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벚꽃 이불 아래서, 후쿠오카 캠핑 2박 3일

천소현기자     작성일제315호(2018.05) 댓글0건
소풍이 이렇게 설레었을까? 
키 높은 배낭을 메었다, 내려놓았다를 반복했다. 
벚꽃잎 날리는 풀밭에 누워 있는 
꿈을 꾸고 싶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야메시에 있는 이케노야마 캠핑장은 별이 잘 보이고, 호수가 맑고, 숲이 아름답다. 캠핑장으로 완벽하다
 
●Camping Day 1
 
‘더 바랄 것이 없다’면서도 

그래서 한숨도 못 잤다. 사실 첫 공항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피곤할 상황이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걸 보니 나 좀 신난 걸까? 오랜만에 느껴 보는 설렘 덕에 배낭도 가뿐하게 느껴진다. 웬만한 것은 현지에 다 있다니 꼭 필요한 장비만 챙겨 떠나는 일본 캠핑 여행. 온천도 있고, 벚꽃도 있고, 올레 코스도 있다니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 마음은 세 시간 후 와르르 무너졌다. 후쿠오카에 도착해 방문한 첫 장소, 스노우 피크(Snow Peak) 다자이후점에서였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캠핑 명품 브랜드의 직영 매장에서 ‘바랄 것’은 너무나 많아졌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규모의 스노우 피크 단일 매장이고, 세일 품목도 있다니 뭔가 사지 않으면 손해(?)가 아닌가. 고심 끝에 완벽한 스태킹을 자랑하는 더블월 머그인 설봉 시리즈의 컵 세트를 구입했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던 코펠 세트와 50% 세일 중인 의류, 한국에는 없다는 한정판 소품들의 유혹에서 나를 건진 것은 ‘출발’ 명령이었다. 
 
명품 녹차를 키워 내는 야메의 녹차 다원 사이로 올레길이 지나간다
야메 중앙 대다원의 전망소에는 작은 신사 고진쟈(五神社)가 있다 

도심을 한 시간쯤 벗어나 야메시(八女市)에 도착했다. 오하나미(お花見), 꽃구경를 위한 시간. 이온몰 오오노조(大野城)점에 들러 점심 도시락을 골랐다. 도시락 선진국에서 결정장애를 극복하고 하나의 도시락을 고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차갑게 먹어도 맛있을 것 같은 가츠동돈가스 덮밥과 맥주 한 캔을 내 몫으로 담았다. 피크닉 장소는 규슈 올레 야메 코스의 백미로 불리는 녹차밭 ‘야메중앙대다원’의 전망소였다. 만개한 벚꽃에 둘러싸인 곳이라 평일 낮 시간임에도 상춘객들이 꽤 있었다.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도시락을 까먹는 재미. 그리고 눈앞에는 65ha 규모의 몽글몽글한 녹차밭이 펼쳐져 있다. 야메에서 난 어린 녹차로 만든 교쿠로(玉露茶)는 일본에서도 두 번째로 꼽히는 명차로 유명하다. 나도 모르게 손에 들린 맥주를 녹차처럼 음미하고 있었다. 
 
 
 
이케노야마 캠핑장은 무엇보다 자연환경이 수려하다. 초저녁 느긋한 커피 타임 
 
마시멜로처럼 녹아 없어진 그 밤

캠핑장으로 가는 길에 유메타운 야메점에 들러 식재료를 구입했다. 의외로 저렴한 육류 가격, 한국에선 아직 못 본 알코올 7도의 아사히 스트롱 캔맥주, 평소에는 비싸서 못 먹는 사케들, 너무 고퀄리티라 깜짝 놀란 마트표 회와 생와사비, 기코만 간장, 두 나라를 대표하는 발효 음식인 낫토와 김치 등등으로 쇼핑카트를 가득 채우고서야 장보기가 끝났다. 

드디어 이케노야마 캠핑장에 도착했다. 식재료와 배낭을 손수레에 싣고 미리 예약한 로지에 도착했다. 고양이만 한 잉어가 가득 헤엄치는 호숫가였다. 로지에서 잘 사람과 식재료를 함께 내려놓고 캠핑 사이트로 이동했다. 사이트에는 아름드리나무와 벤치도 있고, 적당한 거리에 식수대와 화장실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후다닥 텐트를 펼쳐 뼈대를 맞추고, 심폐 소생으로 에어매트를 소생시키고, 침낭을 탈탈 털어 주름을 펼쳐 놓자 안락한 잠자리가 완성됐다. 벌써부터 쏟아지는 별빛을 그려 보고 있었다. 캠핑장이 있는 호시노 무라(星野村)는 별의 고향이라는 뜻이니. 밤에 별 의 문화관(천문대)에 올라가면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했지만 금강산도, 금성도 식후경이다. 일단은 배가 고팠다. 

그 사이 잘 익은 숯불 위에 고기를 올려 놓는 순간, 기름이 좔좔 낙하하고 고소한 냄새가 승천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프라이팬, 주전자, 물통, 숯 등 요리와 바비큐에 필요한 모든 집기를 캠핑장에서 구입하거나 렌털할 수 있고 로지 안에 작은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있어서 무슨 요리든 척척 불편하지 않았다. 적당히 숙성된 선어회 모둠세트가 녹아 버렸는지 깔끔하게 비워졌고, 사케 병도 줄줄 새는지 빈 몸으로 나동그라졌다. 가득 채워진 배를 안고 나도 나동그라지고 싶었지만 숯불도 아깝고 별빛도 아깝고, 시간이 주는 것이 아까운 밤이었다. 
 
▶후쿠오카 캠핑장 이용하기 

후쿠오카에서 1시간 반 정도만 벗어나도 자연 속 깊이 들어앉은 캠핑 사이트들이 많다. 시(市)나 현(縣)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캠핑장 관리와 운영이 안정적이다. 가까운 야메시만 해도 6개의 캠핑장이 있는데 그중 호시노무라의 이케노야마(池の山) 캠핑장과 유메 타치바나 빌리지(夢たちばなビレッジ) 캠핑장을 방문했었다. 텐트만 빼고 대부분의 장비를 렌털할 수 있다. 로지(Lodge)에서 묵는다면 사실상 식재료만 준비해 오면 된다. 다양한 부대시설과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도 장점. 이케노야마 캠핑장은 호시노 후루사토 공원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온천 료칸, 호숫가 통나무 코티지, 잘 가꾼 캠핑 사이트, 별의 문화관(천문대), 차 문화관, 미니 골프장 등과 함께 있다. 유메 타치바나 빌리지는 오토캠핑에 편리한 캠핑장으로 시즌이 되면 피자 만들기, 물고기 잡기 등의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해 가족들이 즐겨 찾는다. 

이케노야마 캠핑장 
가격: 로지 4명까지 1만2,960엔, 5명까지 1만6,200엔 / 텐트 사이트 2,000엔  
홈페이지: www.hoshinomura-ikenoyama.com

유메 타치바나 빌리지 캠핑장  
가격: 관리동 숙박 6인실 1만엔, 방갈로 6인실 8,000엔 / 오토캠핑 사이트 5,000엔  
홈페이지: ytvillage.sakura.ne.jp/y.t.village
 
올레 코스에서 만나게 되는 기요미즈데라 절의 삼층탑
 
●Camping Day 2 
 
흙 도둑의 연금술에 반하다 

텐트는 푹신하고 따뜻했다. 새소리 알람에 깨어나 텐트를 여니 상쾌한 공기가 기지개를 펴게 했다. 새 아침이다. 텐트를 그냥 둔 채 움직여 보기로 했다. 오전에 호시노 야끼(星野焼) 공방 겐타가바(源太窯)에 들렀다. 메이지 이후 맥이 끊겼던 호시노 무라의 도자기를 복원해서 이어 나가고 있는 장인 야마모토 겐타(山本源太)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돗토리현에 살던 그는 80년간이나 맥이 끊긴 도자기를 찾아내서 스스로 계승자가 됐다. 가업을 이어받는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 도공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지역에서 채취한 철과 구리 성분의 유약으로 붉어진 진사(辰砂)도자기들은 저마다 오묘한 빛과 무늬들을 지니고 있다. 겐타씨가 진사 찻잔에 야메 녹차를 따르자 마법이 일어났다. 녹차가 반짝반짝 금빛으로 변한 것. 깜짝 놀라 마셔 보니 녹차인 것이 분명하다. 그가 갈고닦은 연금술은 흙을 작품으로, 녹차를 금으로, 한 청년을 장인으로 만들었다. <흙도둑 土泥棒>이라는 책을 냈던 그는 방문객들의 마음도 남김없이 훔쳐 버렸다. 

그의 환대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떠나야 했다. 우리도 그도 이미 점심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 맛집을 찾을 겸, 규슈 올레 중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도 답사할 겸 미야마시에 갔다. 2년 전 오픈 행사 때와 같은 길이었지만 느낌이 꽤 달랐다. 올레꾼도 많고, 오하나미를 즐기는 현지인들도 많았다. 기요미즈데라 절 너머의 전망소에는 벚꽃이 쉼 없이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에는 여백이 생기는 것 같았다. 삼층석탑은 꽃에 둘러싸여 더욱 곱고, 계곡 아래 오백 나한상에게도 한 줌 햇볕이 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만 골라 보기에도 봄날은 짧았다.  
 
기쿠비진 주조장에서 구입한 사케는 캠핑 식사의 하이라이트였다
녹차를 금빛으로 만드는 겐타가바 공방의 찻잔
 
캠핑의 밤을 위한 봄날의 사케 
 
마지막 캠핑의 밤을 위해 기쿠비진(菊美人) 주조장을 찾았다. 시음 후 구입으로 이어졌던 기존의 양조장 투어보다 깊이가 있어 좋았다. 1735년 이래 8대째 양조장을 이은 에자키 슌스케(江崎俊介) 사장은 정미율과 양조 알코올의 첨가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사케의 종류와 현대화된 사케 주조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심지어 누룩방의 문을 활짝 열어 내부까지 공개했다. ‘기쿠비진(菊美人)’이라는 이름은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1885~1942년가 1941년에 남긴 묵필인데, 그의 누나가 에자키 가문으로 시집을 오면서 사돈관계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시성이라 불릴 정도로 워낙 유명한 시인이라 매장에는 창업자의 초상화보다 그의 사진이 더 크게 걸려 있다. 상세한 설명 덕분에 사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이미 포화상태인 캠핑 배낭의 무게를 가볍게 극복했다. 어차피 혼곤한 봄이 아닌가.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유메타운에 들렀다. 회를 많이, 와규는 맛보기로, 사케는 넉넉히. 하루 사이에 노하우가 생겼다. 그렇게 준비한 두 번째 캠핑의 밤이 전날보다 더 즐거웠음은 말할 것도 없다. 로지 안에는 코타츠테이블형 온열기구가 있어서 무릎을 뜨끈뜨끈 지지며 티타임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캠핑의 밤은 그렇게 마시멜로처럼 살살 녹았다. 
 
기쿠비진 주조장
전화 +81 944 62 3001  
홈페이지 www.kikubijin.co.jp
 
겐타가바 
전화 +81 943 52 2188
 
Restaurant  정식 다케야(TAKeyA)  
기념품점인 줄 알았는데 2층에 전망이 기막힌 식당이 있었다. 대나무 그릇에 담겨 나오는 밥과 죽순 및 산채 반찬, 배추와 돼지고기를 넣고 푹 끓여 낸 탕으로 이뤄진 정식은 해장에도 효능이 있었다. 면발이 찰진 자루우동도 시원하다. 
가격 우동과 대나무밥 정식 1,000엔 
전화 +81 944 62 5028
 
벚꽃 흐드러진 사이도쇼역
가와라 신사로 올라가는 길

●Camping Day 3
 
아무나, 아무 곳이나, 다 좋더라 

철수할 시간이었다. 텐트를 접고, 매트를 말고, 침낭을 구겨 넣으니 다시 한 짐이 됐다. ‘캠핑에 딱’이라며 사 모은 일본 식료품까지 더하니 다리가 휘청거린다. 렌털한 장비를 돌려주고 분리수거까지 잘 하고, 남기고 가는 것이 없는지 한 번 더 둘러보고 나왔는데도, 결론적으로는 모자를 잃어버렸다. 새로 살 때가 된 모양이다. 

그냥 가기는 아쉬우니 후쿠오카현의 다른 올레 코스들도 속성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21개의 규슈올레 코스 중 가장 최근에 오픈한 지쿠호·가와라(筑豊·香春) 코스가 멀지 않았다. <트래비>의 채지형 객원기자가 지난 3월 개장 행사에 참가해 자세한 여행기(30쪽 참조)를 쓴 그곳이었다. 전날 야메 코스의 하이라이트가 녹차와 벚꽃의 앙상블이었다면, 지쿠호·가와라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대나무와 전나무의 이어달리기였다. 가와라산 산길로 접어들자 수직 하강한 듯 내리꽂힌 왕대나무숲이, 팔을 벌려 선 전나무숲으로 드라마틱하게 장면을 전환했다. 그 장면에 적응하기도 전에 숲을 빠져나와야 했던 것은 이미 JR 사이도쇼(採銅所)역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쓴 탓이다. 벚꽃이 만개한 역사가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아서 ‘아무나’, ‘아무 데나’를 찍어도 작품이었다. 촬영의 열기가 여름만큼 뜨거웠었다. 

캠핑장에서 온천을 옆에 두고도 제대로 씻지 못한 것은 노느라 바빠서였다. 대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짬을 내서 오오토우 사쿠라칸(おおとう さくら館)에 들렀다. 쇼핑, 온천, 외식 등등을 모두 해결할 수 있어서 가족 나들이에 좋은 미치노에키(道の駅, 도로휴게소)인데, 특별히 인테리어에 1억엔을 투자했다는 유미 화장실이 지역의 명물이다. 개운한 온천욕으로 리셋이 되어 다시 며칠쯤 캠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타규슈공항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마트에 들렀다. 간장, 버터, 소포장 라면, 소바 등등 캠핑에 유용할 재료들을 비축했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15kg 수화물 기준을 5kg나 초과했지만, 일행의 짐을 합산해 상쇄됐다. 추억은 아무리 챙겨도 무게가 나가지 않는 것이 참 다행이다. 
 
Restaurant 친류켄 珍竜軒​  
친류켄 라면집은 진한 육수의 돈코츠 라멘을 기본으로 파, 부추 등의 부재료를 선택할 수 있다. 가와라마치 최고의 라멘 맛집이다. 올레 코스 개장을 계기로 한국어 메뉴판도 갖췄다. 
오픈 11:00~18:30(화요일 휴무) 
전화 +81 947 32 4700

후쿠오카 공항 | 이번 여행은 진에어 인천-후쿠오카 직항편을 이용해 후쿠오카국제공항으로 들어갔다가, 떠날 때는 기타규슈공항을 이용하는 일정을 선택했다. 후쿠오카국제공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산한 기타규슈공항은 수속 시간도 짧고 편리하다. 
 
*천소현 기자는 올해 본격적으로 캠핑을 시작했다. 가벼운 백패킹으로 남도의 섬과 해외를 주로 누빌 예정. 일본 캠핑은 처음이었는데, 무엇보다 마트를 터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후쿠오카현관광연맹 www.crossroadfukuoka.jp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미투데이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