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가고시마에서 올라와 후쿠오카현(福岡県)의 노천온천에서 하룻밤을 보냈지만 뻐근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샤론 파스. 일본에 오면 꼭 사야 한다는 이 명함 크기의 파스를 발바닥에 붙이고 나니 시원한 느낌이 정강이까지 전해져 왔다. 19번째 규슈올레인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는 후쿠오카현 남부의 미야마시(みやま市)와 기요미즈야마를 아우르는 코스다. 코스 이름에 아예 산이 포함되어 있으니 단단한 각오도 준비물로 배낭에 챙겨 넣었다. 마을에서 조야마삼림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왕대나무가 촘촘한 숲길이다.
그래도 나는 산과 길에 대해 나름의 경의를 표하며 살아왔다.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정상에 가 봤고 안나푸르나도 베이스캠프까지는 다녀왔다. 카미노데산티아고의 850km도 꼼꼼하게 다 걸었고, 제주 올레도 기회가 될 때마다 새로운 구간을 찾아다녔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데, 몇 해 전부터 조금씩 마음을 흔들던 이름이 하나 있었다. 규슈올레였다. 일본이여서 그랬던 것 같다. 열 손가락으로 모자를 만큼 여행했지만 대부분 온천, 식당, 박물관, 쇼핑점에서만 멈춰 섰던 여행이었다. 단 한 번 일본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과 정을 처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알지?17코스에는 프로방스도 있고 앙코르와트도 있어.게다가 제주 12코스의 수월봉과 10코스 바당올레도 있다니까.”믿지 않았다. 아무리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를 좋아해도 그렇지, 이건 좀 곤란하지 싶었다. 그러나 다 걷고 나서 알았다. 올레를 좋아하는 그녀가 왜 옥타브를 높여 이야기했는지. 푸른 바다와 소담한 시골 풍경을 함께 만날 수 있는 미나미 시마바라 코스 비가 온다던 예보는 빗나갔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파란 하늘은 더 없이 높았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호토모토에서 산 카레 도시락과 물 한 병을 배낭에
규슈 렌터카 여행④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熊本市)+야마가시(山鹿市) For Driver 시마바라항에서 페리에 차를 싣고 구마모토로 향했다. 육로로 가면 해안을 따라 뱅글뱅글 돌아갈 길이지만 바닷길로는 한 시간 거리다. 마지막 날 일정은 구마모토에서 후쿠오카 공항을 향해 위로 올라가는 여정. 이 길이 위험하다. 다양한 음식들이 여행자의 허기, 식욕, 호기심, 식탐을 향해 끊임없이 구애한다. 먹고 달리고, 먹고 달리고, 먹고 달리고. 디저트까지 포함하면 모두 다섯 끼. 고백하겠다. 본문엔 없지만 후쿠오카로 가는 길에 돈코쓰 라멘의 발상지
규슈 렌터카 여행③나가사키현 운젠시(雲仙市) +시마바라시(島原市) For Driver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것을 보려면 둥글게 순환하는 여행코스가 최적이다. 규슈 여행은 후쿠오카 공항으로 들어가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 항상 소외되는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나가사키현의 운젠, 시마바라 등의 지역이다. 일정 순으로 나열한 여행기지만, 사실은 이렇다. 이토시마와 다케오가 점심 먹듯 마음에 점만 찍은 곳이라면 나가사키현의 운젠과 시마바라시는 마음에 따뜻한 돌덩이 하나를 품어 새긴 듯하다. 하루 반이라는 긴 일정 탓
규슈 렌터카 여행②사가현 다케오시(武雄市) For Driver 다케오시(武雄市) 는 제주올레와 합작해 만든 규슈올레길이 처음 생긴 곳이며, 가장 인기 있는 올레 코스이기도 하다. 시간이 없다면 다케오올레코스의 핫 스폿을 차로 둘러보며 잠깐의 산책을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다케오 온천마을, 녹나무가 자리한 대숲 외에도 1,500년의 고분 유적이 있는 키묘지절(貴明寺)과 이케노우치 호수(池ノ内湖)를 따라 걷는 길이 아름답다. 다케오 올레 구간은 아니지만 인근에 아리타포세린파크 논노코노사토(有田ポーセリンパークのんのこの郷)도 들러 볼 것
기동력 빵빵, 만족도 빵빵규슈 렌터카 여행 규슈 북쪽 지역을 3박 4일 여정으로 돌아봤다. 여정 내내 신화 속 카이로스처럼 시간을 관장하거나, 소처럼 위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다 렌터카를 이용해서 그렇다. 기동력을 장착한 여행자는 마음 가는 대로 어디든 닿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심장이 뛰었다. 네 개의 현에 속한 여섯 개의 시를 호기롭게 달렸다. 이토시마 해안가 부부바위 맞은편,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54번 해안도로이번 여행에서는 규슈 북쪽 지역을 큰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 덕에 기억해야 할 이름도, 간직해야 할 추억
3 Days in Senshu 센슈는 낯설다. 그래서 늘 ‘오사카 남부’를 함께 달아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게 된 센슈는 일본의 여느 도시보다 다정하고 살가웠다. 바닷가 마을 특유의 싱싱하고 팔팔한 기운은 우리나라 남도와도 닮았다. 짧지만 진한 여운이 남는 3일간의 나들이를 떠났다. 아담한 규모, 섬세한 장식, 팔진 정원으로 사랑받는 기시와다성이름도 생소한 센슈는 어디? 센슈(千秋)는 오사카부(大阪府) 남서부에 위치하는 어촌 도시다. 오사카부에는 43개의 시(市), 정(町), 촌(村)이 있고 그중 센슈 지역은 사카이시(坂井市
되돌아간 것은 계절만이 아니었다. 낯선 그곳에는 익숙한, 어쩌면 그리운, 한편으로는 내가 겪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알 것만 같은 애틋한 시간들이 자박자박했다. 오래된 시간의 태가 나는 그곳, 구마모토에서. 나무 나이테처럼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극장 덴키칸 비가 내리는 궂은 날이지만 또 그대로 운치가 있는 스이젠지 정원 구마모토 거리거리에 덜컹이는 소리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노면전차 ●무너진 성벽에도 견고한 시간들 저마다 ‘그곳’에 대한 기억과 잔상은 다르겠지만 구마모토(熊本)에 관해서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규슈 여행에서 주
●기누가와 鬼怒川도깨비를 보았노라 도깨비가 사는 곳은 따로 있었다. 그곳에 터를 잡은 도깨비는 강 위에 놓인 다리나 계단, 담벼락은 물론 기차역 앞에서도 호시탐탐 나타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 바빴다. 바로 일본 도치기현, 기누가와에서다. 기누가와 파크 호텔의 프라이빗 노천탕이다. 미리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다 도깨비 마을 기누가와에서는 곳곳에서 도깨비가 출몰한다. 마을 주민들은 다리마다 세워진 도깨비 동상이 강이 범람하지 않게 돕는 수호신이라 믿고 있다 도깨비의 화火가 뜨겁다 도깨비 마을 기누가와는 이름부터 으스스하다. ‘기鬼’는
이사와 石和그대, 마음의 문을 열어 주오 마음 속 꽁꽁 감춰 두었던 가여운 이야기는 보드랍고 따뜻한 물길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포도주 한 잔을 더하는 밤이면 더 쉽게 잊을 수 있다. 요란하지 않아 좋았던 이사와에서는. 메이세키노야도 카게츠는 3대째 운영되고 있다. 알칼리성 온천수는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와인을 머금고 입수 시계태엽을 돌려 그날 밤으로 돌아가 본다. 하얀 입김이 차가운 공기 속으로 뽀얗게 퍼진다. 발가벗은 몸은 뜨거운 물에 데워져 발갛게 물들었는데 머리카락은 쭈뼛 설 정도로 공기는 차갑다. 뜨거운 노천탕 수
일본 온천 여행을 도쿄로 간다고 하니 주변 반응은 시큰둥하다. 으레 그럴 것이라는 말투로 하코네에 가냐고도 묻는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도쿄, 온천 그리고 하코네를 공식처럼 생각하는 지인들을 뒤로하고 호기롭게 떠났다.수많은 온천 리스트에서 두 곳만 콕 집어 손에 넣고. 물안개가 피어오른 이사와 메이세키노야도 카게츠의 아침 풍경.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기차 타고 온천 여행 일종의 자책감이었다. 그동안 도쿄를 수차례 여행했으면서도 근교에 훌륭한 온천 마을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몰랐다니. 자책감은 책임감으로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