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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 페로제도-걷고 또 걷다, 작지만 거대한 자연

  • Editor. 유호상
  • 입력 2017.10.12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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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제도 출신의 유명한 시인이자 작가인 윌리엄 하이네센(William Heinzen, 1900~1991년)은 수도인 토르스하운(Torshavn)을 ‘세상의 배꼽’이라 불렀다. 물론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페로제도를 둘러싸고 있는 대양 그리고 이웃한 대륙들과 비교했을 때 페로의 섬들이 얼마나 왜소하게 느껴졌는지를 비유한 것이다. 
 
페로제도의 북쪽 끝 섬 비도이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요?
 
페로제도 제2의 타운인 인구 5,000명의 클라스빅(Klaksvik) 안내 센터에서 칼소이(Kalsoy)섬으로 가는 정보를 묻고 있던 우리. 여자 직원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어 왔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다는 대답에 그녀는 감탄스럽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근데 여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오게 됐어요?”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처음 페로제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온통 피로 물든 시뻘건 바닷가, 죽어 가는 고래들을 끌어내는 어부들. ‘그린다드랍(Grindadrap)’이라 부르는 고래사냥이 계기였다. 그리 유쾌한 이벤트는 아니지만 호기심에 이끌렸다. 그런데 페로제도에 대해 알아보니 호기심을 자극하는 특종은 고래잡이뿐만이 아니었다. 

Faroe Islands | 대서양 북쪽 스코틀랜드와 아이슬란드의 중간 지점에 홀로 위치한 이곳은 나라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작은 덴마크령 군도이다. 제주도보다 조금 작은 면적(1,399km2)에 약 5만 명이 살고 있다. 뾰족한 모양으로 솟은 피오르와 좁은 만으로 이루어진 18개의 화산섬들. 남북간 113km, 동서간 75km 길이의 이 군도는 덴마크 왕국에 속해 있지만 스스로를 독립적인 나라로 여겨 독자적인 언어, 화폐, 국기와 국가가 있다. 페로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대략 1225년경이라는데 ‘파레야르(Faereyjar)’, 즉 ‘양의 섬’이라는 의미였다. 인구 5만 명에 양이 7만 마리나 되기 때문이다.
 
피오르와 만으로 이루어진 페로의 북쪽 섬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비도이섬
 
●페로제도에 대한 의문 

외롭고 척박하기 그지없는 이 섬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 비바람을 맞아 가며 외딴 트레일을 걷노라면 한 번쯤 드는 의문이다. 덴마크에서는 페로제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거나 심지어 자기네 땅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어떻게 이 멀리 떨어진 섬이 덴마크에 속하게 되었을까?
 
페로의 습한 기후를 보여 주는 이끼가 가득한 담장
부둣가에 남은 지난세월의 흔적
 
 
덴마크와의 인연

산도이(Sandoy)섬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서기 약 300년경부터 사람이 산 흔적이 있다. 그들이 정확히 누구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6세기경이다. 노르웨이 군주의 폭정을 피해서 이주했던 것이다. 이때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로부터도 이주민들이 들어오게 된다. 그중에는 ‘성인들(saints)의 약속의 땅’을 찾아다니는 아일랜드 수도승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며칠간의 항해 끝에 ‘양들의 섬과 새들의 낙원’을 발견했다는 말이 이들의 기록에 나온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초기 정착민들은 계속되는 바이킹의 습격에 시달리다 모두 떠나고 그 후에는 바이킹이 들어와 살게 된다. 11세기부터는 자연스럽게 노르웨이 왕국에 편입되었으며, 14세기 후반에는 노르웨이 왕과 덴마크 왕이 하나로 합치게 된다. 16세기 당시 양국을 통치하던 왕인 크리스티앙 2세는 아이슬란드와 페로제도를 영국의 헨리 8세에게 팔려 고 했지만 그의 거절로 기사회생(?)한다. 이때의 거절로 오늘날까지 페로제도가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후세의 역사학자들은 분석한다. 1814년 노르웨이가 스웨덴 왕에게 양도될 때 페로제도를 비롯한 서쪽의 영토들은 덴마크 왕국 아래 남았다. 
 
페로에서는 구름이 산을 타고 넘는 것이 흔한 풍경이다
 
영국, 점령국인가 수호천사인가

아무래도 직접 와 닿는 부분은 근대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하자 영국은 페로제도까지 히틀러의 손아귀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다. 대서양 통로가 막히기 때문이다. 이에 1940년 페로제도를 미리 점령해 버리는 ‘발렌타인 작전(Operation Valentine)’을 실시한다. 그렇게 영국군은 당시 인구 3만여 명이었던 페로제도에 상륙한다. 이때 영국군이 가장 고심했던 것은 도대체 이런 지형에서 공항을 어디에 어떻게 짓느냐 하는 문제였다고. 겨우 부지를 찾아 활주로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페로제도의 관문이자 유일한 공항인 보괴르(Vagar) 공항이다. 

이곳에 파견된 영국군들은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았던 게 틀림없다. 독일군은 이곳으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의 포화가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동안 낙도에 주둔했던 영국군들은 이 멋진 경치를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당시 페로 주둔 영국 군인들과 페로 여성 간의 결혼이 약 170여 건이나 있었다고 하니 ‘러브 스토리’까지 덤이었다.

1940년 4월25일 페로제도를 점령한 영국 정부는 이곳의 선박들이 국기인 메르키(Merkið)를 사용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페로 사람들로서는 자신들의 독립을 영국으로부터 공식 인정 받은 큰 사건으로, 그 후 이 날은 플래그데이(Flag Day)라 하여 페로제도의 국경일이 되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페로의 국기를 허용한 가장 큰 이유는 적국 선박과 페로의 어선들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니 동상이몽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조금 아이러니 하다. 

종전 후, 1948년에야 페로제도는 덴마크에서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 자치령으로 지정되었다. 법령 제정을 기반으로 무역, 과세, 사회안전망, 교육 부문에서 완전히 자치를 할 수 있게 된 것. 대신 덴마크는 국방, 치안, 대 EU 교섭권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다(덴마크와 달리 페로는 EU 회원국이 아니다). 1938년까지 학교와 교회에서 페로어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하니 도리어 모국어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할지 상상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페로제도나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지역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입법의회 로그(Løgting) 혹은 알팅(Althing)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적 의회체계로 여겨지는데 서기 9세기경 고대 바이킹의 전통에 기반한 헌법 등과 맞물려 페로제도가 강력한 왕국들과 협상하고 오늘날까지 살아남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단순히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고 변방에 위치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니라는 말이다. 
 
바람에 날리는 가사달루르 폭포

●이 나라를 여행하는 법 

코펜하겐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곧 착륙함을 알리는 기장의 방송이 나온 지 몇 분. 기내가 다소 소란스럽다 싶을 무렵 사람들이 일제히 한쪽 창문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에서 나무 한 그루 없는 초록색 섬이 슬그머니 그 자태를 드러냈다. 마치 신비주의 마케팅을 위한 무대장치 같은 느낌이랄까. 기대만큼이나 이렇게 드라마틱한 입성이라니! 
 
자동차가 서로 마주쳤을 때를 대비해 중간중간에 차량 대기 장소가 있지만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왕복 1차선 터널
 
 
예측불허, 그러나 따뜻한

페로제도가 작은 곳이라지만, 군도인 이곳에서의 여행법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주요 섬들은 해저 터널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만 피오르 지형의 특성상 가까운 거리도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고 페리를 이용해야 하는 곳도 있다. 게다가 해저터널 두 군데는 매번 적지 않은 통행료를 징수하기에 사전에 동선에 대한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도착 후 처음 맞이한 아침의 찬란한 날씨에 흥분하고 말았다. 당초 짜 놓은 계획을 바꿔 날씨 좋을 때만 갈 수 있다는 미키네스(Mykines)섬을 먼저 가야겠다고 소란을 떨었다. 그러나 토르스하운에 있는 관광 안내소로 달려가 교통편을 알아봤을 때는 절망감만 돌아왔다. 페리와 헬기 등 모든 교통수단이 이미 예약 완료된 상태였다. 미키네스는 섬 자체도 독특할 뿐 아니라, 이곳 최고 인기 새인 퍼핀(puffin)을 100%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아쉬움이 컸다. 이렇듯 계획에는 날씨라는 변수가 가장 큰 요소다.

다음날 향한 곳은 보괴르(Vogar)섬의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가사달루르(Gasadalur) 폭포. 이날은 바람이 극성이었다. 이곳 마을은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 배나 헬기 외에는 접근이 불가능한 오지였다. 사실 이 폭포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드론을 띄워 바다쪽에서 다가가며 장엄한 모습을   영상에 담고자 별렀었다. 그러나 걸을 때 몸까지 휘청거릴 정도의 강풍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강풍은 더욱 멋진 장관을 연출해 주었다. 밑으로 내려가야 할 폭포 물이 중력을 거슬러 위로 올라가는 진기한 광경을 연출해 준 것! 

날씨는 점점 안 좋아져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참 전 폭포의 반대편 산책로에서 걸어오던 금발의 한 여행자와 눈인사를 했을 뿐 우리 외에는 사람도 없었다. 그만 차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아까 마주쳤던 여행자가 혼자 비를 맞으며 저 멀리 언덕의 찻길을 오르고 있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그를 빨리 차에 태워야 했다. 덴마크에서 이곳으로 일주일간 휴가를 왔다는 얀(Jan)은 차도 없이 혼자 여행 중이라고 했다. 한국의 제주도 올레길 여행도 생각하고 있다는 그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차도 없이 여긴 어떻게 왔냐고 물으니 올 때도 히치하이킹으로 왔단다. 하긴 이곳에서는 히치하이킹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정작 타야 할 사람보다 차를 모는 사람이 더 태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환경이니까.
 
조금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페로의어촌 풍경
마을로 돌아오는 어선
토르스하운 부두에 16세기에 의회 건물로 지어진 팅가네스(Tinganes). 지금도 정부 건물로 쓰이고 있다
 
어부가 부자인 나라

북부지역에서 두 번째 숙소인 에어비앤비의 호스트 프로디의 첫인상은 어딘가 터프했다. 냉동고에서 대구(cod) 한 봉지를 불쑥 꺼내더니 먹겠냐고 할 때 직감했다. “어부이신가요?” 역시나 맞았다. 사실 다른 간단한 저녁을 생각하고 있던 우리에게 얼린 대구는 반가운 선물은 아니었다. 손님에게 아낌없이 내놓은 그 정성이 고마웠고, 또 대서양에서 가장 중요한 어족 자원인 대구, 그것도 직접 잡은 대구를 맛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덥석 받았을 뿐이다.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마지막 날 겨우 요리를 해 먹긴 했는데, 생각보다 맛은 있었지만 양이 너무 많아 나머지를 프로디 몰래 폐기한 건 특급 비밀!

어업은 1920년 이래 이 나라 수출의 90% 이상, GDP의 20%를 차지하는 중요한 산업이 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어업은 현대화된 느낌이다. 이곳 어부들이 부유하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작은 어촌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잡은 고기들을 손질하는 ‘정겨운’ 모습을 기대했기에 살짝 아쉽기도 했다. 물론 이런 ‘낭만적인’ 어부들도 찾아보면 있겠지만.

일찍이 광대한 덴마크 해역으로의 접근을 보장받은 페로제도는 어업이 크게 성장한 덕분에 인구와 생활수준이 크게 늘었다. 연어 양식과 원양 어업, 그리고 해운 등이 페로제도가 살아가는 생존 수단이다. 작지만 개방된 경제체제를 갖춘 페로제도는 자신들이 처한 해양환경에 잘 적응해 냈다. 어업과 양식업, 관광업뿐만 아니라 해운과 연안 서비스, 인근의 원유탐사, 항해·해양학, 생물학, 생명공학분야까지 꽤 고도화되어 있다.
 
그린다드랍(Grindadrap)
매년 여름, 배를 이용해 파일럿 고래 무리를 좁은 만으로 몰고 다시 해변에 몰아넣은 후 사냥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페로제도에서 해 오던 일이다. 작살이나 창 등의 무기를 쓰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고래를 잡으려면 해변으로 몰아 칼을 이용해 직접 숨통을 끊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고래의 피가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인다. 그 광경은 분명 부정적인 이미지라 현지 주민과 그린피스 같은 환경 단체와의 마찰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보기 드물게 찬란한 페로의 아침
섬 구석구석 어디서든 풀 뜯는 양들이 여행자들을 맞이해 준다
연인간 결속력을 높이려면 함께 벼랑 위에 있으라고 했던가 
 
이토록 멋진, 이토록 황홀한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다. 오늘만큼은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말이다. 지난 이틀간 하루에도 2~3군데의 하이킹 코스를 주파하느라 몸이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밥도, 달달한 초콜릿 조각도, 심지어 물도 한 병 없이 시작한 이유였다. 마침 이곳 빌린가르달스피야르(Villingardalsfjall)는 굳이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파노라믹 뷰가 멋지게 펼쳐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을 어귀에서 시작된 하이킹은 중간에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바로 머리 위에서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는 듯한 정상도 높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지금도 이렇게 멋진 풍경이 좀 더 오르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기대감마저 고조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30분, 1시간이 지나더니 결국 2시간이 다 되어서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올라 보니 정상의 사면이 살짝 두 번씩 꺾여 있어 밑에서는 최종 포인트가 보이지 않았던 것!

페로제도의 해안은 대부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도 평균 300~400m 높이다. 가장 높은 절벽은 북쪽 끝 비도이(Vidoy)섬 북쪽 사면인 에니베르그(Enniberg)로 그 높이가 무려 700m에 달한다고 한다.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가 오른 곳이 바로 그 절벽 위였음을. 그야말로 얼떨결에 오른 것이다. 이곳 정상의 높이가 해발 841m로 밝혀졌는데, 페로에서 가장 높은 슬래타라틴두르(Slættaratindur)가 해발 880m임을 감안하면, 우리는 트레일의 매력에 빠져들어 배고픔도 잊은 채 거의 페로제도 최고봉의 높이를 오른 셈이다. 늘 마지막에 결정적 ‘한 방’을 선사하는 페로제도의 하이킹 코스는 정말이지 헤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페로제도의 북단에 서면 북대서양의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곳곳의 바다 양식장에는 지원 선박이 늘 함께 있다 
페로 최대의 쇠르보그스바튼 호수와 아찔한 해안절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트래라니판
 
 
언젠가 회귀하고 싶은 섬들

일정의 마지막 날은 하루 종일 쏟아지는 비와 안개가 페로제도 전역을 덮었다. 여행기간 내내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불평했던 것이 무안할 지경이었다. 만약 어제 날씨가 이랬더라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 쇼핑도 마땅치 않은 이곳에서 할 것이라곤 잠자기밖에 없었을 것이다. 몸서리가 쳐졌다. 페로제도에서 겪을 수 있는 날씨의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한 셈인데, 그 순서가 반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아쉬움을 머금은 채 공항으로 향하는 길. 바다 길 옆으로 연어 양식장이 눈에 들어온다. 페로를 상징하는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콘이다. 세계에서 8번째로 큰 연어 양식 회사가 바카프로스트(Bakkafrost)라는 페로의 회사라고 한다. 페로제도의 교육체계는 북유럽답게 초중고등 교육기관, 연구소가 모두 무상으로 운영된다. 많은 페로 사람들은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후 더 많은 공부와 일을 위해 젊은 시절 해외로 나갔다가 정착을 위해 다시 페로제도로 돌아온다고 한다. 페로 사람들과 연어. 지금의 부유하고 여유로운 페로제도를 완성한 것은 이 두 개의 축이 아닐까.  
 
 

●페로제도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
 
여름엔 전혀 안 덥고 겨울엔 전혀 안 춥다
고위도 지방인 페로제도는 여름철 평균 기온이 13도, 겨울철 평균 기온이 3도다. 행여나 선풍기, 에어컨 회사의 영업사원이라면 페로제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짐 쌀 때 조금이라도 가볍게 가고 싶다면 수영복도 굳이 챙길 필요가 없을 듯.
 
 
페로제도의 국조는 검은머리물떼새(Oysterchatcher)
많은 사람들이 페로를 상징하는 국조를 퍼핀(Puffin)이라 오해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검은머리물떼새가 페로를 상징하는 국조다. 빨간색 부리에 검은 색과 흰 색이 섞인 몸을 갖고 있다. 가을에 페로를 떠나 봄에 돌아오는데 페로 사람들은 매년 3월12일 그래카리스메사(Grækarismessa) 기간 동안 경축 행사를 갖고 이들의 귀환을 축하한다. 
 
 
패스트푸드점이 단 2개만 있다!
수도 토르스하운의 중심에 위치한 SMS는 이 나라 최대의 쇼핑몰이다. 이곳에 나란히 자리 잡은 버거킹(Burger King)과 선셋 불러바드(Sunset Boulevard)는 패스트푸드에 목마른 현지인들로 늘 붐빈다. 아차하면 긴 줄을 서야 하니 공략 타이밍을 잘 잡을 것!
 
 
잔디지붕에 잔디 깎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페로제도에는 곳곳에 잔디 지붕(grass roof)을 얹은 집들이 있는데, 이곳 관리는 양들에게 맡긴다고. 물가 높은 이곳에서 따로 잔디 깎기를 고용할 필요 없이 해안 곳곳의 벼랑에서 풀 뜯어 먹는 기술을 연마한 노련한 양들을 무임금으로 부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
 
 
페로제도 어디에서건 해안으로부터 5km 이내
좁은 만과 피오르로 이루어진 페로제도를 가장 잘 설명한 말일 것이다. 이것이 비슷한 자연환경처럼 보여지는 아이슬란드와 페로제도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다. 
 
페로제도에는 감옥이 없다
1년 반 이상 수감이 필요한 범죄자가 생길 경우, 덴마크에 있는 감옥으로 보내진다. 범죄자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 비해 페로 사람들의 천성이 유달리 착해서는 결코 아니리라. 서로 이웃집 살림살이까지 뻔히 다 알 만한 좁은 ‘섬마을’에서 죄를 짓고 평생 어떻게 살아갈 수 있으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헬기를 탈 수 있다
아틀란틱항공에서 운영하는 헬기는 본래 관광객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낙도, 오지가 많은 페로제도에서는 보급품 제공과 주민들을 위한 연락선 역할을 헬기가 맡고 있는 것. 이 정기적인 헬기 운항에 빈자리를 관광객에게도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 단 관광객들이 좌석을 독점해 버리는 일을 막기 위해 편도 티켓만 구입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타는 것이 다소 까다롭긴 하지만 한 번 도전해 봄직하다. 
 
 
▶Tip
드론 날리기 좋은 곳
페로제도에는 산야에 나무가 거의 없다. 덕분에 시야가 트이고 행여나 드론이 불시착할 경우에도 회수가 쉬울 가능성이 크다. 공항 반경 5km, 마을이나 간선도로 주변 150m 이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 등, 최소한의 규정만 지킨다면 페로제도 어디에서건 날릴 수 있다. 단, 비, 바람, 새 3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특히, 해안 절벽의 풍경을 찍을 때 새들의 움직임을 주의해야 한다. 또 드론이 저공비행을 하면 양들이 놀라기도 하므로 방목된 곳에서는 고도를 조심하자. 
 
 
▶travel info
 
AIRLINE
아틀란틱항공(Atlantic Airways)이 덴마크와 아이슬란드를 주 노선으로 매일 운항한다. 정규 노선 외에 시즌별로는 영국, 스페인, 노르웨이 등으로도 운항한다. www.atlantic.fo/en. 스칸디나비아항공(Scandinavian Airlines), SAS도 토르스하운-코펜하겐 구간을 매일 운항한다. 
 
Basic
날씨 | 다른 유럽의 북부지역과 마찬가지로 멕시코만 해류 덕분에 여름에 덜 덥고 겨울에 덜 춥다. 페로제도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6월에서 8월까지다. 날씨는 일년 내내 바람이 센 편이고 흐리며 서늘하다. 날씨가 무척 변덕스러워 하루에도 사계절을 경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고위도 지역인 관계로 여름철에는 일광시간이 길다(낮이 가장 긴 6월21일에는 19시간 45분, 겨울철엔 5시간). 그러나 늘 날씨가 흐리기 때문에 체감하는 낮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언어 | 공식 언어는 페로어. 덴마크어는 제2 외국어로 두 언어가 공식적인 통용언어다. 예전에는 학교 교육과 교회 예배에서 덴마크어만 허용되었으나, 1938년부터 두 언어를 동등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1948년부터 페로어가 공식적으로 주 언어의 지위를 얻는다. 영어 또한 불편 없이 통용된다.
 
전기·콘센트 | 한국과 동일한 유럽식 2-pin 플러그를 사용한다. 전압은 220V. 독일, 덴마크와 동일하다. 거리를 비롯한 도량형은 미터법이다. 
 
통화 | 페로 크로나(Faroese krona), DKK. 페로 크로나는 덴마크 국립은행에서 발행한다. 이 화폐는 덴마크 크로네(DKK, Danish Krone)와 동일한 가치를 갖고 있다. 따라서 여행자들은 굳이 페로 화폐로 환전할 필요 없이 덴마크 화폐를 페로제도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혹시 현지 기분을 내기 위해 페로의 화폐를 꼭 써 봐야겠다면 페로의 은행에서 환전하면 된다. 수수료 없이 환전해 준다. 단, 페로의 화폐는 덴마크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크레디트카드의 사용도 일반화되어 있다.
 

Food
페로제도에는 토종 포유류가 없다. 초기 정착민들은 수천년 전 이곳에 정착한 이래 생존을 위해 주변에 보이는 물고기, 포유류, 심지어 새까지 모든 것을 식량으로 삼아야 했다. 당연히 잡는 것만큼이나 저장도 중요했는데, 페로인들이 래스트(Ræst)라 부르는 발효가 발달하게 된 계기다. 고기와 생선을 밖에서 말리는 절차로 숙성과 발효를 이용해서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한 것이다. 이러한 맛을 경험해 보려면 페로의 전통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 래스트(Ræst)를 방문해 보자. 

Ræst
주소: Gongin 8, 100 Torshavn 
전화: +298 411430
오픈: 수~토요일 18:00~22:00, 일~화요일 휴무
홈페이지: www.facebook.com/raestrestaurant/?fref=ts
 
accommodation 
보통 에어비앤비는 어디서나 인기지만, 이곳에서는 특히나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페로제도에서는 호텔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잘 고른 현지인 숙소는 비용도 저렴할 뿐만 아니라 시설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현지인들만의 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다. 
 www.airbnb.co.kr
 
 

activity
페로제도의 대표적 액티비티 하이킹 

페로제도의 하이킹 코스는, 넓고 인구가 희박한 아이슬란드에 비해 아무래도 위험이나 심리적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다. 페로제도 관광청에서 선정한 하이킹 코스 23곳을 관광청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지 안내 센터에 가면 책자로도 받아 볼 수 있다. 
홈페이지: www.visitfaroeislands.com/see-do/hiking
 

글 유호상  사진 이재호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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