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드물고 귀한 축제 여행기다. 대한민국 축제에 대해 느껴 온 낱낱의 애증이 코믹하게, 살벌하게, 슬프게 깔려 있다.,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두꺼운 팬층이 있을 정도로 유쾌한 필력을 자랑하는 김혼비·박태하 부부 작가가 12개의 지방 소도시 축제를 여행하며 기록한 여행기는 격월간 문학잡지 에 연재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책으로 묶였다. ‘코시국’의 여행책인데도 쇄를 거듭해 7쇄에 이르렀다. 민음사 | 1만5,000원 축제 여행기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는 은
나이가 들면서 겁이 늘었다.30년 전 해병대를 나왔지만, 귀신이고 뭐고 겁부터 난다.뭔가 꺼려지는 일은 그동안 충분히 해봤다. 그러니 제발 그만해, 나 너무 무서워. ●애벌레 먹방이 잘 어울리는 사람번지점프, 로프에 몸을 묶은 채 고층 빌딩 바깥을 걷는 스카이 워킹, 겁이 난다. 강원도 인제군 번지점프에서는 후한 강원도 인심(?) 덕에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한 번 값에 무려 2번이나 태워 주는 것도 모자라, 끈도 다소 넉넉히(?) 풀어 줬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한참 떨어졌다.과거 해외로 여행 취재를 다닐 때의 일이다. 보통
등대에 갔다.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이것뿐이다. ●시작점 등대에 가기로 했다. 간밤에 폭설이 내렸고, 도시의 온도가 곤두박질쳤다. 숫자로만 존재했던 ‘-28℃’는 눈발과 바람과 공기가 되어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닿았다. 지독하게 추운 블라디보스토크의 겨울이었다.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침대 위에 웅크리는 것과 등대로 가는 것. 이불을 걷었다. 패기를 넘어 거의 자해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바깥을 나서는 데엔 대단한 각오씩이나 필요했다. 콧속을 뚫고 뇌까지 닿는 겨울바람을 버텨 내리란 각오, 유리조각에 허파가 찔리는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어느 영화와 같았던 홍콩 회상기. 공중전화처럼붉은 네온으로 휘갈겨 쓴 커다란 한자 간판이 건물 사이 공중을 점령하고 있는 곳. 그 아래 골목 사이에는 윗도리를 깐 누군가가 커다란 기름 솥에 무엇인가를 튀기고 있고, 미지근한 연경(燕京) 맥주병이 오간다. 골목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주방장이 미필적 고의로 육수의 짠맛을 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800원짜리 완탕면은 꽤 맛이 좋았다. 노래를 부르는 듯한 말씨가 흐르는 식당 진열장에는 가금류(혹은 야생조류)가 모가지를 붙인 채 걸려 있고 앞에는 전 세
잠깐만, 여권을 가지고 나왔던가?카메라는 챙겼던가? 여행 중 지울 수 없는 걱정들. ●노파심의 시작할머니는 아니지만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해야 할까, 여행 중엔 괜한 걱정이 많이 생긴다. 공항을 가기 위해 집 현관을 여는 순간부터 걱정은 시작된다. ‘컬링 스톤’이라도 든 게 분명한 캐리어를 질질 끌며 걸어가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7400번 공항버스가 떠나 버린 것은 아닐까? 분명히 승리교회 앞에서 15분에 출발이라 그랬는데, 혹시 예전 시간표가 아니었을까?’ 네이버로 확인은 했지만,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기어코 버
‘여행이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모세의 십계에 필적하는 율법처럼 강요하는 너. 너의 차디찬 웃음을 또 보고 싶진 않아. ●여행을 모독하지 말라고?오, 그는 과연 우월했다. 낡은 여권에 아로새긴 수많은 낯선 비자 도장과 무수한 각국의 출입국 기록, 국내 방방곡곡에 대한 글과 사진 포스팅 그리고 인터넷과 모바일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그의 흔적들. 특히 SNS(사회관계망)에서 여행업계와 세상을 호령하는 그의 어록들을 발견할 수 있어, 마치 랜선을 끌어당기자면 그 끄트머리에는 배낭을 멘 그가 딸려 올 듯하다. 다만 그의 ‘대단한 여행
여행에는 늘 언어라는 문제가 있다.파파고가 해결할 수 없는, 그 어떤 문제에 대하여.볼륨 4의 목소리여행에는 늘 언어 문제가 걸리게 마련이다. 한때 서점에 ‘나라별 여행 실용 회화’ 코너가 길게 있었던 이유다. 시원스쿨 출신처럼 몇 개 국어에 통달한 ‘언어의 달인’이 아니었던 나는 무수히 많은 해외 여행지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생애 마지막으로 토플 시험을 본 것이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7년이었으니 그 수준이야 오죽할까. 다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업종별 전화번호부만큼 어마어마한 두께의 얼굴 가죽을 지녔다는 것과 모든 나라
여행의 절반은 밤, 나이트 라이프를 헤아린다.결국 마시는 이야기다. ●술이 없는 낮, 술이 있는 밤세상의 모든 여행은 정확하게 둘로 나뉜다. 낮과 밤. 아! 2015년 7월에 떠났던 핀란드 여행은 예외로 한다. 당시 핀란드 로바니에미(Rovaniemi)는 완벽한 백야였다. 낮이야 대개 예정대로 흘러가지만, 밤은 늘 달랐다. 고로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면 항상 밤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냥 보내는 밤이란 내겐 없다.여행지에선 늘 술을 마셨다. 요거트나 비타민 워터를 마실 리는 없잖은가. 늦은 시각 호텔에 도착해도 “어서
여행의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동안우리는 모두 비밀스런 아지트에 꽁꽁 묶여 버리고 말았다. ●여행을 막는 무장단체십수년간 정기적(기계적)으로 여행을 가며 먹고 살아온 직업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길이 막힌 지 1년도 넘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여행 결핍증에 시달리다 못해 정신줄을 놓고 살아간다. 이를테면 외딴 산장처럼 생긴 비밀 아지트 내 인질 의자에 묶여 있는 기분이다. 입에는 더러운 발수건으로 재갈을 물렸고 두 손은 의자 뒤로 전선에 꽁꽁 묶였다. 악취와 오십견 탓에 둘 다 견디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를 꼼짝달싹 못하도
보라카이는 정말 간만이다. 해변을 걷고 펍에서 맥주를 마시던 그날이 몇 년을 돌고 돌아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왔다.●Ticket To The Tropic지금 나는 런던 트라팔가 광장(트라6가였던가?) 앞 ‘타이거타이거’ 펍에서 럭비 유니온 경기와 손님들을 번갈아 구경하며 코츠월드 IPA를 마시고 있다. 늦은 점심으론 고기파이를 먹었고 저녁은 광어 튀김 한 조각과 맥주로 그냥 때울 셈이다. 호텔이 퍽 가깝지만 일찍 돌아가기 싫었다. 영국 일정 중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호빗족을 위해 고안된 작은 침대 하나에 갈색 호마이카(Formica
한참을 헤매다 다시 그때의 기억 속으로.그 시절 사랑했던 순간의 기록들. ●언젠가 그리워할 오늘 대학생 시절, 오사카와 후쿠오카를 오가며 일본에 살았던 적이 있다. 태어나 첫 해외 생활은 모든 것이 행복했다. 조용한 츠루하시의 아침 시장을 거치는 출근길이 좋았고, 시큼한 오리 소바 한 그릇을 사 먹는 점심시간도 좋았다. 퇴근길에 다시 들른 츠루하시 시장 골목 어귀, 이자카야 ‘이치엔’에 앉아 튀긴 붉은 생강에 맥주를 마시는 저녁도 좋았다. 검정 야옹이의 꼬리가 살랑이는 어두운 골목을 걷던, 알딸딸한 일본의 밤이 좋았다.새로운 곳에서
지난 여행을 안주 삼아 기어이 한 병을 비우고야 말았다. ●코부르크로 수렴하는 뇌의 레퍼토리 ‘르크’와 소시지의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우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로텐베르크, 하이델베르크, 밤베르크의 소시지를 줄줄이 맛본 것이다. 그리고 코부르크, 토요일 낮. 꽃시장이 들어선 광장은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로 슬렁슬렁 채워지기 시작했다. 튤립 한 다발에 앤티크 포스터 하나, 빵에 든 소시지. 5유로는 반나절의 행복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날은 정말 그걸로 충분했다. 여느 연애의 수순처럼 여행도 가끔은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