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 내내 슬펐으나 기뻤다.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애절한 파두를 매일 들을 수 있었으니. ●입문을 위한 2개의 키워드파툼과 사우다드포르투갈 음악 파두(Fado)는 숙명 또는 운명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온 단어다. 아랍 무어인의 지배를 받은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이슬람의 ‘숙명관’은 정신적,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대항해 시대(15~16세기)를 맞으며 포르투갈 사람들은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바다로 나갔고 바다는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남자들은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을 뒤로한
오래전 냉담해진 가톨릭 신자인 주제에 세계적인 가톨릭 성지를 순례했다. 포르투갈 파티마(Fatima),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므로 죄스럽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파티마를 중심에 둔 포르투갈 중부 지역 여행 이야기다. 성모 마리아를 보았네 가톨릭 국가 포르투갈의 신심 두터운 신자여서 그랬는지 성모마리아 발현을 설명할 때 가이드 마가레트는 더욱 열정적이었다.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13일에 성모마리아가 이곳 파티마에 살던 3명의 목동 앞에 나타나셨어요. 8월에만 다른 날짜 다른 곳에서 나타나셨는데
포르투갈 소도시를 여행했다. 정답고 다정하게 다가왔던 작은 도시들. 사람들은 친절했고 음식은 맛있었다. 오직 포르투갈에서만, 오직 소도시에서만 마주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장면들.●가고 또 가는 거야 Evora 에보라 어느 여행자가 그랬다. “한 번 들은 여행지는 정보가 되지만 두 번 들으면 가야 하는 곳이 된다”고. 그 여행자는 스페인의 코르도바가 그랬고 포르투갈의 에보라가 그랬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리스본에서 에보라로 곧장 버스를 타고 갔다고 했다. 여행자들은 언제나 앞서 간 여행자들과 현지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여행을 하면서
위아래 무엇도 놓칠 수 없다호텔 체크인을 하기도 전에 난쟁이를 먼저 만났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일 정도로 작은 그들은 호텔과 카페 앞에서도, ATM에서도 익살스런 포즈로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브로츠와프에 처음 난쟁이 동상이 생긴 건 지난 2001년, 1980년대 브로츠와프에서 시작된 반(反)공산주의 운동 ‘오렌지 얼터너티브(Orange Alternative)’*를 기념해서였다. 당시 운동에 참가했던 학생과 시민들은 벽에 난쟁이 그림을 그려 당시 정권을 조롱했는데, 폴란드 민주정권이 들어선 후 민주화의 상징으로 도시 곳곳에 난쟁
일요일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쇼핑몰도 빵집도 문을 닫았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처 없이 거리를 쏘다니기. 그러다 보석 같은 가게라도 하나 발견한다면 그걸로 족할 요량이었다. 포즈난의 느낌은 어딘가 젊고 힙했다. 마이크로 브루어리와 DJ 부스를 갖춘 바, 창고를 개조한 미술관 등이 결정적인 단서였다.프라와 함께한 일요일포즈난은 실제로 젊다. 약 60만명 중 12만명, 즉 인구의 5분의 1 가량이 대학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제에도 활력이 있다. 폴란드 전체의 실업률이 평균 5~6%인 데 비해 포즈난의 실업
●중세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오후 1시57분, 중앙시장 광장(Plac Mariacki). 성모 승천 성당(Bazylika Mariacka) 앞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든 채로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셋, 둘, 하나, 땡. 초침이 정확히 2시를 가리키자 첨탑에서 등장한 나팔수가 힘껏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 뚝. 웬일인지 나팔수는 곡을 다 마치기도 전에 쏙 들어가 버렸다. 끊어진 나팔 소리의 사연이 슬프다. 1241년 몽골군이 크라쿠프에 침입했을 때, 이를 목격한 나팔수가 나팔을 불어 사람들에게 알리다가 몽골군의 화
야상곡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힌다.거리의 카펫처럼 보랏빛 어스름이 깔리면축제가 곧 시작된다는 의미다.완전한 자유의 곡은 없었다제목을 잘 몰랐을 뿐 녹턴 1번 B단조(Nocturne in B flat minor, Op.9 No.1)는 충분히 귀에 익었다.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르샤바 구시가에 있는 쇼팽 포인트(Chopin Point). 13살의 프레데릭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년)이 공연을 했던 콘서트홀이다. 대형 공연보다는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의 소소한
존재조차 몰랐던 도시에서의 일주일. 처절하게 시렸던 그 겨울을 천천히 곱씹어 보고 있다. 안개처럼 자욱한 눈보라 속에서 웅크리며 보낸 날을 왜 그리워하게 된 걸까.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 오후 2시. 러시아 동부 사하공화국(Republic of Sakha)의 야쿠츠크(Yakutsk)시. 현재 기온 영하 35도. 나갈 채비를 하며 날씨 앱을 켠다. 어차피 춥거나 혹은 더 춥거나 그뿐인데, 외출 전 숫자 확인이 하나의 의식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강박증 환자처럼 내복부터 울양말까지 하나하나 체크한다. 그래야 문밖을 나설 용기가 비로
진해지는 때가 있다.아침을 깨우는 6시의 몰타처럼,밤을 앞둔 6시의 몰타처럼.겨울을 앞둔 가을 같던 순간들.맵고 짜고 달고 몰타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한 일은 찻집에 들르는 것이었다. 발레타(Valletta)가 보이는 슬리에마(Sliema)의 어느 찻집. 주전자 속 펄펄 끓던 물을 티백이 든 유리잔에 가득 부었다. 긴 비행 끝에 누리는 첫 여유. 달아오른 찻잔을 바로 들 순 없으니 바라본다. 은은한 주황빛 감도는 것이 몰타와도 같다. 아직, 우러나지 않았다. 하필 오후 5시의 애매한 노을이 찻잔을 덮친다. 이왕이면 맵고 짜고 달았으면
신성한 모스크와 해협 크루즈, 동서양이 조화된 문화. 보고 즐긴 모든 것이 좋았지만, 이 거대한 도시에서는 오히려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 들어왔다.음식도, 사람도 늘 달콤했다. 터키시 딜라이트(Turkish Delight)는 달콤한 이스탄불 그 자체였다. ●터키의 아침이스탄불 여행 가이드인 오즈렘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터키의 아침식사를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는 그녀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터키의 아침식사는 ‘카흐발트(kahvalti)’라고 한다. 카흐(kahve)는 커피를 의미하고 ‘알트(alti)’는 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여름 들판에 노랑색, 주황색, 보라색 들꽃이 융단이었다. 바람이 휙 지나가는 자리를 따라 꽃들이 누웠다 일어나면 반짝이가 떨어진 자리처럼 눈이 부셨다. 무한개의 꽃이 반짝이는 들판, 그럼에도 초록이었다. 초록은 감히 해쳐지지 않는다. ●꼭 두 손으로소중히 담을 것인터라켄 오스트(Interlaken Ost)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비행을 시작하고 무려 16시간 만이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2시간 비행을 끝내고 고속철도 ICE로 갈아탈 때까지만 해도 기운이 남아 있더니, 기차에서 5시간을 버티고 있으니
●혈관처럼 뻗은, 보석처럼 안긴 호에타우에른 국립공원(Hohe Tauern National Park)은 오스트리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잘츠부르크주와 티롤(Tirol)주, 케르텐(Karnten)주 3개 주에 걸쳐 있다. 해발 3000m급 고봉준령 30개가 서로 키를 재듯 굵고 높게 솟아올랐다. 오스트리아 최고봉인 그로스글로크너(3,798m)도 호에타우에른 산맥의 일부다. 면적 1,856km2로 오스트리아에서는 물론 중부 유럽을 통틀어서도 가장 큰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수 천 km에 달하는 하이킹 코스가 혈관처럼 흐르고 수 백 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