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점에서 보령을 찾았다.처음부터 끝까지 알차게 든든하다. ●바다 같은 하늘, 하늘 같은 바다 위에서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될 무렵, 서해로 향했다. 여름 내 머드 축제로 후끈했던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 한여름 태양 아래 진흙으로 뒤덮였던 자리에는 선선한 바닷공기만이 촉촉히 남았다.바람 따라 몸까지 가벼우니, 짚트랙(Zip Trek)을 즐기기엔 이만한 날도 없다. 높이 52m, 탑승거리 613m. 아파트 20층 높이에서 기다란 네 개의 선들이 대천해수욕장 한가운데로 가로질러 뻗어있다. 그래, 바다를 하늘에서
부쩍 서늘해진 날씨에 코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코 한 번 비비고, 가을이 앉은 서산으로 향했다. 물든 것은 코끝만이 아니었다. ●마음을 여니 가을이 들어왔다11월 초,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開心寺) 입구에 서니 가을이 열려 있었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이가 말했다. “개심사는 일 년 내내 고유의 분위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왕벚꽃이 피는 봄과 단풍이 붉어지는 가을이 최고예요.” 그 한마디에 마음이 달뜨기 시작했다. 가을과 만날 준비가 된 것이다.낙엽 쌓인 돌계단을 서벅서벅 올라갔다. 마음을 열고 한 걸음씩 다가서니, 놀랍게도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데 이왕이면 그럴듯한 풍경에서 찍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래머들의 발걸음이 당진으로 모이는 이유였다.‘금손 남친’이 없더라도 ‘인생샷’을 얻을 수 있는 스폿 5곳을 다녀왔다. #1. 붓길 따라 그날을 기억하리라필경사·심훈기념관 버스는 서해안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어느새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대체 이 길에 어떤 풍경이 있다는 건지 의문을 품게 될 무렵이면 필경사에 도착한다. 농촌 계몽소설 와 시 을 집필한 심훈 선생이 직접 설계해 지은 아담한 초가집이다. 1932년 아버지가 살
모든 도시에는 저마다의 이명이 있기 마련이다. 대전의 또 다른 이름은 ‘과학의 도시’다. 대전에서만 줄곧 이십여 년 살아온 토박이이건만 어떤 연유로 과학의 도시라 불리는 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숲에서 나와야만 숲이 보인다고 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여행에서 이방인의 마음가짐으로 내 고향 대전, 과학의 도시 대전을 자맥질하기 시작했다. ●대전엔 성심당만 있다고요?서울과 부산의 중간 언저리에는 놓여있는 대전은 교통의 도시로도 불린다. 두 대도시뿐만 아니라 영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긴 여정에 말이든 사람이든 지치기 십상이니
짙은 초록빛으로 물들었다.대나무도, 산도, 내 마음도.싱그러운 녹음 사이쏟아지는 따사로움에지그시 눈을 감아 본다.Cultural●달빛이 춤추는 담빛길담양 담빛길에는 달빛골목 창작소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 이곳은 죽제품 거리였다. 담양의 죽제품은 재질이 단단하고 코팅이 된 듯한 질감 덕에 과거 널리 이름을 알렸다. 안타깝게도 산업화와 동시에 밀려오는 값싼 플라스틱과 동남아 제품 공세에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렇게 휑해진 거리를, 예술 공방들이 다시금 채우며 은은히 담빛길을 밝혀 가는 중이다. 달빛골목 창작소에서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버스 타고 온천여행 #힐링첫날은 뚜벅이 여행자들의 든든한 발이 되어 주는 시티투어, 둘째 날엔 셔틀버스 타고 종일 신나게 온천욕을 즐겼다. 마지막 날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 기념관에서 배움 가득한 시간. 이보다 더 알찰 수 있을까? 천연유황온천수가 흐르는 아산 파라다이스 스파도고▼2박 3일 천안, 아산 경비(1인 기준)총 9만7,200원DAY 1온양시티투어 버스 탑승비 4,000원아산외암마을 입장료 1,000원현충사 무료입장온양민속박물관 2,500원추억의별난감자탕(중식) 7,000원병천순대국밥(석식) 7,000원교통비
바야흐로 ‘인증샷’의 시대다.찍어야 사는 세상, 해시태그가 주렁주렁 달린 사진 대신 스탬프를 찍어 보자.지문에 잉크를 묻혀 가며 찍다 보면 기념품이 절로 따라올지니. ●지역별 스탬프투어언젠가부터 여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당장 스마트폰부터 부여잡게 된다. 지역의 명소를 놓치지 않으려 여러 블로그를 넘나들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주변 맛집을 찾기 위해 눈과 손이 분주하다. 그러다 보면 정작 여행지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놓아 두기엔 또 불안하다. 행여 꼭 가 봐야 할 명소를 모른 채 여행이 끝나지 않을
●서산 瑞山서산 동부시장 배를 든든히 채우고 본격적인 시장투어! 서산 동부시장을 고른 이유는 충남 서북부의 최대시장이자, 어시장이 잘 형성되었다는 정보 때문이었어요. 가 보니 역시 입구부터 어시장이 있고 들어가는 내내 조개, 꽃게, 낙지 그리고 제철인 새우까지 다양한 종류의 해산물에다가 옷가게, 분식집, 채소가게 등 없는 것이 없는 큰 시장이었죠. 우럭젓국 | 서산 동부시장에서 즐긴 서산 별미인 우럭젓국은 서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지역음식이래요. 우럭을 반건조시켜 새우젓과 함께 맑은 탕을 끓여서 만든 것인데 시원하고 깊은 맛이 일품
●아산 牙山 친숙한 길 ‘읍내동’오전 8시25분, 온양온천역에서 외암민속마을로 향하는 101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창을 통과하는 가을볕에 곡식의 고개뿐 아니라 사람들도 고개를 떨궜다. 그렇게 15분쯤 지났을까, 버스는 읍내동에 있는 한 친숙한 길목에 들어섰고 나는 창밖을 응시하며 깊은 사색에 잠긴다. ‘읍내동’은 할머니가 살아생전 거주했던 동네였기에 애정을 넘어 애환이 서린 장소였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하지만 버스도 정류장을 떠나듯, 먹먹해진 마음도 곧 지나리라 믿고 현실에 주어진 여행길에 집중했다. 우여곡절 끝
●공주 公州처음으로 올랐던 공산성돌로 쌓아 놓은 산성과 높게 자란 나무와 하늘이 근사한 곳이었다. 오르는 길이 그리 가파르지는 않지만 한 보 옆이 바로 낭떠러지라 주의해서 올라야 했다. 마침 앞서 가는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무섭다고 벌벌 떠는 친구를 둘러싸고 응원해 가면서 오르고 있어서 나도 그 에너지를 받아 함께 올랐다.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산성으로 웅진성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부터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웅진으로 천도해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산성으로 중심 산성이었다. 현재 사진에 보이는 곳은 공산성의 관문 역할을 하고
‘기압골의 영향으로 주말 동안 중부지방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비가 오겠고…’화창한 하늘이 무색하게 하는 내일의 기상예보가 이른 아침부터 부산한 우리 커플의 귓가로 흘러든다. 11월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부와 나는 셀프웨딩촬영을 위해 서해안으로의 여행을 계획했다. 몇 벌의 웨딩드레스와 소품을 준비하며 제발 날씨가 좋기만을 바라 왔는데, 이보다 더 기운 빠지는 소식이 또 있을까. “오빠, 여행 다른 날짜에 가면 안 되겠지?” 여행은 ‘떠나는 순간’이 아닌 ‘준비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문득 스친다. 그렇다면, 이번 여행
서해 ‘만리포’ 해변에 ‘캘리포니아’가 펼쳐진단다.갈까 말까 고민도 잠시,이번 주말 파도가 마구 밀려온다는 소식에 떠밀려 그곳에 도착했다.또 한 번 서핑의 꿈을 한아름 안고서.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 이국적인 풍경 서해에도 서핑하기 괜찮은 파도가 꽤 들어온다 ●서해안에 파도가 없다고?국내의 유명 서핑 스폿으로는 제주 중문, 부산 송정과 해운대, 포항, 강원도 양양, 그리고 서해 만리포가 있다. 처음 만리포에 대해 들었을 땐 무척이나 낯설었다. 밀물과 썰물이 있는 서해에서 서핑이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올 여름, 휴가로 떠나면 좋을충청권 브루어리들을 선별했다. 맥주 만드는 농부뱅크크릭 브루잉 충북 제천에는 제(堤), 그러니까 물을 가두는 둑과 천川, 흐르는 냇물이 있다. 이것을 영어로 옮겨 제방이라는 뜻의 뱅크(Bank), 개울이라는 뜻의 크릭(Creek)이라 명명한 뱅크크릭 브루잉은 제천의 지도를 따 로고까지 만들 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맥주 재료로 사용하는 홉(Hop) 농사를 직접 한다는 것도 인상적인데, 마을 주민들과 함께 홉을 재배한다는 말에 더욱 정감이 간다. 대표 메뉴는 솔티 블론드 에일(Solti Blon
태안 꽃지 해변 ‘망했다.’ 꽃지 해변에 도착한 순간 든 생각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늦은 오후까지 간직했던 일말의 기대가 산산조각나고야 말았다. 변산반도의 채석강, 강화의 석모도와 함께 ‘서해의 3대 낙조’로 꼽히는 안면도 꽃지 해변을 찾은 의미에도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태안 꽃지해수욕장.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육지로 연결된 할미 할아비 바위로 걸어가는 사람들하지만 의미 없는 체념은 금방 내려놓았다. 해변을 천천히 걷고 있으니 낙조 이상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크기도
태안 신두리 사구 어느새 찬바람이 스친다. 겨울이다. 바람의 계절이다. 이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낸 합작품, 이국적인 자연의 풍경을 찾아 신두리 사구砂丘에 올랐다. 서울 여의도 면적만 한 그곳에서 모래는 바람의 무늬를 만들기도 하고 깊은 골을 만들기도 하면서 바람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엄권열/ 태안 신두리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 사구다 태안반도 서북부,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에 위치해 있는 신두리 사구는 1만5,000년 동안 만들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 사구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공사용 모래를 실어 나르는 트럭
금산 칠백의총 오후 느지막이 도착한 금산에는 유난히도 볕이 반짝이고 있었다. 넓은 잔디가 펼쳐진 단정한 길을 따라 걸어 다다른 곳은 칠백의총(七百義塚).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싸운 700여 의병의 유해를 모셔 놓은 곳이다. 순절하신 영혼을 모신 위패가 안치되어 있는 종용사 앞에서 묵념을 하는 것으로 첫인사를 건넸다. 누구보다 강했던, 고마운 분들께. 700여 명의 영혼들이 고이 잠든 의총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선생은 금산 일대의 백성들로 구성된 의병을 조직했다. 8월1일 승병장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
아산 공세리 성당 ‘톡톡 토토톡’, 여행에서 돌아와 자꾸만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 “공세리 성당에 한번 가봐!” 이곳에서 느꼈던 아늑함과 청량감 그리고 힐링을 혼자만 간직하기가 아쉬워 그들을 충남 아산의 공세리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성기두/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아산 공세리 성당은 순교자들의 유해가 모셔진 가톨릭 성지이기도 하다 깊어 가는 가을날에 가슴 콩닥이며 찾아간 공세리의 첫 느낌은 포근함이었다. “어서 와, 힘들었지?” 하며 어머니가 버선발로 달려 나와 맞아주는 듯한 느낌. 각박한 생활
청양 장곡사 연말에 가까워져서일까. 이른 시간부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히 집을 나섰을 테다. 산속 깊숙이 자리한 이곳, 장곡사(長谷寺)에 오르기 위해서. 아마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아들딸을 위해, 또는 아픈 가족을 위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불상 앞에서 무언가 열심히 읊조리던 그들의 뒷모습에서조차, 간절한 마음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듯했다. ⓟ배주한/ 상대웅전에서 바라본 장곡사 청양 칠갑산 기슭에 위치한 장곡사는 작지만 특별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대웅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쪽에
이야기가 있는 충남 원정대 그곳에 이야기가 있었네 이야기는 그곳에 그리고 또 내 안에 있었습니다. 여행은 그것을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다 함께 충청남도의 곳곳을 여행했던 어떤 날.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평평하게 다듬다 만 흔적이 역력한 주초석들 신도안 주초석 한반도의 중심, 서울. 조선 건국 이래로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가 아니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조선의 도읍 예정지가 원래 서울, 그러니까 한양이 아니었다? 뜻밖에도 태조 이성계가 애초에 조선의 도읍으로 점찍은 곳은 충청남도에 따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안다면 여행자가 아니겠죠. 화창한 가을날의 토요일을 가득 채워 줄 충청남도 여행 이야기. 먼저 가 보겠습니다. ●기다림에서 그리움으로태안군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태안에는 광활한 해변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해변에는 114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는데, 그중 안면도에는 유독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정 나간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던 부인이 끝내 바위가 되었고 이후 부인 바위 옆에 또 다시 바위가 생겼다는,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 이야기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곧 그리움으로 굳어 버린 바위. 그 사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