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을 간직한 봉화. 분주함도 재촉할 필요도 없다. 기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자연 속으로 파고들었다. 고택의 담장과 들판에 핀 꽃들이 어우러져 평화롭고 아름다운 닭실마을 소나무 숲이 우거진 뒷동산 기슭에 남향으로 자리한 계서당 이몽룡의 생가, 계서당조선시대 최고의 로맨스이자 4대 국문 소설로 꼽히는 의 주인공인 이몽룡. 실존인물은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년이다. 초기 에는 성도령, 성몽룡으로 쓰이다가 나중에 이몽룡으로 고쳐졌다고 전해진다. 아버지 성안의를 따라 남원에서 공부했고 이후 과거에 급제해
10년 전 장수군을 처음 찾았을 때는 스치듯 지나갔다. 논개사당에서 논개 영정을 잠시 알현했을 뿐인데, 당시 그 그림은 친일 화가가 그렸다 해서 철거 요구에 시달렸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다시 만난 사당의 영정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름다운 논개의 얼굴을 바라보며 푸른 기상과 붉은 마음을 생각했다. 논개사당에서 바라본 시원한 풍경. 의암호가 내려다보인다 논개사당에 모셔진 논개 영정 논개 생가지 경내에는 정자 단아정이 있다. 연못에 수놓은 연꽃이 아름답다 ●성은 주씨, 기생이 아니다장수에 온 이상 논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슬라는 고구려, 신라 때 사용됐던 강릉의 옛 이름으로 ‘해’, ‘밝음’을 뜻한다. 하슬라뮤지엄호텔의 전경. 포근한 연인상이 눈길을 끈다 호텔 앞 담의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조각상 세상은 넓고 호텔은 많아도직업이 직업인지라 후천적 경험주의자다. 세상에 호텔이 많고 많으니 이왕이면 새로운 곳에 도전하는 것이 직업상 현명한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재방문객 혹은 단골이 되고 싶은 곳이 있는데, 하슬라가 내겐 그런 곳이다. 부부이자 하슬라의 공동대표인 박신정 대표(54세)와 최옥영 강릉 원주대 미술학과 교수(56세)
신상이 입고됐다.소문이 돌기 전 먼저 아이템을 손에 넣는 ‘패플’처럼강릉에 입고된 신상 호텔을 누구보다 먼저 다녀왔다. 씨마크 호텔 5층에 위치한 인피니티 풀. 바다와 닿을 듯한 풀장이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수영장을 닮았다누구나 VIP가 되는 호텔큼직한 유리창을 캔버스 삼아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가 그려져 있는 이곳, 강릉 씨마크 호텔이다. 씨마크 호텔은 1971년부터 40여 년 동안 건재했던 ‘호텔 현대 경포대’를 허물고 올 7월에 새롭게 태어났다. 3년 전 설계 단계부터 건축계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걸까?소곤소곤 들려오는 교동도의 옛 향기에 차분히 집중했다. 디디는 발걸음마다 애틋해진다. 화개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교동도 전경 교동향교 앞 옥수수밭. 수확할 때 큰 보따리를 챙겨 오라던 인심 좋은 주민을 만났다비로소, 한 발 더 가까이 멀게만 느껴졌던 교동도가 가까워진 지 벌써 1년이다. 섬에 들어가기 위해 강화도에서 배를 타야만 했던 불편이 지난해 7월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해소되는 듯했다. 하지만 교동도는 연백평야까지 불과 3.2km인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속한다. 자국민일지라도 신분증을 검
지금 막 떴다. 하지만 연희동을 ‘맛집’으로만 이해하려는 시도는 섣부르다. 골목골목 세계를 품고 있는 이곳은 대궐 같은 집들만큼이나 속이 깊다. 온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연희동. 중국도 북유럽도 이탈리아도 심지어 아프리카도 거리 곳곳에 싹을 틔우고 있다. 덕분에 연희동 골목은 특색있는 숍과 여행자들이 내뿜는 활기로 가득 찬다 고요와 소란의 경계에 서다연희동 흠모에 빠진 것은 몇 해 전이었다. 연남동에서 우연히 시작한 산책이 길어지면서 바로 옆 동네인 연희동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었다. 붉은 등을 내건 중국집이 한 집 걸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청파靑坡, 푸른 언덕이 있는 동네. 일 년이 넘도록 몰랐던 우리 동네의 숨겨진 모습을 오늘, 골목길에서 만났다. 청파동1가에선 N서울타워가 이렇게 바라다보인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오늘까지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 마당엔 아직 일본식 우물의 흔적이 남아있다 담벼락을 도배한 판박이 스티커, 어린시절 향수를 자극한다. 청파동1가 좁은 골목길에서 만난 풍경 ‘집 박물관’은 살아있다청파동에 터를 잡은 지 일 년 하고도 넉 달째. 처음으로 카메라를 메고 동네를 걷는다. 오늘의 목적지는 슈퍼마켓도
창신동의 어깨가 무겁다. 제1호 뉴타운 재개발 해제구역. 싹 밀어 버리는 방법 대신 느린 재생을 선택한 창신동에 쏠린 시선들은 기대 반, 의심 반이다. 그러니 눈치 없는 관광객으로 말고, ‘아니 오신 듯 가만히’ 다녀오시라.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래서 지켜 주어야 할 것들이 아직 창신동에는 남아 있다! 창신동은 ‘재개발’을 포기하고 ‘재생’의 길을 선택했다. 굽은 계단처럼 인간을 향한 길이다 창신동의 한 봉제공장. 내부는 낡았지만 아늑했다 첫 마을을 주시하라 창신동은 성 밖 첫마을이다. 사대문과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던 한양에서 흥
두터운 철근이 빼곡히 누워 있고붉은 쇳가루가 흩날리는 문래동.철공소와 예술이 묘한 동거를 시작하면서알록달록한 꽃이 피어나고 있다. ‘초상권을 존중하는 매너 있는 촬영문화를 만들어 주세요’ 무작위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문래동 주민들의 일상이 괴로워졌다. 이방인에게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신선한 풍경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고된 삶을 살아내는 일터이자 휴식처다. 초상권은 침해당했고 작업 공간은 불편해졌다. 문래동 창작촌은 철공소들과 공존하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곳이다. 진정한 여행자라면 그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그 공간을
홀로 선 해금강은 외롭지 않았다. 웅장한 돌섬의 등 뒤에는 어머니의 자궁 같은 해금강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태생적으로 연결된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선하게 닮아 있었다. 바다로 나가야만 볼 수 있는 해금강의 얼굴. 곱게도 늙었다 홍포전망대의 낙조 명소다. 누군가 그랬다. 연인들에겐 키스를 참을 수 없을 곳이라고 봄날 오후, 한려 해상수도의 실루엣은 황홀하다. 해금강 앞바다에 나서면 대·소병대도에서 멀리 매물도까지 보인다해금강이 태어난 곳거제 하면 해금강. 오래된 공식이다. 대한민국 명승 제2호로 1971년에 지정됐다(참고로
풍문으로 들었다. 예전의 광주가 아니란다. 예향이라는 감투를 넘어 도시 자체가 예술을 입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젊은 작가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길도 새로 닦였다. 4월부터는 직통 열차를 타면 1시간 33분이면 갈 수 있다. 광주를 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광주를 다시 봤다. 몰라서 못 본 광주가 있었다. 내친김에 담양도 찍고 왔다.근대의 재발견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유독 멀게만 느껴졌던 광주가 가까워진다. 점심 먹고 출발해도 일을 보고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 늦은 감은 있
보이는 것은 일렁이는 금빛물결이었고들리는 것은 구슬픈 아리랑 노랫가락이었다.기차를 타고 서산과 정선을 오고 가는 길은더할 나위 없이 넉넉했다. 바다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간월사는 작은 바위섬 위에 호젓하게 자리해 있다 간월사로 들어가는 길, 장승들 주위로는 소원을 담아 쌓은 돌탑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건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개심사의 독특한 기둥이 눈에 보일 것이다. 구부러진 나무로도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받치는 데 사용했다 서산 최대의 수산시장 ‘서산동부시장’에서는 신선한 해산물과 각종 특산물들을 저렴한 가격에 만날
이야기는 50여 년 전 한국에 머물렀던어느 프랑스인에서 시작된다.합천 해인사를 사랑해 죽어서도 그곳에 묻힌 사람.무엇이 그를 넋으로 돌아오게 했을까?그 질문에 밀려 합천으로 갔다. 반쪽으로 쪼개진 부처상 사이에 앉으면 나도 부처가 된다. 안성금의 홍류동에 뿌려지다 합천군은 잘 알고 있었다. ‘합천’ 하면 떠오르는 ‘해인사’의 공식이 이 도시의 이미지를 경직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시작한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이나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귀가 솔깃했으나 결국 2013년 이 행사를 찾았다는 200만명의
아라리오 뮤지엄 제주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새빨간 뮤지엄의 유혹은 치명적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주 버킷리스트의 맨 윗줄을 다시 고쳐 썼을까. 그것도 부족해 빨간 밑줄을 그었을까. 제주시 탑동에 방치되어 있던 낡은 영화관은 뮤지엄이 됐다 예술로 시작하는 도시 재생지난 가을, 대한민국 미술 기자들의 이목을 한데 모았던 미술계의 핫이슈는 아라리오 뮤지엄 제주였다. 세계적인 컬렉터인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드디어 공개되는 날, 그 규모와 수준 그리고 의미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By Desti
어느날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아, 나 제주도에서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고 싶어.” 그날 우리는 바로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글·사진 Traviest 권다인 사람도 자전거도 모두 휴식고생 끝에 행복, 잊지 못할 자전거 여행자전거. 온전히 나의 두 발로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는 운송 수단. 오르막길에서는 허벅지가 터질 것 같지만 그 뒤에는 달콤한 내리막길이 존재하니, 어쩌면 자전거는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주는 운송 수단임이 틀림없다. 그 자전거를 타고 우리는 제주도를 일주하기로 했다.그러나 막상 여행 떠나기 전날 밤, “
“나는 ‘뚜벅이’ 제주 여행자. 제주도에 가면 무조건 렌터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낡은 선입견이자 낡은 여행법일 뿐이다.” 글·사진 Traviest 이나윤 사실 운전을 못한다. 그래서 ‘제주도 여행=렌터카’라는 공식은 내게 맞지 않았다. 그렇게 떠나게 된 몇 번의 ‘뚜벅이 제주 여행’ 후 나는 알았다. 버스나 택시 등 현지교통수단만을 이용하는 제주 여행이 더 알뜰한 여행이기도 하고 오히려 더 깊은 제주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올레길을 걸으며 새로운 제주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뚜벅이
트래비스트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냥 ‘제주’라고 운을 띄웠을 뿐이었죠. 하지만 여행을 사랑하고 그 기록을 소중하게 여기는 트래비스트들은 말했습니다. 각자의 행복했던 제주의 추억을 공유해도 좋겠다고요. 에디터 천소현 기자 나는 제주에서 예술을 탐닉한다 “국내외에 수많은 미술관과 갤러리가 있지만 유독 제주를 예찬하는 이유는 제주가 가진 ‘섬’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온전히 ‘나’를 마주하다 최근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면서 여행의 콘셉트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나의 경우는 퇴근 후 자기계발 차원에서 수강하곤 했던 미술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먹을거리를 맛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디 매일같이 향토 음식만 먹을 수 있나. 즐거운 여행길, 한 끼쯤은 향토 음식에서 벗어나 보는 건 어떨까. 제주에서 만나는 색다른 맛집 4곳을 소개한다. 홈메이드 프렌치 레스토랑 라포레 사려니의 크로크 무슈 담백한 맛의 라쟈냐●제주에서 프랑스 가정식을 라포레 사려니 사려니 숲길을 품고 있는 중산간 마을 교래리는 토종닭 특구로 유명한 동네다. 닭 샤브샤브, 닭 칼국수 등 향토 음식 메뉴를 내건 수많은 음식점들 사이에서 ‘라포레 사려니’란 이름은 멀리서도 찾을 수 있을 만큼 눈
여행만 하기엔 제주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사람과 살을 부대끼며 사는 일이 제주라고 다를까. 그곳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제주의 삶은 더욱 살뜰한 낭만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래서 들었다. 도심을 떠나 제주를 찾아왔거나, 제주를 사랑해 제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거나, 제주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주 전통 가옥의 형식을 살려낸 토리코티지X브라운핸즈1 소곤소곤, 제주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드는 밤숙소가 ‘스토리’를 갖게 되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제주에 4개의 숙소를 오픈한 ‘토리
그곳에서만 가능한 경험! 여행자가 가진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다. 그런 이유에서 내게 해금강과 거제 조선소의 가치는 동가였다.산업도 때론 풍경이 된다. 창원국제사격장 ●창원에 대한 새로운 시선 창원컨벤션센터에 도착했을 때 김호남 부단장이 말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제 가동률이 70%나 됩니다. 전국 최고 수준이죠. 이공계열과 람사르 협약 같은 환경관련 행사로 특화되어 있어서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지만요.” 코엑스COEX도 알고 킨텍스KINTEX도 알고, 벡스코BEXCO도 알지만 세코CECO, 즉 창원컨벤션센터는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