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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도시의 나날, 울산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8.05.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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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와 부산 사이, 울산이 있다. 수없이 여행했던 두 도시 사이에 있건만 울산은 처음이다. 
거대한 공장단지의 이미지만 떠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섣부른 편견은 울산에 발을 디디며 깨져버렸다. 슬도의 거문고 바람을 맞으며, 대왕암공원의 꽃마중을 받으며. 그러니 실로 여행이란 놀라운 것이 아닌가. 
 

해돋이 명소인 간절곶의 주말 풍경. 삼삼오오 모여 여유를 만끽한다

바다는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

8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깔린 도심을 지나간다. 공장단지의 높은 굴뚝이 솟아있고 거리에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중공업, 석유화학, 조선업 등 2차 산업이 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울산의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울산이 산업도시로 이미지를 굳히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현대 고 정주영 회장이 1970년대 울산에 현대중공업단지를 조성하고 조선을 수주했던 이래, 울산은 국가의 성장을 견인하며 성장해왔다. 근무 시간이 아니어도, 주말이어도 남색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것은 국가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일종의 자부심 때문이라고. 그러니 울산에 여행을 온다는 것은 생경할 수밖에. 그러나 실제 여정에 나서서는 생경함을 앞서 놀라움이 차올랐다. 이런 절경이 왜 이토록 꽁꽁 숨어있었나 하는 데서 말이다. 
 
 
슬도의 풍경. 고래를 형상화한 ‘바다를 향한 염원’ 조형물<아래>이 슬도를 대표한다. 방파제 안쪽 잔잔한 바다에서는 낚시가 한창이다
 

이름조차 어여쁜 ‘슬도’로 간다. 울산 동구, 공단을 지나 해안 마을께로 접어들자 하얀 등대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방어진항에 들어선 것이다. 방어진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됐을 만큼 큰 항구였다. 일제시대 어업전진기지로 사용되기도 했고, 한때는 전국 어획고의 1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고. 한낮의 방어진은 느긋했다. 방파제가 바람과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덕분에 고깃배도 요동 없이 정박해있고, 방파제 안의 얕은 바다에서는 해녀 몇몇이 물질을 한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놓인 노상에서 팔고 있는 것이 해녀들이 물질해 잡은 것이었구나. 
 
쉴 새 없이 쳐대는 파도에도 바위는 꿈쩍없다. 멀리 왼쪽으로 울기등대가, 오른쪽으로는 공단이 보인다
슬도 곳곳에는 의자가 놓여있다. 가만히 앉아 들으면 거문고 소리가 들릴지 모른다

슬도는 방어진항의 정면에 자리한 바위섬이다. 슬도로 이어지는 방파제는 해안선과 이어져 ‘ㄷ’자를 만들고 있다. 방파제 위로 널찍하게 놓은 길을 따라 사뿐사뿐 걷는다. 반구대 암각화 중 새끼를 업은 고래를 형상화한 ‘바다를 향한 염원’ 작품과 슬도의 하얀 등대가 나란히 가까워진다. 등 뒤로 빽빽한 공단과 건물 숲이 있는 것을 누가 믿으랴. 슬도의 풍경은 더없이 여유롭고 한가하다. 가만히 들으면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위섬인 슬도에 파도가 부딪히고 바람이 불어오면 거문고 뜯는 소리가 난단다. 그래서 한자 ‘큰 거문고 슬’자를 써서 슬도가 됐다는 설이 있다. 낭만적인 해석이다. 울산 바다의 바람과 파도는 슬도에서 음악이 되어 방어진항으로 흐른다. 
 
 
꽃이 핀 봄날의 대왕암공원 풍경

슬도 입구에 있는 소리체험관에서는 슬도의 거문고 소리 외에 울산 동구에서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소리 9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뱃고동소리, 계곡 물소리, 엔진소리 등등. 자연의 소리와 중공업단지의 엔진소리를 같이 아우르는 게 신기하다. 평온을 가져다주는 계곡소리만큼 울산의 힘이 되어준 엔진소리도 중요하단 뜻이겠다. 

슬도의 하얀 등대를 끼고 계속 걷다보면 방파제를 따라 낚시대가 즐비하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척척 낚시대를 들어올리는데, 매번 월척이다. 손바닥만한 물고기가 펄떡이며 올라온다. 무엇인지 물으니 전어란다. 빨리 낚시대를 내려야하는 낚시꾼은 질문이 성가시다. “원래는 돔이 잘 나오는데 오늘은 전어가….” 후다닥 뛴다. 오늘은 전어가 잘 잡힌다는 뜻이겠지. 

대왕암공원은 슬도의 위쪽 해안선을 타고 이어져 있다. 실로 대왕암공원은 남쪽으로 슬도까지 아우른다. 슬도에서 북쪽으로 걸어 노애개안과 고동섬, 몽돌해변을 차례차례 지나면 대왕암에 닿는다.
 
대왕암공원 안에는 총 4개의 둘레길이 있는데 바닷가길, 전설바위길, 송림길, 사계절길이다. 각각 짧게는 15분, 길게는 40분 내외의 길이기 때문에 반나절 정도면 대왕암공원의 모든 둘레길을 섭렵할 수도 있다. 둘레길은 저마다의 특색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굵직한 소나무가 숲을 이룬 송림길은 흙을 밟는 즐거움을, 봄이면 동백과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하는 사계절길에서는 계절을 맞는 즐거움을 느낀다. 슬도에서 대왕암을 잇는 바닷가길은 해안선을 따라 바람과 파도에 수없이 많은 시간을 내어준 탓에 독특한 모양을 하게 된 바위와 돌이 눈을 사로잡는다. 용굴, 할미바위 등 전설이 곳곳에 피어난 전설바위길은 이야기 속을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해줌은 물론이다. 

대왕암공원은 꾸며진 관광지라기 보다 가족과 연인과 혼자인 모든 사람들을 위한 열린 공간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의 함박웃음이 곳곳에서 튀어오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들뜬 표정이 가득하다. 실제로 태화강공원과 함께 울산 사람들이 자주 마실 나오듯 들리는 공원 중 하나라고. 
처음으로 대왕암공원을 찾은 이들은 육지 끝에 자리한 대왕암을 한 번 거쳐봐야 한다. 길지는 않지만 굽이굽이 재미있는 길이다. 큰 바위와 바위 사이, 작은 협곡을 지나가는 기분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딛다보면 발 밑으로 바다가 지나가고, 바위 가장자리를 지나기도 한다. 육지에서 멀어질 수록 바람은 거세진다. 그러나 풍경은 더한 신비감을 안겨준다. 거대한 대왕암은 멀리서 볼 때보다 더욱 크고, 웅장하다. 대왕암에 부딪치는 파도의 역동, 기암괴석이 선사하는 이질감이 어우러져 울산의 멋진 비경이 완성된다. 
 
울산 간절곶
 
고래를 테마로 만들어진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장생포 옛마을은 70~80년대 옛 추억을 되살린다. 고래 조형물 뒤로 울산대교가 보인다

언제든 소원을 띄우세요

울산의 바다를 보면서 고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울산에는 고래잡이를 주업으로 하던 어촌, 장생포가 있었고 덕분에 울산은 오랫동안 고래로 대표돼 왔다. 장생포는 고래 포획이 금지된 1986년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래 포획지로 이름을 날렸다. 울산의 별미로 고래고기가 꼽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포획이 금지된 지금은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만 유통할 수 있다고. 어찌됐든 오랜 기간 동안 고래와 연을 맺어온 울산은 고래와 관련된 문화를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에 펼쳐놓았다.
 
2015년 조성돼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는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에는 고래 조형물을 중심으로 한 고래광장, 고래조각공원이 있다. 가장 인기인 것은 고래잡이가 성황을 이뤘던 1970~1980년대 장생포 마을의 풍경을 재연해두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장생포 옛마을’이다. 고래잡이에 나섰던 배의 선장, 기관사의 집 혹은 잡아온 고래를 해체하는 고래해체장, 고래고기를 파는 고래식당 등 각 시설별로 이야기가 풍성하다. 

간절곶으로 간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일출 명소인 간절곶은 울산 시내를 벗어나 남쪽을 향해 차로 약 40분이면 닿는다. 호미곶보다 1분, 정동진보다 5분 일찍 해가 뜬다는 간절곶은 매년 많은 사람이 소원을 품고 모여드는 곳이다. 하지만 새해에만 즐기기엔 간절곶의 매력이 너무 크다. 하늘이 맑고 햇살이 선명하면 간절곶의 매력이 배가 된다. 오랫동안 해맞이 명소였던 덕에 이곳 또한 공원으로 조성돼 관리를 받고 있다. 잔디가 푸른 너른 언덕에서는 바다 바람을 이용해 연을 띄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바다의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해안선을 따라 데크길도 마련돼 있다. 
 
한낮의 간절곶은 평화롭다. 간절곶에서는 마치 해가 떠오르는 걸 보듯이 바다를 향하게 된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간절곶 소망우체통
 
물론 소망우체통 앞에서 기념사진도 남겨야 한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 최대 크기의 우체통인 간절곶 소망우체통은 간절곶의 대표 볼거리다. 실제로 우편을 넣으면 배달까지 해준다고 하니 사진만 찍기보다 소망을 적어 넣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 될지 모른다. 우체통에서 대각선 언덕으로는 간절곶 등대가 있다. 이곳에 처음 등대가 생긴 것은 1920년, 지금의 등대는 2001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이른 봄, 유채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이곳 등대에서 바라다보는 유채꽃밭이 특히나 아름답다고. 그렇다고 여름이라고, 겨울이라고 다를 쏘냐. 푸른 바다가 거문고 소리가 되어 흐르는 울산은 어느 계절이어도 아름다울 것이 분명하다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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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차민경 기자 cham@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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