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독일 소도시 여행, 헤매도 괜찮아

김예지기자     작성일제305호(2017.07) 댓글0건
헤맨다는 말의 어감이 그리 좋진 않다. 늘 갈팡질팡, 평소 극심한 결정 장애에다가 길치에 방향치 내공까지 야무지게 겸비한 나로선 더욱이나 그랬다. 그래서 이번 독일 여행은 획기적이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의 아주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들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지나온 길을 까맣게 잊어도 결국엔 다시 그 길로 되돌아오곤 했다. 정처 없이 다녔기에 나무와 구름과 건물, 사람들을 보다 찬찬히 보고 담을 수 있었다.

존재하는 것들을 작음과 큼으로 나눈다면 독일은 두말할 것 없이 후자였다. 맥주잔과 소시지의 스케일만 봐도 그렇지 않나. 그래서 이번 여행은 획기적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독일은 오밀조밀하고 섬세했으니 말이다. 여름을 내다보는 5월이었지만 귀여운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창이었다. 투박할 거라 예상했던 독일의 와인 맛은 수수하다 못해 여리여리하기까지 했다. 착각이었다. 비단 맥주와 소시지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미처 몰랐던 소소한 독일에 빠져 여기가 어딘지도 잊고 맘껏 헤맸다. 이 도시들에선, 그래도 괜찮았다.
 
하이델베르크는 언덕에 폭 둘러싸인 포근한 도시다
하이델베르크성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6년 전과 같은 듯 달랐다
하이델베르크 네카르강 주변

●Heidelberg 하이델베르크
 
스케치에 색을 입히다

벌써 6년 전이다. 2달간의 유럽 여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발길 닿는 대로 어째 독일까지 오긴 왔는데 뚜렷한 계획이 없었다. 갖고 있던 여행 책을 펴고서 어딜 갈까 고심하던 차, 무심코 찜한 곳이 바로 하이델베르크였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사진 속에 펼쳐진 강과 강 위를 가로지른 적갈색 다리, 나무 사이사이 박힌 집들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렇게 하이델베르크에서 사흘을 보냈다. 뮌헨에서 고작 하루를 보낸 것에 비하면, 그때도 큰 것보단 작고 사소한 것에 더 끌렸었다.

그러니 밑그림은 어느 정도 그려 놓은 상태였다. 하이델베르크가 ‘학생의 도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랜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있다는 사실도, 그곳에서 그 유명한 철학자 헤겔이 교수로 재직했고 작곡가 슈만이 법학을 공부했다는 것도 차차 알게 됐다. 스케치에 조금씩 색을 입히기 시작한 건 이번 여행에서다. 도시를 유유히 가로지르던 강의 이름은 네카르(Neckar)강, 다리의 이름은 카를 테오도어 다리(Karl Theodor Brucke), 게다가 하이델베르크성(Das Heidelberger Schloss )지하에 어마어마한 와인 창고가 있다는 건 이번에야 안 사실이다. 같지만 같지 않았다. 지난 번 여행이 흑백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컬러였다. 하이델베르크는 6년 전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세상 모든 문장과 장면과 사람이 그렇듯이.
 
 
 
 
하이델베르크성 안에 있는 프리드리히관. 중세의 멋 앞에 달콤한 현대의 커플 
프리드리히관에 있는 거대한 와인 통.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취하게 했을까
고요한 도시, 빛나게 우뚝 선 하이델베르크성
 
 
성 안팎으로 얽힌 이야기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도시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위엄이랄까 포근함이랄까.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엔 다른 유럽 도시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아마도 하이델베르크성의 존재감 탓일 테다. 쾨니히슈틀(Konigstuh) 언덕 위에 우뚝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성은 어쩌면 도시에 군림하는 것 같고, 또 어쩌면 도시를 수호하는 것 같다. 성은 한번에 지어지지 않았다.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마치 퍼즐처럼 건물 하나하나를 지어 완성한 것으로 르네상스 건축미의 절정을 뽐낸다. 30년 전쟁 등 몇 차례 전쟁과 자연 재해 등에 성의 일부가 무너져 내려 지금의 모습이 됐다. 성벽의 벽돌은 일부 떨어져 나가고 벽면은 희끗희끗 바랬지만, 그 자체로 근사하다. 시간이 만들어 낸 걸작이다.  

성에 올랐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성문을 통과하니 하이델베르크성의 하이라이트라는 프리드리히관(Friedrichsbau)이 등장했다. 프리드리히관은 당시의 선제후였던 프리드리히 4세1583~1610년가 지은 건물로, 외관 층층마다 사람의 조각상이 새겨진 점이 포인트다. 총 16개의 조각상은 얼핏 보면 모두 비슷비슷해 보여도 잘 보면 얼굴 생김새와 표정, 자세가 모두 다르다. 이들은 프리드리히 4세를 포함한 프리드리히 선제후 조상들인데, 그러니까 말하자면 건물 외관 전체가 가문의 3D 계보인 셈이다. 물론 프리드리히 4세의 조각상은 가장 돋보이는 1층 오른쪽 자리에 배치했다.

프리드리히관의 진수를 보려면 땅 밑으로 가야 한다. 건물 지하에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배럴 통(Großes Fass)이 있다. 1751년에 만들어진 이 와인 통은 폭이 약 7m, 높이가 8m나 되고 저장할 수 있는 와인의 양은 22리터에 달한다. ‘독일은 맥주’라는 의심 없던 공식에 금이 간 첫 번째 계기였다. 와인 통을 지키는 가드(Guard)도 있다. 한 손에 와인 잔을 들고서 와인 통 앞에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난쟁이 페르케오(Perkeo). 이탈리아 출신이었던 그는 우연히 당시 합스부르크를 지배하던 찰스 3세(Prince Charles III Philip)를 만났고, 찰스 3세는 엄청난 애주가이자 대주가인 그를 맘에 들어 했다. 그리고 이후 팔츠 선제후국(Electoral Palatinate)*을 다스리게 되자 페르케오를 하이델베르크성으로 불러 와인 저장고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겼다. 

‘페르케오’이라는 이름은 그의 애주 습성과 관련이 있다. 와인을 권할 때마다 이탈리아어로 늘 ‘페르케 노(Perche no)?’, 즉 ‘Why not?’이라 답해 페르케오라 불리게 됐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하루에 15리터 이상의 술을 거뜬히 마셨단다. 페르케오의 조각상 옆에는 항상 술에 취해 있는 그를 깨우기 위한 시계 종이 있는데, 방문자들은 그 종을 당겨 볼 수 있다. 일어날 일을 자세히 스포일러하진 않겠지만, 화들짝 놀랍다.   
 
*신성로마제국│10세기부터 19세기까지 걸쳐 이어진 중세 유럽 국가들의 연맹.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포함돼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다. 30년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상당한 영토를 잃었다. 
 
*팔츠 선제후국│신성로마제국이 이전에 지배했던 영역으로, 팔츠 선제후가 지배했다.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및 프랑스의 로렌 지역도 일부 포함됐다. 하이델베르크는 팔츠 선제후국의 주요 도시였다. 
 
부활절을 기념해 장식해 놓은 분수대는 알알이 탐스럽다
 
 케테 볼파르트로 들어서는 순간 이미 마음이 들떴고, 장인을 본 순간 이미 지갑은 열렸다
로텐부르크는 참 아리땁다. 지나가는 건물에 달린 간판까지도
 

●Rothenburg ob der Tauber
로텐부르크
 
5월의 메리 크리스마스

돌이켜 보면 그렇다 하게 특별한 적은 없었다. 지금껏 나의 크리스마스는 오히려 밋밋하게 보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다. 그럼에도 언제나 행복했다. 그 뽀송뽀송한 감정, 크리스마스만이 주는 분위기는 어떤 날과도 대체불가다. 별일이 없어도 손발이 꽁꽁 얼어도 좋다. 반짝반짝 트리와 새빨간 장식과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캐럴. 크리스마스니까, 크리스마스라서 다 좋은 때가 크리스마스다. 

로텐부르크가 그랬다. 느낌이 뽀송뽀송했다. 아담한 성벽을 따라 걷자니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들이 하나같이 어여뻤다. 붉은 지붕의 중세풍 건물들이 서로 곁을 맞대고 줄줄이 서 있었다. 집집 창문마다 핀 화사한 꽃들과 각종 가게들, 그 앞에 진열된 물건은 물론 간판 하나하나까지 탐이 났다. 날이 흐렸지만 맘이 밝았다. 연인이 없었지만 한없이 낭만적이었다. 크리스마스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이 분명했다. 

내 감이 맞았다. 로텐부르크는 언제나 크리스마스였다. 여름이라도 함박눈이 없어도 상관없다. 케테 볼파르트 크리스마스 빌리지(Kathe Wohlfahrt Weihnachtsdorf)에는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가 펼쳐지니까. 도시 중심부에 자리한 케테 볼파르트는 1964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패밀리 비즈니스다. 목공 수공예 장식품들과 트리, 오르골, 스노볼 등 성탄절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만든다.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의 백미는 약 5m 높이의 하얀 트리. 가게 중심에 놓인 대형 트리는 눈이 켜켜이 쌓인 마냥 새하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늘은 다름 아닌,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가게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니 마침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장인이 보였다. 재빠르게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그는 쓱싹쓱싹 나무를 깎아 트리 모양의 장식품을 만드는 데 한껏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옆에 놓인, 언젠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을 각종 인형들이 더욱더 좋아 보이는 건. 아까부터 흐뭇한 표정으로 유혹해 오던 눈사람과 산타를 결국 집어 들었다.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괜찮다,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시간과 계절을 잊고 주머니 사정마저 잊고 말았다. 5월의 크리스마스는 그만큼 황홀했다.  
 
케테 볼파르트 크리스마스 빌리지
오픈: 월~토요일 09:00~18:00, 일요일 10:00~17:00
주소: Herrngasse 1, 91541 Rothenburg ob der Tauber, Germany
홈페이지: www.wohlfahrt.com
 
▶travel info
 
HOTEL
깔끔하고 편안한 호텔
NH 하이델베르크(NH Heidelberg)

전체적으로 현대적이고 깔끔한 분위기의 호텔. 하이델베르크대학과 하이델베르크성 등이 있는 구시가지까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스탠다드, 수페리어, 패밀리, 스위트 등 총 174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특별히 일요일에는 12시까지 조식을 먹을 수 있고, 레이트 체크아웃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주소: Bergheimer Str. 91, 69115 Heidelberg, Germany
전화: +49 6221 13270
홈페이지: www.nh-hotels.com
 
풍성한 조식이 포인트
호텔 알펜호프(Hotel Alpenhof)

친구 집에 놀러온 것 같은 기분이다. 로비와 방이 아담하고 편안하다. 싱글, 더블, 패밀리, 스위트 등 다양한 룸과 총 6개의 레스토랑을 구비하고 있다. 샐러드부터 독일식 빵과 소시지, 햄 등 조식 구성도 아주 훌륭해 머무는 내내 아침부터 과식을 피할 수 없었다.
주소: Donauworther Str. 233, 86154 Augsburg, Germany
전화:+49 821 42040
홈페이지: www.alpenhof-hotel.de/en
 
 
RESTAURANT
분위기만으로 이미 합격
아이젠헛(Eisenhut)

로텐베르크 중심부 거리에 위치한 호텔 겸 레스토랑. 중세시대 귀족의 집을 개조한 만큼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일품이다. 1890년 문을 연 이후 대대로 비즈니스를 물려받아 운영해 오고 있다. 메인 요리에 감자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와인은 프랑켄 지역 와인을 제공한다. 아스파라거스 요리의 종류도 다양한데, 메뉴판이 따로 있을 정도다. 
가격: 튀김 돼지고기 요리 21.5€, 아스파라거스 코스 1인 기준 45€
오픈: 월~일요일 런치 12:00~14:30, 디너 18:30~22:30
주소: Herrngasse 3-5/7, 91541 Rothenburg ob der Tauber, Germany
전화: +49 9861 7050
홈페이지: www.eisenhut.com/en/gastronomy/restaurant-eisenhut
 
역사도 맛도 깊은 곳
붉은 황소(Zum Roten Ochsen)

테이블 간격이 좁고 실내도 어두컴컴한데 왠지 모르게 맛집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펍 중 하나로, 1839년 오픈한 이후 하이델베르크의 학생들과 그 역사를 함께해 왔다. 독일 전통 음식과 맥주를 제공하며, 매일 저녁 7시30분부터 경쾌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된다. 밤이 깊어갈수록 옆 사람과 말을 섞기 힘들 정도로 시끌시끌해지지만, 그마저 운치 있다.
오픈: 월~토요일 런치 11:30~13:45, 디너 17:00~
(일요일 휴무, 10월23일~12월20일은 디너만 운영) 
주소: Hauptstraße 217, 69117 Heidelberg, Germany
전화: +49 6221 20977
홈페이지: www.roterochsen.de/welcome
 
글·사진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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