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지도를 들여다보면 폴란드는 의외로 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국명이 평원을 뜻하는 ‘pole’이란 말에서 유래됐듯 폴란드는 평평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평평한 땅과 숲이 뒤얽힌 풍경은 남부로 갈수록 완만한 언덕으로, 그리고 푸른 산들이 펼쳐져 보이는 하이랜드로 바뀌어 간다. 이번에 소개하는 곳은 하이랜드의 현관문이라 할 수 있는 크라쿠프부터 푸른 산맥과 계곡의 물로 마음이 치유되는 포트할레까지 100km 남짓한 보석처럼 아름다운 지역이다. 한국에서 포트할레로 가려면, 크라쿠프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크라쿠
한국에서 폴란드까지는 LOT폴란드항공 직항편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11시간 남짓이면 바르샤바에 도착한다. 착륙하기 전에 비행기 좌석 창 너머로 만나게 되는 풍경은 유유히 흐르는 비스와(Wisła)강과 광활한 암녹색 숲. 바르샤바는 녹지가 매우 풍부한 도시로, 도시 총면적의 40% 가까이가 삼림과 공원을 포함하는 녹지다. 200만 명 정도인 바르샤바 시민 1인당 42㎡나 되는 넓은 삼림을 보유한 숲의 도시다. 그럼, 푸른색 가득한 바르샤바를 한 번 걸어볼까.바르샤바 시내 중심부에는 옛 정취가 묻어나는 역사적
위아래 무엇도 놓칠 수 없다호텔 체크인을 하기도 전에 난쟁이를 먼저 만났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일 정도로 작은 그들은 호텔과 카페 앞에서도, ATM에서도 익살스런 포즈로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브로츠와프에 처음 난쟁이 동상이 생긴 건 지난 2001년, 1980년대 브로츠와프에서 시작된 반(反)공산주의 운동 ‘오렌지 얼터너티브(Orange Alternative)’*를 기념해서였다. 당시 운동에 참가했던 학생과 시민들은 벽에 난쟁이 그림을 그려 당시 정권을 조롱했는데, 폴란드 민주정권이 들어선 후 민주화의 상징으로 도시 곳곳에 난쟁
일요일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쇼핑몰도 빵집도 문을 닫았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처 없이 거리를 쏘다니기. 그러다 보석 같은 가게라도 하나 발견한다면 그걸로 족할 요량이었다. 포즈난의 느낌은 어딘가 젊고 힙했다. 마이크로 브루어리와 DJ 부스를 갖춘 바, 창고를 개조한 미술관 등이 결정적인 단서였다.프라와 함께한 일요일포즈난은 실제로 젊다. 약 60만명 중 12만명, 즉 인구의 5분의 1 가량이 대학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제에도 활력이 있다. 폴란드 전체의 실업률이 평균 5~6%인 데 비해 포즈난의 실업
●중세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오후 1시57분, 중앙시장 광장(Plac Mariacki). 성모 승천 성당(Bazylika Mariacka) 앞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든 채로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셋, 둘, 하나, 땡. 초침이 정확히 2시를 가리키자 첨탑에서 등장한 나팔수가 힘껏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 뚝. 웬일인지 나팔수는 곡을 다 마치기도 전에 쏙 들어가 버렸다. 끊어진 나팔 소리의 사연이 슬프다. 1241년 몽골군이 크라쿠프에 침입했을 때, 이를 목격한 나팔수가 나팔을 불어 사람들에게 알리다가 몽골군의 화
야상곡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힌다.거리의 카펫처럼 보랏빛 어스름이 깔리면축제가 곧 시작된다는 의미다.완전한 자유의 곡은 없었다제목을 잘 몰랐을 뿐 녹턴 1번 B단조(Nocturne in B flat minor, Op.9 No.1)는 충분히 귀에 익었다.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르샤바 구시가에 있는 쇼팽 포인트(Chopin Point). 13살의 프레데릭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년)이 공연을 했던 콘서트홀이다. 대형 공연보다는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의 소소한
유럽 최대의 크기라는 리넥 구브니(Rynek Głowny) 광장은 유럽 최대의 인파로 북적이는 듯했다. 그런 분주한 흐름을 매 시간 잠시라도 멈추게 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 첨탑에서 비명처럼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였다. 몽골족타타르들의 침입을 발견한 초병의 나팔 소리가 목으로 날아든 화살 때문에 뚝 끊기게 된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지금은 나팔수 대신 소방관들이 첨탑 위에서 화마로부터 도시를 지키며 매 시간 연주도 병행하고 있다고.1596년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750년의 역사가 고여 있는 크라쿠프는 500
분할통치로 쪼개지기 전 폴란드의 화려한 전성기는 아마도 16~17세기의 폴란드-리투아리나 연방 시대였을 것이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보존된 빌라누프성이 담고 있는 것은 사랑과 자부심이다. 오스만제국에 맞섰던 빈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수호했다는 평가를 받는 얀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 1629~1696년)왕은 뛰어난 전략가였을 뿐 아니라 타고난 사랑꾼이었다.아내 마리아 카지미에라(Maria Kazimiera)를 위해 지었다는 궁전 내부에는 둘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상징들이 가득한데
●네온사인 빛나는 바르샤바의 미래 바르샤바는 비스와강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처럼 서쪽 다운타운은 상업과 행정기능을 수행하고, 산업혁명 시절 바르샤바에 편입된 동쪽은 철공소, 안경 공장 등이 있던 산업지대에서 주거지역으로 변화 중이다. 동쪽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깜짝 놀랐다. 드러난 모래등 위에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 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똑같았기 때문이다.돈이 있어도 물자가 부족해 퍽퍽했던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삶의 여유를 놓치지 않았다. 게토에서도, 봉
●회색빛 도시에 뜬 무지개 폴란드의 이웃들, 특히 독일이나 체코에서 아우라 넘치는 중세의 풍경에 흠뻑 취했던 여행자라면 회색빛을 다 씻지 못한 바르샤바의 스카이라인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도시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 보면 도시는 더 이상 풍경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자리다. 소비에트 양식의 무뚝뚝한 건물과 생경한 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도시는 시간을 보낼수록 구석구석이 아린 느낌이다. 스탈린의 선물이었다는 문화와 과학 궁전(Palace of Culture and Science)은 310m 높이로 여전히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게토에서 발굴한 진실의 편린 바르샤바의 박물관은 크든 작든, 모든 것이 특별하고 애틋했다. 전후 잿더미가 된 도시를 맞이한 그들에게 박물관은 대대로 물려받은 것, 우연히 발굴된 것들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도시를 재건해 냈듯, 역사를 재건해 내고, 그곳을 다시 출발점으로 삼아 나아가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최고의 건축가, 최고의 기술을 동원한 인터렉티브 뮤지엄들은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뒤집어 놓을 만큼 획기적인 체험을 약속한다. 바르샤바에서 꼭 가 봐야 하는 박물관을 꼽으라면 이견 없이 두 곳이 있다. 폴린 유대인 역사 박물관
올해 폴란드는 독립 회복 100주년을 맞았다. 그 100년은, 곳곳에 애잔한 아름다움이 깃든 이 나라로 성큼 들어서는 시간의 열쇠였다. 미지의 문 안에 선 여행자에게 꼭 맞는 열쇠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 폴란드 | 북쪽으로 발트해를 끼고 있는 동유럽의 국가로 1989년 체제 전환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인구는 3,850만 명,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다. 수도 바르샤바와 역사의 도시 크라쿠프, 비엘리츠카 소금광산과 아우슈비츠가 유명하고,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지만 아름다운 중세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소도
아무리 예산이 넉넉해도 같은 값어치를 지닌 호텔이라면 저렴한 곳을 원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묵어 보지 않고 더군다나 여러 곳에 묵어 보지 않았다면, 이번에 선택한 호텔이 얼마나 가격 대비 저렴한지, 얼마나 좋은지 그 차이를 알기란 어렵다.또 ‘정승같이 쓴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현명한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하우와 정보가 필요하다. 각 조건과 상황에 따라 어떤 호텔이 적합한지 호텔 예약 전문 업체에서 근무하는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전문가가 추천하는 호텔 1편에서는 유럽을 대표하는 도시 파리를 무대로 어떤 여행자들에게
ⓒ트래비 두둥실 유람선을 타고 파리를 둘러보자. 지금까지 밖에서 세느강을 바라봤다면 한번쯤은 세느강으로 들어가 강에서 바깥 세상을 둘러보자. 걸어서, 버스를 타고서 봤던 노트르담 성당과 에펠탑도 유람선을 타고 바라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파리는 참 다르게 다가온다. 샹송이 흘러나오는 유람선을 타고 파리의 모습을 가슴에 고이 간직해 본다. ★ 파리 유람선 이모저모세느강 유람선을 대표하는 ‘바토 파리지앵(Bateaux Parisiens)’은 에펠탑 앞 선착장을 출발, 앵발리드 기념관, 오르세 미술
ⓒ트래비시 외곽에 위치한 라 데팡스에 서서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이 보일 정도로 파리는 넓지 않다. 그 말인즉슨 웬만한 거리는 두 발로 걸어서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 루브르 박물관에서 튈르리 정원과 콩코르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개선문까지, 혹은 지성의 거리 생 제르맹 거리에서 생 미셸을 거쳐 룩상부르 공원까지 걸어 보라. ‘아, 파리가 이런 곳이구나!’ 느껴질 것이다. 아기자기한 골목길, 호젓한 세느강변 산책로, 사람과 상점들이 가득한 번화한 도심의 길 등 파리의 거리들은 걷는 재미를 준다. 차를 타고 지나갔다면 흘려 보냈
ⓒ트래비 파리의 지하철은 특별하다. 파리의 지하철은 단순히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파리의 중요한 문화 코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파리에 가면 꼭 한번쯤은 지하철을 타 봐야 한다. 파리 지하철에는 파리지앵들의 일상이 있다. 출퇴근하는 평범한 파리지앵들, 꽃다발을 들고 데이트 하러 가는 파리지앵들, 친구 또는 연인과의 약속 장소로 향하는 파리지앵들…. 세련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파리의 지하철에는 낭만과 멋이 있다. ★ 파리의 지하철이 특별한 이유 지하철역을 걷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에 발
파리를 즐기는 4가지 방법항공기가 파리 드골공항에 안착하자, 파리 도착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귀에 익은 샹송이 울려 퍼진다. 콧노래로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마음은 어느새 샹젤리제 거리, 몽마르트르 언덕, 라 데팡스를 걷고 있다. 파리는 그렇게 낭만적인 모습으로 첫인사를 건넨다.“낯선 이에게 마음을 열고 거리를 산책했어요. 누군가에게라도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 누군가가 바로 당신이었어요.……샹젤리제에는 태양이 빛날 때나 비가 내릴 때나 한낮이나 한밤이나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 다 있답니다.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 애니 * 독자후기트래비 일정보다 이틀 먼저 시작한 나의 여행은 에펠타워에서부터 시작됐다. 무작정 걸어서 간 에펠타워에서 만난 학생들. 그들의 웃음에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댔고 그들의 아름다운 아카펠라 향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3시간 동안 이어진 그들의 목소리와 10시30분이 넘어서 지기 시작한 노을과 야경. 파리는 날 이렇게 불러 주었다. “마드모와젤 애니!(Mademoi selle Annie!)” 혼자서 다녀온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웅장한 역사의 이야기가 귀를 뚫었지만, 막상 눈에 다가드는 것은 성의
가보고 싶은 곳은 아직도 많은데 시간이 빨리도 흘러간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며 파리에서의 또 하루를 준비한다. 오늘은 파리의 어떤 면을 보게 될까 기대감을 갖고 호텔을 나선다. 생 쉴피스 성당의 신비 속으로 원래 예정에는 없었지만 영화 에 등장했던 생 쉴피스 성당(Eglise St-Sulpice)으로 향한다. 생 쉴피스 성당은 노트르담 성당과 함께 파리 내 최대 규모의 성당으로 꼽히는 곳이지만 전에는 관광객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노트르담 성당과는 외관부터 풍기는 분위기가
애니는 새벽녘 파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카메라를 들고 호텔 주변 지역을 한 바퀴 돌아본 후, 크로와상과 진한 커피로 프랑스식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오늘의 첫 목적지인 노트르담 성당으로 가기 위해 시떼 섬(Ile de Cite)으로 향한다. 애니, 노트르담에서 마음을 털다 ⓒ트래비그다지 폭이 넓지도 않은 세느강 안에 자리하고 있는 섬이 있으니 바로 시떼 섬이다. 아침부터 시떼 섬을 찾은 이유는 그곳에 노트르담 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나절 성당 내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받을 때의 풍경이 유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