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부탄 팀푸, 다른 세계로의 여행

차민경기자     작성일제305호(2017.07) 댓글0건
비로소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겠다. 
문자가 백지를 앞으로 앞으로
밀어내며 나아갈 때, 
행간이 만들어 내던 고요한 한 순간. 
그 순간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부탄의 밀언이 전해지기까지, 
몰랐던 것이다. 
 
부탄 최대의 승가대학인 데첸포당. 부탄 어디에서나 마니차 옆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옹기종기 앉은 어린 동자승들이 법전을 왼다

팀푸 Thimphu
 
2,300m, 발 딛고 서 본 적 없었던 높이다. 부탄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팀푸는 붐비는 듯하다가도 한가해지고, 도심에 있는 줄 알았다가도 금방 외곽이었다. 길을 따라 펄럭이는 타르초의 색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할 때야 이것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 위에 올려진 시간

딱. 
숙인 머리 위로 살짝 닿았던 질랍Zilab이 떨어졌다. 입을 가렸던 손을 풀고 더듬더듬 머리를 문지르고 말았다. 누군가는 영험한 기운에 마음이 저릿저릿 하다는데 아직 모르겠다. 그 순간엔 영 둔탁했던 소리에 찌든 마음을 들킨 것마냥 느껴져 부끄러웠을 따름이다. 부탄에서 제일 오래된 승가대학이라는 데첸포당(Dechen Phodrang)에서의 일이다. 

국민의 78%가 불교를 믿는 이 나라에서는 불교에 귀의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적으로 모시는 국사스님이 있을 정도니, 스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 높을 테다. 승가대학의 아이들은 오전엔 일반 정규학교의 교육 과정대로 공부하고, 오후에는 불교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난다. 

납작한 법전을 내려놓고 글을 읽는 동자승들을 한참 바라보다 승가대학 내부의 사원으로 들어갔다. 아무 표지판이 없어 누가 귀띔해 주지 않았더라면 사원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석가모니상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의아했다. ‘유네스코’가 붙는다면 응당 복작복작한 관광명소를 떠올리게 되는 법이니까. 데첸포당은 그것을 내세우지 않았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심지어 일반인의 출입도 금지하고 있었다. 물론 관광객도 포함이다. 

그러니 오랜만의 손님이었을지 모르겠다. 내부의 장식들은 원래의 선명한 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 창문 몇 개로 깊은 곳의 어둠을 몰아내긴 역부족이었다. 석가모니상은 석가모니상이었다. 접근금지 경고판이나 역사와 의미를 읊어 주는 팻말처럼 옆에서 호들갑을 떨어 주는 안내자가 없으니 더욱 무덤덤했던 것이다. 오히려 ‘부탄에서 꼭 보아야 할 불상’이 아닌 중생을 보살피는 석가모니의 얼굴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중생에게 보시를 받고 이를 통해 수행하여 모든이를 깨닫게 한다는 의미로 발우그릇을 들고 있다. 자애로웠고 그리하여 편안했다. 다른 무엇이 아닌 석가모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상업의 논리 같은 것은 아무 필요가 없었는지 모를 일이다. 

석가모니상이 있는 2층에서 한 층을 더 올라가면 부탄의 국조인 샵뚱 나왕 남갤(Shabdrung Ngawang Namgyel)을 모시는 사원이 나온다. 샵뚱은 부탄에서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다. 16세기 샵뚱의 등장 이후 부탄은 비로소 국가로 거듭난다. 동시에 부탄의 국교인 불교의 전파에도 불교의 수행자였던 샵뚱의 역할이 컸다. 어느 사원에서나 크건 작건 샵뚱을 모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샵뚱의 현존 또한 그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샵뚱은 총 10번 환생해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단다. 중심의 샵뚱 불상 양옆으로 그의 지난 전생의 삶을 표현한 불상이 놓여 있다. 애매한 이야기다. 비과학적인, 미신적인, 멀리는 샤머니즘까지 불러들이는 이야기다. 한동안 오방색에 시달렸던지라 괜한 경계심도 동했다. 자고로 속으며 살아온 도시인의 덕목 중 하나는 불신인 법이니까. 

세미 불자로서의 인생 수년째, 인생 첫 번째 법회 참가는 부탄에서 이뤄졌다. 부탄의 5대 로펜(장관급 스님) 중 한 명의 스님이 방문자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열어 준 작은 법회에서다. “옴 마니 반메 훔.” 반가부좌를 하고 진언을 왼다. 함께 외는 진언은 공간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스님은 방문자의 여행을 축복하며 한 명 한 명 손수 관정을 준다. 스님의 스승에게서, 그 스승의 스승에게서 수백년 동안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온 전수품인 질랍을 통해서다. 법력이 높은 장관스님 중 한 분이니 이 전수 행위를 통해 영적 기운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숙인 머리에 손가락만한 질랍이 딱. 내려왔다 떨어지는 짧은 순간, 그 순간이었다. 
 
 
행복하다던 부탄 사람들에게도 털어 내고 싶은 불행이 있나 보다. 사람들은 줄의 끝에서 바닥에 머리를 대고 기도를 한다
왕왕 울리는 진언과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북소리, 피리소리는 빵리잠빠 사원의 공간감을 사라지게 한다
 
●불행에 대한 기도

넓은 사원 마당을 넘어 입구를 한참 지난 지점까지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굽어진 것까지 감안하면 족히 수 킬로미터는 되지 않을까. 길가에는 과자와 곡식을 묶음으로 파는 상인들이 쪼르륵 앉았다. 시장이라도 선 듯 북적북적한 분위기는 빵리잠빠(Pangri Zampa) 축제 때문이다. 매년 4월에 5일 동안 열리는 축제로 팀푸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자리한 빵리잠빠 사원에서 열린다. 샵뚱 나왕 남갤이 부탄으로 가는 길목에 머물렀다 하여 부탄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사원이다. 사원 앞뜰에는 샵뚱의 나무 지팡이가 자랐다는 거대한 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축제 기간에는 팀푸는 물론이고 부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이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날이 바로 마지막 날이다. 불행을 털어 내기 위해서다. 이 날에는 국가적 존경을 받는 스님이 방문객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관정을 주는 행위를 한다. 근심부터 장애까지 나쁜 기운을 없애 주는 의미다.
 
신체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사람, 갓 태어난 아이를 소중히 품고 온 사람 등 온갖 동네에서 온 사람들이 몇 시간 동안 기꺼이 줄을 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축제에선 장관스님을 역임했던 유명한 고승이 관정의 주체자다. 부탄의 14개 지성의 사리를 모아 감싸고, 이 보석에 불교적 힘을 불어넣어 만들었다는 질랍을 머리에 대어 준다. 

축제를 찾은 이들은 맨바닥도 가리지 않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대고 절을 한다. 부탄 전통의상의 단조로운 무늬와 예상 가능한 색상들이 사방 군데에서 반복적으로 움츠렸다 펴지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스님은 방문객들이 지나가는 오른 방향으로 아예 몸을 틀었다. 머리를 낮추는 사람들, 톡 하고 떨어지는 질랍. 반복되는 행위는 기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건조하다 생각했건만 오히려 감정은 폭삭 젖었다. 셀 수 없는 염원들이 사원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스피커에서 울리는 진언은 자꾸 빈 공간으로 마음을 데려다 놓으니 방문자의 본분을 자꾸 잊어버림은 물론이었다.
 
 
 
기교 없이 선명한 직선이 이어진 따쉬기최종은 묵직하고 간결했다 
 
 
부탄은 각 지역마다 종(Dzong)을 두고 있다. 지역의 행정부이자 법원이고, 사원이며 과거에는 요새로 사용됐다. 공무원과 스님이 공존하고 있는 정치와 종교의 복합체인 것이다. 그중 부탄 수도에 있는 따쉬최종(Tashichho Dzong)은 정부청사의 역할도 같이 하는 부탄 내 최대 규모의 종으로 꼽힌다.
 
2008년 이전에는 궁궐로 사용됐으나, 이후로는 국왕의 집무실이 있는 정부청사 및 사원으로 용도가 변했다. 왕권의 권력 집중을 우려했던 4대 왕이 과감히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면서부터 일어난 변화다. 4대 왕은 전국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입헌군주제를 설득했고, 이를 통해 2008년 총리가 선출됐다. 국왕은 궁궐의 거처를 없애고 집무실만 남긴 채 시골로 이사했다고. 국가 체제의 변화가 위에서 아래로 진행된 셈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강조하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권력의 중심이었던 왕이 힘의 분배를 제안하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얼핏 실마리가 보였다. 표내지 않던 데첸포당의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부터 국왕 스스로에 의한 입헌군주제 도입까지, 이 땅에는 물질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전통 복장을 입은 부탄 사람들
수도인 팀푸에선 현대식 건물을 찾아볼 수 없다
신호등이 없는 팀푸에선 사람이 로터리에 서서 수신호를 내린다
부탄의 3대 국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메모리얼 초르텐(Memorial Chorten)에서 기도하는 사람
부탄엔 어디에나 스님이 있다. 승복을 차려입은 동자승을 농수산물 시장에서 만날 줄이야
 
 
●우리는 행복하고, 당신도 그럴 거야

부탄의 수도인 팀푸는 산맥이 만들어 낸 계곡 사이에 자리했다. 수도라 하기엔 소박한 규모지만 없는 것은 고층 빌딩뿐, 축구장도 슈퍼도 클럽도 있을 것은 다 있다. 요즘은 자동차가 많이 들어와 교통 체증까지 생기고 있다 하니 도시의 악덕도 보유했다 하겠다. 그러나 바깥 세계의 흐름과는 다르다. 전통 양식에 근거해 건축을 해야 한다는 부탄법에 따라 시내의 풍경은 더없이 부탄스럽다. 외벽을 꾸미는 데 여전히 신화 속 동물을 그려 넣고, 높다는 건물도 최대 6층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삶도 다르지 않다. 

열에 아홉은 전통복장을 입고 있으니, 차라리 민속촌이라 했더라면 팀푸의 풍경이 더 쉽게 이해됐을지 모른다. 무릎까지 오는 통 넓은 겉옷을 입고 허리춤을 고정한 남자의 전통 옷 고(Gho), 원통형 치마와 앞섶이 투박한 웃옷을 같이 입는 여자의 전통 옷 키라(Kira). 톤 낮은 묵직한 색의 전통복장은 시내의 풍경에 이질감 없이 녹아 들었다. 색 바랜 오래된 전통 건물 사이에 있으니, 사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질감은 엉뚱한 데서 발견된다. 신발이다. 남자들은 앞코가 뾰족한 갈색 가죽구두를 반짝반짝 닦아서 신고, 여자들도 긴 치마 밑으로 굽 높은 뾰족구두를 신고 다닌다. 이 동네의 멋쟁이를 가리려면 구두부터 살펴보시라. 

부탄 사람들은 모두 유기농 농산물을 먹고 산다. 부탄 국토 안에서는 모든 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덕분이다. 주식으로 먹는 아스파라거스와 고사리도, 쌀과 고추도 모두 유기농이다. 마른 풀 냄새 자욱한 팀푸의 농수산물 시장에서는 전국의 농산물이 한데 모여 거래된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고지대의 척박함은 의외로 먹거리에서 나타났다. 찬찬히 훑어보면 거래되는 품목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다. 주식으로 먹는 농산물이나 계절 채소가 대부분이다. 

시장 1층 전체는 모두 부탄에서 생산된 유기농산물만 팔고, 2층에서는 주변 국가에서 수입해 온 농산물을 판다. 유기농에 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매기기 때문에 수입품이지만 가격이 더 저렴하다. 농수산물 시장 건너편의 작은 양계장에서는 생생한 날계란이 바로바로 포장되고 있다. 사람들은 두 손 바리바리 장을 보고도 계란을 한 판 들고서야 시장을 떠난다.

▶ACCOMMODATION
 
타라 펜델링 호텔(Tara Phendeyling Hotel)
팀푸에 자리한 3성급 호텔. 부탄의 전통 건물의 외관 그대로며, 체리색 목재를 사용해 무게감을 더했다. 단촐하지만 부족함 없는 살림이다. 도로를 마주하고 있어 약간의 소음이 있고, 밤이면 들개들이 짖는 소리도 들린다. 그럼에도 워낙 조용한 것이 부탄이니, 부담스럽지 않게 여행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에겐 아쉬울 것 없다. 
주소: Olakha, Bhutan
홈페이지: www.taraphendeyling.com
전화: +975 1712 7752 
 
 
타마 린카(Terma Linca)
팀푸 외곽, 시내와 30분 이상 떨어진 곳에 자리한 4성급 호텔이다. 팀푸를 흘러가는 왕추(Wangchu River)를 바로 마주보고 있어, 객실에서도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부탄의 전통을 고급스럽게 해석한 다양한 오브제들로 채워져 있다. 스파는 물론이고 부탄 전통식 핫 스톤 바스도 제공한다. 
주소: Babesa, Thimphu, Bhutan
홈페이지: termalinca.com
전화: +975 2 351490
 
 
글 차민경 기자  사진 정태겸  취재협조 부탄관광청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미투데이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