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사케 한잔, 낭만 한입 간사이 사케 여행

트래비기자     작성일제304호(2017.06) 댓글0건
여행지에선 늘 그 지역 술을 마신다. 
푸른 하늘 아래 쭉 들이키는 맥주 한잔, 
찰랑이는 와인 너머로 바라보는 풍경이 여행할 ‘맛’을 나게 한다. 
그러는 사이 맥주와는 막역한 사이가 됐다. 와인과도 제법 가까워졌다. 
하지만 사케와는 여전히 서먹했다. 그래서 간사이로 떠났다. 
오직 사케의, 사케에 의한, 사케를 위한 여행을. 
 

노벨상 사케로 이름난 고베 슈신칸 양조장의 다양한 사케들
 
 
●travel for SAKE in KANSAI
 
정종 한잔? 
정종은 사케의 여러 상표 중 하나

흔히 말하는 정종(正宗, 마사무네)은 일제시대 때 한국에 공장을 세우고 대량으로 판매된 사케의 여러 상표 중 하나다. 워낙 판매량이 많았던 탓에 나이 드신 분들을 중심으로 청주의 대명사처럼 잘못 사용되고 있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청주, 정종, 사케, 니혼슈 등을 구분하는 일은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전혀 어렵지 않다. 청주는 쌀, 누룩, 물을 원료로 빚어서 걸러 낸 맑은 술을 말한다. 우리의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많이 등장하는 백화수복이나 한때 인기를 끌었던 청하 등이 모두 청주의 일종이다. 사케는 일본식 청주를 뜻하는 고유명사로 일본 전역 2,500여 개의 양조장에서 저마다의 사케를 만들고 있다. 이 밖에 외국 술과 구별하기 위해 소주, 청주 등 일본의 전통주를 모두 총칭해 니혼슈라고도 했으나 현재는 일본의 청주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사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사케를 배우에 비유한다면 조연이다. 예쁘게 차린 요리라는 주연을 빚내 주는 조연. 하지만 사케 없는 식탁을 떠올려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초밥, 튀김, 나베 곁에 사케가 없다면, 그 빈자리가 얼마나 허전할까. 사케는 반주로 즐기기 더할 나위 없는 술이다. 요리 한입, 사케 한잔 오물오물 맛보다 보면 어느새 사케의 향긋한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사케의 은근한 매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선, 쌀을 꼽을 수 있다. 사케는 쌀, 물, 누룩, 효모로 만드는 양조주니까. 포도 품종이 와인 맛을 좌우하듯, 쌀 품종은 사케 맛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인들은 일찍이 밥 맛 좋은 쌀로 술을 만든다고 맛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양조용 쌀, 주조미를 개발했다. 주조미 중에도 80년 전에 개발한 특대형 쌀, 야마다니시키를 최고로 친다. 야마다니시키는 생산량의 80%가 간사이 효고(兵庫)현에서 재배된다. 

그런데, 아무리 특급 주조미라고 해도 쌀 자체에는 당분이 없다. 쌀 속 전분을 누룩을 써서 당화시킨 뒤 이걸 다시 효모로 발효시켜야 사케가 된다. 그래서 사케 빚기는 도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쌀겨를 깨끗이 벗겨 낸 후 낱알을 으스러뜨리지 않고 깎아 내 전분만 쏙 남겨야 한다. 최소 20%에서 최대 65%까지 도정한다. 쌀을 많이 깎을수록 곡물 향이 날아가고 과일 향이 향긋한 사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정한 정도로 사케 등급을 나눈다. 도정을 많이 할수록 쌀 입자가 작아져 필요한 양이 늘어나고, 그만큼 정성을 쏟아야 하니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공들여 정미한 쌀은 다시 깨끗이 씻고 불려서 찐다. 찐쌀을 누룩에 비벼 띄운 후, 효모와 물을 넣고 발효시키면 밑술이 된다. 밑술이 발효가 끝나면, 압착기에 넣어 사케와 술지게미로 분리한다. 이렇게 사케 만드는 과정을 글로 쓰면 복잡하다. 하지만, 유서 깊은 사케 양조장에서 직접 누룩을 만들고 사케를 짜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새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직 일본의 사케 양조장을 여행하며 느낄 수 있는 멋진 경험이다.
 
쌀을 많이 깎을수록 고가의 사케

사케의 등급은 쌀을 깎고 남은 비율(정미율)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쌀을 많이 깎아 만든 술을 고가의 상등급으로 친다. 쌀 가운데 전분이 사케의 향을 좌우하기 때문으로 쌀을 50% 이상 깎아 낸 다이긴죠는 최고급 사케로 구분된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이 발표한 ‘특정 명칭주’란 새로운 사케 명칭에 따르면 정미율에 따라 다이긴조, 긴조, 도쿠베쓰혼조조, 혼조조로 구분하며 여기에 양조 알코올(주정)을 더하지 않고 쌀과 물, 누룩으로만 만든 술에는 준마이라는 용어를 추가해 8가지로 구분한다. 정미율 50% 이하에 순쌀로만 만들었다면 준마이다이긴조 등급이 되는 식이다. 이 기준에 들지 못하는 사케는 모두 보통주라는 뜻의 후쓰슈로 구분되는데 후쓰슈에는 각종 화학조미료나 산미료, 당분 등의 첨가물이 들어간다.
 
 
겟케이칸 오쿠라기념관 안뜰에서는 후시미의 맑은 샘물을 사케 시음 잔에 담아 마실 수 있다
메이지 시대의 양조장 입구를 재현해 놓은 공간
신칸센 기차에서 마실 수 있게 뚜껑이 술잔이 되는 병술, 레트로 긴조슈
양조 장인들이 살던 기숙사와 사케코보라는 작은 양조장이 함께 있는 풍경 

●후시미 伏見
물맛이 다른 사케
겟케이칸 오쿠라기념관(月桂冠 大倉記念館)

참으로 청신한 물소리다. 후시미 겟케이칸 오쿠라기념관 안뜰의 대나무 통에서 맑은 물이 돌림노래처럼 졸졸졸 흘렀다. 그 물을 사케 시음 잔에 받아 마시자, 술의 마을 후시미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교토의 남쪽 후시미는 옛 지명을 ‘후시미즈(伏水)’라 했을 정도로 명수(明水)가 나는 동네다. 예부터 물맛이 좋아 유서 깊은 술도가가 많았다. 후시미의 물을 일컫는 ‘후시미즈(伏水)’는 지하수의 일종인 복류수(伏流水)로, 하천 바닥 아래 모래·자갈층을 흐르는 깨끗한 물이다. 지금도 25개의 사케 양조장이 후시미의 물로 술을 빚는다. 그중 가장 이름난 곳이 우리나라에는 월계관으로 잘 알려진 ‘겟케이칸’이다. “사케의 주재료는 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케의 80%는 물입니다. 그만큼 물맛이 사케 맛을 좌우하지요. 연수를 쓰면 부드러운 맛의 사케가, 경수를 쓰면 묵직한 맛의 사케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후시미 사람들은 후시미의 부드러운 물이 사케 맛을 부드럽게 만드는 열쇠라고 여기지요.” 겟케이칸 오쿠라기념관 안내를 맡은 코헤이 호시노(康平星野) 매니저가 말했다.

올해 380주년을 맞는 겟케이칸의 역사는 1637년 오쿠라 지에몬이 물 좋은 후시미에 양조장을 열며 시작됐다. 창업 후 250년간은 동네 양조장이었다. 1905년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겟케이칸으로 이름을 바꿨고, 1909년 ‘오쿠라 주조 연구소’를 만들며 대형 양조장으로 발돋움했다. 특히, 1911년 일본 최초로 선보인 무방부제 사케가 성장의 발판이 됐다. 1919년엔 왕실 공납, 1931년엔 일본 최초의 병술을 선보였다. 1961년에는 연중 양조 설비가 있는 ‘오테쿠라’ 양조장을 설립했다. 그전엔 잡균의 수가 적은 겨울에만 사케를 빚었으니 실로 획기적인 변화였다. 1984년엔 효모가 살아있는 나마자케(生酒)를, 1989년엔 미국  캘리포니아에 공장을 짓고 ‘준마이750’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380년간 겟케이칸이 걸어온 길이 일본 사케의 역사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겟케이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창업자의 이름을 딴 오쿠라기념관이다. 기념관 안에는 2개의 전시관뿐 아니라 양조 장인들이 살던 기숙사와 사케코보(酒香房)라는 작은 양조장도 있다. 380년 전 창업 당시의 양조장과 같은 크기로 주로 전국신주감평회 출품용 사케를 만든다. 그것도 일일이 수작업을 고집한다. 후시미의 물과 야마다니시키 쌀에 전통 제조기술이 더해질 때 비로소 좋은 사케가 탄생한다는 신념에서다. 그 과정은 유리 너머로 구경만 해도 수고스러울 게 뻔히 보였다. 

사케보코에 이어 전시관을 둘러봤다. 에도 시대 양조 풍경을 그린 벽화를 배경으로 옛 주조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전시품은 교토시에서 유형 민속문화재로 지정한 6,120여 점 중 엄선한 400여 점이라고. 나무로 된 신세키오케(침지통), 모로미오케(술덧통) 등 난생 처음 보는 물건들이었으나, 하나같이 수백 년 전 사케 장인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도구들이었다. 오래된 물건들 위로 ‘술 만들 때 부르는 노래’ 가 아련하게 흘렀다.  

“다음 전시실에서는 겟케이칸의 발자취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갈색 병은 다이쇼 시대에 만든 사케입니다. 저 진열장 안의 레트로보틀 긴조슈가 보이시나요? 1910년 신칸센 기차에서 마실 수 있게 뚜껑이 술잔이 되는 병술입니다. 당시 특허 받은 히트 상품이었지요.” 하나하나 찬찬히 설명하는 호시노 매니저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자부심이 깃든 미소였다.  
 
주소: 247 Minamihama-cho, Fushimi-ku, Kyoto 612-8660 Japan
오픈: 09:30~16:30(입장은 16:00까지), 오본(8월13∼16일·추석)과 연말연시 휴무 
입장료: 300엔(시음 및 미니 사케 1병 포함)
홈페이지: www.gekkeikan.co.jp/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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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을 개조한 식당
쓰키노쿠라(月の藏)
겟케이칸 오쿠라기념관에서 3분쯤 걸어가면 양조장을 개조한 두부요리 전문점, 쓰키노쿠라가 나온다. 이 역시 겟케이칸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옛 양조장을 개조한 공간에서 후시미의 맑은 물로 만든 두부와 사케를 맛볼 수 있다. 부들부들한 두부, 바삭바삭한 튀김, 예쁜 종지에 담긴 정갈한 찬 그리고 감칠맛 나는 사케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여기에 고풍스러운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일석삼조다.
주소: 185-1 Kamiaburakake-cho, Fushimi-ku, Kyoto 612-8047 Japan  
오픈: 11:00~23:00
홈페이지:  19an.com
 
 
후네시보리 방식으로 느리게 사케를 추출하는 모습
포렴이 걸린 양조장 입구. 이 안에 술 향이 짙게 배어 있다
금 거북이란 뜻의 긴카메 사케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빚는 술이다
163년째 대를 이어 온 오카무라 혼케의 주인장 오카무라 히로유씨
한눈에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카무라 혼케 양조장 

●히코네 彦根
거북이처럼 느리게 술을 짜는
오카무라 혼케(岡村本家)

히코네성에서 떨어진 한적한 마을, 2층 양조장 오카무라 혼케의 주인장 오카무라 히로유키(岡村博之)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1854년 창업 이래 한우물만 팠더니 살아남았다”고. 술병에 이름을 써서 빌려 주면서 사케를 팔던 호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양조장 입구에 건 스기다마가 갈색으로 변하기만 기다리던 동네 주민들이 떠난 지 오래다. 양조장 주변 인구가 200가구에서 20가구로 줄었다. 변치 않은 건 163년째 같은 자리에서 술을 빚는 방식이다. 

“저희는 긴카메(金龜)와 오오보시(大星)란 사케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이 보일 때 일을 시작해서, 별이 질 때 일을 끝냅니다. 깨끗한 물로 씻어 낸 쌀을 찌면서 양조장의 하루가 시작되지요.” 히로유키씨 뒤로 쌀 찌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양조장 안으로 들어갈수록 차갑고 알싸한 공기가 감돌았다. 그 공기 속엔 술 향이 짙게 배어 있었다. 양조 시설과 도구에서도 세월의 깊이가 느껴졌다. 

“배 모양 기구가 사케를 짜는 후네입니다. 술덧을 자루에 담아서 층층이 쌓은 다음, 위에서 눌러 한 방울씩 사케를 추출합니다. 저희는 이렇게 ‘후네시보리(船絞り)*’를 씁니다. 자동압축기로 추출하는 데 오래 걸리고 얻는 술의 양도 적습니다. 그러데 왜 이렇게 하냐고요? 시간을 들인 만큼 사케 향이 화사해지고, 감칠맛이 살아나니까요.” 

오카무라 혼케 양조장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위스키처럼 오래 숙성시킨 빈티지 사케와 열처리를 하지 않아 효모가 살아 있는 ‘나마자케(生酒)’가 증거다. 12년에서 16년 정도 숙성한 빈티지 사케는 바디감과 개성이 강한 사케로 변신하고, 나마자케는 신선한 맛이 매력이라고. 

한데, 여기저기 가지각색 거북이 인형이 놓여 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금 거북이라는 뜻의 킨카메 사케를 사 가며 거북이 인형을 선물로 주고 갔는데, 이후 다른 손님들도 온갖 거북이를 선물하더란다. 거북이 인형 박물관을 열어도 될 만큼 거북이가 잔뜩 쌓인 양조장을 보며 생각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작은 양조장을 163년째 뚝심 있게 지탱해 온 건, 기꺼이 거북이를 선물하는 손님들과 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투어가 끝나고 킨카메 나마자케 한잔을 맛봤다. 곡향이 나면서도 은근한 단맛이 혀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오늘 저녁 가볍게 마시기에 좋은 술이었다. 내친김에 한 병 사 들고 밖으로 나섰다. 오카무라 혼케가 부디, 작지만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양조장으로 오래가길 바라며. 

*후네시보리 | 술덧을 후네라는 배 모양 전통기구에 층층이 쌓아 한 방울씩 사케를 추출하는 방식
 
주소: 100 Yoshida, Toyosato-cho, Inukami-gun, Shiga-ken 529-1165 Japan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 kin-kame.dx.shopserve.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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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고양이가 사는 곳
히코네성(彦根城)

오카무라 혼케 양조장 탐방 후엔 히코네성 산책을 즐겨 보자. 일본 국보로 지정된 5성 중 하나다. 히코네성 곳곳에서 ‘히코냔’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히코냔은 히코네번 2대 영주 이이 나오타카를 구했다고 전해지는 행운의 고양이상에 이이가 이끈 군대의 투구를 씌워 만든 캐릭터. 히코네성 앞에서 파는 히코냔 빵도 인기다.  
주소: 4-2 Motomachi, Hikone-shi, Shiga-ken 522-0071 Japan
 
오미와 신사의 마당에는 500년 묵은 삼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다
신사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고 입을 헹구는 물
현관 천장에는 사케 양조장처럼 커다란 스기다마가 걸려 있다 
 

●나라 奈良
술의 신을 찾아서 
오미와(大神) 신사

일본에는 80만 개가 넘는 신사가 있다. 일본에 있는 사케 양조장 수가 1,300개니, 사케 양조장의 600배가 넘는 수의 신사가 있는 셈이다. 신사에 모신 신도 각양각색이다. 이를테면, 나라현 사쿠라이시 미와 산자락의 오미와 신사는 술의 신, 오모노누시(大物主)와 일본 제1호 도지(杜氏·사케 양조장인)를 모시고 있다. 

신사 입구에서 잠시 눈을 의심했다. 여기가 신사인지, 선술집인지 헷갈릴 정도로 커다란 술통 사카다루(酒樽)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나무가 우거진 길을 얼마쯤 걸었을까. 마당에는 커다란 삼나무가 서 있는 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신사 현관 천마에 삼나무 가지를 꽂아 커다란 구슬처럼 만든 ‘스기다마(杉玉)’가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스기다마는 사케 양조장마다 새 술을 빚으며 내거는 간판이다. 오호라. 이것은 오미와 신사에서 술을 직접 빚는다는 뜻일 터. 신사에서 빚는 술은 어떤 맛일까. 드라마 <추리의 여왕>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동공을 확대하며 주위를 살폈다.   

“사케 양조장에 있어야 할 스기다마가 있어서 놀라셨어요? 오미와 신사는 4세기부터 술의 신을 모셔 온 신사입니다. 매년 11월13일 술의 신에게 바치는 술을 빚으며 스기다마를 내겁니다. 신의 가호로 술이 익어 가길 기원하면서요. 11월에 녹색이던 스기다마가 갈색으로 변할수록 사케가 잘 익었다는 뜻이랍니다.” 신사를 총괄하는 칸누시(神主)씨가 스기다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때마침 술의 신에게 제를 지내는 행렬이 스기다마 앞을 지나갔다. 정갈한 옷차림에, 쟁반에 담은 사케를 조심스럽게 들고 있었다. 얼굴엔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마치 좋은 술 한 모금을 머금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이처럼. 문득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남긴 격언이 떠올랐다. “맥주는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증거”라고 했다. 만일 그가 일본인이었다면 “사케는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증거”라고 하지 않았을까. 
 
주소: 1422 Miwa, Sakurai-shi, Nara-ken 633-0001 Japan
홈페이지: www.oomiwa.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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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의 맛이 담긴
덴리시 이나다 양조장(稻田酒造)

오미와 신사가 술의 신을 모신 신사라면, 이나다 양조장은 천리교(天理敎)에 제주(祭酒)를 대기 위해 생겨난 양조장이다. 천리교의 발상지 덴리시의 천리교단 본부 건너편 시장 안에 둥지를 틀고 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시장 같지만, 그 안의 양조장은 180년 역사를 자랑한다. 5대째 대대손손 전통을 잇고 있는데, 지금은 전직 유도 선수 출신 이나다 마쯔모리씨가 주인장이다. 사케는 물론 술을 짜고 남은 술지게미로 담근 쓰케모노(장아찌류의 절임 음식), 나라즈케(奈良漬け)도 만든다. 대표 브랜드는 오래도록 천리교 제주로 쓰인 ‘이나텐(稻天)’이다.
주소: 379 Mishima-cho, Tenri-shi, Nara-ken 632-0015 Japan
홈페이지: www.inaten.com 
 
아련한 가락의 노동요를 들려준 단바도지조합의 회장 오지마 키요테루씨
단바도지의 감각에 기대어 술을 빚던 시절, 장인들이 사용했던 술 짜는 기계와 일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사사야마 篠山
사케 빚는 장인의 노래 
단바도지기념관(丹波杜氏酒造記念館)

효고현 사사야마(篠山)시 호메이 양조장(鳳鳴酒造)으로 가는 길, 거짓말처럼 눈이 내렸다. 사사야마에 이르자 봄눈은 부슬부슬 봄비로 변해 있었다. 이처럼 일교차가 큰 효고현에서는 술을 빚기 좋은 쌀이 난다. 이름하며 ‘야마다니시키(山田錦)’, 오직 사케 양조를 위해 개발된 쌀이다. 별명이 주조미의 천하장사일 만큼 쌀알이 큰데 65% 이상 도정해도 쌀알이 부서지지 않아 다이긴조를 만드는 데 쓰인다. 

효고현의 자랑은 쌀만이 아니다. 에도 시대부터 사케 양조장 도지를 배출했다. 한마디로 도지는 양조장에서 일하는 주조사들의 리더다. 도지를 필두로 도지를 보좌하는 가시라, 누룩 만들기를 전담하는 다이시, 술덧을 책임지는 모토시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일해 왔다.

도지 중에서도 단바도지(丹波杜氏)*는 겨울 농한기 부업으로 나다고고, 이케다, 이타미의 양조장으로 가 일하던 것이 시초다. 도지는 겨울이면 전국 양조장에 러브콜을 받아 술을 빚으러 떠나 벚꽃 필 무렵 돌아오곤 했다. 일본에 현존하는 도지 100명 중 40명이 단바도지일 정도로 솜씨가 좋기로 정평이 났다. 

사사야마에는 단바도지의 고집스런 외길인생을 엿볼 수 있는 단바도지주조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단바도지조합의 회장, 오지마 키요테루(小島 喜代輝)씨가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어느 화장품 광고 속 주조사처럼 평생 사케를 빚어 온 손이 고왔다. 그 고운 손으로 옛날부터 내려오는 양조 방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장인의 감각에 의지해 술을 빚던 시절, 술 꺼내는 시기를 정하는 것이 도지의 큰일이었다고 한다.

중간중간 설명을 멈추고 오지마씨는 양조장에서 부르던 노동요를 들려줬다. 그의 노래를 듣다 문득 깨달았다. 작업 과정마다 노래가 다르다. 노래를 들으면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바로 알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노래는 함께 일하는 주조사를 단결시켜 주는 좋은 수단이었을 터. 그제야 왜 키요테루씨가 “술 얘기는 잊어도 좋으니, 양조장에서 부르던 노래만 외워서 가라”며 너스레를 떨었는지 알 것 같았다.   

*단바도지│효고현 북부에 위치한 단바의 도지를 말한다. 양조 실력이 좋기로 유명해 일본 전국에 초빙되어 술을 빚었다. 
 
주소: 1-5 Higashishinmachi, Sasayama-shi, Hyogo-ken 669-2324 Japan
오픈: 월~일요일 10:00~17:00(12월28일~1월4일, 12~3월 토·일요일 휴관) 
입장료: 100엔 
홈페이지: tourism.sasayama.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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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 사케의 조합
호메이 양조장(鳳鳴酒造)

단바도지기념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양조장으로, 1797년에 지은 양조장 건물은 고색창연 그 자체다. 지금은 박물관 겸 사케 숙성고로 쓰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탱크 속에서 숙성 중인 사케에게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 음률의 진동으로 술이 더 부드럽게 숙성된다고. 한 모금 머금은 순간 귓가에 음악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주소: 46 Gofukumachi, Sasayama-shi, Hyogo-ken 669-2322 Japan
오픈: 09:30~17:00(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정원과 양조장, 일식당을 두루 갖추고 있는 슈신칸의 전경
최신식 양조 시설을 갖춘 슈신칸 양조장이지만 쌀을 찌는 가마만은 옛것 그대로 사용한다
행운의 신 중 한 명인 ‘후쿠로쿠’에서 이름은 따온 사케, 후쿠주는 슈신칸의 대표 사케다  

●고베 神戸
노벨상 축배주 사케를 아시나요?
슈신칸(酒心館)

고베시 나다구 롯코산 아래에도 이름난 양조장이 많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지면에 스며들어 미네랄을 적당히 함유한 ‘미야즈미’로 술 빚기 좋고, 산에서 불어온 찬바람은 발효를 늦춰 준다. 고베항이 가까워 사케를 도쿄로 운송하기도 좋다.

1751년 창업 이래 13대째 이어온 슈신칸 양조장도 미야미즈로 술을 빚는 곳. 슈신칸에서는 ‘후쿠주(福壽)’란 이름으로 골드, 블루, 그린 세 가지 라벨을 선보이는데, 파란 병에 담긴 블루라벨이 노벨상 시상식 만찬 테이블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이제는 아예 ‘노벨상 사케’로 통하는 이 술은 효고현에서 생산한 쌀을 40% 도정해서 만든 준마이 긴조로, 살구 향과 깔끔한 풍미가 특징이다. 한편, 사케 애호가들은 노벨상 사케의 유명세에 가린 후쿠주 골드 라벨의 맛이 한 끗 더 높다고 칭찬한다. 야마다니시키를 50% 도정한 다이긴조로 싱그러운 과일향이 매혹적이다.  

양조장 내에는 가이세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일식당 ‘사카바야시’도 갖추고 있다. 미나모토모 마사카즈 지배인은 먼저 요리와 사케를 맛본 후 느긋하게 양조장을 둘러보길 권했다. 테이블 위에는 술지게미로 만든 나베 정식과, 내심 기대했던 후쿠주 블루라벨이 놓였다. 나베 한입에 사케 한잔의 호사를 누릴 시간이었다. “후쿠주(福寿)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케를 만듭니다. 그래서 이름도 행운의 신 중 한 명인 ‘후쿠로쿠(福禄寿)’에서 따왔습니다. 맛을 한번 보시죠.” 행운이 따른다는 설명 탓일까. 한 모금 머금자 입 안 가득 번지는 과일향도, 사케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 올라오는 쌀의 풍미도 더욱 근사하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여기, 한잔 더!’를 외치게 하는 맛이었다. 

266년 역사를 뽐내는 양조장 투어는 뜻밖이었다. 맥주 공장처럼 양조시설을 유리창 너머로 관람하는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간사이 대지진으로 양조장이 훼손돼 최신식 설비를 갖추게 된 것. 쌀을 찌는 가마인 고시키만은 옛것 그대로 사용하고 있단다. 설비는 현대화했지만, 슈신칸은 여전히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고유의 술맛을 지키는 것을 철학으로 삼고 있다. 왜 후쿠주가 노벨상 사케가 되었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주소: 1 Chome-8-17 Mikagetsukamachi, Higashinada-ku, Kobe-shi, Hyogo-ken 658-0044 Japan 
양조장 투어 10:00~18:00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 shushinkan.co.jp
 

▶ MORE
일본 최대 양조장
하쿠쓰루白鶴

고베 나다에서 슈신칸과 함께 둘러보기 좋은 양조장은 ‘흰 학’이란 뜻을 가진 하쿠쓰루다. 일본에서 최대 출하량을 자랑하는 대규모 양조장답게 거대한 공장에서 술을 만들며 공장 내 옛 양조장 건물을 ‘하쿠쓰루 주조 자료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료관의 양조과정 전시는 작은 양조장과 스케일이 다르다. 전통 양조 과정 10단계를 마네킹을 이용해 실제처럼 재현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자료관 마지막엔 시음은 물론 하쿠쓰루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사케를 구매할 수 있다. 
주소: 4 Chome-5-5 Sumiyoshi Minamimachi, Higashinada-ku, Kobe-shi, Hyogo-ken 658-0041 Japan
오픈: 09:30~16:30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 www.hakutsuru.co.jp/shiryo/english
 
히코네성에서 내려다본 전망
 
▶travel info
NAVIGATION
간사이 여행의 관문은 간사이국제공항이다. 인천 또는 김포에서 간사이까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다양한 항공사가 매일 운항 중이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40분.  
 
 
ACCOMMODATION
유잔소(雄山莊)

비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전통 료칸이다. 시가 지역 최고로 꼽히는 준이치 모리 셰프의 요리를 맛보며 하루 쉬어 가기 그만이다. 음식도 맛있지만, 온천물이 끝내준다. 매끈매끈한 온천물에 몸을 푹 담그면 여행의 피로가 스르르 풀린다.  
주소: 1 Chome-9-28 Ogoto, Otsu-shi, Shiga-ken, 520-0101 Japan
홈페이지: www.yuzanso.co.jp
전화: +81 77 587 1144
 
INFORMATION
아는 만큼 보인다. 여행 전 정보를 미리 얻고 싶다면 다음 사이트들을 적극 활용해 보자.
간사이 관광본부  www.kansai.gr.jp/kr
간사이 공식 블로그  blog.naver.com/kansaiw
시가·비와코 관광 공식 사이트  kr.biwako-visitors.jp
 
PLACE
게이샤의 추억이 깃든
이나리신사(稲荷神社)

일본 전국에 3만 개나 있는 이나리신사 중 교토 후시미 이나리신사가 총 본궁이다. 천개의 붉은 도리가 구불부굴 터널을 이룬 길이 장관을 이룬다. 신사 곳곳에 여우상이 세워져 있어 여우신사라고도 불리며, 영화 <게이샤의 추억>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꼭대기 까지 오르는 데는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주소: 68 Fukakusa Yabunouchicho, Fushimi-ku, Kyoto-shi, Kyoto-fu 612-0882 Japan  
홈페이지: inari.jp/ko
 
‘쌀’에 대한 각별한 관심
야마다니시키노사토(山田錦の鄕)

효고현 사람들의 야마다니시키 쌀 사랑은 각별하다. 야마다니시키노사토라는 전시관이 따로 있을 정도니 말이다. 전시관에는 식당과 야마다니시키로 만든 사케, 빵 등을 살 수 있는 매장이 있다. 전시관 옆에는 탄산 함량이 높은 염수온천 요시카와吉川 온천도 있다. 
주소: 222 Yokawacho Kichiyasu, Miki-shi, Hyogo-ken 673-1114 Japan  
홈페이지: www.76-2401.com
 
 
제대로 된 매실의 풍미
나카노BC(中野BC)

매실의 본고장, 와카야마현 가이난시에서 우메슈(梅酒·매실주)와 사케를 만드는 나카노BC. 1932년 간장 공장으로 시작해 지금은 30종이 넘는 매실주를 선보이며, 와카야마 매실 중 최고로 치는 매실 품종, ‘난코바이’만 쓴다. 공장 안에 일본식 정원도 있어 투어를 신청하면 양조장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매실주는 무료로 시음할 수 있지만, 나카노BC가 자랑하는 사케 브랜드 ‘기노쿠니야 분자에몬’은 별도로 400엔을 내야 한다. 기대 이상으로 부드럽고 우아한 맛에 400엔이 결코 아깝지 않다.  
주소: 758-45 Fujishiro, Kainan, Wakayama-ken 642-0034 Japan
공장 투어 무료(사전예약 필수)
홈페이지: www.nakano-group.co.jp/hangeul 
 
어시장에 테마파크까지
와카야마 마리나 시티(Wakayama Marina City) 

와카야마시 바닷가에 조성된 마리나 시티 안에는 ‘구로시오(黑潮) 수산물시장’과 포르투갈을 테마로 한 놀이공원 ‘포르투 유로파(Porto Europa)’가 있다. 신선한 해산물과 건어물이 가득한 구로시오 수산물시장의 명물은 하루 세 번 진행하는 참치 해체 쇼. 참치 한 마리를 쓱쓱 순식간에 부위별로 자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간사이공항에서는 자동차로 40분, 나카노BC에선 15분 거리에 있다.
주소: 1527 Kemi, Wakayama-shi, Wakayama-ken, Japan
구로시오 수산물시장 참치 해체 쇼 11:00, 12:30, 15:00 
포르투 유로파 입장료 1,500엔
홈페이지: www.marinacity.com/kor
 
글 Travie writer 우지경  사진 Travie photographer 노중훈  에디터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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