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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여행지 시나노마치, 치유의 숲

  • Editor. 도선미
  • 입력 2017.07.04 14: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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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하이쿠의 대가 고바야시 잇사, 
<모모>를 쓴 독일의 동화 작가 미하엘 엔데, 
<창가의 토토>의 작가 이와사키 치히로는 
모두 시나노마치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들은 왜 산으로 둘러싸인 일본의 작은 마을, 
시나노마치로 향했을까?
 
일본 중부의 작은 마을 시나노마치
 
건강 여행의 성지로 주목받는 시나노마치

‘시나노마치’라는 발음이 입에 붙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시나노마치는 일본 열도 나가노현과 니가타현의 경계에 위치하는 작은 마을이다. 일본 열도 전체로 보면 딱 정중앙으로, 수만년 전 융기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웅장한 산세, 그 아래 펼쳐진 맑은 호수, 그리고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은 스위스를 연상케 한다.

시나노마치는 요즘 건강 여행의 성지로 주목받고 있다. 시나노마치가 위치한 나가노현이 세계최고령 국가인 일본에서도 1위를 다투는 장수 지역임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 경관을 감상하는 차원이 아니다. 시나노마치시는 ‘치유의 숲’ 트레킹 코스를 개발해 의료기관과 함께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트레킹 전에 혈압, 피부 온도 등 건강 상태를 체크한 후 개인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게 된다. 현재 시나노마치에서 활동 중인 ‘산림 메디컬 트레이너’만도 94명이다. 이들은 자연 생태 해설 능력을 갖춘 숲 해설사인 동시에 고도의 건강 지식을 함께 갖춘 전문가다.

시나노마치의 대표적인 치유의 숲 코스는 총 세 가지다. 오지카 연못 둘레를 걷는 ‘오지카이케 코스1.2km’, 산길을 따라 노지리 호수까지 걷는 ‘조노코미치 코스2.5km’, 깊은 산속의 숲을 지나 나에나 폭포까지 걷는 ‘나에나타키 코스7km’가 그것이다. 나에나타키 코스를 빼면 모두 초심자가 걸을 만한 거리다.
 
 
조노코미치 코스는 시나노마치의 노지리 호수 주변을 걷는 코스다. 전문가와 함께하는 산림 테라피를 경험할 수 있다
 
트레이너와 함께 걷는 ‘코끼리의 작은 길’

조노코미치 트레킹 코스는 숲길과 호반길을 모두 걸어 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울퉁불퉁하다가도 평탄해지고, 음지와 양지가 골고루 뒤섞이며 나타나는 점도 재미있다. 숲길을 걷는 동안 깨달은 점은 이름 모를 잡초라고 여겼던 꽃들에게 저마다 고유의 이름과 생애가 있다는 것이다. 땅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인 수줍은 꽃은 얼레지고, 13년마다 한번씩 꽃망울을 터트리는 손톱만 한 꽃은 흑박주가리다. 가지 껍질을 벗겨 문지르면 맵고 시원한 멘톨향이 나는 것은 생강나무다. 

구간마다, 트레이너마다 숲을 즐기는 방법도 다르다. 삼나무 아래서 단전호흡을 하거나 외기욕을 하기도 하고, 즉석에서 오카리나를 연주하기도 한다. 호수에서는 물속을 걷는 아쿠아 워킹을 체험하고, 숲속에서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해먹을 걸고 누워 하늘을 본다. 마치 어릴 적 요람에 누웠을 때의 평온했던 기분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겨울은 겨울대로 묘미가 있다. 스노슈(Snow Shoe)를 신고 거목이 우거진 깊은 숲까지 들어간다. 두텁게 쌓인 눈이 오히려 융단처럼 매끈한 길이 되기 때문에 걷기 편하다. 숲 한가운데서 하얀 눈을 끓여 만드는 원두커피도 별미다. 커피에 단무지, 머위 설탕 절임을 곁들이기도 한다.

‘조노코미치’라는 이름은 ‘코끼리의 작은 길’이란 뜻이다. 이 귀여운 이름의 연원은 산길을 지나 호숫가에 닿으면 알게 된다. 트레킹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4만년 전 빙하시대 코끼리 화석 발굴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3m가 넘는 키에 상아 길이만 2.4m에 이르는 거대한 코끼리 화석이 발견됐다. 발굴을 진행한 고고학자의 이름을 따서 ‘나우만 코끼리’라고 부른다. 호반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코끼리 모양인 것은 이 때문이다. 흥미가 생긴다면 호숫가에서 200m 떨어진 나우만 코끼리 박물관에 가 보자. 코끼리 화석과 실물 크기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구로히메산 주변은 일본에서도 유명한 메밀 생산지다. 시나노마치에는 오래된 소바 식당이 많다
구로히메산 트레킹은 너도밤나무 숲을 통과하는 서쪽 등산로가 가장 인기다
 
 
검은 공주가 사는 북쪽의 후지산 ‘구로히메’

오지카이케 트레킹 코스는 삼나무 숲과 작은 폭포, 숲속에 비밀스럽게 자리한 연못 주변을 걷는 코스다. 구로히메산(黒姫山)에서 내려온 맑고 차가운 물 덕분에 피서지로도 손색이 없다. 여름밤에만 경험할 수 있는 나이트 투어도 흥미진진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예민해진 감각으로 숲의 기운을 느끼고, 환상적인 반딧불도 만날 수 있다.

오지카이케 코스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넓은 목장이 펼쳐지고, 그 뒤로는 구로히메산이 보인다. 이 산에는 특별한 전설이 전한다. 옛날에 구로히메산에는 바람과 비를 관장하는 검은 용이 살았다. 어느 날 용은 사람으로 변장하고 마을에 갔다가 영주의 딸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공주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용의 열렬하고 집요한 구애는 계속됐다. 보다 못한 영주는 용에게 승마 대결을 제안했다. 용이 이기면 공주를 시집보낸다는 조건이었다. 용은 흔쾌히 승낙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영주의 계략이었다. 용이 결승선을 눈앞에 둔 그때, 영주가 숨겨 둔 복병이 나타나 용을 공격한다. 용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마을에 폭풍우를 퍼부었다. 연일 비가 그치지 않고 마을이 잠길 위기에 처하자, 보다 못한 공주가 나섰다. 폭우를 멈추면 자진해서 시집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공주가 용의 등에 올라타고 산 정상으로 사라진 후에야 비가 씻은 듯 그쳤다. 마을 사람들은 공주의 희생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 산을 ‘검은 공주(구로히메)’라고 불렀다. 

시나노마치 사람들은 구로히메산을 ‘시나노의 후지산’이라고 추켜세운다. 아마 납작한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균형 잡힌 산세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해발고도 자체는 900m로 그다지 높지 않고, 시나노마치 자체가 평균 해발 800m의 고원 분지라 정상이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너도밤나무 숲을 통과하는 서쪽 등산로가 인기이며, 오지카이케 트레킹 코스는 동쪽 고원에서 시작한다. 구로히메 동화관을 트레킹 기점으로 삼으면 된다.
 
 깊은 숲속에서 나무를 껴안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 보자. 금세 마음이 평온해진다
유명 동화 작가들이 시나노마치에서 여생을 보냈다. <모모>를 쓴 독일의 동화 작가 미하엘 엔데가 대표적이다
 
동화 작가들이 시나노마치로 간 까닭은

나가노현에는 ‘핑핑 코로리’라는 말이 있다. 팽팽하게 살다가, 앓지 말고 한순간에 죽자는 뜻이다. 세계 초고령 국가인 일본에서는 노년의 삶, 건강한 노년이 국가 과제로 떠올랐다. 시나노마치 치유의 숲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 에코투어와의 차별점은 분명하다. 우선 삼림 테라피가 실제 예방 의학적인 효과가 있음을 검증했다. 지바대학 연구에 따르면 시나노마치에서 삼림 메디컬 트레이너와 함께 2박 3일간 숲속을 걸은 참가자의 경우 스트레스 호르몬이 60% 감소했다. 일본의과대학에서는 치유의 숲 트레킹을 통해 바이러스와 암세포를 억제하는 NK세포(Natural Killer Cell) 수가 증가하며, 한 달 동안 지속됨을 발견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서는 시나노마치 치유여행 상품에 의료 보험 혜택을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17세기 하이쿠의 대가 고바야시 잇사, <모모>를 쓴 독일의 동화 작가 미하엘 엔데, <창가의 토토>의 작가 이와사키 치히로는 모두 시나노마치에서 여생을 보냈다. <바람을 본 소년>을 쓴 영국 출신 작가이자 환경운동가 C. W. 니콜은 현재 시나노마치에서 환경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왜 산으로 둘러싸인 일본의 작은 마을, 시나노마치로 향했을까? 답은 단순하게도 숲과 자연에 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주말이면 숲으로 달려간다. 여름에는 삼나무 향기가 가득하고, 겨울에는 자작나무와 하얀 설경으로 뒤덮이는 숲. 이곳에선 누구나 자연이 주는 공짜 보약을 누릴 수 있다. 시나노마치는 하루 종일, 아니 여생토록 머물러도 아깝지 않은 곳이다.  
 
▶travel info
 
AIRLINE 
대한항공이 인천국제공항-나가노국제공항 노선을 주 3회 운항하며, 비행시간은 약 2시간. 신칸센을 타고 도쿄역에서 나가노역까지 이동할 경우, 약 2시간이 소요된다. 나가노역에서 다시 시나노마치의 관문인 구로히메역까지 보통 열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35분 소요.

TRAVEL AGENCY
에코투어 전문 현지 여행사 타비피아 전민수 대표는 8년 동안 일본 에코투어 상품 개발에 매진해 온 전문가로 웰니스투어리즘 연구소 대표이사도 겸임하고 있다. 그는 삼림 테라피, 건강 여행 관련 최근 논문과 뉴스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베테랑이다. 또 일본의 역사, 문화, 신화, 지리까지 다양한 분야에 박식한 스토리텔러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tabipia.co.kr  
전화: 02 335 7827
 

HOTEL
탕그램 마다라오 도큐 리조트 호텔(Tangram Madarao Tokyu Resort)

일본의 리조트 대기업 ‘도큐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호텔. 웅장한 마다라오 산자락에 자리했다. 봄이면 눈이 녹고 주변 초지에 라일락과 백합 군락이 만개해 아름답다. 호텔에서 리프트를 타면 마다라오산 트레킹 코스로 직접 연결돼 등산하기도 최적이다. 호텔을 중심으로 대규모 스키장과 골프장이 있으며 어린이를 위한 짚라인, 봅슬레이, 낚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홈페이지: www.tangram.jp/hotel 
 

FOOD & DRINK
기리시다 소바
시나노마치를 포함한 신슈 지역은 예로부터 소바로 유명하다. 이 지역에서 만든 소바는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바 식당에서 따뜻한 국물의 온소바, 짜투리 소바를 뭉쳐 떡처럼 만든 후 달콤한 소스로 버무린 소바당고를 꼭 먹어 보자.
 
류간 와인
나가노현은 일본 2위 와인 생산지로, 19세기 후반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생산해 왔다. 대표적인 와이너리인 산 쿠제르(St. Cousair)에서 테이스팅과 구매가 가능하다. 일본 자생 품종인 류간(RyuQAn) 등 화이트 와인을 추천.
 
마츠오 사케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맛있는 물, 일본 전역에서 유명한 고시 히카리가 만나 최고의 사케가 탄생했다. 무엇보다 나무로 만든 통을 이용해 술을 발효시켜 은은하고 자연스런 향이 난다. 
 
글 도선미  사진제공 시나노마치현 에디터 고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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