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규슈올레] 미나미 시마바라, 푸른 바다에 눈은 시원 시골 풍경에 마음은 포근

트래비기자     작성일제302호(2017.04) 댓글0건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알지?
17코스에는 프로방스도 있고 앙코르와트도 있어.
게다가 제주 12코스의 수월봉과 10코스 바당올레도 있다니까.”

믿지 않았다. 아무리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를 좋아해도 그렇지, 이건 좀 곤란하지 싶었다. 그러나 다 걷고 나서 알았다. 올레를 좋아하는 그녀가 왜 옥타브를 높여 이야기했는지. 
 
푸른 바다와 소담한 시골 풍경을 함께 만날 수 있는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
 
 
비가 온다던 예보는 빗나갔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파란 하늘은 더 없이 높았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호토모토에서 산 카레 도시락과 물 한 병을 배낭에 넣고 규슈올레 17코스 시작점인 구치노츠 공원으로 향했다. 

규슈올레는 일 년에 두 번, 올레꾼이 함께 걷는 이벤트를 벌이는데 오늘은 17코스인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의 첫 번째 이벤트 날이었다. 이름하여 ‘핑크빛 미나미 시마바라 올레’. 이번 이벤트의 드레스코드는 분홍. 준비운동 중인 벚꽃 대신, 올레꾼들이 핑크빛이 되었다. 분홍빛 티셔츠를 맞춰 입고 온 동호인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분홍색으로 치장한 올레꾼, 장갑과 모자만 핑크로 연결한 센스만점 젊은이까지 ‘분홍’ 뽐내기 대회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분홍으로 몸을 치장하지 않은 이들도 마음속에 분홍빛 설렘을 안고 출발지로 속속 모여들었다. ‘길은 원래 혼자 걷는 거야’라고 말하던 나도, 분홍 안에 젖어 있으니 덩달아 신바람이 났다. 규슈올레에서 판매하는 분홍빛 문양의 간세 한 마리를 사서 가방에 달고, 사람들과 함께 올레 시작점에 섰다. 
 
규슈올레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미스터 규슈올레’라는 별명을 갖게 된 마사노리 쿠수다씨의 배낭. 가운데 있는 빨간색 배지는 규슈올레 완주자만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것으로, 마사노리 쿠수다씨는 두 번이나 규슈올레를 완주했다
본격적으로 걷기 전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올레꾼들
 
일본에서 보니 더 반가운 올레 화살표
다산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갓파상
 

분홍색 올레꾼들과 함께 출발

“렛츠 오르레Let’s Olle!”
오른 손을 번쩍 들고 우렁찬 목소리로 합창하며 출발. 아이 손을 잡은 아빠, 갓난아이를 업은 엄마, 배낭에 올레 배지를 잔뜩 단 아저씨, 한 팔에 애완견을 안은 아주머니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에서 가장 먼저 만난 길은 항구마을 사이로 난 길이었다. 미나미 시마바라는 450여 년 전 스페인, 포르투갈과 활발하게 물자를 주고 받았던 항구도시. 올레 시작점에 일본인처럼 보이지 않는 베이가 선장이 우뚝 서 있어 이유가 궁금했는데, 미나미 시마바라가 무역을 했던 중요한 항구도시였기 때문이었다. 베이가 선장은 1567년 구치노츠에 닻을 내린 사람을 캐릭터화한 것으로, 미나미 시마바라의 역사를 감지하게 해줬다. 

마을은 아담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갈색 병이 가득 꼽혀 있는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보리소주가 유명하다는 구보타 양조장이었다. 미나미 시마바라는 물이 좋아 양조장이 많다던 안내문이 생각났다.  
소담한 마을길을 지나니 귀여운 갓파상이 나타났다. 갓파는 바가지를 뒤집어쓴 상상의 동물로, 자그마한 갓파 인형은 인기 있는 여행기념품 중 하나다. 그런데 이곳의 갓파는 뭔가 좀 달랐다.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다산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갓파를 지나니 반가운 올레 화살표가 나타났다. 빨갛고 파란 색의 올레 화살표. 화살표를 따라가니 항구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이 나타나고, 그 뒤로 초록이 이어졌다. 마을도 좋지만, 역시 올레는 자연과 가까운 것이 더 매력이다. 기분 좋게 숲 속으로 들어갔다. 
 
평화로운 시골풍경을 따라 걷는 사람들. 평화를 기원하는 퍼포먼스처럼 보인다
통통한 양파가 가득 담겨 있다
 

‘바다와 밭,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다

싱그러운 초록을 느끼며 걷다 보니, 더 없이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 펼쳐졌다. 바둑판처럼 나뉘어 있는 밭에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은 멋진 패브릭 패턴을 보는 듯했다. 앞에는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 그 뒤로는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가 병풍처럼 멋지게 펼쳐져 있었다. 밀레의 명화 한 폭을 앞에 둔 기분이었다. 농담이라 웃어넘겼던 ‘프로방스’ 같다던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동글동글 귀여운 양배추, 올망졸망 통통한 양파는 시골 정취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밭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걸었다. 그러다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라면 절대 보지 못했을 풍경이었다. 인공저수지인 노다제방을 지나 노로시야마를 오르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행위 예술가들의 퍼포먼스 같았다. 자연과 더불어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작업 같다고나 할까. 순천만 국가정원에 있는 순천호수정원이 떠올랐다. 산과 호수가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형태로 만든 정원. 원을 그리며 길을 따라 봉화언덕에 오르던 사람들을 봤을 때의 충만한 그 느낌이 겹쳐졌다. 

찬찬히 걷는 사람들의 행렬을 한참 쳐다보다 다음 걸음을 내디뎠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자그마한 저수지. 저수지 이름은 노다제방으로, 부족했던 물을 얻기 위해 16세기 후반 노다 신자에몬이라는 사람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는 인공 저수지다. 

노다제방을 지나니, 해발 90m의 노로시야마가 나타났다. 산은 야트막했지만, 이곳에서 본 풍광은 여느 전망대에서 보는 것보다 시원했다. 산 아래는 푸른 바다가 넘실거렸고 바다 건너편으로 아마쿠사섬의 전경이 들어왔다.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함께 걷던 친구들과 여기저기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뛰어다녔다. 

지도에는 ‘환상의 노무키 소나무’라고 적혀 있어 이리저리 찾아보았건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전망 좋은 이곳에 크고 오래된 소나무가 있어 동네 사람들이 ‘환상의 노무키 소나무’라고 부르며 아꼈다는데, 지금은 송충이 피해를 입어 사라졌단다. 한때 노구치 우죠라는 시인이 이곳을 여행하며 ‘노무키의 한 그루 소나무, 그루터기는 여기에 가지는 번창하여 아마쿠사로’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유명했단다. 아쉬웠지만 봄을 기다리는 수밖에. 지금은 소나무 대신 벚꽃이 심어져, 본격적인 봄이 되면 분홍빛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는 용나무. 나무 가운데 얼굴을 내밀고 기념사진을 찍어보자
 

소담한 시골풍경 속 거대한 용나무

노로시야마에서 내려오니 평탄한 길이 펼쳐진다. 소담한 민가 마을이 나오는데, 가운데 미나비 시마바라 코스에 있는 유일한 상점인 고다마 상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시지와 달달한 과자로 배낭을 충전하고 다시 출발. 시골 마을과 숲, 산을 지나니 황홀한 바닷길이 펼쳐졌다. 걷는 내내 오른쪽으로 은빛 바다가 넘실거렸다. 푸른 바다는 햇살을 받아 더 없이 반짝였다. 혼자 걸을 때는 생각에 잠길 수 있어 좋았고, 함께할 때는 즐거움이 배가 되어 좋았다. 걷다 보니 하얀 등대가 나타났다. 세즈메자키 등대다. 이곳은 아리아케해 입구에 위치해 물살이 무척 빨랐다. 배들이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서는 등대가 꼭 필요할 것 같았다. 웅장한 바다를 가르는 소용돌이는 물살의 힘을 감지하게 했다. 

등대 입구에 놓여 있는 간세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다시 발걸음을 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가운 한글이 눈에 뜨였다. 쉼터였다. 편의시설이 부족한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를 걷는 올레꾼을 위해 현지인이 자신의 집을 무료로 내준 것이었다. 안에는 화장실뿐만 아니라 지도와 안내문, 따뜻한 아랫목과 시원한 생수까지 꼭 필요한 것은 다 있었다. 

누군가를 반가워한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준다는 것,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 일인가 새삼스럽게 절감했다. 바다와 숲도 아름다웠지만,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어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가 더 정겹게 다가왔다. 

쉼터에 있던 달달한 흑설탕과자를 입에 넣고 걷다 보니, 용나무가 나타났다. 뿌리가 어찌나 굵은지. 한번 나무에 붙잡히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남방계 뽕나무과에 속하는 용나무는 줄기가 두껍고 키가 컸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안에서 본 거대한 나무가 생각났다. 엄청난 생명력으로 유적들 사이를 뚫고 나오는 나무들. 그제야 ‘이곳에 앙코르와트도 있어’라는 말이 생각나 무릎을 쳤다.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의 길들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독특한 자연석으로 이어진 바당올레
 

독특한 바위가 펼쳐져 있는 바닷길

화창한 봄날 재잘거리는 참새들처럼 사람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다시 길을 나섰다. 널찍한 바윗길이 이어지는 바당 올레를 걸을 차례였다. 그런데 앞에서 분홍색 깃발을 들고 누군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커피 한잔 맛보고 가라고 했다. 시골주택을 개조해서 카페를 만든 젊은 부부가 올레꾼을 위해 원두커피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커피와 함께 이야기 꽃도 펼쳐졌다. 입 안에 커피 향을 가득 안고 나오니, 밖에서는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매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핑크빛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의 절정, 시간이 흐르는 것이 이렇게 아까울 줄이야. 

매화를 뒤로하고 바다로 넘어갔다. 널찍한 바위들이 기묘한 모습을 하고 이어져 있었다. 시마바라 반도는 일본에서 첫 번째로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제주의 현무암처럼 독특한 자연석들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한걸음씩 걷고 나니, 이번에는 드넓은 감자밭이 올레꾼을 맞이했다. 날씨가 따뜻해 1년에 세 번이나 수확한다는 감자. 감자 꽃이 하얗게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만 해도 황홀했다.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구치노츠 등대. 구치노츠항을 오가는 배들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1880년 첫 불을 켰다고 했다. 구치노츠 등대에서 나오는 빛을 보고 길을 잡았을 수 수많은 배들을 생각하니,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구치노츠 등대 앞에서 눈을 몇 번이나 깜박여야 했다. 등대 앞에 서 있는 간세에 17코스 종착지까지 0.5km 남았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도착이라니. 벌써 10km를 걸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문득 세상일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즐겁게, 행복하게 걷다 보면 시간도 거리도 잊게 되는 것.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의 아름다움과 함께 같이 걸은 친구들 덕분에 10.5km가 5km도 안 되게 느껴졌다는 것. 종착지인 구치노츠항까지 남은 0.5km를 걸으며 생각했다. 멋진 세상,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더 신나게 살아 봐야겠다고.  
 

▶tip
① 코스 종착지에 구치노츠 역사 민속 자료관이 있다. 메이지 32년1878년 나가사키 세관 구치노츠 지청으로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많은 역사적 유산을 전시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②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 중간에는 음식을 사 먹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도시락과 음료를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면 출발지 부근에 있는 도시락 전문점 호토모토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③ 미나미 시마바라는 일본 가톨릭 포교의 전진기지로,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다. 가톨릭 신자라면, 역사의 흔적을 쫓아 여행하는 것도 좋은 테마가 될 것이다. 

시라하마 비치 호텔
온천이 있어, 걷고 난 후 편안하게 쉬기 좋다. 시라하마 비치 호텔은 호텔 앞에 소나무가 우거진 전용 백사장도 있다. 17코스 출발점인 구치노츠항까지는 자동차로 5분 거리. 
주소: 2829-1 Kuchinotsuchoko, Minamishimabara, Nagasaki, Japan
전화: + 81 957 86 3030 
홈페이지: http://s-b-h.jp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 | 17코스 10.5km, 소요시간 3~4시간 난이도 中
전화: 미나미 시마바라시 상공관광과 050 3381 5032
찾아가기: 후쿠오카공항이나 하카타항에서 JR 하카타역 ‘특급카모메’를 타고 JR 이사하야역에서 내린 후, 구치노츠항 방향 시마테츠 버스를 탄다. 또는 후쿠오카공항이나 하카타항에서 미나미 시마바라시까지 가는 버스를 탄다.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30분.
 
글·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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