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규슈올레] 후쿠오카현 미야마·기요미즈야마, 대숲 사이로 돌마다 사연이

천소현기자     작성일제302호(2017.04) 댓글0건
지난밤 가고시마에서 올라와 후쿠오카현(福岡県)의 노천온천에서 하룻밤을 보냈지만 뻐근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샤론 파스. 일본에 오면 꼭 사야 한다는 이 명함 크기의 파스를 발바닥에 붙이고 나니 시원한 느낌이 정강이까지 전해져 왔다. 19번째 규슈올레인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는 후쿠오카현 남부의 미야마시(みやま市)와 기요미즈야마를 아우르는 코스다. 코스 이름에 아예 산이 포함되어 있으니 단단한 각오도 준비물로 배낭에 챙겨 넣었다. 
 
마을에서 조야마삼림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왕대나무가 촘촘한 숲길이다. 시작 웅장하고 오묘하다
미야마 마을의 논들판 사이를 지나가는 자전거를 탄 농부와 그 너머 신칸센 철도길
 
돌 하나도 예사롭지 않았다

출발점은 하치라쿠카이(八楽会) 교단 옆 공터였다. 아버지가 신내림을 받아 만든 신흥교단이라니 어딘가 낯설고 조심스러운데, 교단 가족들이 총출동해 올레꾼들을 환영해주는 모습에 경계심이 녹아 버렸다. 교단 정원을 서슴없이 통과해 올레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처질 것을 우려해 선두 그룹을 쫓았더니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 조야마 입구에 도착했다.

산길로 접어드니 갑자기 길이 좁아지면서 정체가 시작됐다. 행진은커녕 줄을 서서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 정체가 전혀 싫지 않았다. 푸른 대나무 숲으로 들어와 버린 이유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굵고 긴 왕대나무가 그 끝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그 사이로 갈라져 내려온 아침 햇빛이 뺨에 잠시 머물렀다 발등 위로 떨어지곤 했다.

여기서 종일 머물러도 좋겠다 싶지만 길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 쉬운 코스를 선택한 사람들이 평탄한 우회로로 빠지고 나자 행렬에 숨이 트이기 시작했다. 우회로를 두고 살짝 망설임이 없진 않았지만, 눈을 딱 감고 올라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엔 충분한 사례가 있었다. 가장 먼저 찾아온 보답은 6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야마우치고분군(山内古墳群)이었다. 석실구조의 무덤들이 모두 지코쿠평야를 향해 서북서 방향으로 열려 있다는 것 외에는 별로 알려진 사실이 없다. 무덤을 지나 정상의 전망대에 올라가면 죽은 자들도 보고 싶어했던 그 평야와 아리아케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기분은 죽을 것 같았지만 어쨌든 아직은 살아 있어 특권을 누린다. 

알고 보면 조야마사적삼림공원(女山史跡森林公園) 일대는 일본 선사시대의 고분과 산성터가 있어서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대나무숲의 광경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렸지만 사실 돌 하나도 예사롭게 보면 안 되는 곳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말굽 모양의 돌들은 조야마고고이시(女山神籠石), 조야마 돌유적들이다. 선사시대에 쌓았던 산성의 흔적인데 정상 주변으로 3km에 걸쳐 흩어져 있다. 초입에서 봤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우부메다니수문(産女谷水門)도 고고이시의 일부로, 모두 다 국가지정문화재다. 이 유적들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면 조야마 산행이 허무해질 수 있으니 ‘돌 보기를 황금 보듯’ 해야 하는 코스다. 

내려오는 길 역시 가팔라서 구로이와저수지(黒岩溜池) 둘레길까지 구르듯 뛰어내려왔다. 내내 땅과 돌만 바라보다가 비로소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다. 그제야 깨달았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선글라스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그 산에 내 유물을 하나 남기고 왔다. 
 
기요미즈데라를 올라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오백나한상
신상을 참배하려면 계속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저수지 둑길에서 손을 흔드는 올레 참가자들
 
 
심심산중의 절을 찾아서 

이번 코스에서 난관은 하나가 아니었다. 두 번째 오르막길은 1,200년 고찰인 기요미즈데라를 향해 가는 여정이다. 계곡 초입에서 아치형 석조다리인 메가네바시다리(眼鏡橋)를 만났다. 단숨에 다녀올 만한 앙증맞은 다리인데, 건너는 사람이 드문 걸 보니, 다들 지치긴 지친 모양이다. 힘써 올라간 자에게만 안경 다리 위에서 찍은 기념사진의 특권이 생긴다. 

체력이 있어야만 계속 이어지는 올레길의 선물을 누릴 수 있다. 지금쯤 모란원에는 2,500송이의 모란이 만개해 있을 것이고, 기요미즈데라 혼보정원(淸水寺本坊庭園)*에도 봄꽃이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피고 지는 꽃이 허망해서 싫다면 오백나한(五百羅漢)의 환영은 어떠한가. 목이 잘린 채로도 여전히 수행에 흔들림이 없다. 

이 모든 선물이 예고편에 불과했다는 것을 기요미즈데라(清水寺)에 도착해서 깨달았다. 깊은 산중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웅장한 규모의 사찰이었다. 일본 천태종을 창시한 사이초 대사가 설립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손으로 어루만진 후 자신의 몸을 만지면 아픈 곳이 낫는다는 나데어루만짐불상(なで仏)이 있어서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오사카에 있는 시텐노지 오층탑을 모델로 1836년에 완성한 기요미즈데라 삼중탑(清水寺三重塔)의 맞은편에는 특이한 전각이 하나 있다. 모유 수유에 문제가 있는 여성들을 도와준다는 지치부 관음이 모셔져 있다. 다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과 달랐다. 저 멀리 운젠과 아리아케해가 보이는 전망대, 오오다니저수지(大谷溜池), 작은 신사가 차례로 이어졌다.  

산을 내려왔으니 끝났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이후에 이어지는 마지막 3km 정도의 논길과 자동차길은 상대적으로 길고 지루했다. 이럴 때 목표의식이 뚜렷해야 한다.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도 할 수 있고, 농산물과 특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종착점인 미치노에키 미야마를 향해 전력 질주. 이로써 이틀간 25km를 걸었던 대장정이 끝났다. 

샤론 파스를 뗀 자리에 바로 휴족시간을 붙였다. 며칠은 푹 쉬고 싶지만, 다음날 당장 출근이다. 그래도 이제는 규슈올레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동요되던 마음이 한동안은 잠잠하지 싶었는데, 비보(?)를 들었다. 6월에 몽골올레가 개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또 파스를 사야겠다.  
 
*기요미즈데라 혼보정원 | 무로마치 시대의 화승인 셋슈가 명나라에 가서 배워 온 산수화기법으로 아타고산의 풍경을 빌려와서 만든 중국풍의 일본 정원이다. 마음 심(心)자 모양으로 만든 심자연못과 정원석, 폭포, 커다란 은행나무 등을 마루에 앉아 감상할 수 있다. 일본의 국가지정문화재로 정원보존료 300엔을 받는다.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 | 10코스 거리 11.5km 소요시간 4~5시간, 난이도 中~上
미야마시 관광협회
전화: +81 944 63 3955 
찾아가기: 후쿠오카 JR 하카타역에서 규슈신칸센(34분)을 타고 JR 치쿠고후나고야역에서 하차. JR 가고시마본선을 갈아타고 3분 후 JR 세다카역에서 하차. 출발점인 하치라쿠카이교단까지(3km) 택시로 10분 정도 걸린다. JR세다카역→ 하치라쿠카이교단(출발점) 사이(3km)와 미치노에키미야마(종점) → 하치라쿠카이교단(출발점) 사이(1.3km)에서 택시를 탈 경우 기본요금(640엔)을 시청이 보조한다(택시 사전 예약 필수).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진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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