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리스본의 해는 유난히 길고 눈부셨다. ●뛴다, 뛴다 6월 여름, 포르투갈 리스본. 시작은 좋았다. 호기롭게 질러 버린 KLM 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덕이다. 돈을 썼으면 티를 내는 게 자본주의의 도리지. 샴페인도 들고, SNS용 허세숏도 찍고, 괜히 안 보던 흑백 영화까지 보고. 뭐 하여튼 남들 하는 온갖 천진난잡한 짓은 다 했다. 그땐 지금보다 여행을 더 즐길 줄 알았던 것 같다.그 후 얼마간의 여행도 행복했다. 이름만 들어도 1만408km의 거리가 느껴질 만큼 낯선 나라. 모든 게 신기했고, 좋았다. 아침엔 상 조르제 성이
일생에 잘한 일 두 가지를 꼽으라면 첫 번째는 아내와 결혼한 것,두 번째는 리스본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이다.7개의 언덕마다 빛나던 그것 리스본과 로마의 공통점은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로마와 리스본의 풍경이 그토록 다른 이유는, 탁 트인 바다 풍경 때문이다. 매일 조금씩 다른 얼굴의 일몰이, 항상 그녀의 오른쪽 뺨으로 떨어지는 그 시간이 영원히 반복되었으면 했던 여행. 역시 다녀오길 잘했어! 리스본 허니문. ●무르익은 와인 한 병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Miradouro das Portas do Sol드넓
모르면 따분하고 알면 보석처럼 귀한 것이 궁전 여행이다. 포르투갈에서 보물을 찾았다. 편히 들어가 보겠습니다이베리아반도를 양분하고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80일간의 여행 기간에서 5분의 1 정도를 포르투갈에서 보낸 것은, 두 나라가 자치하고 있는 면적 및 비율과 비슷하다. 즉, 포르투갈에 대한 나의 애정의 지분은 결코 작지 않다. 상징적이지만 아직도 왕이 있는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의 군주제는 110년 전, 1910년 10월5일 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1,050년간 이어졌던 역사의 한 챕터의 그렇게 넘어
포르투갈 여행 내내 슬펐으나 기뻤다.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애절한 파두를 매일 들을 수 있었으니. ●입문을 위한 2개의 키워드파툼과 사우다드포르투갈 음악 파두(Fado)는 숙명 또는 운명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온 단어다. 아랍 무어인의 지배를 받은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이슬람의 ‘숙명관’은 정신적,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대항해 시대(15~16세기)를 맞으며 포르투갈 사람들은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바다로 나갔고 바다는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남자들은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을 뒤로한
오래전 냉담해진 가톨릭 신자인 주제에 세계적인 가톨릭 성지를 순례했다. 포르투갈 파티마(Fatima),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므로 죄스럽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파티마를 중심에 둔 포르투갈 중부 지역 여행 이야기다. 성모 마리아를 보았네 가톨릭 국가 포르투갈의 신심 두터운 신자여서 그랬는지 성모마리아 발현을 설명할 때 가이드 마가레트는 더욱 열정적이었다.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13일에 성모마리아가 이곳 파티마에 살던 3명의 목동 앞에 나타나셨어요. 8월에만 다른 날짜 다른 곳에서 나타나셨는데
포르투갈 소도시를 여행했다. 정답고 다정하게 다가왔던 작은 도시들. 사람들은 친절했고 음식은 맛있었다. 오직 포르투갈에서만, 오직 소도시에서만 마주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장면들.●가고 또 가는 거야 Evora 에보라 어느 여행자가 그랬다. “한 번 들은 여행지는 정보가 되지만 두 번 들으면 가야 하는 곳이 된다”고. 그 여행자는 스페인의 코르도바가 그랬고 포르투갈의 에보라가 그랬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리스본에서 에보라로 곧장 버스를 타고 갔다고 했다. 여행자들은 언제나 앞서 간 여행자들과 현지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여행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