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엔데믹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 여행이라는 유령이. 이건 엔데믹 여행 재개 원년 2022년을 축복하는 여행자 선언이다.올해 상반기까지 사방이 막혔던 팬데믹 세상의 모든 권력, 즉 사상 유례없던 거대 감염병과 그를 막기 위한 차단막, 격리와 백신, PCR. 비대면과 국경 폐쇄가 이 유령(여행)을 사냥하기 위해 신성 동맹을 맺었다.팬데믹이 선포된 2020년 초, 그들은 모든 교류 중 가장 실천적이며 적극적인 행위인 ‘여행’에 대해 백안(눈을 까뒤집는단 이야기)을 넘어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삶의 모든 기준이 바뀌었
여행을 담는다는 것, 모두 달랐다. 마크 트웨인에겐 글이었고 폴 고갱에겐 그림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여행작가의 대선배들이다. 물론 그 이전엔 ‘마르코 폴로’도 있었고 네덜란드인 ‘하멜’, 우리나라엔 ‘혜초’와 ‘윤선도’가 있었다. 명나라의 환관 ‘정화’도 함대를 끌고 엄청나게 돌아다녔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의 글과 그림을 통해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여행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 아닌가? 전남 강진 어느 무인텔에서 소주를 잔뜩 마시곤, 타고난 역마살 신세를 한탄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직업이 언제 생겼나 궁금해져 찾아봤다. 여
이우석 소장이 전하는 잔혹동화. 여행자의 낭만, 그리고 허상에 대하여"세상에는 우리가 머릿속에 품고 지냈던 상상과는 터무니없이 다른 곳이 많다.현실적 여행을 위해 전두엽을 좀 더 차갑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여행은 흔히 꿈과 낭만을 찾아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일견 그렇다. ‘원하는 것’이 아니라 ‘꿈’이란 단어를 쓰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자신이 기대하는 것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 실재하는 세상을 보여 주겠다. 하하하.만화영화 의 배경으로 등장한 스위스(정확히는 스위스 그라우뷘덴주 마이엔펠트).
소멸 예정인 마일리지로부터나는 헤어지기로 결심했다.헤어질 결심, 두 번째 이야기. 마일리지라는 것“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저희 380만원짜리 인천(ICN)-로스앤젤레스(LAX) 간 항공권을 예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외로 떠나는 여행길이 열렸다지만 아직까지 여행 일정을 덜컥 잡기엔 요원하기만 하다. PCR 검사만 면제시키면 뭐하나, 콧구멍만 편하지. 수백만원에 이르는 이놈의 항공권 가격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누군가 ‘코로나 이후는 그 이전과 다른 세상이다’라고 했던가. 어딜 검색하나 내게 익숙한 항공권 가격이 아니다. 일명
c59. y20. 파란(碧)색 계열이며 천청색(淺靑色)이라고도 한다. CMYK 색상 코드(인쇄와 사진에서의 색 재현에 사용되는 체계)는 5AC6D0. 환상적 트로피컬 블루. 하지만 난 이 색을 봐도 전혀 들뜨지 않는다. 그저 청크린(변기세정액)이나 캔디바(빙과류) 같은 색이라 여기고 있다. 이 색으로 가득한 천국에서 주야장천 일만 하다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니요언제였나. 십여 년이 흘렀을까. H선배와 함께 몰디브에 취재 여행을 갔을 때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인 허니무너의 버킷리스트에 꼭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몰디브다. 원래 이름
나는 지금 기차에 앉아 있다. 이번 달 8번째, 이번 주만 4번째다. 의 철이처럼 매일 기차에 앉아 있는 셈이다. 낭만적인 이름, 기차난 기차를 좋아한다. 모든 탈것 중에 으뜸이다. 낭만적이라는 배와 가장 빠른 운송수단인 비행기에 비해서도 그렇다. 기차는 적당히 낭만이 있고 빠르다. 기차는 역과 역을 잇지만, 대부분(새로 생긴 역은 멀다)의 역은 도심 한복판에 있다. 결과적으로 어떠한 교통수단보다 가장 최종 목적지에 가깝게 여행객을 데려다 주는 수단이 기차다. 물론 영종 신도시에 사는 사람에겐 조금 다른 이야기긴
이것 참, 너무 그립다.귓가에 맴도는 여행 소리가 더욱 그립게 만든다. 사운드 오브 비 버드늙었나? 요즘 잠이 없다. 유난히 일찍 출근하던 길, 아파트 단지에서 새소리를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허공에 욕을 하며(가끔 사물과도 싸운다) 새똥을 피해 멀찌감치 돌아갔다. 하지만 이날은 문득 방콕의 어느 아침이 떠올랐다. 댓바람 뙤약볕 속 지저귀던 새들의 합창. 분주한 짹짹 소리에 깨어나고, 유난히 뜨겁던 방콕의 그날 하루가 시작됐다.“븅븅~” 페루에서 들었던 벌새(hummingbird) 소리도 기억난다. 헬리콥터처럼 꽃마다 순회하며 뾰족
일상의 반복이 지겨워져 여행을 떠난다지만, 도착 즉시 다시 그곳의 루틴이 시작된다. 조식부터 그렇다. 조식당 가는 길늘 그렇듯 여행의 하루는 호텔 조식으로 시작한다. 여차하면 조식 뷔페 마감으로 손가락만 빨게 된다. 그래서 꼭 알람을 맞추고 잔다. 시차 적응에 실패하면 몸이 말려 놓은 시래기 같아진다. 하지만 아침식사에 대한 열망은 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보통 둘째 날부터 ‘호텔 조식 룩’이 사라진다. 나가 보면 다들 그렇다. 양말을 아끼느라 맨발로 슬리퍼를 질질 끌고 식당으로 향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아침에 타는 엘리베
세상 천지에 좋은 사람만 사는 것은 아니다. 하인리 힘러(Heinrich Himmler, 나치의 SS친위대장)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도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같은 전쟁광도 있게 마련이다. ●이집트 뮤지움 빌런, 뮤지움 뮤지움 이집트에선 ‘이브라힘’이라는 꽤 근사한 이름을 가진 가이드를 만났다. 아침이고 늦은 밤이고 그는 언제나 웃었다. 처음엔 그 웃음이 고대문명의 후손들이 가난한 동양인 여행작가를 환대하는 최고의 표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구, 이 멀리까지 호구를 보내 줘서 반가워요’라는 뜻이었다.이브라힘은 과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에 놓고 온 것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내 마음을 두고 왔어요. 언덕 위 높은 곳에, 그것이 나를 불러요. 작은 케이블카가 별까지 반쯤 올라가는 곳이죠(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High on a hill, it calls to me. To be where little cable cars climb halfway to the stars).” 부드러운 선율의 피아노 연주와 잘 구운 와플 같은 ‘토니 베넷(Tony Bennett)’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그곳에서 고요의 바다를 유영했다. 일찌감치 게이트를 향한 이유몇 년 전 어느 겨울. 나는 무슨 이유로 중국 상하이를 갈 일이 있었다. 아침부터 운이 좋았다. 공항버스도 금방 왔고 카운터에서 비즈니스석 업그레이드를 해 준 터라 굉장히 신이 나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라운지로 잽싸게 달려가 밥을 두 접시나 퍼먹었다. 여전히 20여 분 여유가 있었지만, 오만함으로 무장하고 일찌감치 게이트로 향했다. 남들이 리을(ㄹ)자 모양으로 줄을 설 무렵 ‘상위 클래스 줄’로 입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입장하는
너는 11시간 후 유럽에 도착한다. 그리고 네 지갑은 지옥에 간다. ●그 술의 맛을 모르는 이유여행자는 무엇인가를 사게 되기 마련이다. 쇼핑은 여행의 재미를 준다. 대부분 국내에서 볼 수 없는 꽤 근사한 물건을 구매하고 그것을 사회관계망(SNS)에 올려 자랑도 한다. 나는 불행히도 대부분에 속하지 못했다. 절대로 필요 없는 물건을 싸게 구매하거나 꼭 필요한 물건을 비싸게 사고 만다. 충동구매를 피하기 위해서도 환전을 많이 하지 말았어야 했다. 테러도 감염병도 인종차별도 무섭지만, 개인적으로 여행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장애는 물가라고
은 드물고 귀한 축제 여행기다. 대한민국 축제에 대해 느껴 온 낱낱의 애증이 코믹하게, 살벌하게, 슬프게 깔려 있다.,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두꺼운 팬층이 있을 정도로 유쾌한 필력을 자랑하는 김혼비·박태하 부부 작가가 12개의 지방 소도시 축제를 여행하며 기록한 여행기는 격월간 문학잡지 에 연재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책으로 묶였다. ‘코시국’의 여행책인데도 쇄를 거듭해 7쇄에 이르렀다. 민음사 | 1만5,000원 축제 여행기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는 은
나이가 들면서 겁이 늘었다.30년 전 해병대를 나왔지만, 귀신이고 뭐고 겁부터 난다.뭔가 꺼려지는 일은 그동안 충분히 해봤다. 그러니 제발 그만해, 나 너무 무서워. ●애벌레 먹방이 잘 어울리는 사람번지점프, 로프에 몸을 묶은 채 고층 빌딩 바깥을 걷는 스카이 워킹, 겁이 난다. 강원도 인제군 번지점프에서는 후한 강원도 인심(?) 덕에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한 번 값에 무려 2번이나 태워 주는 것도 모자라, 끈도 다소 넉넉히(?) 풀어 줬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한참 떨어졌다.과거 해외로 여행 취재를 다닐 때의 일이다. 보통
등대에 갔다.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이것뿐이다. ●시작점 등대에 가기로 했다. 간밤에 폭설이 내렸고, 도시의 온도가 곤두박질쳤다. 숫자로만 존재했던 ‘-28℃’는 눈발과 바람과 공기가 되어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닿았다. 지독하게 추운 블라디보스토크의 겨울이었다.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침대 위에 웅크리는 것과 등대로 가는 것. 이불을 걷었다. 패기를 넘어 거의 자해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바깥을 나서는 데엔 대단한 각오씩이나 필요했다. 콧속을 뚫고 뇌까지 닿는 겨울바람을 버텨 내리란 각오, 유리조각에 허파가 찔리는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어느 영화와 같았던 홍콩 회상기. 공중전화처럼붉은 네온으로 휘갈겨 쓴 커다란 한자 간판이 건물 사이 공중을 점령하고 있는 곳. 그 아래 골목 사이에는 윗도리를 깐 누군가가 커다란 기름 솥에 무엇인가를 튀기고 있고, 미지근한 연경(燕京) 맥주병이 오간다. 골목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주방장이 미필적 고의로 육수의 짠맛을 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800원짜리 완탕면은 꽤 맛이 좋았다. 노래를 부르는 듯한 말씨가 흐르는 식당 진열장에는 가금류(혹은 야생조류)가 모가지를 붙인 채 걸려 있고 앞에는 전 세
잠깐만, 여권을 가지고 나왔던가?카메라는 챙겼던가? 여행 중 지울 수 없는 걱정들. ●노파심의 시작할머니는 아니지만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해야 할까, 여행 중엔 괜한 걱정이 많이 생긴다. 공항을 가기 위해 집 현관을 여는 순간부터 걱정은 시작된다. ‘컬링 스톤’이라도 든 게 분명한 캐리어를 질질 끌며 걸어가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7400번 공항버스가 떠나 버린 것은 아닐까? 분명히 승리교회 앞에서 15분에 출발이라 그랬는데, 혹시 예전 시간표가 아니었을까?’ 네이버로 확인은 했지만,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기어코 버
‘여행이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모세의 십계에 필적하는 율법처럼 강요하는 너. 너의 차디찬 웃음을 또 보고 싶진 않아. ●여행을 모독하지 말라고?오, 그는 과연 우월했다. 낡은 여권에 아로새긴 수많은 낯선 비자 도장과 무수한 각국의 출입국 기록, 국내 방방곡곡에 대한 글과 사진 포스팅 그리고 인터넷과 모바일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그의 흔적들. 특히 SNS(사회관계망)에서 여행업계와 세상을 호령하는 그의 어록들을 발견할 수 있어, 마치 랜선을 끌어당기자면 그 끄트머리에는 배낭을 멘 그가 딸려 올 듯하다. 다만 그의 ‘대단한 여행
여행에는 늘 언어라는 문제가 있다.파파고가 해결할 수 없는, 그 어떤 문제에 대하여.볼륨 4의 목소리여행에는 늘 언어 문제가 걸리게 마련이다. 한때 서점에 ‘나라별 여행 실용 회화’ 코너가 길게 있었던 이유다. 시원스쿨 출신처럼 몇 개 국어에 통달한 ‘언어의 달인’이 아니었던 나는 무수히 많은 해외 여행지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생애 마지막으로 토플 시험을 본 것이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7년이었으니 그 수준이야 오죽할까. 다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업종별 전화번호부만큼 어마어마한 두께의 얼굴 가죽을 지녔다는 것과 모든 나라
여행의 절반은 밤, 나이트 라이프를 헤아린다.결국 마시는 이야기다. ●술이 없는 낮, 술이 있는 밤세상의 모든 여행은 정확하게 둘로 나뉜다. 낮과 밤. 아! 2015년 7월에 떠났던 핀란드 여행은 예외로 한다. 당시 핀란드 로바니에미(Rovaniemi)는 완벽한 백야였다. 낮이야 대개 예정대로 흘러가지만, 밤은 늘 달랐다. 고로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면 항상 밤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냥 보내는 밤이란 내겐 없다.여행지에선 늘 술을 마셨다. 요거트나 비타민 워터를 마실 리는 없잖은가. 늦은 시각 호텔에 도착해도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