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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모든 곳이 낭만이고 예술이었다

  • Editor. 김진
  • 입력 2017.09.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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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 떠나기로 했다. 세계지도를 펼쳐 보았다. 
여유롭지만 허전하지 않은 곳, 활기차지만 그렇다고 빠르지는 않은 곳. 
그리고 직항으로 갈 수 있는 곳. 
손가락을 유럽 쪽으로 향했고, 머무른 곳은 체코였다. 
 

체스키크룸로프. 도시 입구부터 싱그러움이 가득해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한다. 이곳을 지나면 동화 같은 마을이 펼쳐진다
프라하의 랜드마크는 뭐니 뭐니해도 까를교다. 까를교를 지나지 않고 프라하를 여행하는 사람은 장담컨대 없을 것이다  
밤마다 북적대는 까를교도 오전에는 한산하다. 출근하는 프라하 사람들과 몇 명의 여행객만이 오간다
프라하의 길거리 연주자는 프라하의 낭만을 더한다 
 
 
 
●그럼에도 설레는 프라하
Prague
 
체코는 누가 뭐래도 낭만이다. 로맨틱, 연인, 사랑과 같은 달콤한 키워드들도 체코를 따라다닌다. 낭만 속에서 나 홀로 외로우면 또 어때. 몸서리쳐지게 외로워지면 그 맛있다는 맥주나 실컷 마시지 뭐.
 
 
올드타운 광장의 밤은 황금색으로 빛난다
천문시계가 정시를 가리키자 사람들이 모두 핸드폰 사진을 찍기 바쁘다
블타바강을 따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이음의 공간, 맺음의 시간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버스 안, 풍경은 상상해 왔던 평화로운 유럽의 마을, 그 자체였다. 탁 트인 초록빛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있었고,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짙어 갔다. 오랜 시간을 지켜 낸 건물들과 그 사이를 유유히 스쳐 가는 트램. 예상했던 이미지였는데도 가슴은 심하게 콩닥거렸다.   

짐을 풀자마자 까를교로 향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까를교(Charles Bridge) 주변은 과장 조금 보태 마치 성탄절의 명동처럼 붐볐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수록 사람들은 많아졌고 활기는 더해졌다. 블타바강(Vltava River)을 따라 줄을 선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은 석양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다리 위에서 화가는 그림을 그렸으며, 악사는 노래를 불렀다. 여행자들은 사진을 찍었다. 석양이 넘어가는 피크 타임은 북새통에 가깝다. 다리 옆에 늘어선 수호성상들은 수수께끼를 품은 듯 서 있었다. 황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에 나도 손을 대 보았다. 

까를교는 본래 블타바강의 양쪽 교역을 위해 마차가 다니는 길이었지만, 지금은 보행자 전용 다리가 되어 전 세계의 수많은 여행자를 불러 모은다.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위에서 연인들은 포옹하고 키스했다. 밤이 짙어지니 애정도 짙어진다. 

건축학적으로 이음을 본질로 하는 다리는 애정학적으로는 또 다른 이음의 공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력을 잃어 가던 미셸이 희망 없이 살아가던 알렉스를 만난 ‘퐁네프의 다리’, 시골에 고립돼 살던 프란체스카가 사진작가 로버트에게 안내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심지어 견우와 직녀를 이어 주던 ‘오작교(烏鵲橋)’까지. 뜬금없이 대학교 때 남자친구와 한강대교에서 키스했던 생각이 들면서,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았던 시절에 고개를 가로저었고 맥주나 마시러 가기로 했다. 

아기자기한 숍들과 아름다운 거리에 휩쓸려 걸었다. 과하게 고급스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저렴해 보이지도 않는 무난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목적은 맥주! 체코식 스튜인 굴라쉬(Goulash)나 체코식 족발인 꼴레뇨(Koleno), 피자, 소시지….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은 사회성이 좋은 맥주다. 어디에나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고백하자면 체코 여행 내내 나는 물 대신 맥주를 마셨다. 웬만한 레스토랑에서도 한 잔에 2,500원이 넘지 않으니 부담이 없고, 마트에서도 필스너 병맥주 하나에 25코루나 정도로 한화로 1,500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가성비로 따져 보았을 때 체코 맥주가 물보다 싸다는 말이 그다지 과장은 아닌 듯했다.  

어둠이 그윽하게 깔린 올드타운 광장으로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광장은 마치 중세 건축양식의 박물관처럼 고풍스러운 성당과 궁전 등이 사방에 널려 있다. 하나같이 금빛 조명을 받아 화려하다. 금빛 비가 광장을 적시니 로맨틱한 분위기가 더욱 깊어졌다. 여전히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노천카페에서는 맥주잔이 끊임없이 부딪혔다. 

유독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 곳으로 향하니 구 시청사 건물이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구 시청사(Old Town City Hall)의 꼭대기에는 조명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천문시계(Astronomical Clock)가 있다. 얼추 세어도 100~200명 정도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비를 맞으면서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곧 시계바늘이 정시를 가리킨다는 신호다. 9시 정각이 됐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소리와 사람들의 감탄사가 섞여 나왔다. 

천문시계에서 해골인형이 종을 치며 죽음의 때를 알린다. 나머지 인형은 고개를 저으며 죽음을 거부한다. 그리고 시계 위 두 개의 창문이 열리고 예수의 12사도가 지나간다. 심판이 끝나고 신의 통치가 도래함을 의미한다. 1분간의 짧은 퍼포먼스는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죽음 앞에 인간의 욕심은 부질없고 인간에게 시간은 유한하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행자들에게도 이 밤의 시간은 유한했는지 퍼포먼스의 끝나자마자 다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필스너 우르켈과 수제 소시지

1838년 저질 맥주에 화가 난 체코 사람들은 플젠Plzen에서 맥주통을 엎어 버리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양조업자들은 품질이 우수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필스너 우르켈은 전세계 필스너 맥주의 모델이 됐다. 우르켈(Urquell)은 오리지널(origianl)이라는 뜻으로 원조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프라하성에서 근무하는 병사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진행되는 근위교대식이 지루한지 팔짱끼고 바라보고 있다
프라하 성의 스타벅스에서는 커피 한 잔 값으로 프라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은 카메라로 다 담기 힘들 정도로 높게 솟아 있다
 
 

수려함, 화려함, 소박함 모두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성城>을 읽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가 모티브를 얻었다던 프라하성Prague Castle은 꼭 가 보고 싶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성이자 천년 이상 동안 체코의 상징이 되어 온 프라하성은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할 만큼 규모가 크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100~200m는 되어 보이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배우로 전직해도 될 만한 수려한 외모의 체코 여성 경찰이 입구에서 가방검사와 몸수색을 한다. 그 짧은 과정을 거쳐 성으로 빨려 들어갔다.   

황금소로(Golden Lane)는 프라하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로 사용되었다가 16세기 후반부터 연금술사와 금은 세공사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헤미아 글라스 세공 상점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가격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깨알만 한 꽃이 그려진 황금빛 와인 잔 하나에 20만원. 양해를 구하고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인파에 휩쓸려 걷다 보니 성(聖) 비투스 대성당. 보자마자 압도된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짙은 회색 벽과 하늘로 솟아오른 뾰족한 첨탑. 거대한 성당을 찍기 위해 사람들은 최대한 먼 곳으로 가거나 누워서 셔터를 누른다. 

근위병 교대식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정시마다 진행되는 이 행사가 지루했는지 사람들의 출입을 제지하는 병사는 팔짱을 끼며 바깥쪽만 내다봤다. 프라하성의 스타벅스는 자리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생각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볼 수 있는 프라하 전망은 압권이다.
 
오페라 가수들의 목소리가 화려한 국립 오페라 하우스에 가득 퍼진다
프라하에서는 다양한 마리오네트 인형을 기념품 상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대 밖의 이야기들 

오페라의 ‘O’도 모르는 내게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 주연 테너의 초대로 프라하 국립 오페라 하우스(State Opera House)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되어야 했던 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바그너의 작품이다. 무대 바로 앞에서 듣는 프라하의 오페라라니. 오페라 하우스를 가득 메우던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에 푹 빠져 들었다. 리허설을 단독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실수도 하고 다시 맞춰 보고 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놀라운 것은 결혼행진곡으로 알려진 곡이 이 로엔그린 3막에 등장하는 ‘신부의 합창’이었다는 사실.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는 호화스러움의 극치다. 천장은 몽환적인 느낌의 프레스코화가 가득하고 그림을 감싼 금칠 장식이 호사스럽다. 중앙에 달린 샹들리에는 화려함에 방점을 찍었다. 엉덩이를 한껏 부풀린 드레스를 입고 깃털로 장식한 모자를 쓴 귀족 부인들이 테라스 석에 앉아 있을 것만 같다. 아마도 오페라 하우스가 지어진 1888년, 그 즈음에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숙소 주변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마리오네트 국립극장(National Marionette Theatre)을 발견했다. 구시가지에 자리잡고 있지만, 대로변에서 한 블럭 들어간 건물의 지하여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다. 늦은 저녁에 예매를 하러 가니 국립극장 입구에는 커다란 쓰레기통과 취객 한 명이 쓰러져있었다. 전통 있는 국립극장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외관과 주변 분위기에 살짝 당황했다. 내부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나무로 만든 딱딱한 의자, 낡은 문, 오래된 커튼…. 시골 아이들을 위한 작은 인형극장 같다. 커튼이 열리고 지휘자 인형이 등장하면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가 시작됐다.

호기심을 가장 자극한 것은 인형을 움직이는 사람의 손이었다. 손의 움직임을 따라서 인형을 연결한 끈이 상하좌우 유연하게 움직이고 관절 인형은 생동감 넘치게 연기를 시작한다. 손과 끈은 생명을, 음악은 숨결과 감성을 불어넣었다. 이탈리아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오페라 내용을 숙지해 가니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100석이 될까 말까 한 작은 극장에는 동양인 관람객이 많은 편이었고, 공연은 약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마리오네트 인형극은 인형극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16세기 체코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편입된 이후 체코의 귀족과 부르주아들은 사대주의에 젖어 독일 문화를 받아들이고 독일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반면 민중들은 체코어를 고집하면서 마리오네트 공연을 진행했고 시대를 풍자했다. 민족 정체성을 지켜 낸 마리오네트 공연이라니 소박한 공연장과 인형극이 달리 보인다. 
 
 
 
찾고 싶었던 그 글귀
 
사람 속에서 휩쓸리듯 걷다 보니 우연히 존 레논 벽(John Lennon Wall)에 도착했다. 옛 그림 위에 다른 그림이 덧그려져서 사진으로 본 모습과는 달랐다. 사진을 찍거나 벽을 만지거나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멀리서 바라보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의 벽을 즐긴다. 

존 레논 벽은 체코의 자유가 억압돼 있던 1980년대, 자유를 열망하던 프라하의 젊은이들이 몰타 대사관의 벽에 존 레논의 노랫말과 사회 비판 메시지를 남기면서부터 시작됐다. 아무 상관이 없는 몰타 대사관 벽이라는 것이 의아했는데, 아마도 대로를 비껴난 곳이어서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하기 편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었다. 둘러보니 낙서를 할 만한 넓은 벽으로 이만한 게 없긴 했다. 최근엔 ‘박근혜는 하야하라’라는 글이 새겨졌었다던데 다른 그림에 가려서 찾을 수는 없었다. 체코 청년들이 가졌던 민주화와 열망이 새겨진 곳에서 괜히 나는 그 글귀를 찾아보고 싶었다. 
 
 
 체스키크룸로프성에서 내려다본 마을. 붉은 지붕 아래로 중세의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나는 걸었네 
Cesky Krumlov
 
지금 생각해 봐도 여행 일정 중 이틀을 체스키크룸로프에 투자한 건 잘한 일이다. 당일 여행이었다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정처 없이, 계획 없이 

프라하 안델(Andel) 부근에서 체스키크룸로프행 버스를 탔다.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들판은 유채꽃으로 덮여 가고 있었다. 연둣빛과 노랑색의 조화가 싱그럽다. 까놀라유의 생산지가 아닐까 생각하며 작은 도시 두 곳을 거쳐 가니, 2시간 반 만에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했다. 블타바강의 지류는 체스키크룸로프를 동그랗게 감아 돈다. 일부러 땅을 파서 만든 해자처럼 외부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형상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싱그러운 초록의 향연이다. 체스키크룸로프는 ‘체코의 오솔길’이라는 뜻이라는데, 이름 그대로 걷기 좋은 마을이었다.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도 붉은 지붕의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잔잔한 강물과 오가는 여행자들의 말소리, 새들의 지저귐만이 동동 떠다닌다. 강가에 들어선 레스토랑들에는 여행자들이 한가로이 음식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돌바닥 때문에 자동차도 속도를 낼 수 없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발길 닿는 대로 걷기로 했다.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어 반나절이면 웬만한 곳은 다 돌아볼 수 있지만, 이런 곳이야말로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좋겠다. 워낙 작은 도시여서 많은 사람들이 당일 투어로 많이 찾는다. 대충 보면 반나절이면 충분하니까. 그러나 제대로 보려면 이틀도 부족하다. 골목은 이리저리 연결돼 있고 길을 잃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길을 잃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우연히 발견한 예쁜 상점이나 카페, 박물관, 성당…. 계획 없이 마주친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프라하의 소박하고 예쁘장한 모습만 쏙 빼서 옮겨 놓은 느낌이랄까.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배경으로 서양 동화를 쓴다면, 이곳을 떠올려 가며 쓰지 않을까. 글의 재료가 부족할 때 이곳에 오면 재료가 퐁퐁 솟아날 것 같다. 
 
 에곤 실레 아트센터 출입구. 양조장을 개조한 건물의 빈티지한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체스키크룸로프성 비투스 성당 내부. 작은 규모지만 웅장하고 화려하고 엄숙하다
체스키크룸로프성. 오차 없이 쌓아 올린 벽돌로 보이지만 사실은 스그라피토 기법으로 완성한 채색벽이다
 
 
에곤 실레가 사랑한 이유 

예술가가 사랑한 도시는 분명 이유가 있다. 프라하가 프란츠 카프카의 사랑을 받았다면, 체스키크룸로프는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의 사랑을 받았다. 어여쁘기 그지없는 체스키크룸로프에서 에곤 실레가 예술적 영감을 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 

에곤 실레 아트센터(Egon Schiele Art Centrum)는 옛 양조장을 개조한 거친 느낌의 건물을 그대로 살려 빈티지한 느낌이 가득하다. 건물 벽면에서부터 에곤 실레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체스키크룸로프에서는 가장 독특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에곤 실레는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간단한 드로잉부터 자화상, 체스키크룸로프 이모저모를 담은 그림까지. 기괴한 표정의 얼굴과 몸동작, 과장된 눈동자,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선과 색채에서 화가의 우울과 불안을 엿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체스키크룸로프를 그린 작품들인데 방금 내가 지나쳐 온 곳이 그의 드로잉 안에 남아 있다. 그림 속의 마을과 내가 걷고 있는 지금의 마을이 거의 똑같다. 시간도 이곳에 와서 멈추어 버렸던 것일까.    

체스키크룸로프성(Cesky Krumlov Castle)에 오르면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13세기 크룸로프 영주가 돌산 위에 이 성을 짓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이 후 여러 가문을 거치면서 16세기경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멀리서 바라봤을 때와는 달리 성에 막상 들어가 보니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이라는 말대로 규모가 무척 웅장하다. 성의 외벽이 독특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쌓아 올려진 데다가 비현실적인 색감이 의아해서 다가가 봤더니 채색을 한 것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한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이라고 한다.  

체스키크룸로프성 어디에서나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지만, 그 중 최고의 전망대는 흐라데크 타워(Hradek Tower)다. 200여 개의 좁은 계단은 끝도 없이 뱅그르르 이어져 있다. 높이는 54.5m이지만 성 자체가 돌산 위에 지어져서 마을이 더 넓고 멀리까지 보인다. 옹기종기 붙어 있는 붉은 지붕 사이로 사람들이 개미만하다 

이 예쁜 곳을 왜 혼자 왔냐며 한국인 중년부부가 타박 아닌 타박을 한다. 그러게요. 다음에 같이 올 기회가 있겠죠. 중년부부에게 멋진 커플 사진을 몇 장 선사해 주고 돌아섰다. 나는 혼자여도 그저 뿌듯했다.  
 
 
글 ·사진 김진  에디터 트래비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김진은 기업체 홍보팀에서 10여 년 근무하다가 현재 작은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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