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숲’이라고 쓰고, ‘숲이 왕’이라고 읽는다. 생명이 순환하는 숲의 주인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이라는 것, 숲의 말이다. ●‘쓰임’과 ‘살림’ 사이돌탑마다 소원이 한 무더기다. 예부터 왕이 나오는 자리라 하여 정치인들이 꼭 한 번씩은 들른다는 산이, 성수산(聖壽山)*이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왕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기 위해 성수산 초입에는 자연휴양림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 기간이 임실의 에코 매니저들에게는 생태관광을 준비하고 연구하는 시간이다. 성수산 ‘왕
하천이 땅속에 숨어 흐르고,줄사철나무는 느티나무에 의지해 자라던,마이산 남쪽 기슭 수줍은 마을 하나,그 이면에 숨겨진 생태 이야기. ●비밀의 숲에서 빛나는 마을로 마이산 남쪽 은천리엔 화재가 잦았다. 풍수로 보니 남쪽 써리봉에서 오는 불의 기운을 막아 줄 비보림이 필요했다.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 개서어나무를 심었고, 줄사철나무가 느티나무와 팽나무를 휘감으며 자랐다. 200여 년 전 은천마을 생태숲이 시작된 이야기다. 숲 남쪽에 시내가 스며들어 흐른다 하여 은천(隱川) 혹은 가림천이라 불렸는데 훗날 한자가 바뀌어 반짝이는 은
구불구불 자라는 왕버드나무처럼, 군산 호수의 지난 운명도 평탄치 않았다. 45년의 봉인을 풀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원시림과 습지를 살피기 위해 오늘도 구불길에 동행하는 이들이 있다. 군산 호수 에코라운드 군산 호수와 청암산에는 총 18개의 습지군락과 산림군락이 있다. 수변로(13.8km), 청암산 등산로(8km), 구불4길(7.18km) 등 트레킹 코스가 잘 조성되어 있다. 총 486종의 습지 식생 및 야생 동물이 서식하는 지역이니, 상세하게 설명해 줄 에코 매니저와 함께 걸으면 더 풍요롭다. 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옥산리
물이 길게 흐르는 장수(長水). 그 물의 뿌리를 찾아 은어처럼 거슬러 올라갔다.금강의 시발점인 뜬봉샘과 수분마을. 물의 운명이 나뉘는 곳이다. 은어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금강을 거슬러 올라간 이들이 도착한 곳은 장수 신무산(神舞山, 해발 897m) 8부 능선의 뜬봉샘이었다. 1,000리 금강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이 물을 처음 맞이하는 물뿌랭이 마을이 장수군 장수읍 수분(水分)마을이다. 지대가 높아지고 길이 좁아졌다. 장수읍을 출발해 남쪽으로 수분재를 넘는 도로 양쪽에 통째로 잘 여문
어디를 둘러보아도 끝이 없다. 넘실대는 황금빛 파도를 눈대중으로 넘는다. 이다지도 광활하니 마음이 둥실둥실 높이 날 수밖에. 맞닿은 경계를 가늠하는 일은 따뜻하니 아득했다. ●하늘을 가르는 바람의 이름은 사랑한낮의 푸른 들판을 생각한다. 내 유년기의 기억은 바람결에 묻어나는 까칠한 풀 내음. 김제로 가는 기차 안에서 어린 날의 촉촉한 감각들을 상상했다. 김제역에서 벽골제마을까지는 차로 10분. 마을 어귀에 내리자 꿈희망여행의 특별한 시골 밥상이 한 상 가득 맞이한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마을 주민이 정성껏 차려 낸 한 끼다. 나물
과거 보러 한양 가는 길에 이 마을에서 새 신을 갈아 신곤 했다는 옛 선비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맨발이어도 좋을 만큼 맑고 청정하다. 이쯤에서 신을 벗고 쉬어 가도 좋으리. ●신을 벗으시오! 경천 싱그랭이 에코빌마을의 시작을 알려 주는 장승과 솟대를 지나 이제 싱그랭이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려 주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 싱그랭이 마을을 500년 동안 보호해 온 느티나무다. 동네에서 가장 큰 그늘을 찾아 모인 아주머니들이 멸치 대가리를 톡톡 따 내며 흉금을 털어 내고 있었다. 원님도 쉬어 갔다는 야외 쉼터를 중심으로 ㄷ자 대형을
예스러움과 모던함을 맛있게 비볐다.혀끝에서 전주의 멋과 맛이 달콤하게 맴돌았다. ●전통과 신념, 소중함을 지킨다는 건눈길마다 한국이 묻어난다. 한옥의 유려한 처마 곡선 아래 한복을 입은 연인들이 거닌다. 전주 한옥마을은 ‘우리 것’에 대한 전주인들의 사랑과 이를 지키기 위한 투쟁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상인들이 전주에 대거 거주하며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이에 반발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고.한옥마을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먼저 옷을 갈아입어볼까? 곳곳에서 전통 한복부터 개화기 의상
무르익은 봄을 이고 선 저 산은 또 왜 이리 높고, 공기는 어찌 그리 맑은가. 푸른 만춘의 하늘에 붉은 이파리 홍단풍이 한가득 피어나, 신록의 계절에 화색을 더한다. 주(朱)에서 적(赤)으로, 홍(紅)에서 단(丹)으로 간다. 죄다 빨갛다는 의미다. 호남 땅 무주(茂朱)는 고을 주(州)가 아닌 붉을 주(朱)를 지명에 쓰는 고을이다. 전주(全州)나 진주(晉州), 경주(慶州)와는 다르다. 홍(紅)이 아니라 주(朱)다. 귀신 쫓고 역마를 피할 수 있는 이름이니 어찌 청정하지 않을까. 조선조 민간 예언서 에 등장하는 십승지
아주 오래 전, 군산으로 불렸던 바다에는 섬들이 오밀조밀했다.지금, 군산으로 불리는 도시에는 근대 역사의 흔적이 아련했다.아니 다녀간 듯 살며시, 두 군산을 다녀왔다.●옛 군산 섬들의 향연 군산과 부안을 잇는 길이 33.9km의 새만금방조제, 2010년 8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에 오른 이 기다란 둑길의 거의 정중앙에서 선유도로 이어지는 길이 옆으로 샌다. 선유도는 한 때 군산도라 불렸다. 조선시대 수군 기지 역할을 했는데 수군기지가 지금의 군산으로 옮겨간 후 선유도로 불리게 됐다. 섬의 두 봉우리가 마치 두 신선이 바
사실 여행은 생태적인 행위다.항상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여행자는 말하자면 외래종이므로.지역의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행하기! 그래서 보타닉원정대가 됐다. 무려 1호다.●숲을 건너 마을로 정읍 솔티달빛생태숲 솔티마을겨울비가 내장산 구석구석을 적시던 날, 정읍에 도착했다. 고즈넉한 내장산 조각 공원이 이번 원정대 탐험의 출발지였다. 내장산 북쪽 자락 숲속에 위치한 솔티마을(현 송죽마을)의 화전민들이 직접 발로 다져 만든 옛길을 걸어 볼 참이다. 옛사람들의 노고에 비하면 새로 놓인 내장생태탐방로마루길의 데크는 비단길이다. 그래
여백이 가득하다. 백제의 찬란한 역사를 확 트인 공터에 상상으로 써내려갔다.●미래를 기다리는 미륵사지 석탑낯설지만 익숙하다. 익산의 첫 감상이다. 역사책 속에서 수도 없이 봤으니 눈으로는 가까우나, 한 번도 와본 적은 없으니 발로는 먼 곳이다. 올해 봄, 장장 20년간의 복원을 마치고 익산 미륵사지 석탑(서탑)이 모습을 드러냈다니, 익산을 방문할 이유는 이것 하나로도 충분했다. 미륵사지 서탑과 동탑은 휑한 공터에 다소 거리를 두고 일직선으로 배열돼있다. 하나는 9층, 다른 하나는 6층. 비대칭적인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
백제는 단연코 찬란했다. 그들의 독창성과 기술력은 현재의 보석 세공술로 이어졌고 혼과 얼은 왕궁리와 미륵사지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보다 가까이 백제를 느끼기 위해 익산으로 향했다. 3,500여 개의 장독대를 볼 수 있는 고스락 ●반짝이는 건 다 좋아!어렸을 적부터 반짝이는 것이라면 다 좋아했다. 밤하늘의 별은 물론이고 도시의 불빛, 바스락거리며 반짝대는 사탕 봉지까지도. 그런 내게 보석 박물관이라니, 그 존재부터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당연했다. 보석 박물관에서 보낸 시간은 그래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보석박물관에는 실제
1930년대 일본의 세력 확장에 반발한 조선인들은 교동과 풍납동 일대에 한옥을 짓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 현재 전주 한옥마을의 시초다. 우리 것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굳은 노력 덕분일까.세련된 전주의 한옥에서는 오랫동안 다져 온 단단함이 느껴진다. ●이리도 세심할 데가 홍시 홍시는 1939년에 지어진 한옥이다. 보온과 방음을 위해 섀시 대신 좀 더 두꺼운 황토벽과 2중 창살문을 택했고, 황토는 전북 고창의 것을 고집했다. 내부 목재는 소나무를 사용해 건강한 황토 한옥을 완성했으며, 벽지와 장판은 한지 소재를 이용했다. 숨 쉬는 한옥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을 땐 거센 비바람에 은행잎들이 다 떨어져 노랑카페트가 돼 있었다. 연인들은 한쪽 어깨가 다 젖어도 좁은 우산을 함께 썼다. 비바람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 사춘기 소녀들은 대여점에서 빌린 한복을 차려입고, 츄러스와 초코파이를 들고 다녔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은 저 혼자 마을 끝자락에 뾰족하게 솟아 있지만,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성당 주춧돌은 전주 읍성의 성곽 돌로, 벽돌은 성벽 흙으로 만들어졌다는데 그 이유 때문일까. 그렇게 전주 한옥마을은 옛것과 지금 것, 우리 것과 서양문화가 공존해 있다. 전주
당연하다고 방심하진 마임실에 치즈라. 반전 없는 조합이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고소하고 쫄깃한 맛, 임실에는 그 이상의 이야기와 재미가 있었으니. 터덜터덜. 임실 치즈마을로 향하는 수단은 자동차도 자전거도 아니었다. 푸른 논밭을 가로지르는 경운기다. 눈치 챘을까. 반전이 없다 했지만 반전이 있는 게 임실의 반전이란 사실을. 산과 나무와 지붕이 서로 맞닿아 있는 필봉문화촌의 취락원 장담한다. 임실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에 ‘지정환’ 신부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 신부*는 1966년,
●타임머신을 탄 오후 시간에는 힘이 있다.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 이런 심오한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에도 꼭 이만 한 슈퍼가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어김없이 들러 군것질을 하곤 했는데, 있는지도 몰랐던 그 기억들이 여기서야 문득 떠오른 것이다. 20년을 훌쩍 뛰어넘은 오후였다. 군산 근대역사거리는 구수하고 정겹다. 지나치는 벽화마저도 초원사진관에는 정원과 다림의 사랑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향수가 담겼다 전라북도, 군산 근대역사거리에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마을 한편에 자리한 초원사진관도 20여 년
순창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연상되는 단어는 고추장이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순창은 산과 강을 두루 갖춘, 그야말로 트레킹에 딱 맞는 여행지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인 강천산부터 섬진강 줄기 따라 굽이진 자전거길까지. 여태껏 몰랐던 순창을 만났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 낸 작품, 섬진강의 바위들 섬진강 옆으로 조성된 자전거길로 많은 사람들이 라이딩을 즐기러 온다 ●Route 1순창 섬진강자전거길장군목→ 현수교→ 섬진강자전거길→ 마실휴양숙박시설단지 굽이굽이 자전거길을 따라 순창은 ‘옥천(玉川)골’이라고도 불린다. 옥처럼 맑은 물이 흐
10년 전 장수군을 처음 찾았을 때는 스치듯 지나갔다. 논개사당에서 논개 영정을 잠시 알현했을 뿐인데, 당시 그 그림은 친일 화가가 그렸다 해서 철거 요구에 시달렸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다시 만난 사당의 영정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름다운 논개의 얼굴을 바라보며 푸른 기상과 붉은 마음을 생각했다. 논개사당에서 바라본 시원한 풍경. 의암호가 내려다보인다 논개사당에 모셔진 논개 영정 논개 생가지 경내에는 정자 단아정이 있다. 연못에 수놓은 연꽃이 아름답다 ●성은 주씨, 기생이 아니다장수에 온 이상 논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장수의 가을은 유난히 배가 부르다. 수줍게 익은 홍로와 탱글탱글한 오미자, 마블링도 아름다운 한우에 넉넉한 인정까지 더해졌으니 말이다. 장수군에서 재배되는 사과의 주품종은 ‘홍로’다. 전국 홍로 생산량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지리적 기후 조건이 뛰어나다 하늘이 내린 축복받은 땅태풍이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가기 직전,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 때맞춰 잡힌 출장 덕분에 남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벌써부터 답답하기만 했다. 전라북도 장수군의 면적은 약 533km2. 서울시 전체가 약 605km2임을 감안한다면 결코 작지 않다
계절은 색色으로 다가온다. 입추가 지나니 벌써 울긋불긋한 색들이 튀어나와 몸소 가을을 알린다. 멋과 맛 모두가 붉디붉은 장수야말로 가을의 출발점이었다. 담벼락에 꽃이 아닌 사과가 피는 마을, 장수 ●주 朱 논개님의 성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전라북도 장수는 논개가 태어난 고장이다. 기녀로 평가절하된 논개가 마냥 애틋한 장수 사람들은 정성스레 제의를 지내고 붉은 사당을 세워 아름답게 가꿔 왔다. 땅에 발을 딛고, 오는 길에 움츠렸던 몸을 쭈욱 펴 본다. 서울에서부터 3시간 거리에 있는 장수에 도착했다. 버드나무에 실려 오는 싱그러움이 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