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 고흥과 여수 사이에 4개 다리가 개통되면서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는 양방향에서 차량으로 오갈 수 있는 섬이 되었다. 섬에 다리가 놓이면 많은 것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의 섬을 기억하는 일, 누구의 몫일까? ●밧줄의 미학적금도적금도는 2016년 팔영대교 개통으로 고흥반도와 연륙된 최초의 여수 섬이다. 적금도란 이름은 ‘금을 쌓아둔 섬’이라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금맥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일제 강점기부터 수차례 채광을 시도했지만 성공한 예는 없었다고. 적금도는 외형적으로는 평범한 어촌마을
만물의 관성은 시간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목포가 달라졌다. ●목포는 낭만항구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목포에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연고지도 아닌 목포에 말 못할 사연이라도 묻어둔 걸까? 아니다. 그저 목포를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갖게 된 애타는 마음이다. 목포는 1897년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개항한 항구도시다. 자주적으로 개항한 항구도시이자 지리적, 군사적 요충지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4대 항구도시 중 하나임에도 목포의 인구는 약 22만명. 부산(340만명)이나 인천(294만명) 등 다른 항구도시에
동네 마당에서 새 소리를 듣고 길고양이와 알 수 없는 밀당을 하며 물 좋은 계곡에서 꾸밈없는 시간을 보냈다.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귀한, 그것은 유독 가족의 특성이기도 했다.●순천의 순한 기운기분 탓일까. 순천에 가까워질수록 한결 온순해지는 것 같다. 언젠가 순천에 다녀온 누군가가 ‘순하다’고 말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곤두서 있던 날도 뾰족했던 성미도 조금은 잠잠해지고 있었다. 순천역에 도착해서도 목적지까지는 차로 40분을 더 가야 했다. 꽤 굽이진 도로가 이어졌고 창문 사이로 드는 뙤약볕이 팔뚝 아래 마
청산(靑山)이라는 이름이 전혀 버겁지 않다. 이곳저곳이 실로 푸른 섬이다. 다섯 번째 청산도 여행에서는 그 푸름에 조금 물들었다. 느긋하고 풋풋해졌다. “오늘은 배가 안 뜬다네요.” 완도 민박집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 걱정이 없는 것은 하루 더 묵어갈 손님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섬으로 갈 때 일기예보를 보지 않은 지도 꽤 되었다. 미리 살피고 대처하던 여행이 언제부터 이리 느슨해진 걸까? 대중교통에 의지했던 여정이 차를 운전하고 다닌 후부터 많이 달라졌다. 계획대로 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지고 시간에 대한 개념
물 건너 섬, 그리고 그 뒤쪽으로 가물거리는 또 하나의 섬. 뿌연 해무에 둘러싸였던 하늘과 바다가 서서히 그 경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리와 모습을 가늠할 수 없었던 섬들 사이로 생일도가 태어났다.●생일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약산 당목선착장에서 생일도까지는 불과 20분 정도의 거리, 여객선이 생일도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서성항 구석구석이 더욱 또렷해졌다. 선착장 대합실 지붕에 얹혀 있던 낡은 생일케이크가 사라진 대신 주차장 한쪽에 희고 커다란 새 케이크가 세워졌다. 공사 중인 대합실이 완공되었을 때 케이크가 다시 지붕 위로 올라갈
아따, 난중에 목포 한 번 다시 들르쇼. 겨울엔 또 색다른 매력이 있응께.택시아저씨의 친근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다음번 방문을 기약했다. 목포는 멀고도 가까웠다. ●숫자, 그 이상의 의미지극히 촌스러웠다. 목포가 아니라 나 말이다. 국내여행을 제법 다녀봤지만, 해상 케이블카는 낯설었다. 클리셰하다는 이유로 왠지 피하곤 했던 날들이 있었다. 가장 클리셰한 게 가장 보편적이고, 보편적이라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던 거다. 편협했던 사고를 반성하며 생애 처음으로 해상 케이블카에 올랐다. 탑승하자마자 꽤나 훌륭한 선
어느 섬이 가장 좋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해 본 적이 없다. 솔직히 난 지금 떠나는 섬이 가장 설레고, 바로 떠나온 섬이 가장 그립다. 지금은 그 섬이 관매도다. ●이름에만 있는 매화미세먼지 하나 없는 모처럼의 파란 하늘, 여객선은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유유히 나아갔다. 하조도, 라배도, 관사도, 소마도, 모도, 대마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은 마치 바다의 정류장과 같았다. 선장은 자상하게도 큰 배를 멈춰 세우고는 고작 한두 명을 내려 주었다. 가까워지고 멀어질 때마다 섬의 모습이 정성스럽게 다가온 까닭이다.
사계절 모두 예쁜 여수라지만 이곳의 절정은 봄이다. 꽃이 빚어낸 화사함, 갯장어와 새조개 등 맛의 향연, 그리고 살랑살랑 바람 부는 밤바다에서의 시간까지. 이 찬란함을 맞이할 순간이 한 달이나 남은 건 어쩌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수의 편지일지도 모른다.●흩날리는 꽃잎 속을 거닐며여수의 봄은 화사하다. 4월 초까지 남아있는 동백꽃과 벚꽃, 5월의 아카시아꽃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색 때문이다. 이런 봄의 향연을 느끼기 좋은 오동도가 여수 여행의 출발점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다. 향일암을 제외하고는 관광지마다 이동 거리가 짧아 하루 만
노두길로 이어진 섬과 섬. 걸음은 들물에 사라진 노두길 앞에서 멈추어 선다. 바닥에 주저앉아 건너편 섬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그토록 바라던 여유로운 시간. 이제부터 계획에 없던 진짜 여정이 시작된다. ●“뭣이 그렇게 바쁘당가요?”여객선 객실 안, 여객선이 소악도에 가까워질수록 남자들은 불안해 보였다. 이윽고 섬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을 붙잡고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지금 도착하면 오늘 다 돌아보고 나올 수 있지요? 저희는 차를 가지고 왔거든요.” 어이없는 표정을 앞세운 아주머니의 한 말씀. “택도 없는 소리 하질 마소
봄이다. 봄소식은 남쪽에서 온다. 남쪽의 먼 섬들은 봄이 더 간절하다. 뭍에 나가 살았던 주민들이 돌아와야 마을도, 섬 개들도 살 맛이 난다. ●맹골도의 대장 개 맹골이전남 진도군 맹골도는 먼 섬이다. 위도상으로 보면 추자도나 여서도보다 남쪽은 아니지만, 망망대해에 어깨 기댈 섬이라고는 곽도와 죽도가 고작이다. 그래서 겨우내 섬은 더욱 휑하니 비워졌다. 처음 맹골도를 찾았을 때는 한겨울이었다. 역시나 섬은 적막했다. 텐트와 약간의 식량을 배낭에 넣어 간 것은 섬 주민들에게 잠자리나 식사 도움을 받기 어려우리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텐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가 놓였다. 이제 마음으로부터 섬을 떠나보내야 할 것만 같았다. 작별을 고하기 위해 다시 찾은 섬, 노인은 삽과 망태를 끌며 광활한 개펄로 나섰고 겨울 해변은 여전히 비워진 채 남아 있었다.●동백꽃 파마머리암태도천사대교를 건너 따라가다 보면 기동삼거리와 마주친다. 이곳에서 자은도 방향으로 가려면 우회전을 하고, 팔금과 안좌는 좌회전을 해야 한다. 삼거리 전면 담벼락에는 여행자들의 눈길을 끄는 벽화가 있다. 집주인 노부부의 인자한 얼굴 위로 동백나무 가지가 풍성하게 꽃을 피웠다. ‘동백나무 파마머리 벽화’는 섬의
교통편도 없었고, 식수도, 먹을 것도 넉넉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짜잔! 누군가 나타나 차를 태워 주고 물을 주고, 먹을 것을 나눠 주었다. 운수 대통할 기운이 넘친다는 달리도니까! ●아흔아홉배미논 위에서다시 목포. 이 항구를 떠나는 일에 자꾸 익숙해진다. 곧 유달산 정상이 보이고, 그 아래 지붕이 예쁜 마을을 지나면 큰 배가 두 척이나 있어서 아주 부자로 느껴지는 목포해양대학교를 지나, 곧 목포대교가 하늘을 가르게 될 거라는 예측이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그다음이 문제다. 섬인지 육지인지 구분이 모호하게 이어지는 섬들의 징검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