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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물길이 흐르는 은둔의 대지 츠수이(赤水)·우룽(武隆) 풍경구

  • Editor. 정태겸
  • 입력 2018.01.0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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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이었다. 그동안 숱하게 중국을 오가면서도 한 번도 인연이 닿은 적이 없었고, 다녀왔다는 사람조차 만나 보지 못했던. 붉은 강이 흐른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츠수이대폭포는 높이 76m, 폭 60m에 달한다
 
●츠수이 赤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절경

목적지는 구이저우(貴州)성인데, 비행기가 내린 곳은 쓰촨(四川)성의 충칭(重庆)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 츠수이(赤水) 지역이 쓰촨성과 구이저우성의 경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남서쪽에 위치한 구이저우성은 그동안 중국인들에게 늘 멀고 험한 땅이었다. 오죽하면 ‘땅의 8할은 산이고 1할은 물이며 나머지 1할이 밭(八山一水一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일까. 하물며 ‘연중 맑은 날이 3일이 채 못 되고 농사를 지을 만한 평평한 땅도 3평이 되지 않으며,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단돈 3푼도 없다(天無三日晴, 地無三尺平, 人無三分銀)’고도 했다. 그만큼 척박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땅을 개간하는’ 인간의 눈에 비친 모습일 뿐이다. 

구이저우는 드넓은 중국 그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천혜의 자연을 가졌다. 눈길을 두는 그 어디라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기후는 전형적인 아열대성으로, 습하지만 연 평균 기온이 섭씨 15.6도로 일정하다. 바로 인접한 충칭은 분지 지형이라 한여름에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덥지만, 구이저우성은 상대적으로 여름에 시원하고 한겨울에도 혹한이 없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살기 좋은 곳이다.

충칭에서 츠수이까지 차를 타고 세 시간 정도를 달렸다. 도로는 최근에 개발된 듯한 흔적이 역력했는데, 2008년 올림픽을 전후해 중국 정부가 시작한 서부개발계획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 이후 동남부 지역을 우선적으로 개발해 왔다. 그 후 점차 중앙 내륙지역도 개발을 시작했고, 최근 서부 산간지역 개발에도 한창 열을 올렸다.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지르는 개발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개발의 손길이 넘어오는 데는 채 20년이 걸리지 않았다. 

도로를 닦는 일 외에도, 도시 개발은 또 다른 역할을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장소를 세상에 내보이는 것. 숨겨 뒀던 절경들을 하나둘 꺼내 보이고 있는, 지금의 츠수이가 바로 그 예다. 
 
츠수이는 그 이름처럼 붉은 색을 띤 채로 양쯔강을 향해 도도히 흘러간다
츠수이대폭포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츠수이허의 지류. 붉은 빛은 사암이 녹아내린 탓이다
300m 높이의 풔광옌은 특유의 웅장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쏟아지는 폭포 앞에서 그저

츠수이의 강물은 난생 처음 보는 물빛이었다. 검붉은 색의 거대한 강물이 눈앞에서 유유히 흐르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핏빛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붉다. 우리 발음으로는 ‘적수하(赤水河)’, 중국 발음으로는 ‘츠수이허’라 불리는 강이다. 양쯔강의 지류지만, 양쯔강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츠수이 지역은 중국에서도 대표적인 단하지모(丹霞地貌) 지형이다. 단하지모는 붉은색 사암과 역암이 오랜 세월에 걸쳐 융기와 풍화와 침식을 거치며 퇴적된 지형을 말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노을처럼 붉은 빛깔을 띠는데, 그러니까 단하의 붉은 사암이 강물에 녹아 내려 만들어진 물빛이 바로 츠수이허인 셈이다.

츠수이는 그 자체로 국가가 공인한 풍경구다. 핵심은 폭포인데, 츠수이 지역에만 약 1,000개의 폭포가 있다. 많은 폭포 중에서도 츠수이를 대표하는 폭포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그중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쓰동거우(四洞溝). 네 개의 골짜기가 얽혀 있다는 의미란다. 울창한 대나무 숲을 지나면 약 2km에 걸친 수렴동, 월량담, 비와애, 백룡담 4개의 폭포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웬걸. 큰 비가 내린 직후 백룡담의 물이 불어나 출입이 통제된 것이다.

아쉬움을 풀어 준 건 츠수이대폭포였다. 황과수 폭포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츠수이대폭포는 폭이 60m로 황과수에 비해 40m 정도 작지만 높이는 76m로 황과수보다 6m 정도 더 높다. 5~6년 전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한 오지였던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츠수이의 단하지모 지형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폭포는 풔광옌(佛光岩). 츠수이대폭포가 웅장하고 시원한 느낌이라면, 풔광옌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아찔함이 있다. 풔광옌은 츠수이의 단하지모 지형이 가진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 준다. 드러나 있는 단하지형의 면적만 1km에 달하고 폭포의 높이는 260m 이상이다.
 
풍경구 입구에서부터 원시림을 따라 약 1시간 30분 정도를 걷는 길에서는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붉은 바위들과 그 한가운데를 가르듯이 쏟아지는 폭포를 마주할 수 있다. 폭포는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위로 올라가며 감상할 때 더 멋지게 다가왔는데, 보는 내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 한낱 인간의 언행이란 얼마나 초라하던지!
 
빙안 고진 뒷골목에 남은 전형적인 중국의 농가 풍경
빙안 고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츠수이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야 한다
야오바 고진은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들이 즐겨 찾던 주요 시장이기도 했다
야오바 고진의 특산품인 기름 먹인 우산.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중국 여행에서 기억할 것

경험상, 중국에서 ‘고진(古镇)’이라는 단어가 붙은 곳은 꼭 들러 보는 게 좋다. ‘오래된 마을’을 뜻하는 고진에는 말 그대로 옛 모습과 풍습이 고스란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츠수이에서 역시 예외일 리 없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근현대사의 대반전을 이뤄 낸 마을로 통한다는 빙안(丙安) 고진.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우선 국공내전 당시의 ‘사도적수(四渡赤水)’ 일화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때는 항일전쟁이 끝난 1946년,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중국의 재건을 둘러싸고 내전을 벌였다. 당시 마오쩌둥 측의 부대가 ‘홍군(紅軍)’이라 불렸는데, 이들은 초반 승기를 잡은 국민당의 기세에 몰릴 대로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홍군의 지휘부는 마지막까지 장제스의 압박에 저항하기 위해 중국 대륙을 돌아 산시성에 이르는 1만2,000km의 대장정을 선택했다. 대장정 끝에 홍군의 반격의 단초를 만들어 낸 지역이 츠수이 지역, 그중에서도 빙안 고진이다. 당시 홍군은 츠수이를 네 번이나 넘나들면서 유격전을 펼쳤다고 전해지는데, ‘사도적수’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됐다. 결국 마오쩌둥은 승기를 잡았고, 반면 수세에 몰린 장제스는 타이완으로 탈출했다. 

츠수이는 과거 실크로드로 가져가는 소금을 만드는 지역이기도 했다. 때문에 예부터 많은 상인들이 쓰촨과 츠수이를 오가며 소금과 차를 거래했는데, 이 두 지역의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이 야오바(尧坝) 고진이다. 쓰촨성에서 온 상인들은 츠수이로 가는 길에 자연스레 이곳을 거쳐야만 했고, 그래서 오늘날 야오바 고진에는 쓰촨성과 구이저우성의 문화가 한데 뒤섞여 있다. 몇백년 전부터 상인들을 상대해 온 마을이지만 인심은 그리 각박하지 않다. 직접 만들어 파는 물건들은 가격도 저렴한데다, 덤까지 얹어 주는 상인들은 정이 넘친다. 여유가 넘치고 노는 것을 즐기는 쓰촨 사람들은 여기저기 마작과 카드를 즐기고 있었다. 외지인이 걸어 오는 이야기에 살며시 짓는 할머니의 웃음이 그렇게 순박할 수가 없었다.
 
쓰촨을 대표하는 카르스트 지형, 우룽의 천갱지봉
천생삼교에서도 가마꾼들은 바쁘게 언덕을 오간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황후화>의 촬영지. 예전에 쓰이던 역관을 그대로 살려서 촬영했다
천생삼교가 땅 위에 놓인 거대한 구멍으로 관광객들을 압도한다면, 용수협지봉은 신비로운 지하세계의 풍경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수십 미터 협곡 아래에 놓인 용수협지봉의 잔도  
 
●우룽 武隆
영화 속 세계를 건너다

츠수이에서 충칭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우룽(武隆)시. 우룽은 세계자연유산이자 국가 ‘5A급’ 풍경구로 지정된 선녀산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5A 등급은 중국 정부가 지정한 최고 등급으로, 단하지모 지형의 츠수이와 달리 카르스트 지형이라는 것이 선녀산의 특징이다. 카르스트 지형은 석회암 지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지하수나 빗물에 녹아 내려 만들어지는데, 만 개의 봉우리가 숲을 이루는 만봉림(萬峰林)이 구이저우성을 대표한다면 우룽의 천갱지봉(天坑地缝)은 쓰촨을 대표한다.

천갱지봉에서 ‘천갱’은 선녀산의 천생삼교(天生三桥)를 뜻하고, ‘지봉’은 용수협지봉(龙水峡地缝)의 줄임말이다. 이 두 가지는 우룽시를 대표하는 천하제일의 풍경이다. 천생삼교는 ‘하늘이 만들어 놓은 세 개의 다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거대한 석회암 산이 빗물에 녹아 마치 다리가 놓인 것 같은 지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천생삼교로 연결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회색 암벽에 둘러싸인 너른 언덕, 그 오른편 너머로 두 개의 거대한 아치가 보였다. 하늘이 이곳에 만들어 낸 첫 번째 다리, 천룡교다. ‘지구의 유산’, ‘세계적인 기이한 경관’, 지질학자들의 자자한 칭송들이 피부로 와 닿는 순간이다. 저 멀리 암벽의 끝자락에는 유리로 만든 스카이워크가 매달려 있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아찔하다. 

언덕을 내려가 평지에서 다시 한 번 다리를 올려다봤다. 천룡교 너머로 제법 멋진 전통가옥들이 눈에 띄었는데,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 <황후화>의 촬영지란다. 그 뒤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엄청난 크기의 아치를 그리는 청룡교와 흑룡교가 차례로 나타났다. 두 다리 사이에 놓인 너른 벌판 역시 영화의 배경지인데, 천생삼교를 방문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영화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공룡 로봇들과 전투를 벌이던 바로 그 장소다. 

셔틀버스를 타고 곧바로 용수협지봉으로 이동했다. ‘지구의 아름다운 상처’라는 별칭을 가진 카르스트 협곡이다. 용수협지봉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관람한다. 하지만 협곡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울창한 원시림과 그 사이를 비집고 쏟아지는 폭포만이 보일 뿐이다. 

협곡 내부의 장엄한 위용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 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다. 계단 끝에 다다라 동굴 안에 들어서면 그제서야 좁아졌다 넓어지기를 반복하는 협곡의 속이 명확하게 보인다. 안쪽으로 발길을 옮길수록 또 다른 세상이다. 쏟아지는 폭포가 오묘한 원시림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동굴 속을 탐험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용수협지봉의 하이라이트, 인허폭포가 등장했다. 지척에서 떨어지는 80m 높이의 폭포가 그야말로 압도적인 장관이다. 흩날리는 물방울 방울이 마치 곱게 흩어지는 은가루같이 보였다.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츠수이는 뜻밖의 보물과 같은 여행지였다. 같은 구이저우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얼굴을 한 자연경관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또 한 번 깨달았다. 확실히 중국은 넓다는 것. 늘 그랬듯, 여행을 마치는 동시에 다음 여행의 시작을 떠올리는 까닭이다. 그게 중국 여행의 매력이다.  
 
▶travel info 츠수이·우룽
AIRLINE
츠수이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충칭으로 들어가는 항공편을 이용해야 한다. 현재 아시아나항공과 중국국제항공이 정기적으로 운항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매주 화·수·토·일요일, 중국국제항공은 매일 충칭행 노선을 운행한다.
 

AIRPORT
지난해 9월1일 충칭 장베이국제공항의 제3터미널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현재 충칭에서 인천을 오가는 모든 비행기 탑승객의 입·출국은 모두 제3터미널에서 이루어진다. 입국시 세관을 통과하기 전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탈의실을 별도로 마련하는 등 세심한 서비스가 돋보인다. 
 

ENTERTAINMENT
선녀산 천갱지봉 정상부의 자연환경을 무대로 활용한 <인상우룽>은 장강에서 거친 물살을 거슬러 배를 끌어 올리던 소수민족 첸푸(船夫)들의 전통과 애환을 담은 작품이다. 장이머우 감독의 ‘인상’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그는 연출이 아닌 제작을 맡았다. 총 공연 시간은 70분이다.
요금: 일반 티켓 238위안
 

PRODUCT
120년을 이어 온 전통간장 셴스장유

츠수이허의 물로 만든 수제 간장, ‘셴스장유(先市酱油)’는 청나라 시대인 1893년부터 120년이 넘도록 이어진 전통기법 그대로 만들어진다. 콩을 찐 후 숙성 발효시키는데, 간장독에 넣고 햇볕을 쬐어 가며 숙성시키는 게 특징이다. 숙성 정도에 따라 3년장과 5년장으로 구분하며, 한국 간장에 비해 훨씬 덜 짜지만 감칠맛은 더하다. 
 

FOOD
사탕수수 설탕, 투훙탕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진액을 고아서 굳혀 만든 ‘투훙탕(土紅糖)’은 일반 설탕보다 훨씬 달큰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난다. 미네랄 함유량이 일반 설탕에 비해 훨씬 많아 건강에 좋다고. 야오바 고진에서 구입하면 가격도 무척 저렴한데, 한화로 2,000원어치만 사도 어지간히 두고 먹을 만큼 푸짐하다. 
 
 
취재협조 중국 적수여행개발 한국사무소 뚱딴지여행
글·사진 정태겸  에디터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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