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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파로, 구하는 자를 구하기 위해서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7.07.1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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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 Paro
 
도출라 고개를 넘어 한밤에 닿은 파로는 가도가도 닿지 못할 것처럼 멀리 있었다. 외딴 산 속에서 빛을 발견한 것마냥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을 때도, 차를 타고 도착했을 때도 안도감이 몸을 휩쓸었다. 파로는 관문의 도시였다.
 
엄두도 안나는 길을 사람들은 멀리서 와서 멀리로 걸어간다
부탄의 대표적인 사원이자 관광지이기도 한 탁상곰파. 절벽에 놓여 있는 절은 결국 제 발로 걷지 않으면 닿을 수 없다  
 
●억겁의 시간을 쌓아

엄청난 무게였다. 한 발짝 발을 내딛는 데도 발밑에 땅이 끌려오는 듯. 탁상곰파(Taksang Gompa)를 오른다. 출발 전부터 고지에서의 산행이니 고산증을 막기 위해서는 천천히 산을 올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무려 3,100m, 저지대에서의 등산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그러나 의지로 속도를 조절할 필요는 없었다. 체력 부족을 고질병처럼 앓는 이에게는 감속 기능이 자동옵션이나 마찬가지다. 

부탄 사람들은 옆 동네 마실 다녀오듯이 속보로 탁상곰파를 왕복한다. 사실 고산증만 조심한다면 초보자에게도 올라가는 길 2시간, 내려오는 길 2시간 총 4시간 정도의 짧고 어렵지 않은 길이다. 중턱까지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선택지도 있다. 트레킹 길은 수시로 성격을 바꾼다. 좁고 가파르다가, 넓고 평탄했다가, 계단이 등장한다. 사원을 코 앞에 두고선 V자 모양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 한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마지막 인내를 짜 내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곳의 전설을 생각한다. 탁상곰파는 7세기 파드마삼바바가 수행을 하던 동굴이 있는 곳으로, 이어 여러 수행자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사원이 형성됐다. 파드마삼바바는 수행 당시 부인을 호랑이로 변신시켜 타고 산을 올랐다는데, ‘호랑이의 둥지(Tiger’s Nest)’로도 불리는 연유다. 길을 오르는 와중에 전설이 떠오르는 것은 탈것의 공평한 분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탁상곰파에는 총 5개의 사원이 모여 있다. 가장 효력이 영험하다 하는 곳은 파드마삼바바를 모시는 두 번째 사원이다. 불상이 말을 했다는 전설이 있을 뿐더러, 지난 1998년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유일하게 두 번째 사원만 불타지 않았단다. 수행을 하지 않은 일반인도 이곳에서 명상을 하면 어떤 기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앞서 몇 번이나 등장했듯, 티벳에서 부탄으로 불교를 들여온 파드마삼바바는 석가모니, 샵뚱 나왕 남갤과 함께 부탄에서 신성시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사원에서는 일반적으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왼쪽에 파드마삼바바, 오른쪽에 샵둥 나왕 남갤을 모신다. 설립 당시의 목적에 따라 변수는 있다. 탁상곰파의 두 번째 사원은 파드마삼바바를 모신다. 불상 앞 나무 바닥은 발바닥 모양으로 움푹 패였다. 같은 자리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몸을 숙였던 수행자의 자취다. 어느 기운보다 이곳에 쌓인 억겁의 시간이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티벳사자의 서>를 표현한 둥쩨라캉
 
키추사원을 찾은 사람과 오체투지 수행자
 
●지상 위로 밀어올려 주오

한낮의 쨍한 햇빛을 어둠이 흡수하는 것을 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얼핏 실루엣이라도 보이기 마련인데 오히려 어둠이 더욱 깊어지는 것도 보았다. 둥쩨라캉(Dungtse Lhakhang)에서다. 히말라야에 철교를 놓았던 땅똥걀뽀(Thangtong Gyalpo)가 8세기에 설계한 둥쩨라캉은 원형의 3층 사원이다. 불교 전파를 방해하는 악마의 머리를 누르고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일반적인 사원과는 조금 다른 구조다. 사원 안에는 빛이 통하지 않는 3층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빛이 없는 우주에 떨어진 양, 더듬더듬 벽을 짚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기를 들였지만, 벽화의 보존을 위해 켜지 않는다. 은밀히 들어오는 옅은 빛에 의존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벽화는 파드마삼바바의 <티벳사자의 서>를 표현한 것이다.
 
지옥을 표현한 1층은 천수관음 벽화가, 현상세계를 표현한 2층은 분노존이, 그리고 3층은 죽음 후 49일 동안 윤회의 굴레 앞에 선 영혼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그렸다. 어딘가 역설적인 방식이다. 지옥에는 자애로운 신이, 현상세계는 성내는 신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각각 지옥으로 떨어진 인간들을 돌보기 위함이고, 이승의 온갖 번뇌를 표현한 것이란다. 윤회를 탈피하라 종용하는 내용을 그린 3층엔 온갖 험악한 얼굴들이 가득하다. 어느 유혹에도 넘어가지 말라고 분노하는 모습과 공포스러운 모습으로 위협한다. 동물로도, 인간으로도, 신으로도 다시 태어나지 말고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란 것이다. 

그리고 오체투지 수행자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았다. 엎드리는 순간마다 쓰러지는 듯하던 수행자는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히말라야를 통일안 송챔캄포왕이 7세기 부탄에 와서 처음으로 건립했다는 키추사원(Kyichu Lhakhang)을 향하는 수행자다. 사원이 갖는 의미 덕분에 성지순례자가 많고, 수행의 목적지로 이곳을 선택하는 이가 많단다. 겨우 몇 발짝을 남겨 놓고 주저앉아 쉬는 수행자의 얼굴은 생을 닮아 있었다. 고통과 애환,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엉망진창의 표정. 그리고 그 표정의 번뜩이는 명암과 달리 너무나 잔잔하고 고요했던 부탄의 풍경이 서럽게 느껴졌던 것도 고백하겠다. 경계를 더듬는다. 수행자의 흙먼지 묻은 옷깃과 논밭의 푸름이 맞닿는 곳. 추상명사인 줄만 알았던 행복이 보통명사가 되던 땅. 그리고 전생을 마감했다는 어느 수행자의 환생. 멀리 점처럼 작아졌던 그 수행자가 다시 일어났을지는 모를 일이다. 희망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더니.  
 
 
▶travel  info
 
AIRLINE
부탄 국영 항공사인 드룩에어(Druk Air)는 방콕과 싱가포르, 델리와 카트만두 등에 직항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 주요 거점을 경유해 부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인천-방콕 노선이 많은 만큼 방콕을 경유해 가는 일정이 부탄 여행객에게는 가장 일반적이고 편리하지만, 델리나 카트만두 등을 경유해 한번에 서남아시아를 여행하는 방법도 있다. 

MONEY
눌트럼(Ngultrum)을 쓴다. 1달러는 약 60눌트럼이다. 기념품숍의 인기 품목인 부탄 위스키인 K5는 한 병이 800눌트럼, 곧 13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탁상곰파 언덕에 위치한 휴게소에서는 100눌트럼에 커피와 쿠키를 준다. 한국에서 눌트럼으로 환전하긴 어려우므로, 달러로 환전해 현지에서 다시 눌트럼으로 환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PACKAGE
자유여행은 불가능하다. 무조건 부탄 내 여행사와 함께 일정을 준비해야 하고, 부탄 현지 가이드가 동행해야만 여행할 수 있다. 또한 필수적으로 하루 1인 기준 200달러(비수기)~250달러(성수기)를 내야 한다. 환경부담금 명목으로 부과되는 이 비용에는 호텔 가격과 식비 및 현지 진행비가 모두 포함된다. 다만 올해 6월부터 8월까지는 한국과 부탄의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한국인에 한정한 환경부담금 특별 할인이 제공되므로 보다 경제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면 의심하시라. 호텔과 레스토랑 컨디션도 같이 낮아질 수 있다. 
 

SPOT
내셔널 뮤지엄(National Museum)

부탄은 박물관의 개념이 없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때문에 아주 오래된 유적과 유물 등이 옛 자리 그대로에 보존돼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내셔널 뮤지엄은 파로종이 지진으로 인해 파괴되면서 만들어졌다. 보존해야 할 것들이 불의의 사고로 없어지지 않도록 박물관을 만들어 파로종과 부탄 문화의 여러 단편들을 모아 뒀다. 조각상과 불화 등 역사를 지닌 물건들을 찾아볼 수 있다. 파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오픈: 매일 09:00~16:00(월요일 휴무)
 
 
붓다포인트(Buddha Point)
2005년 부탄의 5대 왕 즉위를 기념해 착공됐고 현재도 공사 중이다. 2,800m 높이에 위치해 계곡 아래로 팀푸 전경이 펼쳐진다. 불상은 51.5m 높이의 거대한 규모를 뽐내며, 청동 불상에 금을 씌워 황금색으로 반짝인다. 어마어마한 양의 금은 태국과 미얀마, 타이완 등의 국가에서 보시의 의미로 제공했다고. 

ACCOMMODATION
숙소는 고급스러운 5성급 호텔부터 현지인의 삶을 느낄 수 있는 홈스테이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호텔의 경우 대부분 로컬 브랜드이지만, 글로벌 브랜드도 간간이 눈에 띈다. 호텔 컨디션에 따라 체류비의 차이가 커지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부탄에서 흡연은 금지시 되지만, 호텔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흡연이 가능하다.
 
 
지와 링 호텔(Zhiwa Ling Hotel)
문 앞에서 꼭 심호흡을 하시라. 로비로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부탄과 불교 문화에서 차용한 모티브는 건물 전체에 겹겹이 녹아 있다. 여러 동의 건물로 나눠진 객실은 널찍한 언덕에 동그랗게 놓여 있고, 잘 정돈된 정원은 중국풍 삽화 속에서 본 듯 우아하다. 
주소: Post Box Number: 1230, Satsam Chorten, Paro, Bhutan
전화:+975 8 271277  
홈페이지: www.zhiwaling.com 
 
 
글 차민경 기자  사진 정태겸  취재협조 부탄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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