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는 뻐근해지고 숨은 가빠진다. 한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남한강 자전거길. 고갯길 너머엔 산과 마을 그리고 옛 절터가 기다리고 있다.●크고 신성한 물고구려시대 사람들은 한강을 아리수라 불렀다. 크고 신성하다는 뜻의 순 우리말 ‘아리’와 한자어 ‘물 수(水)’ 자가 합쳐진 이름이다. 한강은 양평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져 비로소 하나의 큰 물줄기가 되어 서해로 흐른다. 남한강 자전거길은 보통 양평 양수리에서 충주댐까지를 일컫는다. 햇살 뜨거운 여름, 여주를 출발해 원주의 옛 절터를 거쳐 충주까지 달렸다. 곁에선 크고
여름 여행에 물이 빠지면 섭섭하다. 사방팔방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분지 충주에서 물길 따라 여행했다.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었다.●차박 성지 추가요! 수주팔봉충주의 젖줄인 달천에 여덟 개의 봉우리가 비치는 것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수주팔봉은 차박러들의 성지다. 수주팔봉을 등지고 자리를 잡은 다음 트렁크를 열면 트렁크 라인을 액자 삼아 한 폭의 동양화가 담긴다. 수주팔봉과 출렁다리를 두 다리 쭉 뻗고 차에 누운 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상류인 석문동천과 하류인 달천의 합류 지점인 출렁다리 아래에서는 두 물길이 한데 어우러져 연주하
어떤 국가든, 도시든 한 번의 여행으로 모든 걸 즐길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한 달 살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시간은 아닐 수도 있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모든 명소를 다니려 한다면 서부산은 빠트릴 확률이 높다. 지하철 1호선 종점까지 가는 여행 말이다. 서쪽에서 뜨는 부산뚜벅이 여행자에게 송도 해변은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실제로는 자갈치 시장에서 버스 한 번만 더 타면 만날 수 있는데 거기까지 나아가는 게 쉽지 않다. 그렇지만 2~3번째 부산 여행이라면 욕심을 내 볼 만하다. 부산 최초의 해수욕장이라는 상징성
성산항에서 우도 천진항까지는 불과 15분. 3년 만에 찾은 우도는 어딘가 또 달라져 있다.달라져도 좋은 섬, 우도에서 즐긴 여름 캠핑 이야기다. ●우도의 꿀정보는 버스에 있다여름이 시작됐다. 제주 본섬에서 우도 천진항까지 가는 여객선의 운항횟수는 30분 간격인 것도 모자라 더욱 증편될 예정이란다. 비교적 한산하던 제주 본섬과 달리 평일임에도 우도는 여행객들로 넘쳐났다. 정류장 옆에서 장사하던 아저씨가 배낭을 보더니 대뜸 “52분에 36번 버스 오면 타요. 딴 거 타지 말고” 한다. 천진항에서 비양동으로 가는 버스는 매시간 25분과
이제야 ‘뜬’ 언택트 여행지. 알고 보니 속이 꽉 찬 참외처럼 달고 맛나다.이제라도 떠서 고맙다. ●올여름의 할 일은성밖숲 맥문동성주를 언택트 여행지로 뜨게 만든 일등공신은 경산리 성밖숲이다. 52주의 왕버드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이 주는 압도감은 규모가 아니라 각 나무마다의 위엄이었다. 성주읍의 남쪽을 둥글게 휘감아 도는 이천(伊川)변엔 휴식, 낮잠, 운동, 데이트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가한 숲속 오후를 보내는 중이었다. 이런 일상이 겹겹이 쌓인 300~500년 노거수의 모습에 누군가 ‘나이테가 밖으로 터져 나왔네’라고 말했다. 노
고랭지 언덕은 바람으로 가득하다. 희미하게 바다 내음도 실려 온다.수직의 산과 수평의 바다는 그렇게 이어진다. 하늘 다음 태백은 높고 그 아래 삼척 바다는 너르다. ●가장 높은 곳에서 깊은태백은 높다. 태백산이 우뚝하고 여러 고봉이 격랑처럼 솟구치며 그 뒤를 따르니 어딜 가도 높다. 가마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은 태백산 꼭대기(1,567m)에 천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 사람의 바람이 닿을 만큼 하늘과 가깝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하늘 다음 태백’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러니 태백 여행도 높을 수밖에 없다.태백에서는 동굴도 높은
서울을 사랑하는 여행기자가 소개한다.조금 친환경적으로 서울을 여행하는 법. ●여행이 불편해졌다 나는 환경보호 운동가도 아니고, 제로 웨이스트 실천가도 아니다. 나는 마트에서 쇼핑을 할 때 비닐봉지에 과일이나 채소를 담는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간편식도 종종 구매하며, 물티슈도 서너장씩 시원하게 뽑아 쓴다. 하지만 나는 손바닥만하게 접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에코백을 가방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깨끗하게 잠시 사용한 비닐봉지는 잘 접어 보관하다 두 세 번씩 다시 사용한다. 올바른 분리수거에 노력하고, 일주일에 하루
우거진 활엽수와아기자기한 야생화로부터 조화를 배웠다.●발길조차 까다롭지결단코 계획형은 아니다.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충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난관을 맞이했다. 그저 오르면 된다 생각했거늘, 까다로웠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곰배령은 지정된 탐방로에 한해 제한적 탐방제를 운영하고 있다. 오르기 위해서는 개방 시기(하·동절기)와 탐방 신청 방법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하절기는 매년 4월20일 경에 시작된다고 하니, 문득 곰배령의 첫 인상은 한껏 무르익은 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이
무면허자도, 교통약자도, 코로나 시대에도,편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강화도에는 여행택시가 있다.●무면허자의 비애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그녀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일지도 모른다. 한바탕 비가 쏟아졌던 어느 날, 친구는 단골 카페에서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포크로 쪼개 먹으며 잔뜩 우는 소릴 했다. 야, 우리 동네에선 도저히 시험에 붙을 수가 없겠더라고. 강남역 뱅뱅사거리는 나 같은 ‘왕왕왕초보’ 운전연수자에겐 파리지옥보다 더한 지옥이야, 헬 오브 헬. 그녀가 도로주행시험에서 7번째 낙방을 했던 날이었다. 덫에 갇
멀디 먼 남쪽 목적지가볍게 돌아다니려다 막상 여행을 시작하니 벌써 떠날 날이 아쉬워지는 그런 곳입니다. ●풍경화 속의 안식처진도대교를 통해 진도에 들어왔다면 첫 여행지는 첨찰산을 배경으로 둔 평화로운 휴식처, 운림산방이 좋겠다.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살면서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지금까지 잘 보존돼 여행자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운림산방 관련 배경을 모르더라도 괜찮다. 그저 이곳을 거닐다 보면 마치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는 인상을 받는다. 잘 관리된 정원과 한옥이 어우러져 예스러움이 가득하다. 녹음이 짙
김제의 논습지를 재발견했다. 벼를 키우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고, 논은 사람만을 위한 땅이 아니다. 태양은 물론이고 땅, 물, 바람과 꼬물거리는 곤충까지, 온 자연의 일이다. ●논으로 떠나는 여행 6월의 들판은 물 오른 초록. 모 심은 자리가 까슬까슬 했다. 농경문화의 자부심이 뿌리내린 김제는 과연 드넓은 평야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논이 넓으니, 많은 물이 필요할 수밖에.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 하면 김제 벽골제가 따라 나오는 건 주입식 교육의 힘(?)이다. 벽골제는 삼한시대(백제 비류왕 27년)에 조성된 저수지다. 한반
고창군은 전 지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왜 그런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모든 의문이 풀리는 여행이 있다. ●고창 구들장의 비밀 자동차를 운곡람사르습지 생태공원 탐방안내소 친환경 주차장에 맡기고 탐방열차(일명 수달열차)에 몸을 실었다. 저수지를 끼고 도는 3.3km 호반 산책로를 이렇게 스쳐 가자니 엉덩이가 들썩이지만, 아직은 참아야 한다. 지금은 예고편일 뿐, 본격적인 트레킹이 기다리고 있음을 지난해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운곡저수지는 영광 원자력발전소에 물을 대기 위해 골짜기 안쪽에 있던 9개 자
섬 여행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무작정 떠나고 보면 낭패를 볼 수 있다.그래서 준비했다. 가사도 여행을 위한 꿀팁들. 톳, 톳, 튀는 가사도 여행 스킬들●Step 1배낭 속에 ‘잘 곳’도 준비하기진도군에 위치한 6km2 면적의 가사도에는 두 개의 마을이 있다. 휴가철에는 민박이 식당을 겸해 운영하지만, 비시즌에는 그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내로라하는 관광 섬이 아닐 때에는 먹고 자는 문제에 대한 단단한 대비가 필요하다. 섬에 들어가기 전, 텐트와 취사도구를 준비해 배낭에 넣었다. 식재료는 적당한 곳에서 마련하기로 했다. ●Step
금강의 도시들을 훑었다. 옛 도시와 신도시를 넘나드는 동안, 눈부신 시간 여행을 했다.금강 자전거길코스│대전 신탄진역→세종시→공주시→부여군→익산 나바위 성당→충남 강경역 (신탄진~공주/공주~강경 이틀 코스로 분리해도 좋다)주행거리│100km 소요시간│5시간 50분 난이도│하휴식 포인트│강길을 벗어나 도시로 진입하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일반적인 휴식 공간은 코스 도중에도 많다.준비물│자전거길 중간에 매점이 전무하므로 물과 초콜릿 바, 빵 등 간식을 충분히 준비할 것.기타│금강 자전거길은 국내 강길 중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평이한
개망초가 가득 핀 여름을 거닌다. 꽃과 바다, 초록 잎을 따라나선 강화도에서 가슴 시린 역사를 지났다. 여느 산책과는 사뭇 다른 무게를 느끼며.●역사가 풍경이 되다여름이 왔다. 6월은 이토록 싱그러운 잎이 가득 피어나는 계절이지만, 닿아 보지 못하고 하염없이 저물기도 했던 달이다. 매캐한 화약 냄새, 사방으로 튀는 포탄 파편, 그 시절 여름은 여전히 얼룩져 있다. 그래서 싱그러운 여름을 맞이한 지금의 우리는, 다시금 그 시절의 6월을 되새겨야 한다. 태극기가 여름 바람에 휘날린다. 호국보훈의 달이었던 6월에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
70년 가까이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한이 4km의 간격을 지키는 곳. 가히 거리 두기 생활의 원조라고 할 만한 DMZ 민통선 북쪽을 다녀왔다. 그 오랜 ‘경계’가 지켜 낸 것은 일상 그리고 자연이었다. ●분위기가 사뭇 다르죠? 육군 제1사단이 지키는 민통선 검문소에서 차를 멈추고 통행증을 내밀며 윤도영 파주미래DMZ 대표가 입을 열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대한민국의 땅,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자유의 다리, 통일대교 등 염원이 담긴 다리들은 건재하지만, 최근 몇 년은 사람도, 바이러스도 오가지 못하게 철통
객관성을 잃어버린 여행지가 있다. 말하자면 각자의 고향 같은 곳. 내 고향은 아니지만 양림동이 그러하다. 광주 남구의 작은 마을. 아무렇지도 않던 그곳이 소울 여행지가 되기까지. 내게 무슨 마법이 걸렸던 걸까. ●짠하고 진한 이야기만 많았던 그곳 “휴직하신다고요? 그럼 내려오셔야죠!” 쥬스컴퍼니 이한호 대표가 대뜸 말했다. 때가 때인 만큼 여행은 생각도 안 했는데, 양림동이 ‘또’ 내게 손을 내민 것이다.어설프게 나는 양림동 1호 여행자다. 9년 전 취재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떼는 말이야’식으로 말하자면, 당시 양림동은 지금과는
섬진강을 달린다. 페달이 경쾌하다.젖을 새 없이 땀이 마른다.아직은 순했던 봄볕 아래에서. ●방해꾼 없는 강섬진강에는 방해꾼이 없다. 물살을 막아서는 하구 둑과 보가 없기에, 섬진강은 때에 따라 불규칙한 얼굴을 보인다. 건기에는 개울처럼 좁고 얕게 흐르다가 우기가 되면 큰 강의 위용을 사납게 드러내는 식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강 풍경이 익숙하다면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강의 모습이란 본래 그렇다. 인위적인 간섭이 없는 자연스러움.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약해지는 물살의 움직임. 자연 하천을 바라보는 두 눈에 애정이 묻어나는 이유
초도를 떠나지 못한 건,순전히 밥상과 막걸리 그리고 바다 때문이라고.몽돌이 구르는 해변에 누워 달콤한 핑계를 댔다. ●6년 만에 초도행초도는 여수에서 뱃길로 77km 거리에 있다. 지도를 펼치면 거금도와 남쪽의 거문도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7.7km2의 면적으로 인천 앞바다의 장봉도보다 좀 더 큰 섬이다. 초도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다. 비교적 큰 섬임에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교통수단은 없다. 섬 가운데 솟아 있는 산상봉 둘레로 일주도로가 놓여 있지만 다른 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주민 전용 마을버스조차 다니지 않는다. 그
살아 본 적도 없는 시대인데 향수가 생겼다. 교동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나는 20분째 엉덩이뼈를 으스러트리고 있는 중이었다. 토요일 오후,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해골처럼 뼈대가 앙상한 철제의자는 ‘요즘 카페의자’답게 작고 좁고 딱딱했다. 앉으면 여지없이 송곳니 같은 게 양쪽 골반을 쿡쿡 찌르는 듯한 의자. 그런데 사진은 잘 나오는 의자. 예쁜 고문의자. 1시간 웨이팅의 결과가 이거라니. 그러고 보니 카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화이트 톤의 모던한 인테리어에 대기 줄이 길었고, 크로플을 팔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