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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둥에서 민수를 만났다

  • Editor. 김예지
  • 입력 2017.09.06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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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타이베이’라는 공식이 무너진 건 한 밤이 지나고 나서였다.
두 밤, 세 밤이 지나자 새로운 공식들이 성립되기 시작했다.
바다와 산, 때로는 꽃과 사람.
조금은 낯선 타이완에서 민수가 선사한 답이다.

부논 레저 팜 기념품 숍에서 만난 아이. 미소가 참 귀여웠는데
 
민수(民宿)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타이완에서 민수는 우리나라에서 민박, 요즘 말로는 비앤비(B&B) 정도라 할 수 있겠다. 호텔의 장점이 깔끔하고 정확한 서비스라면 민수의 좋은 점은 집 같은 분위기와 따스한 정이다. 호스트가 직접 아침을 만들고, 관광객들은 절대 모를 숨은 장소를 귀띔해 주기도 한다. 민수는 사람 이름이 아니지만 결국에는 사람에 닿는다. 그렇기에 이 여행기는 어쩌면 사람 이야기에 더 가깝다.

타이완을 비단 타이베이만으로 논할 수 없다. 3박 4일 여정 내내 든 생각이다. 타이완 동부 해안을 따라 타이둥에서 화롄 지역까지 거슬러 오르는 동안 화려한 사원도, 홍등이 즐비한 거리도 보지 못했다. 지금껏 알던 타이완과 확연히 다른 풍경들이었다. 타이완의 지도를 두고 누군가는 망고, 누군가는 나뭇잎 같다고 한다. 망고라면 끝까지 먹어 볼 일이고 나뭇잎이라면 결결이 뜯어 볼 일이다. 
 
●고유한 세계를 사는 사람들
 
이곳에서, 목청과 손재주를 
타고난 사람들을 만났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어 특유하다.’  
혹시나 사전에서 ‘고유하다’를 찾으니
역시나 이들을 위한 말이었다.
 
 
아주머니의 손에서 탄생하는 부논족의 색깔
부논의 세상에 들어왔음을 알리는 입구 표지판
 
꼭 맞잡은 그들의 손처럼 부논족의 문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길

●타이둥 台東
사라져 가는 것들을 지키는 일

까무잡잡한 피부에 쌍꺼풀 짙은 눈.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봐도 타이완인 같지가 않다. 타이둥에 도착한 후 처음 만난 샘(Sam)은 타이완에 대한 고정관념을 처음으로 깬 사람이자 이번 ‘민수’ 여행의 첫 호스트다.

타이완 사람들이 모두 똑같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한漢족이 이주해 오기 오래 전부터 타이완 원주민들은 이 섬을 터전으로 살아왔으니 말이다. 아미(阿美)족, 파이완(排灣)족, 타로코(太魯閣)족 등 16개 원주민족은 주로 타이완섬의 중앙이나 동쪽의 높은 산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농사를 짓고 낚시를 하고 사냥을 하며 살던 이들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지키는 일이 더 이상 녹록치 않아진 까닭이다. 

정체성을 지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누구가는 베를 짜고, 누군가는 논을 가꾼다. 부논 레저 팜(Bunun Leisure Farm) 사람들의 이야기다. 부논 레저 팜은 16개의 원주민족 중 4번째로 큰 부논족이 모여 사는 공간으로, 부논 출신의 한 목사(白光勝牧師)가 지었다. 산속에서 도시로 나간 젊은이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한 그는 1984년, 학교와 교회 등 기본적인 시설을 세웠다. 이후 부논 문화교육 재단(Bunun Cultural & Educational Foundation)을 설립하는 등 조직적인 체계를 갖춰 현재는 방문객들을 위한 숙소와 극장, 공연, 기념품 숍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빨갛고 노란 색색들이 눈에 들어왔다. 강렬한 원색은 부논족의 특징 중 하나다. 부논 사람들은 음악에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기로도 유명하다. 마침 중앙 무대에서는 한바탕 공연이 열렸는데,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가족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그들의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색을 띨 것, 함께할 것, 자신의 본분을 다할 것, 세상에 존재를 알릴 것. 산속이 아닌 땅 위에서 터득한 부논족의 삶의 방식이다.

다시 샘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아미족과 파이완족의 혼혈인 그는 타이둥에서 태어났지만 타이베이로 가 10여 년간 호텔업에 종사했다. 그가 고향인 파이완 빌리지(Paiwan Village)로 다시 돌아온 건 3~4년 전의 일이다. 뿌리를 찾아서였다. 부논 레저 팜처럼 크진 않지만, 그는 집을 지었다. 민수였다.
 
부논 레저 팜
주소: No. 191, 11th Neighborhood, Taoyuan Village, Yanping Township, Taitung County 953, Taiwan
전화: +886 89 561211
 
 
 
 
 
●한 밤의 민수
다게단 하우스(Dagedan House)
두 남자의 슬로 라이프

샘의 민수, 다게단 하우스는 조용한 주택가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작지만 푸릇푸릇한 정원이 딸린 집이다. 아까부터 샘은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며 뜸을 들였더랬다. 깜깜한 밤 환한 미소로 우리 일행을 맞아 주던 또 다른 호스트, 지미(Jimmy)다.

다게단 하우스는 샘 가족의 귀향에서부터 시작됐다. 타이베이에서 직장을 은퇴한 샘의 부모님은 고향인 타이둥으로 돌아왔고, 샘도 곧 뒤를 이었다. 샘은 부모님 집의 일부 공간을 개조해 민수를 시작할 계획을 세웠고, 이에 샘의 친구 지미가 합류했다. “당시 타이베이에서 무려 7개 직업을 소화하며 숨 가쁘게 살고 있었어요. 삶의 속도를 늦추고 싶었죠.” 그렇게 2014년 두 남자는 민수를 오픈했다. ‘다게단(Dagedan)’은 파이완어로 ‘잠잘 곳’이라는 뜻이다. 

방은 총 4개. 편안한 작업실 느낌이랄까, 모던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에 벽이나 바닥 색이 인위적이기보다는 자연스럽다. 다게단 하우스는 환경 친화를 콘셉트로 하는데,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 어메니티도 꼭 필요한 게스트들에 한해서만 제공하고 있다고.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칫솔이 없더라니.

지미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 건 다음날 아침이다. 민수를 운영하면서부터 베이킹을 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아침마다 직접 빵을 굽고 샐러드를 만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폭신한 빵은 물론 사이드 메뉴, 소스 하나하나에도 그의 손맛이 담겼다. 지미의 목적은 최대한 지역 재료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파이완족의 색깔이 담긴 또 어떤 메뉴를 개발할까, 그는 몇 년째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다.

다게단 하우스는 샘에게는 정체성을, 지미에게는 삶의 속도를 되찾아 주었다. “익숙한 것들을 버린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때의 선택과 현재의 삶에 만족해요.” 문 앞까지 배웅 나온 두 남자의 얼굴에서 알 수 있었다. 용기 있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 복이 아주 오래오래 이곳에 머무르길 바랐다.
 
오른쪽부터 샘과 삐삐, 지미, 파이완 청년 에릭. 기사에 등장하지 않은 샘의 반려견 삐삐는 사실 모든 게스트를 매료시킨 치명적인 매력의 호스트였다.
 
주소: No. 128, Jinren Village, Taimali Township, Taitung County, Taiwan
전화:+886 89 771 551
이메일:  dagedanhouse@gmail.com
 
 
논을 달리는 풍경. 자전거는 이에 가장 걸맞고도 탁월한 수단이다
미스터 브라운 애비뉴에서 내가 만약 광고를 찍는다면 이런 장면이 아닐까
치샹의 미스터 브라운 애비뉴. 논을 둘러싼 산 위에는 구름이 솜사탕처럼 걸렸다

●논을 가로지르는 가장 낭만적인 속도

파스텔 톤의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넉넉한 창이 달린 모자를 쓴 여자. 그녀는 여유롭게 페달을 밟고 있다. 햇빛은 눈부시게 밝고 공기는 티 없이 맑다. 살살거리는 바람결에 그녀의 머릿결이 곱게 흩어진다. 내가 만약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어떤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사람 맘이 그리 다르진 않나 보다. 타이완에서 가장 큰 쌀 생산지 중 하나인 치샹(池上)에서 미스터 브라운 애비뉴(Mr. Brown Avenue)라 불리는 이 길은 이미 TV 광고에 심심찮게 등장했다. 이름부터가 증거다. 타이완 커피 브랜드인 미스터 브라운 커피(Mr. Brown Coffee)의 광고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급기야 미스터 브라운 애비뉴라 불리게 된 것. 이후 한 항공사 광고에서 배우 금성무(金城武)가 자전거를 타는 배경지로 등장하며 더욱 알려졌고, ‘천국의 초록 길(Green Road of Paradise)’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천막이 있는 전기 자전거를 하나 빌렸다. 논길에서 자전거는 처음이다. 그런데 직접 타 보니 알겠다. 자전거는 논을 가로지르는 가장 낭만적인 수단이란 걸. 걸었다면 너무 더웠을 테고 차를 탔다면 너무 빨랐을 테다. 경운기였다면 조금은 답답했을 것 같다. 사람 맘이 그리 다르진 않나 보다. 타이완 라이더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더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하늘과 산이 맞닿아 펼쳐지는 이 장면에 딱 맞는 속도다. 걷는 듯 달리는 듯 앞으로 나아가니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천국의 길 위에서.

대여한 자전거를 다시 돌려주고 치샹역으로 향했다. 화롄행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여행에 점차 속도가 붙을 무렵이었다. 타이베이가 아닌 타이완에도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다. 기차를 타고서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자전거였다면 지금부터는 기차, 아니 이보다도 빠를지 모른다고.  
  
미스터 브라운 애비뉴
주소: Mr. Brown Avenue, Chihshang Township, Taitung County, Taiwan
 
 
▶travel info
 
MINSU  GUIDE
민수를 만나려면
키트래블(Kitravel)

민수 비즈니스에 특화된 타이완 현지 여행사. 타이둥, 화롄과 같은 타이완 동부뿐 아니라 중앙지방인 먀오리(苗栗), 난터우(南投), 타이완 남쪽에 위치한 핑둥(屏東) 등 지역별로 다양한 민수들의 정보를 갖고 있다. 웹페이지에 들어가면 타이완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하이킹 트레일, 숨겨진 장소 등 알짜 정보가 담긴 ‘한국어’ 타이완 가이드 지도를 다운받을 수 있다. 
 www.travel-kitaiwan.com
 
AIRLINE
에바항공이 인천-타이베이(주 21회) 노선을 비롯해 김포-송산(주 4회), 인천-가오슝(주 7회), 인천-타이중(주 2회) 노선을 운항한다. 일본 산리오사와 협력 제작한 ‘배드 바츠마루 비행기’는 인천-타이베이 노선에 투입되니 참고할 것. 자회사인 유니항공과의 국내 노선 연결 요금 상품을 통하면 타 지역으로도 한번에 저렴하게 갈 수 있는데, 인천·김포에서 화롄·타이둥·진먼·마공·마주로 연결 예약할 수 있고 환승지에서 무료 스톱오버도 2회까지 가능하다. 스타얼라이언스Star Alliance 마일리지 적립이 되며 국제선 수하물 허용 무게는 이코노미 30kg, 비즈니스 40kg다.
에바항공  www.evaair.com/ko-kr
 
 
RESORT
원주민의 정신이 담긴
마타 타이완 인디제너스 컬처럴 리조트
MATA Taiwan Indigenous Cultural Resort

다게단 하우스의 호스트, 샘이 매니저로 일하는 곳. 원주민의 문화와 예술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리조트로, 숙소뿐만 아니라 축제나 전시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1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은 타이완 원주민의 독특한 스타일과 현대적인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식사 메뉴는 대체로 신선하고 건강한데, 주로 이 지역에서 나는 로컬 재료를 사용해 원주민의 레시피로 요리한다. 다양한 원주민들이 만든 나무 조각 작품과 바구니, 기념품 등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소: No. 10, Zhongshan Road, 950 Taitung County, Taiwan
전화: +886 89 340 605  
이메일: matataitung@gmail.com
 
 
취재협조 키트래블, 에바항공
글 김예지 기자  사진 이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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