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가까이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한이 4km의 간격을 지키는 곳. 가히 거리 두기 생활의 원조라고 할 만한 DMZ 민통선 북쪽을 다녀왔다. 그 오랜 ‘경계’가 지켜 낸 것은 일상 그리고 자연이었다. ●분위기가 사뭇 다르죠? 육군 제1사단이 지키는 민통선 검문소에서 차를 멈추고 통행증을 내밀며 윤도영 파주미래DMZ 대표가 입을 열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대한민국의 땅,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자유의 다리, 통일대교 등 염원이 담긴 다리들은 건재하지만, 최근 몇 년은 사람도, 바이러스도 오가지 못하게 철통
객관성을 잃어버린 여행지가 있다. 말하자면 각자의 고향 같은 곳. 내 고향은 아니지만 양림동이 그러하다. 광주 남구의 작은 마을. 아무렇지도 않던 그곳이 소울 여행지가 되기까지. 내게 무슨 마법이 걸렸던 걸까. ●짠하고 진한 이야기만 많았던 그곳 “휴직하신다고요? 그럼 내려오셔야죠!” 쥬스컴퍼니 이한호 대표가 대뜸 말했다. 때가 때인 만큼 여행은 생각도 안 했는데, 양림동이 ‘또’ 내게 손을 내민 것이다.어설프게 나는 양림동 1호 여행자다. 9년 전 취재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떼는 말이야’식으로 말하자면, 당시 양림동은 지금과는
섬진강을 달린다. 페달이 경쾌하다.젖을 새 없이 땀이 마른다.아직은 순했던 봄볕 아래에서. ●방해꾼 없는 강섬진강에는 방해꾼이 없다. 물살을 막아서는 하구 둑과 보가 없기에, 섬진강은 때에 따라 불규칙한 얼굴을 보인다. 건기에는 개울처럼 좁고 얕게 흐르다가 우기가 되면 큰 강의 위용을 사납게 드러내는 식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강 풍경이 익숙하다면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강의 모습이란 본래 그렇다. 인위적인 간섭이 없는 자연스러움.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약해지는 물살의 움직임. 자연 하천을 바라보는 두 눈에 애정이 묻어나는 이유
초도를 떠나지 못한 건,순전히 밥상과 막걸리 그리고 바다 때문이라고.몽돌이 구르는 해변에 누워 달콤한 핑계를 댔다. ●6년 만에 초도행초도는 여수에서 뱃길로 77km 거리에 있다. 지도를 펼치면 거금도와 남쪽의 거문도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7.7km2의 면적으로 인천 앞바다의 장봉도보다 좀 더 큰 섬이다. 초도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다. 비교적 큰 섬임에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교통수단은 없다. 섬 가운데 솟아 있는 산상봉 둘레로 일주도로가 놓여 있지만 다른 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주민 전용 마을버스조차 다니지 않는다. 그
살아 본 적도 없는 시대인데 향수가 생겼다. 교동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나는 20분째 엉덩이뼈를 으스러트리고 있는 중이었다. 토요일 오후,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해골처럼 뼈대가 앙상한 철제의자는 ‘요즘 카페의자’답게 작고 좁고 딱딱했다. 앉으면 여지없이 송곳니 같은 게 양쪽 골반을 쿡쿡 찌르는 듯한 의자. 그런데 사진은 잘 나오는 의자. 예쁜 고문의자. 1시간 웨이팅의 결과가 이거라니. 그러고 보니 카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화이트 톤의 모던한 인테리어에 대기 줄이 길었고, 크로플을 팔았고
삭막한 공간을 생명으로 칠하는 초록의 힘.가 서울의 초록 공간을 한곳에 모았다.‘잘’ 관리되고 있는 초록 공간갑갑한 도심 속에서 종종 초록을 마주할 때면 숨통이 틔곤 한다. 햇살 받는 초록은 생명의 색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에 밀접한 공간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플랜테리어의 시작이다. 플랜테리어는 식물을 뜻하는 플랜트(Plant)와 인테리어(Interior)가 섞여 만들어진 합성어다.미세먼지가 대표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되며 공기 정화의 목적으로 식물을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무미건조한 실내를 자연스러운 생기로 채우
담담함 속에서 평온함이 찾아왔다.선비의 고장 영주에서 말이다. ●내면이 편안함으로 채워질 때부석사국내를 비롯해 수많은 외국 도시들이 관광의 큰 주제로 힐링을 앞세운다. 그럼에도 머무는 걸음마다 쉼이 되고, 마음이 치유되는 여행지는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영주는 다르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제 옷처럼 잘 어울리는 곳이 영주다. 여행의 중심은 부석사와 소수서원, 무섬마을이다.‘영주=부석사’라고 단언해도 될 정도로 부석사(신라 문무왕 16년 의상대사 창건)의 입지는 단단하다. 영주 시내 구경은 나중으로 미루고 자연의 소리만 들리는 부석사
그렇다. 춘천은 만만하다. 나쁜 뜻이 아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대할 만하다는 의미다. 가깝고도 충분한 여행이 춘천에 있다. ●청평사에 진심청평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운 날, 가볍게 걷고 싶은 날, 그냥 좀 별 뜻 없이 시간을 때우고 싶은 날과 같이, 언제든 잠시 환기가 필요할 때면, 곧잘 청평사에 간다고 했다. 그는 청평사의 사계절 풍경마저 속속 꿰고 있는, 청평사에 꽤 진심이었다.청평사는 973년, 그러니까 고려시대 광종 24년에 창건된 절이다. 처음 백암선원에서 보현원, 문수원 그리고 조선 명종 때 청평사
기껏 떠올린 게 마늘뿐이라고 해서 너무 부끄러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부끄러움에서 호기심이 발동했고 그 호기심은 상상력을 한껏 돋웠으니까! 의성에서 말이다. ●고분 아래서 잊힌 왕국을 그리다‘조문국사적지’라…, 처음에는 어떻게 띄어 읽어야 할지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조문국’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조문국 사적지’라고 바로 읽을 수 있었다.조문국은 약 2,000년 전 마한·진한·변한 삼한시대 때 지금의 경북 의성군 지역에 존재했던 부족국가라고 한다. 삼국사기는 조문국이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도읍지로 삼아 존속하다
농촌에서의 하룻밤과 시골밥상에만 끌리다니오산이었다. 여행도 푸짐할수록 좋으니.●말도 쉬어간다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낯설었다. 다섯 시간이 넘는 이동시간을 보고서야 짐작했다. 땅끝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강진은 땅끝마을로 유명한 해남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남쪽 끝으로 향한다는 건 꼬르륵 보채는 위장의 결의를 다져야 하는 일이다. 일찍이 집을 나서 주먹밥으로 배를 채우고 버스에 올랐다.해가 중천에 뜰 때쯤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해안 도로를 따라 청보리가 가득하고, 사계절의 초입에는 만개한 유채꽃이 봄을 알린다 하니 드라이브 코스로도
‘맑은 공기 특별시’ 라는 영덕의 슬로건은 폐부에서 인정을 받았다. 내내 절경인 블루로드 해안길은 시각을 압도했고, 오십천 계곡의 짜릿함은 발끝에서 올라왔다. 온 감각이 영덕에 반했다.●영덕 Blue푸른 파도 소리 항구와 작은 어촌을 품은 바다가 쉴 새 없이 하얀 레이스를 펄럭이며 유혹한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찬란한 ‘블루’다.강구항의 시간고속도로에서 내려오니 오십천(五十川)이 마중 나와 길을 안내한다. 오십 개의 물줄기가 결국 하나로 만나 바다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그 강의 어귀(口)에 있는 항구가 바로 강구항(江口港)이
한적한 여행지를 찾아 나섰다. 산보다 바다, 도시보다 마을. 지도를 살피다 울진에 눈이 멈췄다. 고속도로와 떨어져 있고 기찻길도 없어 멀게 느껴졌다. 눈을 감으니,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든다. 바다를 친구 삼아 달렸다.▶아름다운 길917번 드라이브 917번 국도는 경북 영덕군 지품면을 출발해 경북 울진군 죽변면에 도착하는 지방도로다. 가는 곳마다 바다가 있어, 나 홀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 코스다.●5시간의 거리울진은 오랜만이다. 역시 멀었다. 도로가 좋아졌다지만, 와 닿지 않았다. 서울에서 새벽 4시에 출발, 후포항에 도착
덕유산 옆 백운산에 갔다. 이제 막 세상에 공개되려는 편백숲의 피톤치드를 먼저 마시고, 남대천 물에서 자라는 반딧불이 서식지도 다녀왔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진다. 믿는다. ●개봉박두, 백운산 편백숲덕유산과 적상산, 금강과 남대천. 무주의 어디에 내려놔도 자연이 수려하다. 추석이면 덕유산 향적봉에 올라 만월을 보고 잠들었다가 운해를 뚫고 올라오는 새벽 일출을 즐겼던 몇 해가 있었다. 쓰레기를 모아 내려오며, 이 정도면 충분히 자연과 교감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여행자의 마음일 뿐이고, 자연관광과 생태관광은 동의어가 아니다.
당신이 아직 요강바위를 못 본 것은, 비경을 쉬쉬하는 사람들의 음모가 분명하다. 산도 좋고 물도 좋아 요산요수인 그곳을, 생태적으로 지켜 내는 것은 모두의 의무이고. ●요강에서 하늘까지 섬진강 상류. 꽤 너른 강폭이지만 유속이 빠르다. 주변의 바위들이 어찌하여 모두 둥글둥글 성격 좋아 보이게 다듬어졌는지 알 것 같다. 크고 작고 평평하고 기묘한 너럭바위들이 3km에 걸쳐 퍼져 있는 이곳이 바로 장군목 유원지다. 순창 사람들은 장군목을 섬진강 212.3km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꼽는다. 딱 봐도 여러 가지 전설이 수위를 넘고,
꽃피는 사월, 홀로 떠났다.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보길도로. 돌이켜보면 ‘혼섬’ 여행에서 필요한 건 결국, 슬기였다. ●보길도행, 핸들을 잡았다이른 아침, 전라남도 해남 갈두항. 첫 배를 기다리는 차량 줄의 꽁무니에 섰다. 애써 달려온 보람도 없이 결항이라니. 강풍 탓이다. 바람이 잦아들고 운항이 재개되기까지는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운전석에 앉은 채로 꾸벅이기 시작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으니 깊은 잠은 언감생심이다.보길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완도 화흥포항 또는 해남 땅 끝에 위치한 갈두항에서 출항하는 여객선을 타
전라남도 목포시 고속버스터미널. 자전거가 출발했다. 영산강 하구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 바퀴는 무안군과 함평군에 흩어져 있는 명산, 사평, 식영정, 석관정 나루터에 찬찬히 자국을 남겼다. ●삶을 닮다자연의 이치 중 하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일까. 강길을 따라가는 자전거 페달도 상류에서 하류 쪽으로 향하곤 한다. 그러나 자전거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건, 페달의 방향이 아니라 바람의 움직임이다. 자전거는 바람을 등지고 매끄럽게 나아가기도, 바람에 부딪치며 힘겹게 저항해 가기도
또다시 내년 봄을 기약한 이들에게, 강화도의 꽃길을 동봉해 보낸다. 멀리 가 닿길 바라며. ●얼음, 그리고 땡기다리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는 편이다. 보고 싶은 건 바로 봐야 하고, 먹고 싶은 건 지금 주문해야 하고, 가고 싶은 곳은 당장 가야 하는 성격. ‘빨리빨리’는 습관이라기보단 생활신조에 가까웠다. 그런 내게 가만히 무언가를 인내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무거운 과제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기다림의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외여행, 마스크 없는 삶, 여러 지인들과의 모임, 그리고 꽃놀이도
예술과 카페, 강화도에선 마음의 부등호가 한 쪽으로 기우는 법이 없었다. ●악동 DNA어릴 적 나는 동네에서 소문난 악동이었다. 아파트 층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건 기본, 멀쩡한 엘리베이터 문에 ‘고장’ 문구를 적어 두는가 하면, 단지 내 토끼장의 토끼를 밥 먹듯이 풀어 줘 경비 아저씨를 매번 곤란하게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맘때쯤 태어난 동생에게 가족들의 관심이 쏠리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는데, 사실은 그냥 경직된 분위기를 부수고 해방감을 느끼는 게 좋았다. 몸 속 어딘가에 악동 DNA라도 남아 있는 걸까. 부모님의 회초
일상에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액셀을 밟았다. 여행경로: 서울→7번 국도→동해 추암 해수욕장→새천년도로→삼척 원평 해수욕장→신남 해수욕장→울진 후포리 벽화마을●등뼈를 타고동해, 동, 해, 동─해. ‘동해’를 입 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 본다. ‘동’에서 드넓은 바다로 98톤의 고래가 푸웅덩 잠수했다가 ‘해’에서 고요한 바다 표면이 반짝인다. 혀끝에 파란이 인다. 그게 좋아서 핸들을 잡았다. 어디로든 떠나야 했던 매일도 있었고. 간절한 건, 그저 시동을 거는 일. 버튼을 누르자 엔진이 드릉드릉, 뛸 준비를 한다. 액셀을 밟는 발에 망설
추자도의 봄은 꽃보다 먼저 와 있었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오랜 섬 여행으로 단련된 촉은 봄이라 말했다. 나른한 부둣가, 미로처럼 이어진 대서리 골목, 그리고 담벼락에 채색된 파란 물결을 타고. 그렇게 오고 있는 중이라고. ●제주 섬의 절반제주도에는 유인도 8개를 포함해 79개의 섬이 있다. 그중 절반은 추자군도에 모여 있다. 추자면은 완도군에 속해 있다가 1914년 제주도에 편입되었다. 추자도를 포함해 그 뒤를 따랐던 40여 개의 작은 섬들도 제주도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추자도에는 총 4개의 섬, 즉 다리로 이어진 상추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