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마셔 본 일본술 중에 음악으로 숙성시킨 흑설탕 소주가 있었습니다. 저장 탱크에 특수 제작한 스피커를 부착해서 3개월 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이죠. 소주 특유의 냄새가 적고 부드러워 모두가 ‘엄지 척’이었습니다. ‘음악 숙성’의 원리는 모르지만, 술에 대한 특별한 예우가 맘에 쏙 들었습니다. 이름은 ‘렌토(Lento)’입니다. 라르고, 렌토, 아다지오…. 달달 외웠던 용어들은 이제 앞부분만 남아 있네요. 마치 ‘태정태세문단세’까지만 기억나는 것처럼요. 기억을 들춰 보니 이 세 가지 느림은 모두 다른 것이었네요. 대
최근 제주에 더해진 잠자리, 볼 거리 그리고 곧 더해질 할 거리들을 업데이트해 보자. ●서귀포제주를 읽고 싶다면 CHASON HOTEL THE READ가성비 좋은 부티크 호텔인 체이슨 호텔이 ‘더 스마일’에 이어 ‘더 리드(CHASON HOTEL THE READ)’를 오픈했다. 제주의 자연을 읽는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더 리드는 차분하게 앉아서 책을 읽기도 좋은 곳.108개의 객실들은 아담한 크기지만 싱크대와 세탁기까지 구비되어 있어서 실용적이다. 디자인 업체 움직임(UMZIKIM)이 고안한 침대, 의자, 테이블 등은 호텔 어디서나
“그거 알아? 넌, 서 있을 때, 앉았을 때, 누워 있을 때 얼굴이 다 다른 거?” 그렇다고 합니다. 거울의 방에 살지 않는 한, 아니 그런 방에 산다고 해도 모를 일을 여행 친구가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 어떤데?” “누워 있을 때가 제일 좋아!” 160cm와 30cm의 표고차가 제게 무슨 짓을 한 것은 아닐 테고, 아마도 누워 있을 때의 저는 아무 긴장 없이 가장 편안한가 봅니다. “아! 평생 뒹굴뒹굴 놀고먹고 해야 예뻐지는 팔잔가 보다!” 제가 가장 예뻤던 시절은, 아마도 긴 여행을 할 때였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화장은커녕
WARSAW돔 폴스키 Dom Polski 대사관이 많은 고급 주택가인 사스카 켐파(Saska Kępa)에 위치해 있으며 전통 폴란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작은 정원에도 야외 테이블이 있어서 마치 전원주택을 방문한 느낌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www.restauracjadompolski.pl다브네 스마키 레스토랑 Dawne Smaki Restaurant레스토랑과 쇼핑센터가 몰려 있는 신세계 거리(Nowy Świat)에 위치한 레스토랑. 내부는 물론 건물 후원의 테이블도 아늑하지만 대로변 야외 테이블을 선택하면 사람 구경하는 재
유럽 최대의 크기라는 리넥 구브니(Rynek Głowny) 광장은 유럽 최대의 인파로 북적이는 듯했다. 그런 분주한 흐름을 매 시간 잠시라도 멈추게 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 첨탑에서 비명처럼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였다. 몽골족타타르들의 침입을 발견한 초병의 나팔 소리가 목으로 날아든 화살 때문에 뚝 끊기게 된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지금은 나팔수 대신 소방관들이 첨탑 위에서 화마로부터 도시를 지키며 매 시간 연주도 병행하고 있다고.1596년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750년의 역사가 고여 있는 크라쿠프는 500
분할통치로 쪼개지기 전 폴란드의 화려한 전성기는 아마도 16~17세기의 폴란드-리투아리나 연방 시대였을 것이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보존된 빌라누프성이 담고 있는 것은 사랑과 자부심이다. 오스만제국에 맞섰던 빈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수호했다는 평가를 받는 얀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 1629~1696년)왕은 뛰어난 전략가였을 뿐 아니라 타고난 사랑꾼이었다.아내 마리아 카지미에라(Maria Kazimiera)를 위해 지었다는 궁전 내부에는 둘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상징들이 가득한데
●네온사인 빛나는 바르샤바의 미래 바르샤바는 비스와강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처럼 서쪽 다운타운은 상업과 행정기능을 수행하고, 산업혁명 시절 바르샤바에 편입된 동쪽은 철공소, 안경 공장 등이 있던 산업지대에서 주거지역으로 변화 중이다. 동쪽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깜짝 놀랐다. 드러난 모래등 위에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 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똑같았기 때문이다.돈이 있어도 물자가 부족해 퍽퍽했던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삶의 여유를 놓치지 않았다. 게토에서도, 봉
●회색빛 도시에 뜬 무지개 폴란드의 이웃들, 특히 독일이나 체코에서 아우라 넘치는 중세의 풍경에 흠뻑 취했던 여행자라면 회색빛을 다 씻지 못한 바르샤바의 스카이라인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도시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 보면 도시는 더 이상 풍경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자리다. 소비에트 양식의 무뚝뚝한 건물과 생경한 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도시는 시간을 보낼수록 구석구석이 아린 느낌이다. 스탈린의 선물이었다는 문화와 과학 궁전(Palace of Culture and Science)은 310m 높이로 여전히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게토에서 발굴한 진실의 편린 바르샤바의 박물관은 크든 작든, 모든 것이 특별하고 애틋했다. 전후 잿더미가 된 도시를 맞이한 그들에게 박물관은 대대로 물려받은 것, 우연히 발굴된 것들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도시를 재건해 냈듯, 역사를 재건해 내고, 그곳을 다시 출발점으로 삼아 나아가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최고의 건축가, 최고의 기술을 동원한 인터렉티브 뮤지엄들은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뒤집어 놓을 만큼 획기적인 체험을 약속한다. 바르샤바에서 꼭 가 봐야 하는 박물관을 꼽으라면 이견 없이 두 곳이 있다. 폴린 유대인 역사 박물관
올해 폴란드는 독립 회복 100주년을 맞았다. 그 100년은, 곳곳에 애잔한 아름다움이 깃든 이 나라로 성큼 들어서는 시간의 열쇠였다. 미지의 문 안에 선 여행자에게 꼭 맞는 열쇠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 폴란드 | 북쪽으로 발트해를 끼고 있는 동유럽의 국가로 1989년 체제 전환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인구는 3,850만 명,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다. 수도 바르샤바와 역사의 도시 크라쿠프, 비엘리츠카 소금광산과 아우슈비츠가 유명하고,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지만 아름다운 중세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소도
엄마와 딸의 첫 해외여행지로 사가현을 선택했었다. 두려움으로 시작했지만, 일본어를 못 해도, 운전을 못 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화려하지도 밋밋하지도 않은 볼거리들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사가현만 같으면, 대가족 여행도 대만족이리라.●아이들도 엄마도 좋아하는 명과 투어 사가역부터 사가현청까지 뻗은 골목은 아기자기한 상점들로 가득하다. 평소에도 ‘디저트 배와 밥 배는 따로 있지’라고 생각한다면, 전통과 맛을 겸비한 명과점들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에도 시대에 규슈의 나가사키에서 에도로 설탕을 운반했던 228k
사가현에는 3개의 올레 코스가 있다. 바다와 만나는 가라쓰 올레, 온천마을이 종점인 우레시노 올레와 다케오 올레는 규슈 올레 완주자가 첫 도전자에게 추천하는 이상적인 올레 코스다. www.welcomekyushu.jp/kyushuolle●발도 예뻐지는 우레시노 올레 온천과 도자기로 유명한 우레시노 코스는 다이죠지절(大定寺)과 요시우라신사(吉浦神社) 등 일본의 절과 신사 문화를 경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구불구불한 숲길을 지나 펼쳐지는 다원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우레시노 녹차의 생산지. 그 푸름에 눈과 마음을 씻고 계속 나아가면 주민
폴란드 여행기를 쓰는 동안 다큐멘터리 의 개봉 소식을 들었습니다. 1951년 김일성의 지시로 폴란드로 보내졌던 1,500명의 한국전쟁 고아들이, 8년 후 다시 모두 북송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당시 아이들을 돌보았던 폴란드 선생님들은 70년이 지난 후에도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을 소환하더군요. 그리고 말했죠. “그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 주세요.”잊히지 않는 비극과 슬픔이 기억 밖으로 나와 증언이 되는 경험을 폴란드에서 수없이 했습니다. 사실 그 경험은 폴란드 여행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
박민우의 여행기는 지질하고 비루하다. 당황스러울 만큼 솔직하기도 하다. 자칭 ‘글 광대’의 연희는 종이를 무대로 펼쳐진다. 책을 펼쳤다면 이미 그의 주술에 걸려든 것이다. 당신은 곧 그의 팬이 된다. 곧 여행도 떠나게 될 터이고. ●이렇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언니, 나 이 작가님 초청 강연 한 번만 해줘. 소~원이야!” 여행 좋아하는 후배의 간청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여행작가 박민우. 표지에 그의 얼굴이 있었다. 이상하게 낯이 익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일다 SNS를 연결했다. 몇 달
고토 본섬에 도착하다원정대의 종착점인 후쿠에지마(福江島)는 고토열도 중 가장 큰 섬이다. 히사카지마(久賀島)·나루시마(奈留島)와 함께 ‘아래쪽 고토’라는 뜻으로 시모고토(下五島)라고 불린다. 다른 섬은 포기하고 후쿠에지마만 둘러보기로 했지만 그 역시 하루로는 부족했다. 첫 번째 숙소인 산산도미에 캠프촌을 향해 가는 남쪽 방향에 이 섬의 랜드마크인 오니다케(鬼岳)가 있다. 해발 315m의 구상화산으로 정상부가 모두 잔디로 덮여 있다. 잔디 썰매를 탈 수도 있을 정도라고. 이 보드라운 평화가 오기 전에 분출됐던 화기와 열기의 흔적은 7
고래가 살던 바다고토열도를 대표하는 5개의 섬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나카도리지마가 다음 여행지였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이어진 나카도리지마(中通島)와 와카마쓰지마(若松島)를 ‘위쪽 고토’를 뜻하는 가미고토(上五島)라고 부르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신카미고토초에 속한다. 유서 깊은 성당들은 물론이고, 고래잡이의 역사를 보여 주는 경빈관 박물관, 고토 우동이나 동백기름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도 있고, 관광물산 센터도 있을 만큼 넉넉한 여행 인프라가 구축된 곳이다.점심 메뉴는 고토의 명물인 고토 지고쿠 다키지옥 냄비
신기루 같았던 낮과 밤무인도로 떠나기 전 마트에 들러 보급을 마쳤다. 노자키지마(野崎島)로 가는 소형 쾌속선은 깨끗하고 쾌적했다. 유네스코 유산을 보러 가는 여정에 격을 맞춘 것도 같고, 무인도로 들어가기 전에 실컷 문명의 호사를 누려 보라는 것 같기도 했다. 달리면서 본 노자키지마의 자태는 홀쭉하고 길쭉했다. 동서 2km, 남북 6.5km로, 마치 두 개의 섬을 붙여 놓은 것처럼 허리춤이 낮고 좁은데, 그 위에 섬의 보물, 노쿠비 교회(旧野首教会)가 올라앉아 있었다. 이제 기독교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가사키는 일본에 기독교가 처
화산섬 비경 퍼레이드의 서막우쿠지마를 떠나는 첫 배는 아침 6시55분이었다. 이슬 젖은 텐트를 대충 말아 배낭에 우겨넣자마자 예약한 택시가 도착했다. 바빴지만 순조로운 출발. 오지카지마까지는 배로 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오지카지마에서 오전시간을, 이웃 무인도인 노자키지마에서 밤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래서 오지카지마를 그냥 지나쳐 가는 섬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고토여행 내내 이어졌던 놀라운 화산섬 비경 퍼레이드의 서막이 여기서부터 열렸기 때문이다. 카키노하마해수욕장(柿の浜海水浴場)은 자갈밭 끝에 모래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
두 바퀴로 만난 섬섬에서 섬으로 여행할 때 가장 조심할 점은 배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면 주르르 밀려 버리기 때문이다. 근데 비행기가 말썽이었다. 인천에서 나가사키행 비행기가 지연 출발하면서 사세보항에서 출발하는 우쿠지마행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공항에서도, 항구에서도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모른다. 어쨌든 오전 10시40분. 우쿠지마행 페리에 안전하게 탑승했다. 첫 여행지인 우쿠지마는 고토열도 최북단의 섬이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고토시가 아니라 사세보시에 속한다. 짐을 내려놓고 한숨을 돌린 후에 목마른 사람은
우리가 고토로 간 이유고토열도가 성지순례의 한 코스로만 알려져 있어서인지, 자연을 만끽했다는 여행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구성된 6명의 고토열도 원정대의 미션은 알려지지 않은 비경을 속속들이 만나고 오는 것이었다. 순례자가 아닌 여행자로, 특별히 캠퍼로서 말이다. 우리가 여행한 고토(五島), 즉 5개의 섬은 원래 고토의 주요 섬 5개와는 달랐다. 나가사키 사세보에서 배를 타고 고토열도를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동선을 짰다. 첫 밤은 우쿠지마(宇久島), 둘째 밤은 노자키지마(野崎島), 3일과 4일째 밤은 나카도리지마(中通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