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태국 북부 난 “네게만 알려 줄게”

신중숙기자     작성일제305호(2017.07) 댓글0건
왓푸민의 벽화 ‘속삭임(The Whisper)’은 난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태국 어딘가에서도 분명 봤을 법한 남자와 여자는 난의 어디를 가도 등장한다. 
아직까지 여행자에게 낯선 이 도시, 
여자에게 다가가 밀담을 속삭이는 그 남자처럼 나는 말하고 싶다. 
“쉿, 이 근사한 여행지는 너한테만 살짝 알려 줄게.” 
 
난을 상징하는 왓 푸민의 벽화 ‘속삭임’, 이 그림과 이 그림을 응용해 만든 다양한 아이템은 난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다
일명 ‘실버 템플’이라 불리는 눈부신 왓 밍무앙
작은 사원인 왓 푸민은 벽화 ‘속삭임’ 하나로 난 시내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으로 그 존재감을 빛낸다 

난으로 가는 법 
한국-태국 난을 잇는 직항편은 없다. 방콕에 도착해 돈무앙 공항으로 가서 난으로 가는 국내선을 이용해야 한다. 치앙마이부터 시작해 그린 버스(Green Bus)를 타고 거점 도시에서 여행을 하며 난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 저가항공인 타이 에어아시아와 녹에어에서 방콕-난 항공편을 하루 2회씩 운항한다. 
www.greenbusthailand.com, www.nokair.com, www.airasia.com
 
●History 
산골짜기 홀로 반짝였던 난(Nan)

태국 북부의 중심 도시인 치앙마이에서 난으로 가는 여정은 몹시도 고단하다. 2,000m가 넘는 산들을 수십 개나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언제는 미얀마의 국경, 또 때로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라오스 국경을 달리다 거점 소도시를 들러 밥을 먹고, 명소를 돌고, 잠을 청하다 보니 며칠이 지나서야 난에 도착했다. 
 
산악지대에 자리한 난을 육로로 여행하려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셀 수 없이 건너야 하지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근사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주말이면 왓 푸민 앞으로 활기찬 시장이 펼쳐진다
 
온화한 도시, 살기 좋은 산동네 

방콕 돈무앙 공항에서 난까지 단 1시간 만에 올 수 있는 국내선이 있다지만 태국 북부의 산세, 3개국이 접한 국경의 풍경, 저마다 다른 매력의 소도시를 하나하나 만났던 그 경험도 결코 나쁘지 않다. 이 여정을 통해서 여러 나라에 접해 있으면서 고립 아닌 고립으로 그만의 개성이 반짝이는 난을 직접 체험했으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난 여행은 마치 보물을 찾은 듯한 이유 있는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치앙마이로 대표되는 란나 왕국(Lanna Kingdom)과 라오스 란쌍 왕국(Lan Xang Kingdom)의 중앙에 위치해 치앙 클랑 Chiang Klang(클랑은 중간이라는 의미)이라는 옛 이름을 가졌던 난. 태국과 라오스를 잇는 요충지이면서 산 속에 위치해 고립된 도시. 태국과 라오스의 혼혈인 소수민족이 사는 외딴 마을과 천년 가까이 이어져 온 소금 마을이 산허리를 하나 건너면 나타난다. 란나 양식과 수코타이 양식이 묘하게 섞인 난의 건축, 예술과 문화까지, 이곳은 태국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분위기와 색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난은 치앙마이를 비롯해 9개 소국의 연합체인 란나 왕국의 일부였다. 14세기 후반1368년 난타부리 왕국이 난강 서쪽에 도시를 세우면서 독립적인 역사가 시작된다. 북쪽보다는 남쪽으로의 접근이 쉬웠기에 수코타이 왕국과 협력해 독립을 유지하던 난 지역의 왕조들은 15세기 란나 왕국의 속국이 되었다. 그후 버마, 라오스, 시암으로 이어지는 주변 강대국들의 통치를 받다 결국 1788년 시암에 점령되었으나 자치권은 인정받았다. 1931년에 난은 독립 왕국의 종식을 고하고 라마 5세 때 태국에 편입됐다. 

처음 이곳을 가고 싶었던 건 태국 친구의 포스팅 때문이었다. 소금을 짓고, 쌀을 짓고, 채소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 거기에 더해진 예술적 감성이 마음을 들썩이게 했었다. 고산지대 작은 시골 마을이라고 생각했던 난은 어엿한 도시 그 자체였다. 난주(州)의 난시(市)는 인구 2만명의 작은 도시이고 대부분의 인구가 농사를 짓는데 결코 열악하거나 빈곤하지 않다. 오히려 방콕의 외딴 고급 거주지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거리는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으며 재래시장부터 대형 슈퍼마켓까지 없는 게 없다. 역사적으로 지형적으로 고립에 가까운 삶을 살아서인지 사람들은 태국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친절하고 다정하며 여유롭다. 열대우림의 고산지대로 산 사이에 포옥 안겨 안락한 기운이며 기후도 마냥 덥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산 속 특유의 상쾌함과 시원함이 느껴진다. 그 때문일까. 난은 역사, 문화, 예술의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보클루아 인근의 전망대
난의 마지막 왕이 살았던 소박한 집에는 현재 손녀들이 머문다. 앞으로 이곳을 박물관처럼 꾸밀 계획이다
작은 액자로 라마 9세의 초상화를 만든 벽에는 태국어로 ‘아버지’라고 써 있다
국립 박물관에서는 난의 영주 시대부터 태국의 역사를 두루 알아볼 수 있다 
 
난의 영주 시대부터 라마 9세까지 

여행자들의 통합정보 사이트인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or)’에도, 태국 사람들이 만든 가이드북이나 호텔에서 얻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 있다. 난의 마지막 영주, 차오 마하 브라마 수라타다(Chao Maha Brahma Surathada)가 살았으며 지금은 손녀들이 거주하는 집이다. 이 지역에 밝은 가이드 조이가 전화로 약속을 한 뒤에 그곳을 찾았다. 왕조가 쇠락할 무렵 거주했던 집이기 때문인지 2층짜리 가옥은 여염집처럼 소박했다. 거실에는 두 손녀들의 할아버지인, 난의 마지막 왕의 생전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이 벽면 가득 걸렸다. 방콕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할머니가 되어 버린 두 손녀들과 이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마지막 왕의 자취를 기리는 곳이지만 2016년 10월 서거한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Phumiphon Adunyadet)의 사진을 함께 전시해 둔 것이 인상적이다. 

언어적인 문제로 난 마지막 왕의 손녀들이 사는 집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난의 역사를 알고 여행하길 바라는 여행자라면 난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국립 박물관(Nan National Museum)을 들러 보자. 원래 박물관은 난의 영주였던 프라차오 수리야퐁 파리뎃(Phrachao Suriyaphong Pharidet)이 1903년에 지은 목조 건물로 왕궁으로 사용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영주였던 차오 마하 브라마 수라타다가 사망하자 후손들은 이 건물을 1931년에 중앙 정부에 기증했다. 그 후 난의 주정부청사로 사용하다 1973년에 박물관으로 개축했다. 2층으로 이뤄진 이 박물관은 시암에 편입하기 이전까지 독립된 도시 국가인 난의 역사를 시대별, 왕조별로 분류해 전시 중이다. 난 지역에 거주하는 타이루족(Tai Lue), 힌족(H’tin), 카무족(Khamu), 야오족(Yao), 흐몽족(Hmong) 등 소수민족들의 삶과 문화도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물은 흑상아(Black Elephant Tusk)를 들고 있는 가루다 상으로 난을 대표하는 보물이다. 검은 상아는 희귀할 뿐 아니라 상서로움의 상징인데 이 역시 난의 영주 가문이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태국의 종교와 역사, 난의 생활상과 유머까지 엿볼 수 있는 왓 푸민의 벽화

●Art & Culture 
웃음이 넘쳐나는 예술 공간 

태국인에게 난은 국립공원 안에서 캠핑이나 계곡 급류를 타며 래프팅을 즐기는 산악 여행지다. 하지만 대다수의 외국 여행자들은 태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사원 벽화를 보기 위해 난을 찾는다. 14~15세기 지어진 난의 사원 벽화 중 일부는 빗물에 훼손된 것도 있지만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의 비극적인 파괴에 시달리지 않았던 난의 역사처럼 대개는 보존상태가 좋다. 
 
왓 푸민과는 또다른 왓 밍무앙의 벽화. 선명한 컬러가 은빛 사원과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왓 프라탓창캄은 란나왕국과 수코타이왕국의 색깔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난에서는 사원 호핑! 

동남아시아 휴양지에서는 배를 타고 섬에서 섬 사이를 이동하며 즐기는 아일랜드 호핑(Island Hopping)이 필수이듯, 사원과 사원 사이를 넘나들며 개성 넘치는 각 사원마다의 매력을 호핑하며 감상하는 것은 난 여행의 필수코스다. 

일반적으로 태국 사원에는 부처의 일대기를 표현한 벽화가 있다. 하지만 난 사원의 벽화는 부처의 일대기는 물론 400년 전 서양 문명이 들어오던 당시 태국의 상황, 난 지역 사람들의 일상, 태국의 설화까지 다양하다. 마치 민속화처럼 컬러풀하며, 당시 시대를 잘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속적이고 해학적인 그림들 앞에서 낄낄 웃음이 절로 난다. 

난의 시내 중심에는 각기 다른 스타일의 벽화로 유명한 세 사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찾기도, 여행하기도 쉽다. 달랑 빌딩 한 채로 이뤄진 왓 푸민(Wat Phumin)은 이래 봬도 난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이곳에 속삭임 벽화가 있기 때문이다. “민속화 박물관 저리 가라” 할 수준의 아름다운 벽화로 가득한 왓 푸민은 1596년에 왕족만을 위해 건설된 곳이라 19세기 중반까지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다. 모든 벽면이 400년이 넘은 그림으로 채워져 있는데 부처의 생애보다 당시의 전쟁, 농사, 생활에서 연애에 이르기까지 그림이 표현하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흥미롭다. 벽화는 400년이 지났음에도 그 선과 색이 잘 보존됐다. 

왓 푸민에 비해 보다 젊은 사원인 왓 밍무앙(Wat Ming Muang)은 1857년에 세워졌다. 건물의 기둥과 벽을 회반죽으로 조각하는 하얀 스투코(Stucco) 양식의 사원이다. 왓 밍무앙은 은색 가루를 섞어 사원을 장식해 실버 템플이라고도 불린다. 강렬한 햇볕에 반짝이는 은빛 사원이 강렬하게 대조를 이루는 금색 기둥은 락 무앙(Lak Muang). 도시의 기둥이란 뜻으로 도시의 번영을 기원하며 도시 중심에 세워진다. 태국 사람들은 이 락 무앙에서 기도를 올리며 자신의 소원이 이뤄질지를 점친다. 다른 도시의 락 무앙은 높아야 2m 정도지만 왓 밍무앙의 것은 3m 정도로 큰데다 꼭대기에는 4면에 얼굴을 가진 브라마(Brahma)가 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외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요?” 등의 수많은 질문을 품고 그 앞에 줄을 선다. 왓 밍무앙의 벽화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색채감과 주제는 왓 푸민과는 또 다르다. 난 사람들의 일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색감도 더 컬러풀하다. 

왓 프라탓 창캄(Wat Phra That Chang Kham)은 왓 푸민보다 한 세기 먼저 지어진 사원으로 역시 왕족을 위해 지어졌다. 본당의 불상은 란나 왕국의 치앙 센 스타일이고 종 모양의 탑, 체디를 둘러싸고 있는 코끼리 조각상이나 건축 요소에서 수코타이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왓 프라탓 창캄의 벽화는 빗물에 지워져 정확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난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3km 떨어진 언덕에 세워진 왓 프라탓 채행(Wat Phra That Chae Haeng). 난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중 하나로 난강을 굽어보는 언덕에 세워졌다. 우리나라처럼 태국 사람들도 달에 토끼가 산다고 믿는다. 왓 프라탓 채행은 토끼해에 태어난 사람들을 위한 사원으로 사원 곳곳을 토끼 장식으로 꾸몄다. 그래서 이 사원은 2월 말에서 3월 초 풀문 축제 때 특히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왓 프라탓 채행보다 더 높은 언덕에 세워진 왓 프라탓 카오노이(Wat Phra That Khao Noi)는 난 시내가 한눈에 펼쳐져 전망대가 부럽지 않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깨끗하고 잘 정돈된 난의 시가지 풍경만도 아름다운데 일출과 일몰이 특히 아름다워 시간을 잘 맞춰 방문하길 권한다. 
 
토끼사원이라고 불리는 왓 프라탓 채행에서는 수코타이 스타일의 와불이 모셔졌다
난의 정갈한 전망을 내려다보기 안성맞춤인 왓 프라탓 카오노이
난 강가에 자리한 리버사이드 아트 갤러리는 전시된 예술작품도 볼거리지만 공간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구성해 사진 찍는 재미와 사진 찍히는 재미까지 쏠쏠한 곳이다 
 
공간이 감성을 극대화시키는 갤러리 
 
국립 박물관에서 총체적인 난의 역사를 먼저 만난다면, 예술적인 난을 한번에 만나 볼 수 있는 곳은 난 리버사이드 아트 갤러리(Nan Riverside Art Gallery)다. 난 출신의 유명 예술가인 위나이 프라브리푸(Winai Prabripoo)가 난의 예술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하고 예술가 지망생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이 멋진 갤러리를 난 강가에 만들었다. 

평화롭게 강이 흐르는 고즈넉한 공간에 본관, 정원을 낀 카페, 지하로 연결되는 난의 벽화 갤러리(Nan Mural), 갤러리 같은 기념품숍이 알차게 들어찼다. 사소한 공간까지 전시공간으로 쓰고, 주변의 자연을 멋진 배경으로 활용하는 듯한 전시가 인상적이다. 본관에는 난을 대표하는 속삭임 벽화를 패러디한 다채로운 작품을 비롯해 시린톤 공주(Princess Maha Chakri Sirindhorn)가 어린 시절 그렸던 그림도 전시돼 있다. 난의 벽화 갤러리는 2009년 12월부터 태국 최고의 벽화 아티스트인 난 푸아판(Nan Puaphan)이 그린 왓 푸민, 왓 프라탓 창캄, 왓 농부아(Wat Nong Bua)의 주요 벽화를 상세한 설명과 함께 상설 전시한다. 

난 시내에서 40km 떨어져 이곳만 오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인근의 탐파툽 공원(Tham Pha Tup Forest Park)과 연계해 방문하거나 난에서 푸아를 오갈 때 들르면 좋다. 
 
 
▶주말에만 열리는 신나는 장터 

매주 금, 토, 일요일에만 열리는 워킹 스트리트(Khuang Muang Walking Street)의 장터는 누군가에게는 분명 난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주말 오후 4시가 넘으면 왓 푸민 앞, 파콩 로드(Phakong Road) 앞에는 수많은 상인들이 각자의 매대를 장식한다. 소소한 기념품부터 생필품, 빈티지 소품까지 그 품목도 다채롭다. 주말 야시장의 꽃은 먹을거리다. 꼬치, 바비큐, 각종 태국음식의 향연을 10바트부터 50바트까지 싸고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워킹 스트리트에서 구입한 음식은 왓 푸민 광장에 펼쳐진 돗자리 위에서 태국 북부 스타일의 앉은뱅이 상인 ‘칸톡’ 위에 차려 놓고 먹으면 되니 그 운치는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오픈: 매주 금, 토, 일요일 16:00~21:00 
 
 
글 신중숙  사진 김아람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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