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특급 리조트에서의 호사다. 안탈리아 벨렉 지구 안에 있는 대부분의 특급 리조트는 올 인클루시브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맥주와 음료, 스낵 등 객실 내 미니바는 매일 새로 채워지고 뷔페 레스토랑과 호텔 내 라운지, 비치 바 등에서 마시는 음료와 스낵도 무료다. 위스키, 코냑, 와인, 칵테일 등 주류도 어느 정도 등급까지는 무료라 주당들에겐 천국이 따로 없다. 맘에 드는 아무 곳이나 자리 잡고 앉으면 직원이 다가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묻고 요청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뷔페가 아닌 조금 더 특별한
올해 6월, 터키는 국호를 튀르키예로 변경했다. ‘터키인의 땅’이라는 의미다. 이들의 땅에는 신들의 휴양지라는 안탈리아가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도 선택한 운동과 휴식의 천국튀르키예라는 국호처럼 생소할 수 있지만 안탈리아는 고급 리조트가 즐비한 지중해 최대의 휴양지다. 최근에는 동원령을 피해 이주하려는 러시아인이 급증하면서 안탈리아 부동산 가격이 최고 10배까지 폭등했다는 국제 뉴스가 소개되기도 했다.안탈리아는 러시아를 비롯해 유럽 관광객이 즐겨 찾는 대표 휴양지로 전형적인 지중해성기후 지역이다. 여름은 고온 건조하고 겨울은 온난 다
ANKARA튀르키예의 문화를 엿보고자 할 때 아느트카비르(Anıtkabir)를 지나친다는 건 앙카라에서 할 수 있는 최고로 우둔한 짓이다. 튀르키예인들의 얼이랄까, 정신 같은 것이 집약돼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기엔 ‘그’가 잠들어 있다. 그가 누군지 밝히기 전, 그의 인기부터 실감해 보자. 우선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 그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정도로 길거리나 식당, 관공서, 학교 할 것 없이 어디든 그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도시 중심가엔 늘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심지어 모든 튀르키예
오늘의 튀르키예가 낯설다면 비단 변경된 국호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그가 빠르게 어제와 이별하고 있단 증거다. 그리고 그 중심엔, 예술 신세계가 있다. ●낡고 날것들의 동네“그 이름, 진짜 마음에 안 들었었다니까요. 우린 겁쟁이가 아니라고요.” 호텔 테라스에서 꿀 넣은 시리얼을 우물거리며 가이드가 말했다. 유엔(UN)의 승인을 받아 터키의 국호가 ‘튀르키예(Turkiye)’로 변경됐다는 뉴스가 뜬 아침이었다. “터키(turkey)가 영어로 칠면조 말고 겁쟁이, 루저란 뜻도 있잖아요. 그래서 작년부터 정부가 국호 변경 캠페인을 진행해
신성한 모스크와 해협 크루즈, 동서양이 조화된 문화. 보고 즐긴 모든 것이 좋았지만, 이 거대한 도시에서는 오히려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 들어왔다.음식도, 사람도 늘 달콤했다. 터키시 딜라이트(Turkish Delight)는 달콤한 이스탄불 그 자체였다. ●터키의 아침이스탄불 여행 가이드인 오즈렘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터키의 아침식사를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는 그녀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터키의 아침식사는 ‘카흐발트(kahvalti)’라고 한다. 카흐(kahve)는 커피를 의미하고 ‘알트(alti)’는 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타는 태양을 피하려 숨어든 곳엔 십자고상이 매달렸고 목을 축이러 고개를 숙인 자리엔 타스비흐*가 놓여 있었다. 모래 언덕 아래 잠들어 있는 것은 이 땅에서 수세기 동안 교차했던 영욕들.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으므로, 산 자들은 침묵하는 무덤 위를 헤매면서 조서를 꾸미는 수밖에 없다. *타스비흐 | 이슬람 묵주 ●Hatay 하타이 구명보트에 올라탄 이들에게불볕이란 게 이런 건가. 40도를 육박하는 온도와 타는 듯한 건조함이 하타이(Hatay)를 휘감고 있었다. 빙 둘러보아도 언덕이나 산의 능선은 보이지 않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기만
여행자가 가장 행운이라고 느낄 때는 찾아든 도시가 축제 중일 때다. 으스파르타는 때마침 장미축제 중이었다. 시청 앞 광장에는 전통복장을 한 남자들이 피리를 불고 북을 두드리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세르비아, 카자흐스탄 등 주변 국가에서 온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축제 행렬을 따라가다 멋진 콧수염을 가진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옷걸이처럼 생긴 수염은 족히 30cm는 되어 보였다. “웰컴 투 으스파르타. 장미도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가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아 유 꼬레?” 그렇다고 답하자 지금까지 만났던
로쿰(Lokum)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까, 모든 일들이 행복함을 향하는 듯 느껴졌다. ‘여행하는 삶을 살기를 잘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이다’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다. 맛있는 음식에 내 눈이 저절로 스르륵 감기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배시시 번지는 그런 순간. 아피온 시내에 자리한 ‘미림 울루(Mirim Oğlu)’는 1860년부터 로쿰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주인 알리가 시식해 보라며 집어 준 건 부드러운 치즈가 잔뜩 들어간 로쿰이었다. “카이막 로쿰이라고 하지.
Cappadocia 카파도키아 시난은 300만년 전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살았던 괴레메 지역의 야외 박물관에는 터키어로 ‘아리크Aliq’라고 부르는 장수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스탄불에 묻힌 시난의 묘 옆에도 이 나무가 자라고 있다. 봄에 열매가 열리고 만추에는 잎이 빨갛게 물드는 나무다. 시난은 자신이 태어난 카파도키아에서 깨달은 태초의 신비를 건축으로 되살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에르지예스 화산 방향에서 해가 떠올랐다. 네브셰히르, 괴레메, 카이세리, 우츠히사르, 위르귀프 등지
Istanbul 이스탄불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양과 서양이 지척이다. 사람마다 이스탄불을 찾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미마르 시난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이스탄불은 터키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와 역사와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갈라타 다리 위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낚시꾼들이 매일 진을 치고 있다 미마르 시난이 묻혀 있는 묘 방향으로 이어진 길. 미마르 시난 골목이라고 불린다 동서양을 이은 건축예술가, 시난미마르 시난은 카파도키아 출신이다. 그곳에서 지구가 간직한 태초의 신비를 눈으로 체험했고 에디르네라는 오스만
999개 창문에 빛이 걸렸다터키 건축 대가, 미마르 시난을 만나는 여정 999개 창문에 동방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스며든다. 에게해와 지중해를 지나 강을 거슬러 온 동양의 타일 2만2,000개로 장식됐다. 오스만제국을 대표하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건축가 미마르 시난(Mimar Sinan)이 걸작으로 남긴 셀리미예 사원은 이로써 더 특별해졌다. 미마르 시난 건축기행을 다녀왔다. 한반도에서 7,000km 떨어진, 오스만제국의 두 번째 수도 에디르네가 첫 도착지였다. 8,000년 된 도시 에디르네에 해가 지고 있다. 에스키 사원에서 바라본
Architect Turkey터키의 건축 거장미마르 시난Mimar Sinan ●미마르 시난의 숭고를 경험하다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어떤 유적이나 자연에 감동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랜드캐니언이나 사막의 석양 같은 것을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데, 그것을 미학적으로 ‘숭고Sublime’라고 한다. 어떤 현상이나 대상의 과학적 의미나 원리를 몰라도 정서적으로 압도되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모스크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 터키에서 보게 되는 모스크Camii, 자미들의 첫 느낌이 내게는 바로 그 숭고의 미다. 모스크의 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