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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떠납니다 남도여행

  • Editor. 전용언
  • 입력 2017.12.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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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했다. 하필 영광과 무안이라서. 아니나 다를까 여행지에 다다르니 “여기에 오다니 전남 영광입니다”라는 몹쓸 아재개그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남도의 음식을 맛보고 풍경을 담고 나면 이내 말장난도 즐겁게 받아치게 된다.
“그런 개그는 전남 무안하네요”
 
숲쟁이꽃동산의 끝자락 언덕배기에 다다르면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의 탑원과 만난다
드넓은 무안의 갯벌. 멀리서 담을수록 풍경이 아름답다
영광 노을전시관에 전시된 일몰 사진들
영광군이 선사한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
그 유명한 영광 굴비. 아무리 기대해도 실망하지 않을 맛이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굴비

역시나 먹거리의 고장다웠다. 영광 법성포의 한정식집에서 시작한 여행은 풍성했다. 지역 대표음식인 굴비에 게장, 홍어삼합, 각종 밑반찬이 오르니 상에 공간이 부족해 매운탕을 뒷전으로 밀어둬야 할 지경이었다. ‘진짜배기 굴비’를 맛보여주겠다는 가이드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짭조름한 보리굴비부터 구수한 김치까지, 어디에 젓가락을 갖다 대어도 만족스러웠던 식탁에는 남도음식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후식으로 쥐어준 모싯잎송편으로 입가심을 하고 나면 ‘남도는 무조건 식후경’이라는 다짐을 절로 하게 된다.

서해바다 사이에 산을 끼고 있는 탓에 법성포의 여름은 무덥고, 겨울엔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다. 사람이 살기엔 힘들지만 굴비를 말리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특유의 건조 기술과 전통 염장 비법이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전해 내려와 지금의 ‘영광 법성포 굴비’라는 브랜드를 지켜왔다. 덕분에 법성포에는 굴비식당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상수동 카페거리처럼, 굴비거리가 따로 없다고 생각할 즈음 안내도를 발견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굴비길 중심부였다. 5.61km에 이르는 생태탐방로를 보고 있자니 법성포는 가히 ‘굴비의 성지’라 불릴 만했다.
 
간다라 양식의 불탑과 불상으로 백제 불교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의 시퀀스에는 숲쟁이꽃동산 길목이 있다
 
●법성포의 시퀀스를 따라서

성지는 따로 있었다. 법성포는 그 이름 자체에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임을 내포한다.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인도 승려 마라난타를 가리킨다. 불교의 전래경로가 분명한 고구려나 신라와 달리, 백제의 불교 전파는 동국대학교의 학술고증을 통해 최근에서야 밝혀졌다. 명승 마라난타가 서기 384년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최초로 발을 디뎠다는 이곳은 관광명소로 개발돼 여행자들이 찾아들고 있다.

<알쓸신잡2>에서 유현준 교수가 영주 부석사를 두고 말했듯이, 백제불교 최초도래지로 가는 길목에도 일종의 시퀀스가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으로 꼽힌 숲쟁이꽃동산이 그 시작점이다. 동산 초입에 들어서면 형형색색으로 만개한 꽃이 여행자를 반긴다. 굴비와 불상만을 기대하며 영광을 찾은 이들에게 주는 깜짝 선물인 셈이다. 양쪽으로 펼쳐진 꽃동산과 영광 앞바다의 풍광을 눈에 담으며 여유롭게 언덕을 오르면, 금세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에 이른다.

꽃동산 말미에 우거진 숲을 지나면 이색적인 모양의 탑원과 마주한다. 원불교 간다라 양식을 취한 백제불교의 흔적들은 조계종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불상을 보호하듯 구성된 탑원은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에서 가장 멋스러운 볼거리다. 특히 유려한 형상의 불탑은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불상은 개성 있는 얼굴로 제각기 멋을 뽐내고 있다.

간다라 색채를 가득 머금은 불상들을 렌즈에 담고 있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마치 강아지 인냥 다리에 제 얼굴을 비비적거리던 고양이의 이름은 ‘백제’. 이곳의 명물이란다. 마땅히 주인이 없다는 해설사의 설명과 달리, 백제는 털이 뽀얗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왔다. 주변을 빙빙 돌던 놈은 눈도장을 다 찍었다는 듯 미련 없이 훌쩍 떠나버렸다. 백제불교 최초도래지를 배회하는 길고양이 백제라니, 법성포 사람들의 작명센스는 풍경만큼 낭만적이었다.
 
무안 갯벌에 서식하는 게는 그 이름만큼이나 생김새도 독특하다
무안갯벌 명당에 자리한 포토존에서 감성적인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다
 
●무안의 갯벌, 멀리 보자

무안으로 달려온 이유는 분명했다. 바다의 보고인 갯벌에는 볼거리도 가득했다. 특히나 무안군은 생태갯벌센터를 건립해 무안의 갯벌을 자연스럽게 소개했다. 무안생태갯벌센터에 들어서면 이름부터 흥미를 돋우는 다양한 종류의 게와 낙지, 갯벌의 생태를 살펴볼 수 있다. 눈길을 끈 건 영어안내문을 유심히 보던 미국 아저씨 켄이었다. 여행 시작부터 주목을 받은 그는 결혼 27주년을 맞아 이번 전남 패키지여행에 동행했다고 말했다.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그는 실내에 작게 마련된 갯벌 앞에 멈춰 서서 망둥어를 관찰했다. 문득 서양에서 연체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는 사실이 떠올라 산낙지를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켄은 “맛있는 건 뭐든”이라고 유쾌하게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센터를 나오니 드넓은 갯벌이 펼쳐졌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갯벌에 구름이 수놓은 하늘이 얹어지니, 어디서부터 구경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때 일찌감치 주변을 둘러보고 오신 어르신은 일행에게 갯벌을 즐기는 방법을 일러줬다. “가까이 가봐야 아무것도 없으니 돌아서라. 그리고 멀리 보라”고. 얼떨결에 얻은 해답이지만 고분고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일몰이 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무안의 자랑이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수시로 변해가는 노을빛은 카메라로 미처 담을 수 없는 경관을 만들어냈다. 이런 아쉬움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갯벌이 아름답게 보이는 자리에 창틀 모양의 포토존이 마련돼 있었다. 당신의 오늘이 사랑으로 시작해서 행복으로 끝나기를. 아래에 적혀있는 문구였다. 이번 여행이 사랑으로 시작하진 않았지만, 행복으로 끝난 것만큼은 분명했다.
 
노을이 아름답게 드리우는 백수해안노을길
 
●낙조가 아름다운 백수해안노을길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0선 중 9번째로 꼽힌 백수해안노을길은 16.5km 이르는 해안길이다. 바닷길 곳곳으로 데크 산책로가 뻗어있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색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 특히 이름에서 암시하듯 칠산바다로 쏟아져내려가는 듯 한 석양 노을을 보기에 최적의 명소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굳이 일몰 시간대가 아니어도 좋다. 해안절벽 사이사이 솟아 오른 바위와 암초에 부닥치며 굽이치는 파도 또한 훌륭한 볼거리다.
 
담양 초의선사 유적지에서 조망한 풍광. 운무가 멋지게 드러워졌다
찬바람과 열탕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담양온천 노천탕
 
●여독을 씻어내는 담양온천

이틀을 원 없이 먹고 다녔건만 알게 모르게 쌓인 여독이 있었다. 마지막 코스는 여행자의 노곤함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가장 간절했던 곳으로 데려갔다. 담양온천 온천수에는 게르마늄, 스트론튬 등 20여종의 성분을 함유해 스트레스와 신경전달 체계에 좋다고 한다. 아무리 보고 들어도 그 성분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탕에 직접 들어가 그 효험을 체감해보자. 특히 노천탕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온천욕은 이곳의 하이라이트. 탕에 몸을 담그고 넓게 펼쳐진 하늘과 높게 뻗은 대나무를 조망하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담양온천에서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여행을 갈무리하자.
 
맛과 향을 함께 음미해야 하는 무안삼합
 
●무안의 맛있는 녀석들
무안삼합

볏짚으로 구워낸 삼겹살을 갈치창젓에 찍어 양파김치를 올려먹는 ‘무안삼합’은 난생 처음이었다. 정체모를 음식이었지만 그 맛만큼은 상추를 거듭 집어 들게 만든다. 석쇠로 초벌을 해 기름을 뺀 짚불구이는 향과 맛을 함께 음미하는 음식이었다. 고기에 은은하게 배인 볏짚 향은 연신 감탄을 연발하게 했다. 양파의 고장인 무안에서 담근 양파김치는 아삭한 식감과 달콤함으로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게 한다. 갈치의 내장으로 만든 갈치창젓 또한 삼합의 고소함을 배가시킨다. 삼합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작은 게를 통째로 갈았다는 뻘게장은 모습을 달리해도 여전히 밥도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얀집 나주곰탕의 국물은 뽀얗지 않고 맑다
 
●100년 전통 하얀집 나주곰탕

굴비정식으로 가득 채운 배를 두드리고 나올 때였다. 버스기사가 슬며시 다가와 나주곰탕을 기대하라며 귀띔을 해주었다. 예상은 완벽히 적중했다. 이미 방송에도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는 하얀집은 4대째 100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나주곰탕 맛집이다. 보통의 뽀얀 곰탕과는 달리, 맑고 투명한 국물이 이 집의 특징. 자극적이지 않은 깔끔한 맛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켜 식사시간이면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삼삼한 국물과 잘 어우러지는 김치도 이곳의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국밥집의 척도를 깍두기에 두는 이들에게도 감히 추천할 만하다.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롯데관광개발 [영광굴비먹고, 담양온천, 무안생태갯벌 2일]
 
글·사진=전용언 기자 eo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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