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조차 몰랐던 도시에서의 일주일. 처절하게 시렸던 그 겨울을 천천히 곱씹어 보고 있다. 안개처럼 자욱한 눈보라 속에서 웅크리며 보낸 날을 왜 그리워하게 된 걸까.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 오후 2시. 러시아 동부 사하공화국(Republic of Sakha)의 야쿠츠크(Yakutsk)시. 현재 기온 영하 35도. 나갈 채비를 하며 날씨 앱을 켠다. 어차피 춥거나 혹은 더 춥거나 그뿐인데, 외출 전 숫자 확인이 하나의 의식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강박증 환자처럼 내복부터 울양말까지 하나하나 체크한다. 그래야 문밖을 나설 용기가 비로
러시아인들은 이유 없이 미소를 짓지 않는다.겨울만치 냉랭한 얼굴이 양쪽으로 수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가진 건 낭만뿐이었다. ●낭만주의자의 하루 참말로 하루가 길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과 그에 무색한 시차 때문만은 아니었다. 7월 중순 한여름인데도 자꾸만 옷깃을 여미고 하늘과 시계를 번갈아보며 시간을 확인했던 걸 보니 분명 러시아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러니까 해는 밤 9시가 지나서도 넘어갈랑말랑 늑장을 부리는 중이었다.백야다. 여름이면 부지런하지 못한 해 덕분에 시간이
앗스Assy앗스 휴양지로 가는 길. 대지를 가득 메운 연녹색 물결이 지평선까지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 작은 점처럼 마소떼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이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냈다. 때때로 소떼가 도로를 점령한 채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평화롭다’는 말은 이런 풍경을 표현한 게 틀림없다. 하늘은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이곳엔 미세먼지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자연 그대로의 색을 입고 있었다. ●이런 곳이라면 절로 건강해지겠어!바시키르에는 휴양은 물론 치료와 요
부르잔스키Burzyansky 북에서 남으로 2,000km 남짓 뻗어난 우랄 산맥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경계다. 최고봉인 북부의 나로드나야산 높이는 1,894m이며 남부로 갈수록 점점 낮아져 준평원 같은 지형이 나타난다. 우랄 산맥 남부에 있는 스타로수브한굴로보(Starosubkhangulovo) 마을은 우파에서 차로 5시간을 달려야 닿는 작고 아담한 산골 마을이다.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파스텔 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천연가스가 풍부한 나라답게 마을 구석구석 노란색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선 매
바시키르인의 땅을 가다백야가 시작되던 6월의 첫날. 난생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월드컵의 함성도 사그라진 지금, 그곳에서 보낸 5일이 꿈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우파UFA “짝짝짝!” 요란스런 박수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행기가 이제 막 우파국제공항에 닿은 참이었다. 무슨 일이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당혹스러워 하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기내는 내릴 채비를 하는 승객들로 분주했다. 혹시 꿈을 꾼 건가 싶어 볼을 꼬집어 보려던 찰나, ‘비행 동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