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쯤 전에 이 지면에 ‘첫 차 구입 썰’을 풀었더랬습니다. 회사에서 굴리던 자동차가 매물로 나온 김에 오랜 뚜벅이 생활을 정리하고, 오너드라이버의 세계로 진입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사 다 때가 있다는데 차를 살 호기였는지는 몰라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운전대 앞에서 편해질 즈음,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는 ‘코시국’에 처하게 될 것을요. 반려동물도 없는 제게 애써 산책시킬 반려차가 생긴 것입니다.어쨌든 반려하던 차를 보냈습니다. 차를 팔았다는 소식에 지인의 첫 마디는 “기후 위기 대응?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어느 영화와 같았던 홍콩 회상기. 공중전화처럼붉은 네온으로 휘갈겨 쓴 커다란 한자 간판이 건물 사이 공중을 점령하고 있는 곳. 그 아래 골목 사이에는 윗도리를 깐 누군가가 커다란 기름 솥에 무엇인가를 튀기고 있고, 미지근한 연경(燕京) 맥주병이 오간다. 골목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주방장이 미필적 고의로 육수의 짠맛을 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800원짜리 완탕면은 꽤 맛이 좋았다. 노래를 부르는 듯한 말씨가 흐르는 식당 진열장에는 가금류(혹은 야생조류)가 모가지를 붙인 채 걸려 있고 앞에는 전 세
제주, 깊숙이 뿌리 내린 자작나무에 바람이 스친다. 일렁이는 나뭇잎의 고운 선율이 숲을 이뤄 섬을 감싼다.자작나무숲은 제주도민들로 구성된 클래식 음악 단체다. 2002년부터 제주도 지역민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피아노,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성악, 색소폰, 아코디언 등의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작나무숲을 이끌고 있는 ‘우상임 음악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유튜브: 자작나무숲 그런데 제주도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나?없다. 자작나무는 주로 추운 지역에서 자생하는 나무다. 예를 들면 강원
이건 영업비밀입니다만, 글의 결정적 순간은 ‘제목(혹은 첫 문장)’에 있습니다. 여행글쓰기 강의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과제 피드백의 비중을 높여 왔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건 제목의 중요성입니다. 제목 없는 글(정확히는, 마땅한 제목이 찾아지지 않는 글)은 제목 없는 여행이었고, 그건 제목이 없는 시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아직 아침이지만 오늘 하루의 제목은, ‘스승이란’입니다. 이 레터를 마감하지 못한 찝찝함으로 새벽 3시 반에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그래서 물감통을 열었습니다. 굳은 붓을 깨워 물감을 입히고, 지난겨울 광주에서 멈춰
잠깐만, 여권을 가지고 나왔던가?카메라는 챙겼던가? 여행 중 지울 수 없는 걱정들. ●노파심의 시작할머니는 아니지만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해야 할까, 여행 중엔 괜한 걱정이 많이 생긴다. 공항을 가기 위해 집 현관을 여는 순간부터 걱정은 시작된다. ‘컬링 스톤’이라도 든 게 분명한 캐리어를 질질 끌며 걸어가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7400번 공항버스가 떠나 버린 것은 아닐까? 분명히 승리교회 앞에서 15분에 출발이라 그랬는데, 혹시 예전 시간표가 아니었을까?’ 네이버로 확인은 했지만,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기어코 버
할리우드, 베니스 해변, 라라랜드.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그곳에서필름 한 롤과 함께 도착한 니콜의 이야기.하이, 니콜!Hello from LA! 시작부터 뜬금없는 ‘덕밍아웃’이지만, 케이팝의 오랜 팬이다. 샤이니 사랑해요(웃음). 지난해 한국 여행을 계획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어 아쉬웠다. 이렇게나마 한국과 연이 닿게 되어 반갑고 기쁘다. 필름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어릴 때부터 히치콕 감독의 영화와 흑백 탐정 영화를 즐겨 봤다. 시가를 피우며 35mm 빈티지 카메라로 촬영하는 감독들의 모습이 어찌나 쿨해 보이던지. 대학 입학
두 번째 가을입니다. 명절을 앞두고 긴장감이 흐르는 시대라니요, 이번 명절에도 대가족은 핵가족이 되고, 귀향자는 불효자가 될는지, 영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미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시대로 태세전환 중인데 말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인지라, 확진자 집계를 중단하고 코로나를 독감 수준으로 관리하는 싱가포르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지긴 합니다. ‘지속 가능한 방역’ 외엔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상처 입은 우리의 여행은 어떻게 될까요? 코로나만 종식되면 보복여행으로 혼쭐을 내줄 기세였는데, 기다리는 동안 보복
8월8일 섬의 날에 만나야 할 단 한 명의 여행가. 섬 여행의 스승, 김민수 작가다. ●왜 섬이냐고 묻는다면 김민수 작가를 처음 만난 곳은 섬이었다. 고흥 앞바다 연홍도라는 작은 섬. 취재가 아니라 ‘내돈내산’으로 떠난 첫 섬 여행이었다. 그가 대한민국에 흔치 않은 ‘섬 여행가’라는 사실은 늘 작다고 생각했던 한반도 반 토막의 지평을 3,358개 섬으로 넓혀 주었다. 대한민국에 그렇게나 갈 곳이 많았던 것이다. 여행가 김민수의 삶도 섬과 함께 확장해 왔다. 15년 전 취미로 시작한 캠핑이 섬 여행으로 넓어졌고, 그 기록의 가치를 인
‘여행이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모세의 십계에 필적하는 율법처럼 강요하는 너. 너의 차디찬 웃음을 또 보고 싶진 않아. ●여행을 모독하지 말라고?오, 그는 과연 우월했다. 낡은 여권에 아로새긴 수많은 낯선 비자 도장과 무수한 각국의 출입국 기록, 국내 방방곡곡에 대한 글과 사진 포스팅 그리고 인터넷과 모바일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그의 흔적들. 특히 SNS(사회관계망)에서 여행업계와 세상을 호령하는 그의 어록들을 발견할 수 있어, 마치 랜선을 끌어당기자면 그 끄트머리에는 배낭을 멘 그가 딸려 올 듯하다. 다만 그의 ‘대단한 여행
평소 신조 중에 ‘남의 여행을 탐하지 말라’가 있습니다. 타인의 여행은 부러워할 대상도, 평가할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죠. 이번 호에 이우석 작가의 유쾌한 독설이 자기 방식의 여행을 고집하는 ‘여스플레이너(旅+explainer)’에게 꽂힌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그래서 딱히 남의 여행 이야기에 솔깃해하지 않는 제가, 최근 흥미롭게 들은 여행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들의 여행, 비건들의 여행입니다. 이걸 어디서 들었냐 하면, (요즘 이거 하면 아재라던데) 한동안 ‘시간 플렉스’ 한다며 종일 틀어 놓았던 클럽하우스에서였습니다
그녀의 여행은 굵고 짧은 마법이다.정확히 10초, 찍길동의 여행에 매료됐다. MZ세대의 SNS 속 여행은 여러 형태로 변해 왔다. 글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영상으로. 최근에는 ‘숏폼(Short-form)’ 영상이 대세다. 영상 콘텐츠의 길이는 짧지만, 호흡이 긴 영상보다 훨씬 직관적인 감상이 가능하다. 숏폼 영상 SNS의 대표주자로는 틱톡(TikTok), 유튜브 숏츠(Shorts) 그리고 인스타그램 릴스(Reels)가 있다. 최근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여행을 테마로 빠르게 성장 중인 인플루언서 찍길동, 진소영을 만났다.‘찍길동’이라
여행에는 늘 언어라는 문제가 있다.파파고가 해결할 수 없는, 그 어떤 문제에 대하여.볼륨 4의 목소리여행에는 늘 언어 문제가 걸리게 마련이다. 한때 서점에 ‘나라별 여행 실용 회화’ 코너가 길게 있었던 이유다. 시원스쿨 출신처럼 몇 개 국어에 통달한 ‘언어의 달인’이 아니었던 나는 무수히 많은 해외 여행지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생애 마지막으로 토플 시험을 본 것이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7년이었으니 그 수준이야 오죽할까. 다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업종별 전화번호부만큼 어마어마한 두께의 얼굴 가죽을 지녔다는 것과 모든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