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새해엔 여행할 수 있겠지. 근데 어딜 갈까. 여행은 이동이 그 원리이며 언택트 아닌 컨택트가 기본이라 전 세계가 동시에 잠잠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코로나가 사라지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어차피 지난 2020년은 별 도리가 없었다. 초미립 바이러스에 그 거대한 지구별이 마비됐다. 하늘길은 꽁꽁 묶이고 사람의 코와 입은 마스크가 걸어 잠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한 해가 그렇게 암울한 채 막을 내렸다. 판도라 상자의 맨 밑바닥에 위치한 ‘희망’이란 것이 늘 그렇듯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는 뭔
지금부터 여행에 대해 불평하기로 한다. 뭐, 예전에도 일이라서 했지. 그리 좋아했던 건 아니다.●여행의 걸림돌이럴 줄 예전엔 전혀 몰랐다. 예전만 해도 내게 여행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질병, 천재지변, 테러가 아니었다. 2017년 초 지카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쿠바를 갈까 진지한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머리가 작아지는 줄 알았다고 주변에 둘러댔다. 고백컨대 같은 해 가을,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총격 사건 직후 패키지 상품을 검색한 적도 있다. 항공권 포함 3박 4일에 70만원대 가격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
전북에서 육성 중인 생태관광지 중에서 임실과 진안은, 지역에서 오랜 시간 삶을 나눈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생태관광을 고민 중인 곳이다. 지역의 자연 생태계를 주민들이 관리하고 돌보며 더 깊이 이해하려는 태도가 바탕에 깔려있다. 임실군은 성수산과 개체 수가 많지 않은 청실배나무를 중심으로 에코 매니저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곳이고 진안군은 타포니 현상의 지질공원으로 유명한 마이산 주변으로 천연기념물인 줄사철나무 군락과 마을숲, 오래된 정미소 등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없는 자원이 있는 곳이다.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자원을 공공
지금 ‘홍콩 503호’를 벗어나고 싶은에디터의 홍콩 한 달 살이 이야기.2017년 7월 여름.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 일로 대략 한 달간 홍콩에 머물 계획이었다. 시작은 제주항공, 좁고 갑갑한 출발이지만 어쨌든 저렴하니 됐다. 홍콩 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옥토퍼스 카드를 샀다. 옥토퍼스 카드로는 대중교통 이용뿐만 아니라 편의점에서 간단한 결제까지 할 수 있다. 초콜릿 살 때 편하다. 곧장 친구의 집으로 향한다. 홍콩에는 친한 친구(유학생)가 살고 있었다. 무려 100만원 짜리 월세에서, 그래 봤자 홍콩에선 정말 작은 원룸이다.
보통은 무용담을 많이 떠드는 편인데 오늘은 실패담 하나를 준비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바람막이’를 준비하라는 조언에 무거운 ‘발 안마기’를 구입해 들고 갈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아니더라도 기억에 남는 바보짓이 있다. 한가득 충전해 놓은 배터리나 카메라 메모리카드, 랩톱 전원케이블 따위야 늘 주인 떠난 빈방에 남아 있다가 인천공항(혹은 도착공항, 때론 호텔)에 들어설 때나 생각나는 물품들이다. 면세점의 가전 코너가 그나마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잃어버리도록 고안된 물건과 착각하기 좋은 아이템들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대로 추억하기로 한다. 실연을 당하지도 않았고 울보도 아니었다. ●먹먹한 밤의 기억 종종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편이다. 얼마 전 지인에게 살면서 마음이 가장 먹먹했던 때를 물었다. 그리고 되돌아온 그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팽팽하게 꿰어진 기억들 속에서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실밥처럼 툭 튀어 올랐다. 그동안 그 기억을 제대로 꺼내지 않았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너무 좋아서. 둘째, 꺼내면 닳을까 봐. 셋째, 곧 다시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셋
샤워기 물소리가 나뭇잎에 경쾌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바다 냄새, 나무 내음을 비누 삼은 샤워 시간. 아직 샤워 중.●아직 끝나지 않은 샤워담장 없이 우거진 수풀이 섬 안에서의 프라이버시를 온전히 보호해 준다. 최신식 음향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에서 맘에 드는 음악을 틀어 놓곤 수건을 챙겼다. 이른 아침 바닷가를 산책하느라 입었던 붉은 옷을 줄에 아무렇게나 걸어 놓고서 자갈길을 걸었다. 맨발로 걸으니 자갈에 남은 까슬한 모래알이 그대로 밟혔다.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야외에 설치된 샤워기를 틀었다. 쏴.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먹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프랑스 어느 습지에서 배운 에디터의 처절한 이야기. 아픈 배, 배 타기 때는 2018년 10월, 프랑스 취재 중에 일어난 일이다. 브리에르 지역 자연공원은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습지다. 말도 있고 오리도 있고 거위도 있고. 이곳에선 샬렁스(Chalands)를 타야 한다는 게 가이드의 주장이었다. 샬렁스는 지역 전통 거룻배다. 거룻배는 돛이 없는 작은 배를 뜻한다. 총면적이 490km2에 달하는 습지, 그러니까 노를 저어 다니려면 참 시간이 오래도 걸리겠지만 취재 중이니 최대한 웃으며 배에 오
DCIM* 폴더를 열었더니 내 지난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리 얼마 안 됐는데, 벌써 해외여행에 대한 추억이 아련하다. *DCIM은 ‘Digital Camera IMages’의 약자로 촬영한 이미지가 파일로 저장되는 메모리 카드의 기본 폴더명이다. ●냉동 사진 해동하기 며칠 전. 망각 속으로 숨어 버린 내 지난 여행이 문득 궁금해졌다. 선풍기 앞에 누워 수박을 먹다 갑자기 팽개치고, 모든 디지털 디바이스들을 가져왔다. ‘이 또한 지나가려니~’ 하고 애써 가라앉혔던 조바심은 6월을 시점으로 요동치고 있던 참이었다. 빠
오만과 너스레 가득한 ‘넌 안 가 봐서 모르지!’여행기자의 상식이 아닌, 무논리의 불만을 터트렸다. 글쎄, 내 여행은 사치였던 걸까? 스스로 적용한 되뇜이지만 이젠 한국인, 나아가 인류 모두에게 해당하는 질문일 듯하다. 생각해 보면 얼마 안 됐다. 겨우 3월부터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이후 급격히 줄어든 이동, 집 밖을 두려워하는 개인과 타인을 믿지 못하는 사회, 그 거짓말 같던 변화가 이제는 만져질 듯 생생하다.반대로, 늘 아파트 현관처럼 다니던 공항, 그리고 세 곳의 서울 톨게이트. 고속도로 휴게소와 항공사 라운지 등은 아득하게
●여행작가 또는 트래블라이터 나는 좀체 나를 ‘여행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명함에도 ‘여행작가’라는 말은 없다.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 전 한 주간지에 원고를 주며 내 이름 옆에 ‘작가, 여행가’라 썼더니 알아서 ‘여행작가’라고 고친다. 내 뜻과 상관없이 나는 그냥 여행작가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왜 나를 선택했느냐 물으니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고 싶은 것처럼 사는 분 같아서요.”그녀는 내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중앙일간지 기자에게도 좋아 보이는 게 여행작가일까? 뭐, 그 말이 딱히 진심이 아니란 건 안다. 진
15년 전 에콰도르 쿠엔카에서 가방을 통째로 털렸다. 쫓아갔지만 동서남북으로 사라진 그들을 잡을 순 없었다. 가방에는 카메라와 망원렌즈, 지갑과 일기장, 엽서와 사탕이 있었다. 말로만 듣던 ‘사건’이 일어난 것. 그날 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구나’라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비슷했다. 빨간 신호등에 멈춰 있는데, 옆에서 차가 달려들었다. 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결국 폐차장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2020년 봄, 악몽 같던 기억이 자꾸 떠올랐다. 무기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