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가 가장 행운이라고 느낄 때는 찾아든 도시가 축제 중일 때다. 으스파르타는 때마침 장미축제 중이었다. 시청 앞 광장에는 전통복장을 한 남자들이 피리를 불고 북을 두드리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세르비아, 카자흐스탄 등 주변 국가에서 온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축제 행렬을 따라가다 멋진 콧수염을 가진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옷걸이처럼 생긴 수염은 족히 30cm는 되어 보였다. “웰컴 투 으스파르타. 장미도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가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아 유 꼬레?” 그렇다고 답하자 지금까지 만났던
로쿰(Lokum)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까, 모든 일들이 행복함을 향하는 듯 느껴졌다. ‘여행하는 삶을 살기를 잘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이다’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다. 맛있는 음식에 내 눈이 저절로 스르륵 감기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배시시 번지는 그런 순간. 아피온 시내에 자리한 ‘미림 울루(Mirim Oğlu)’는 1860년부터 로쿰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주인 알리가 시식해 보라며 집어 준 건 부드러운 치즈가 잔뜩 들어간 로쿰이었다. “카이막 로쿰이라고 하지.
로맨스나 멜로 영화만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심장은 딱딱하지 않았고, 감성은 메마르지 않았다. 간난 세월이 따뜻한 손과 촉촉한 마음을 거세해 버렸다. 칠정이 말라 버렸다. 피렌체(Firenze)의 두오모 성당Duomo di Firenze(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Santa Maria del Fiore) 쪽으로 발걸음을 놓으며,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2001년 작 를 떠올리려 애썼지만 ‘10년’과 ‘재회’라는 키워드 이외에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하긴 그 두 가지가 영화의 전부일지도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왔다. 기차는 오전 8시42분 루체른을 떠났고, 오전 9시50분 밀라노(Milano) 중앙역에 멈춰 섰다. 국경을 넘는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밀라노 투어의 시작은 건축물이 담당했다. 다양한 연대와 형식의 건축물이 자연스레 어깨를 맞대고 있는 도시가 다름 아닌 밀라노다. 1930년대 지어진, 낯빛이 어두운 무솔리니 스타일의 건물을 지나 유럽에서 가장 큰 보행자 전용 구역인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의 ‘4번 타자’ 유니 크레딧 타워(Uni Credit Tower)를 올려다보았다.인
이튿날 아침, 호텔 인근의 작은 카페 아우름(Aurum)에서 더블 에스프레소를 한입에 털어 넣고 스위스 남부에 위치한 도시 루가노(Lugano)를 목표로 길을 나섰다. 이번엔 기차뿐만 아니라 배의 힘도 빌리기로 했다. 풀어 설명하자면 루체른 선착장에서 플뤼엘렌(Fluelen)까지는 유람선으로(약 2시간 45분 소요), 플뤼엘렌에서 루가노까지는 기차로(약 2시간 30분 소요) 이동하는 계획. 그러니까 크루즈 여행과 기차 여행이 결합된 형태다. 증기선을 타고 플뤼엘렌까지 이어진 호수 여행은 고양이의 늘어진 낮잠처럼 평온했다. 배는 바다
물. 21년 만에 다시 만난 스위스에 대한 호감정은 물, 정확히 말해 루체른(Luzern)의 한 호텔 객실 수돗물에서 비롯됐다. 항공기의 인천공항 지연 출발, 광활한 모스크바공항에서 헐레벌떡 걸어서 환승, 취리히공항에서 기차 타고 9분 걸려 취리히 중앙역으로 이동, 중앙역에서 기차 갈아타고 45분 지나 루체른역 도착, 역에서 호텔까지 약 550m 도보 이동. 첫날 숙소인 호텔 앙커(Hotel Anker)에 체크인하기까지 긴 여정을 감내해야만 했다. 목이 말랐다. 게다가 항공사 실수로 인천공항에서 부친 짐이 도착하지 않아 더 목이 탔
지도를 확대하고 확대해야 겨우 보이는 이 작은 섬에는 무엇이 있을까?구름 한 점 없이 쨍한 하늘과 눈 시리게 맑은 바다, 비밀스런 몰타가 있다. 몰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남쪽으로 93km 정도 떨어져 있는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다. 행정적으로는 유럽에 속해 있고, 지리적으로는 북부 아프리카와도 가깝다. 몰타, 고조, 코미노, 크게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가장 큰 몰타섬은 제주도의 6분의 1 가량 크기다. 국민 대다수는 몰타인이지만,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 외국인들도 많이 모여 산다. 몰타어와 함께 영어를 공용어로 사
무역항으로 명성을 날린 엘베Elbe강 하구 하펜시티(Harpen City)와 햄버거의 발상지. 함부르크(Hamburg)가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이유에는 이 밖에도 하나가 더 있다. 마니아들의 성지, 미니어처 원더랜드(Miniatur Wunderland)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작은 세상오전 일찍 매표소에는 이미 긴 줄이 있었다. “학생들 방학과 휴가 시즌이 막 지나서 그나마 이 정도예요.” 안내를 맡은 미니어처 원더랜드 세바스티안 마케팅 총괄 담당자가 반갑게 맞아 주며 말했다. 함부르크 ‘대표 명소’라는 수식어를 익히 들어 왔었다
Hotels in Paris 어느 날, 파리에서 하루를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어찌 파리에서 하루만 머무른단 말인가. 미식이며 쇼핑, 예술 등 수많은 것에 ‘천국’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도시 아닌가. 그럼에도 파리에서 딱 하루만 주어진다면 당신을 여기로 안내해 본다. 빨간 장미를 닮은 호텔 트리아농 리브 고슈(Trianon Rive Gauche) 장미 호텔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고 싶다. 새빨간 장밋빛이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서다. 트리아농 리브 고슈는 메인 컬러를 ‘빨강’으로 정했다. 로비부터 객실의 벽면이나 가구, 침구 등 전반적인
Art & Design 비단 겨울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파리의 겨울은 실내 행사가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루브르와 오르셰를 필두로 박물관은 겨울 특별전을 준비하고 각종 콘서트, 뮤지컬, 공연이 파리 곳곳을 뜨겁게 달군다. 해가 짧고 날씨가 변덕스러운 겨울의 파리는 얼마나 실내 활동을 잘 즐기느냐에 따라 여행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모탕 모네 박물관에서는 특별전시 기간이 아니라도 지베르니의 수련 연못을 그린 모네의 후기 작품들을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다 모네 이외에도 회화, 조각 분야의 다양한 인상파 예술가들
Palace of Winter겨울 낮의 성(城) vs 겨울 밤의 성 이번 파리 겨울 여행이 내 얘기 같지 않고 남의 얘기만 같았던 건 바로 지나칠 정도로 호사스러운 성 때문이었다. 왕권을 신성시하여 왕이 살았던 궁 안에서의 활동이 현재에도 한정적인 동양과는 달리 프랑스의 성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선 다채로운 액티비티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잠시나마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허용된다. 보-르-비콩트성은 베르사유 궁전의 원형이 되었다 성의 내부는 니콜라 푸케가 수집했던 그림, 조각, 타피스리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크
My Winter in Paris 그 겨울, 파리 여행 해프닝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센 ‘파리’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겨울’이라는 낱말을 만나면 시너지가 폭발한다. ‘겨울의 파리’는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다. 겨울이라서 가능했던 그 겨울, 파리에서의 해프닝. 예나 지금이나 에펠탑은 우리가 지금 파리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드는 파리의 상징이다. 이 거대한 철조물이 눈에 잡히는 그 순간 심장이 ‘쿵’ 한다면 이미 당신은 팜므 파탈 파리에 매료당한 것이 분명하다 ●City of Lights Lights Up Paris! 환상을 가
보라빛 향기 가득한 보르도 Bordeaux 투명한 와인 잔을 빙그르르 휙 돌리길 수차례.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이 됐다. 어느새 아랫입술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만다, 보르도에서는. 작은 저택이 딸린 샤토 레 까르므 오 브리옹●와인도 섞어야 제맛 보르도에서는 온종일 취하기 딱 좋다. 훌륭한 요리에 맞는 와인 한 잔은 물론인데, 거리를 걷다 보면 발에 차이는 것이 와인 숍이다. 여기에 들어가면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100만원을 호가하는 와인도 10유로면 한 잔(!) 맛볼 수 있다. 고급 와인의 예상치 못한 가격에
따뜻함에 대하여당신은 분명 툴루즈에 온 적이 있다. 당신이 말한 따뜻함은 분명 툴루즈의 것이었을 테다. 빨간 지붕 위로 내려앉은 붉은 노을을 홀로 바라보고 있자니 당신이 생각나 서럽다.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다본 툴루즈 풍경. 필터를 씌운 것처럼 도시 전체가 붉다ⓟ문미화 툴루즈 여행은 카피톨 광장에서 시작한다. 주말이면 플리 마켓 등 다양한 이벤트도 열린다 샤를마뉴 대제가 세르냉 성인의 유골을 기증한 생 세르넹 성당 자코뱅 수도원은 도미니크 수도회가 지은 최초의 수도원이다 퐁 네프 다리에서 바라본 가론강의 야경●장미 한 송이
Paris Can Wait파리로 가는 길 당신은 남프랑스를 좋아했다. 따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프랑스 로드 트립의 시작은 당신 때문이다.온기가 그리운 겨울, 떠오른 건 남프랑스였다. 몽펠리에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와 페이루 왕실 광장 사이에 있다 영화 에서 파리는 배우로 치면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파리가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나 싶겠지만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되어 버린다. 잠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영화 속 여주인공 ‘앤’은 영화 제작자 남편과 함께 칸에 간다
Cappadocia 카파도키아 시난은 300만년 전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살았던 괴레메 지역의 야외 박물관에는 터키어로 ‘아리크Aliq’라고 부르는 장수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스탄불에 묻힌 시난의 묘 옆에도 이 나무가 자라고 있다. 봄에 열매가 열리고 만추에는 잎이 빨갛게 물드는 나무다. 시난은 자신이 태어난 카파도키아에서 깨달은 태초의 신비를 건축으로 되살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에르지예스 화산 방향에서 해가 떠올랐다. 네브셰히르, 괴레메, 카이세리, 우츠히사르, 위르귀프 등지
Istanbul 이스탄불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양과 서양이 지척이다. 사람마다 이스탄불을 찾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미마르 시난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이스탄불은 터키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와 역사와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갈라타 다리 위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낚시꾼들이 매일 진을 치고 있다 미마르 시난이 묻혀 있는 묘 방향으로 이어진 길. 미마르 시난 골목이라고 불린다 동서양을 이은 건축예술가, 시난미마르 시난은 카파도키아 출신이다. 그곳에서 지구가 간직한 태초의 신비를 눈으로 체험했고 에디르네라는 오스만
999개 창문에 빛이 걸렸다터키 건축 대가, 미마르 시난을 만나는 여정 999개 창문에 동방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스며든다. 에게해와 지중해를 지나 강을 거슬러 온 동양의 타일 2만2,000개로 장식됐다. 오스만제국을 대표하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건축가 미마르 시난(Mimar Sinan)이 걸작으로 남긴 셀리미예 사원은 이로써 더 특별해졌다. 미마르 시난 건축기행을 다녀왔다. 한반도에서 7,000km 떨어진, 오스만제국의 두 번째 수도 에디르네가 첫 도착지였다. 8,000년 된 도시 에디르네에 해가 지고 있다. 에스키 사원에서 바라본
“Very very special!”그녀는 마치 마법의 꿀단지를 품은 듯 설렘 가득한 표정이었다. 루체른에 생긴 별장은 정말이지 특별했다. 다니엘의 집에서 바라다보이는 루체른 호수 분위기 좋은 응접실은 작은 만찬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침실 내 테라스에서 호수와 운해를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호수에 흘려 보낸 시간그렇다. 그들이 오늘 저녁 내어 준 이 방은 당분간 내 방인 것이다. 독일 뮌헨에서 하루 종일 400km 이상을 운전해 스위스에 도착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알아 보던 중, ‘여기다’ 싶어 주저 없이 예약 버튼을
●Travel with activities 1일주일간의 평화로웠던 꿈 첫 유럽 여행은 끝이 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일상을 시작했다. 융프라우에서 일주일을 지내며 열차의 창으로 그리고 두 발로 걸으며 바라본 세상은 잠시나마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었다. 아름다운 푸른 들판과 산 그리고 호수를 끼고 형성된 마을들. 이곳저곳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친구와도 같은 소들. 누구에게라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 것만 같은 세상이었다. 글 김희남 독자 이른 아침 도착한 멘리헨 정상. 운무로 가득했지만 트레킹을 하기 위한 여행객들의 발길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