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의 작은 마을. 괭이를 든 이들이 있다. 땅을 고르고 자원을 캐내고, 경계를 부수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파머’다.●이름을 불러 주는 일나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흐릿하게 만들고 흑백으로 분리된 세계를 묽게 희석시킨다. 경계를 허문다는 건 마치 새로운 색깔을 창조하는 일과 같아서, 그런 일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한 톤 더 밝고 다채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경북 칠곡군은 경계를 부수는 이들, 아트랜스파머의 시선을 통해 매일 새롭게 채색되는 중이다.대구의 독
언제고 이런 시간이 오게 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곤 했습니다. ‘굳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의 반대편에, 그래도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잡지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맞서곤 했습니다. 덥석, 결정의 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와 밀착된 10년이었고, 에 대한 이야기가 제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라, 조금 되돌아보겠습니다. 기자로 입사한 을 4년 반 후에 그만둘 때 들은 말이 “우리도 곧 잡지를 만들 건데…” 였습니다. 그 잡지가
코시국에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기억을 살짝만 되돌려 봐도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은 섣불리 손대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 잠시 열기가 식었을 때 살살 벗겨 보자.●종로구가 쏘아 올린 특별관리지역 회상해 보자. 북촌에 깃발 든 관광객과 사진 출사 동호회와 인스타그래머들이 북적이던 그 시절을. 고즈넉한 궁궐 북편 한옥 마을이 핫 플레이스가 된 건 누구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상인들은 쾌재를 불렀지만,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했고, 쓰레기와 소음, 주차 문제로 종로구청엔 민원이 밀려들었다. 정류장 인근 도로를 점령한 관광
뜨겁고 아름다운 청춘의 노래가 울린다. 복작복작, 어느 마을 시골 장터 가득 젊음이 스민다.‘청년’이라는 계절이 있다면 아마도 늦은 봄과 여름의 끝자락 그 사이. 다소곳한 꽃잎처럼 피어났다가 한없이 푸르러지는 잎사귀를 닮은 시간일 것이다. 대전 유성시장 골목 어귀, 청년의 계절을 닮은 대전문화산업단지협동조합을 만났다. 유튜브: 청춘마이크 낭만적인 이름이다. 청춘마이크.그렇게 느껴졌다면 정말 다행이다. 조합 이름이 워낙 딱딱해서(웃음). 청춘마이크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를 해보자면 대전문화산업단지협동조합에서 청년예술가를 위해 기획한 버
등대에 갔다.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이것뿐이다. ●시작점 등대에 가기로 했다. 간밤에 폭설이 내렸고, 도시의 온도가 곤두박질쳤다. 숫자로만 존재했던 ‘-28℃’는 눈발과 바람과 공기가 되어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닿았다. 지독하게 추운 블라디보스토크의 겨울이었다.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침대 위에 웅크리는 것과 등대로 가는 것. 이불을 걷었다. 패기를 넘어 거의 자해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바깥을 나서는 데엔 대단한 각오씩이나 필요했다. 콧속을 뚫고 뇌까지 닿는 겨울바람을 버텨 내리란 각오, 유리조각에 허파가 찔리는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쯤 전에 이 지면에 ‘첫 차 구입 썰’을 풀었더랬습니다. 회사에서 굴리던 자동차가 매물로 나온 김에 오랜 뚜벅이 생활을 정리하고, 오너드라이버의 세계로 진입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사 다 때가 있다는데 차를 살 호기였는지는 몰라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운전대 앞에서 편해질 즈음,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는 ‘코시국’에 처하게 될 것을요. 반려동물도 없는 제게 애써 산책시킬 반려차가 생긴 것입니다.어쨌든 반려하던 차를 보냈습니다. 차를 팔았다는 소식에 지인의 첫 마디는 “기후 위기 대응?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어느 영화와 같았던 홍콩 회상기. 공중전화처럼붉은 네온으로 휘갈겨 쓴 커다란 한자 간판이 건물 사이 공중을 점령하고 있는 곳. 그 아래 골목 사이에는 윗도리를 깐 누군가가 커다란 기름 솥에 무엇인가를 튀기고 있고, 미지근한 연경(燕京) 맥주병이 오간다. 골목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주방장이 미필적 고의로 육수의 짠맛을 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800원짜리 완탕면은 꽤 맛이 좋았다. 노래를 부르는 듯한 말씨가 흐르는 식당 진열장에는 가금류(혹은 야생조류)가 모가지를 붙인 채 걸려 있고 앞에는 전 세
제주, 깊숙이 뿌리 내린 자작나무에 바람이 스친다. 일렁이는 나뭇잎의 고운 선율이 숲을 이뤄 섬을 감싼다.자작나무숲은 제주도민들로 구성된 클래식 음악 단체다. 2002년부터 제주도 지역민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피아노,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성악, 색소폰, 아코디언 등의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작나무숲을 이끌고 있는 ‘우상임 음악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유튜브: 자작나무숲 그런데 제주도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나?없다. 자작나무는 주로 추운 지역에서 자생하는 나무다. 예를 들면 강원
이건 영업비밀입니다만, 글의 결정적 순간은 ‘제목(혹은 첫 문장)’에 있습니다. 여행글쓰기 강의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과제 피드백의 비중을 높여 왔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건 제목의 중요성입니다. 제목 없는 글(정확히는, 마땅한 제목이 찾아지지 않는 글)은 제목 없는 여행이었고, 그건 제목이 없는 시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아직 아침이지만 오늘 하루의 제목은, ‘스승이란’입니다. 이 레터를 마감하지 못한 찝찝함으로 새벽 3시 반에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그래서 물감통을 열었습니다. 굳은 붓을 깨워 물감을 입히고, 지난겨울 광주에서 멈춰
잠깐만, 여권을 가지고 나왔던가?카메라는 챙겼던가? 여행 중 지울 수 없는 걱정들. ●노파심의 시작할머니는 아니지만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해야 할까, 여행 중엔 괜한 걱정이 많이 생긴다. 공항을 가기 위해 집 현관을 여는 순간부터 걱정은 시작된다. ‘컬링 스톤’이라도 든 게 분명한 캐리어를 질질 끌며 걸어가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7400번 공항버스가 떠나 버린 것은 아닐까? 분명히 승리교회 앞에서 15분에 출발이라 그랬는데, 혹시 예전 시간표가 아니었을까?’ 네이버로 확인은 했지만,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기어코 버
할리우드, 베니스 해변, 라라랜드.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그곳에서필름 한 롤과 함께 도착한 니콜의 이야기.하이, 니콜!Hello from LA! 시작부터 뜬금없는 ‘덕밍아웃’이지만, 케이팝의 오랜 팬이다. 샤이니 사랑해요(웃음). 지난해 한국 여행을 계획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어 아쉬웠다. 이렇게나마 한국과 연이 닿게 되어 반갑고 기쁘다. 필름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어릴 때부터 히치콕 감독의 영화와 흑백 탐정 영화를 즐겨 봤다. 시가를 피우며 35mm 빈티지 카메라로 촬영하는 감독들의 모습이 어찌나 쿨해 보이던지. 대학 입학
두 번째 가을입니다. 명절을 앞두고 긴장감이 흐르는 시대라니요, 이번 명절에도 대가족은 핵가족이 되고, 귀향자는 불효자가 될는지, 영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미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시대로 태세전환 중인데 말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인지라, 확진자 집계를 중단하고 코로나를 독감 수준으로 관리하는 싱가포르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지긴 합니다. ‘지속 가능한 방역’ 외엔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상처 입은 우리의 여행은 어떻게 될까요? 코로나만 종식되면 보복여행으로 혼쭐을 내줄 기세였는데, 기다리는 동안 보복