의 저승사자다. 저승사자가 여행객을 반기는 관광지는 세상에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귀성이라는 곳은 예부터 유명했던 곳이다. 산 하나가 통으로 저승세계다. 때문에 천상의 옥황상제부터 염라대왕, 동·서 지옥도까지 중국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이색적인 곳이다. 중국의 세계관은 도교사상에 그 뿌리를 둔다. 그 위에 불교와 유교의 세계관이 덧칠해져 있다. 중국의 중화사상이라는 게 무릇 그런 식이다. 불교의 석가모니와 미륵보살과 아미타부처가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을 이웃하고 있는 풍경. 속을 따져 보면 결코 이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종교가 이 땅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게 얽혀 있다.

중국의 세계관은 역시 권선징악이다. 귀성으로 향하는 출입문을 지키고 선 ‘백무상’이라는 저승사자의 역할은 생전에 착한 일을 한 사람들을 거두어 가는 일이다. 못된 사람을 거두는 것은 ‘흑무상’이라는 저승사자의 역할이다. 얼마나 무섭게 생겼는지 죽음의 순간부터 비명을 내지를 법한 인상이다. 흑무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고소한 생각도 든다. 이 역시 민중들을 위한 사상적 장치이리라.

귀성을 돌아보는 코스는 비교적 단순하다. 백무상이 지키고 선 귀성의 입구를 지나 산을 오르면서 여러 개의 전각에 모셔진 저승세계의 인물들을 관람하는 식이다. 코스의 정상에 있는 누각은 염라대왕의 공간이다. 염라대왕의 곁으로 사신들이 도열해 있으며 그 뒷벽 너머는 동편과 서편의 지옥이다. 죄에 따른 형벌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귀성에서 아쉬운 점은, 멀리 배에서도 보이는 옥황상제의 공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이미 모든 공사를 끝마쳤음에도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관광객의 진입이 금지돼 있다.
 
 
▶tip
누가 쇠구슬을 올려 보겠는가? 
펑두 귀성을 구경하다 보면 한쪽의 작은 누각 아래 볼링공만 한 반원의 쇠구슬이 놓여 있다. 원형으로 넓은 홈이 파여져 있고 가운데에는 뿔이 솟아 있는데, 쇠구슬을 그 뿔 위에 올리도록 시켜보면 남편이 바람이 났는지 알 수 있다고. 저걸 누가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중국인이 달려왔다. 그는 거침없이 원형 홈을 따라 쇠구슬을 굴렸다. 그리곤 이내 그 힘을 이용해서 뿔 위에 쇠구슬을 올린다. 중국에서 불가능은 없다. 참고로 그 쇠구슬의 무게는 50관, 그러니까 대략 185kg이다. 
 
펑두 귀성의 유래
펑두 귀성은 본래 이름이 ‘평도산(平都山)’이다. 한나라 때 인물인 음장생(陰長生)과 왕방평(王方平)이 이곳에 머물면서 신선이 되기 위해 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 둘은 훗날 도를 성취해 유명한 신선이 되었다고도 한다. 둘의 성을 합치면 음왕(陰王)이다. 중국에서 음왕은 저승의 왕을 의미한다고. 그 뒤로 이곳은 저승세계로 묘사되었고, 중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저승의 땅이 되었다.
 

백제성에는 온갖 대문호들과 영웅들이 찾아들어 때로 시를 남기기도 하고, 자신의 친필을 남기기도 했다
백제성 초입에는 거대한 제갈공명의 동상이 지키고 서 있다
백제성의 끝자락 ‘기문’에 다다르면, 세 개의 협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나게 된다. 구당협의 초입인 이곳은 중국을 대표하는 풍경 중 하나다. 10위안 지폐의 뒷면에 이 풍경이 그려져 있을 정도다
 
 
●유비의 최후를 간직한 성 
백제성

배 안의 모든 여행객들이 가장 기다리는 곳은 역시 백제성(白帝城)이다. 이곳은 유비가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촉(蜀)의 유비는 오吳를 토벌하기 위해 손수 원정에 나섰다. 관우가 죽고, 장비 역시 토벌 준비 과정에서 수하에게 살해당한 뒤였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유비는 청두에 남아 있던 제갈량을 기다릴 새도 없이 전장으로 나아갔고, 최고의 요충지라 판단했던 곳에서 화공에 휩싸여 대패하고 만다. 이 전투는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패퇴한 유비가 몸을 숨긴 곳은 장강 유역의 백제성이었다. 백제성은 천혜의 요새다. 왕망 때 이 땅에 있는 우물에서 하얀 용이 나오는 것을 본 공손술이 한(漢)의 기운이 자신에게 이어졌다며 스스로를 백제(白帝)라 칭하고 성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유비의 패전을 완성하기 위해 육손은 백제성을 향해 군사를 몰았다. 하지만 이내 제갈량이 미리 준비해 둔 팔진도에 갇혀 버렸다. 육손을 물리친 제갈량이 뒤늦게 백제성에 당도했지만, 유비는 수치스럽고 분한 나머지 병에 걸려 기력이 다해 가고 있었다. 유비는 이곳에서 제갈량에게 뒷일과 함께 자신의 대를 이을 유선 형제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바로 이 장면이 탁고당에 그대로 재현돼 있다. 

영웅들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자리에는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수많은 영웅들이 이곳을 찾았고 두보, 이백, 소동파와 같은 대문호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마치 영웅들을 향한 순례와도 같은 행렬이다. 근현대 중국사를 수놓은 인물들도 빠지지 않고 백제성을 찾았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장쩌민은 각각 자기들만의 필체로 대문호들의 시를 옮겨 벽에 새겨 두었다. 글씨마다 그네들의 성품이 그대로 묻었다. 마침 그들의 필체가 마주보고 선 자리가 삼협의 시작점인 구당협(瞿塘峽)의 입구다. 영웅들은 사라져갔지만 그들의 기세는 깎아지른 거대한 협곡에 그대로 깃들어 있다.
 
 
▶travel info
 
WEATHER
장강 삼협 크루즈가 지나다니는 충칭과 이창 일대는 중국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쪽 지형은 거대한 분지와 같다. 따라서 북서풍이 티베트 고원의 거대한 산맥에 막혀 겨울에도 생각보다 기온이 따뜻한 편이다. 겨울철에는 5~15℃ 정도로 선선하다. 반면 여름에는 푹푹 찌는 더위가 이어진다. 습도도 높은 편이어서 땀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곤혹스러울 수 있다.
 
글·사진 Travie writer 정태겸  에디터 고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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