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럭저럭 시월입니다. 오로지 옷장 관리의 관점에서 계절의 변화는, 귀찮다면 귀찮고 재밌다면 재밌는 일인데, 올해는 꽤 집중해서 그 일을 해냈습니다. 출장과 여행 위주로 구입했던 흡습, 건속 기능성 옷들이 기능 한 번 제대로 뽐내지 못한 채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습니다. 등산, 요가, 클라이밍을 위해 산 옷들도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한 건 마찬가지고요. 청바지와 티셔츠, 잠옷만 생고생을 했습니다. 내친 김에 다림질이 귀찮아 손도 대지 않았던 옷들을 꺼냈습니다. 늘어놓고 보니 옷을 살 당시의 마음이 하나씩 기억납니다. ‘공식 석상’을 위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여행했지만그들은 서로의 다른 방식으로 얽혀 있다.CuriEarth 29살 동갑내기, 진상욱 & 서정하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여행을 통해 이루게 된 저희의 꿈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9살 정하와 29살 상욱. 나이보다 닮아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한다. 그리고 무려 500일 동안 세계를 여행했다. 29개국, 96개 도시. 긴 시간 동안 30개의 나라, 100개의 도시를 채우지 못한 이유는 종종 어디선가 머물렀기 때문이다. 상욱의 시선으로 담은 사진에 정하는 그림을 그리며 한없이 머물렀다. 그들
데뷔의 계절인가 봅니다. 놀라울 만큼 ‘ 지인 출신 ’ 작가들이 쏟아집니다. 이제 ‘ 작가 ’ 라고 불려 마땅한 그들의 첫 페이지를 기억합니다. 자신의 여행을 좀 기록해 보고 싶다던 여행가 , 트래비아카데미의 특강에 참가했던 직장인 , 독자 이벤트에 당첨되 어 함께 여행을 다녀온 대학생 등이었습니다. 여행매거진과 아카데미의 책임자로 , 길게는 10 년 가까이 성장기와 고군분투를 간헐적으로 지켜보는 것은 ‘ 일 ’ 이기도 하 고 ‘ 마음 ’ 이기도 했습니다. 에디터에게는 두 가지 능력 ( 혹은 권한 ) 이 있습니다 ( 또 , 있어야
오만과 너스레 가득한 ‘넌 안 가 봐서 모르지!’여행기자의 상식이 아닌, 무논리의 불만을 터트렸다. 글쎄, 내 여행은 사치였던 걸까? 스스로 적용한 되뇜이지만 이젠 한국인, 나아가 인류 모두에게 해당하는 질문일 듯하다. 생각해 보면 얼마 안 됐다. 겨우 3월부터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이후 급격히 줄어든 이동, 집 밖을 두려워하는 개인과 타인을 믿지 못하는 사회, 그 거짓말 같던 변화가 이제는 만져질 듯 생생하다.반대로, 늘 아파트 현관처럼 다니던 공항, 그리고 세 곳의 서울 톨게이트. 고속도로 휴게소와 항공사 라운지 등은 아득하게
서울 신사동에서 레스토랑 ‘류니끄(RYUNIQUE)’를 운영하는 류태환 셰프는 최상의 재료를 찾아서 전국 구석구석을 여행 중이다. 은어가 제철인 어느 여름날. 여행길에 그가 터득한 레시피를 물었다. ‘류니끄’는 류태환의 ‘류’와 ‘유니크(Unique)’가 합쳐진 말인가. 그렇다. 어머니가 직접 지어 주셨다.어떻게 ‘류니끄’한가.‘하이브리드 퀴진(Hybrid Cuisine)’을 선보인다. 일식과 프렌치를 결합한 레시피에 국내산 제철 재료를 사용한다.퓨전이랑은 다른 개념인가. 크게 보면 퓨전에 속하겠지만 ‘근거’의 차이라 생각한다. 그
출근길에 누군가 전송해 준 ‘트렌드 능력고사’라는 걸 해 보았습니다. ‘전 국민이 힙스터가 되는 그날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의 유행어나 줄임말, 흥행한 마케팅 사례를 묻는 설문이라 N세대인 저는 2번을 반복해도 50점을 겨우 웃돌았습니다. 테스트 결과는, 아직도 김광석의 노래를 최고로 생각하냐며,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세대 가르기 마케팅’이었습니다.이런 마케팅도 유행이라면 유행이어서 누군가는 여행에서도 세대론을 말하지만, 그건 여행을 소비로 볼 때의 이야기입니다. 시장에
꽤 복잡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의외로 간단한 그녀의 대답.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은 대로. ●눈을 감고도 보이는 것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나요?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때부터였어요.아, 미술을 전공?대학교 입학은 화학공학과로 시작했어요. 그때는 ‘화학 선생님’을 꿈꿨었거든요.어쩌다 그림을 그리게 된 건가요. 공부하다 보니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니라 스승님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 깨달았어요. 다시 말하면 화학이 적성에 안 맞았다는 뜻이에요(웃음). 그래서 전과를 했어요, 시각디자인과로.
마지막 출장으로부터 고작 4개월이 흘렀을 뿐인데, 마치 4년이 흐른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다음 달에는, 그렇게 유예되어 온 기다림이 어느덧 하반기로 함께 넘어와 내년을 바라보는 중입니다. 조바심을 경계하는 비법은 출근길에 광화문 교보문고의 글판을 한 번씩 보는 겁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백무산, ‘정지의 힘’ 中).’그래도 며칠 전에는 ‘실로 오랜만’에 관광버스를 탔습니다. 목적지도 ‘실로 오랜만’인 한국민속촌이었습니다. 이 조합이 이뤄진 이유는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를 위해 준비된 여행이었
는 매번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 왔습니다.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를 사랑하는 이들에게서도반가운 인사가 도착했습니다. “방구석 여행의 진미”공희정 독자 5월호, 15주년 창간 특집호를 받았습니다. 개봉과 동시에 손으로 전해지는 종이의 거친 질감. 세상에 이렇게 멋진 기념호라니 참 좋습니다. 편집 디자인도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특집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4명의 작가들을 다각도로 볼 수 있었기에, 앞으로의 그들의 글이 기다려지기까지 합니다. 마음을 잡은 사진은 미얀마의 붉은 우산을 든
예상은 했습니다만, 반응은 그보다 크게 엇갈렸습니다. 작은 변화라 생각하며 바꾸었던 표지가 몰고 온 후폭풍 말입니다. 어쩌다 한 번의 변신임을 아는 분들은 신선하다고 격려해 주셨지만, 표지에 무슨 일이 생긴 거냐며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표지는 다시 ‘노멀’로 돌아왔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다시 되돌려질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마도 표지 정도뿐일지도 모릅니다. 언텍트 여행, 스테이케이션 여행, 웰니스 여행, 보복적 소비 등 여행의 미래를 논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지
●여행작가 또는 트래블라이터 나는 좀체 나를 ‘여행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명함에도 ‘여행작가’라는 말은 없다.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 전 한 주간지에 원고를 주며 내 이름 옆에 ‘작가, 여행가’라 썼더니 알아서 ‘여행작가’라고 고친다. 내 뜻과 상관없이 나는 그냥 여행작가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왜 나를 선택했느냐 물으니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고 싶은 것처럼 사는 분 같아서요.”그녀는 내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중앙일간지 기자에게도 좋아 보이는 게 여행작가일까? 뭐, 그 말이 딱히 진심이 아니란 건 안다. 진
●미안해요, 듣고 싶은 말만 들었네요나는 지금 몹시 애매한 기분이 든다. 그를 알고 지낸 16년이 인터뷰를 진행한 2시간으로 인해 희석되어 버렸다. 딱히 그를 안다, 모른다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아주 긴 인터뷰 질문서를 작성하고 ‘꽤, 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었다. 그는 여행작가들 사이에서도 ‘책 많이 판’ 작가로 꼽히고, 여행과 책을 좋아하는 30~40대 사이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작가로 각인돼 있다. 그가 쓴 은 장기 배낭여행자들의 필독서였고, 많은 여행의 꿈을 현실
●‘해수’인지 ‘햇수’인지가 그렇게 중요해요?독보적인 ‘말빨’을 가진 22년차 여행작가. 뻔뻔하게도 진지하게, 스스로를 소개하는 그에게 딱히 딴지를 걸 수도 없었던 건 그만큼 자명했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부터 약 2년간 ‘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의 고정 게스트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린 노중훈 작가는 올해로 7년째 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진행 중이다. 그 ‘말빨’을 증명하듯, 우리의 첫 만남에는 어색한 쉼표 하나가 없었다.그의 여행기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간이 전혀 되지 않은 두부랄까. 노중훈 작가의 글을 음
15년 전 에콰도르 쿠엔카에서 가방을 통째로 털렸다. 쫓아갔지만 동서남북으로 사라진 그들을 잡을 순 없었다. 가방에는 카메라와 망원렌즈, 지갑과 일기장, 엽서와 사탕이 있었다. 말로만 듣던 ‘사건’이 일어난 것. 그날 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구나’라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비슷했다. 빨간 신호등에 멈춰 있는데, 옆에서 차가 달려들었다. 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결국 폐차장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2020년 봄, 악몽 같던 기억이 자꾸 떠올랐다. 무기력한
●우린 언제쯤 다시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새내기 에디터였을 무렵. 채지형 작가와의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기억한다. 세심하고 다정했다. 출판사니 잡지사니, 그동안 수많은 에디터들을 접했을 그녀임에도 뭘 잘 모르는 에디터의 (어쩌면 어이없었을) 한마디도 허투루 흘리는 법이 없었다. “제가 잘 몰라서요, 작가님”이라는 무책임한 사과를 할 때면 “괜찮아요, 맘 쓰지 마셔요, 기자님”이라는 답변이 채지형 작가에게는 늘 돌아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그렇게 한결같이, 명랑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그려진다.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채지형
2006년 이후 지금까지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왔습니다. 벌써 15년이 됐네요. 프리랜서로 살아오는 동안 원고를 쓰고 사진을 찍는 일 외에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작가로 살아가며 어떻게 생활을 해나가는지 궁금해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하루 일과는 어떤지, 원고료만으로도 정말 생활이 가능한지 등등. 사석에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돌이켜보니 그다지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실패한
●최갑수 병이 창궐한다최갑수 작가, 2000년에 여행기자 생활을 시작해 2006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했다. 2020년을 맞이한 그의 감성은 무려 20년의 세월 동안 봄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그의 글귀는 20대에게 여행이다. 스멀스멀 설레는 감정. 모든 여행 해시태그 앞, 그의 글귀가 설렘을 대신하는 이유기도 하다. 최갑수 작가를 지면에 소개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의 책을 지면에 옮겨 적는 일과 다름없겠다. 작가로서 최갑수는 항상 최갑수를 적어 왔기 때문에. ‘당신의 잠든 등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다. 가
여행을 누려야 할 지금,지구의 모든 여행은 잠시 멈춤 상태다.5월, 꽃이 만개하고 봄볕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꽃 마중이 한창이어야 하는 시기. SNS에는 예쁜 꽃과 봄내음 가득한 사진과 영상이 넘쳐날 때지만 전 세계인은 자신의 집과 병원에 격리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지금의 상황과 유사한 영화들이 많았지만 현실에서 경험해 보니 매우 고단하다. ‘살아서 다시 만나자’라는 인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소위 ‘웃픈’ 현실을 어떻게 버텨 낼 것인가. 그저 ‘힘껏 버티기’가 정답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놀랍지만, 적응이 되어 갑니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던 온라인 수업도, 질의응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고, 혼밥도 혼술도 꽤 즐길 만하며, 여행 없는 나날도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조금 다행스럽기까지 한 것은,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서 놓여난 것입니다. 이 시기는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을 겁니다. 새로운 시도들을 강요합니다. 준비한 적 없는 온라인 개학을 현실로 만든 것처럼요. 가상 현실 여행도 쑥 앞당겨질까요? 그러면 유채꽃밭이 확 갈아엎어지는 일은 없겠지만, 썩 달갑지는 않네요. 다들 조금은 그러
인생이라는 여행은 쉬지 않고 계속되지만, 여행은 지치면 잠시 쉬어 가면 된다. 멈춰 선 여행자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한 줄기 바람을 따라 제주 성산에 작은 공간을 연 사진작가 김병준씨를 만났다.미리 보는 에필로그 바람과 만나다 미로 같은 돌담길, 아직 채 피지 않은 동백나무, 하얀 낙서로 가득한 무쏘, 초록 잎사귀에 반쯤 가려진 작은 건물, 입구 앞에 쓰인 특이한 이름 ‘조아가지구’. 설계부터 인테리어까지 김병준 작가 본인이 직접 꾸민 이 독특한 사진관 겸 갤러리는 그가 직접 모은 지구별 조각들로 가득했다.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